- 5권 9화
저주, 그리고 근육질 남자의 탱커로서의 능력이 합해져서 겨우 저 정도 부상을 입은 것으로 끝날 수 있었다.
[크오오오!]
이후 다시 한 번 포효한 괴물이 네 개의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팔을 붙잡은 채 당황을 감추지 못하던 근육질 남자의 몸이 여러 갈래로 찢겨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욱, 우웨에엑-!”
눈앞에서 핏물이 가득 튀고 사람이 죽는 모습을 선명하게 목격한 신임철은 참지 못하고 오바이트를 쏟아냈다.
하지만 정신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시발! 이게 무슨 꼴이야.’
신임철은 속으로 욕설을 난발했다. 그는 힐러이자 서포터였다. 딜러나 탱커가 앞에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도, 도망가야 해.’
신임철은 금세 겁에 질렸다. 포털 위치와 등급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몬스터들이 나타나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그도 나름 각성자라고 비상시였기에 나서긴 했지만, 지금 상황은 그의 수준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남보다 자신의 생명이 더 소중했다.
그렇기에 신임철은 도망을 생각했다.
콰쾅!
그때였다. 원거리 공격 능력을 가진 각성자 몇 명이 괴물을 향해 능력을 사용했다.
화살, 혹은 허접하게 생성된 불이나, 얼음, 비도 따위가 날아가 폭발했고, 신임철은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나부터 살고 봐야지r 그렇게 달리기 시작한 그의 등뒤로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10미터도 가기 전에 일어난 비명이지만, 신임철은 외면했다.
“젠장! 우라질!”
입 바깥으로는 계속해서 거친 욕을 내뱉고 있을 때였다.
“오빠?”
먼저 도망친 줄로만 알았던 유지 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임철이 고개를 돌려보니, 다리를 다쳤는지 허망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유지민의 모습이 보였다.
“오, 오빠. 도와줘! 다른 친구들도 갑자기 다 흩어져서 어디 갔는지 모르겠고……!”
유지민이 희망을 찾은 듯 다급하게 손을 내뻗었다.
'어떻게 하지?’
신임철이 잠시 걸음을 망설일 때였다.
유지민의 바로 뒤편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몬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놈의 걸음은 빠르지 않았다.
여유롭게 산책이라도 나온 듯 느긋했다.
하나 번들거리는 시선만은 유지 민과 신임철에게로 고정된 채였다.
“아……
탄식을 내지른 신임철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왜, 왜 그래, 오빠?”
당황한 유지민이 신임철을 불렀다.
“씨, 씨팔!”
사색이 된 신임철은 욕을 내뱉고는, 유지민으로부터 등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빠! 도, 도와줘! 도와달라고!”
놀란 유지민이 내지르는 비명이 신임철의 귓가에 선명히 틀어박혔다.
'뭐, 뭐 나보고 어쩌라고!?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다소 괴로운 자괴감이 들었지만, 걸음을 멈추는 일 따위는 없었다.
‘난 살 거야. 살 거라고. 촉망받는 엘리트인 내가 이딴 곳에서 죽을 순 없다고!’
걸음이 거듭해서 빨라질수록 숨이 벅차오르며 입가에 단내가 가득차올랐다.
* * *
“이, 이 개새끼야……! 죽어버려!
가다가 죽으라고!”
멀어지는 신임철의 뒤를 향해, 눈가에 물방울을 매단 유지민이 독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나 신임철은 계속해서 멀어져만 갈뿐이다.
쿠오오-!
대신하여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
유지민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짐승 누린내와 인간의 피 냄새가 섞인 지독한 냄새에 코를 부여 잡았다.
“욱……. 대체 이게 뭐……야?”
그녀가 시선을 돌려, 어느덧 자신의 바로 뒤편으로 다가와 태양빛마저 가린 몬스터의 곤충 같은 눈과 마주했을 때는 온몸에 서늘한 감각이 차올랐다.
“흐어아아아-!”
이윽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제바알-!”
부러진 발목으로 일어날 수조차 없는 유지민이 할 수 있는 발악이라고는 엉덩이로 바닥을 기며 손을 내젓는 것뿐이었다.
몬스터는 그런 유지민의 모습을 감상하듯 느긋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까드득.
입이 벌어지는 모습이 어째서인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스윽-!
높이 들어 올린 네 개의 팔에 달린 날이 매섭게 번쩍인다.
벗어날 수 없단 걸 깨달은 유지 민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를 때였다.
퍼엉-!
대포가 터지는 것 같은 커다란 폭음과 함께 피할 수 없는 사신인 것만 같던 몬스터의 상체에 커다랗고 동그란 구멍이 생겨났다.
“어, 어……?”
유지민은 잠시, 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드드드득- 쿵-!
기계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사체가 그녀의 코앞으로 넘어졌다. 그리고 그런 후에야 유지민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주, 죽은 거야?’
위협적이다 못해 끔찍하기만 했던 몬스터가 단숨에 아무런 의지가 없는 돌덩이와 같은 사체가 되어버렸다.
척-!
그런 유지민의 앞으로 또 다른 기척 하나가 다가왔다.
순간 또 다른 몬스터인가 하여 몸을 크게 움츠린 유지민이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후 감탄을 터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검은빛이 도는 갑주에, 어깨에 쓰인 본인을 상징하는 글자가 누구보다 분명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노네임드!”
그가 왔다.
대한민국 최강의 각성자이자 영웅!
어째서 저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단숨에 쓰레기처럼 너부러졌는지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살았다는 데에 대한 안도, 그리고 노네임드를 향한 감탄과 감동이 몰려들었다.
반면 자신을 보며 감격에 젖은 눈을 한 유지민을 보는 수혁의 기분은 오묘했다.
‘이렇게 엮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반지 내에 하이퍼 아머가 내장되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수혁 본인의 모습을 보였다면 더 큰 난리가 났을 테니 말이다.
“다리를 다치셨네요?”
“아, 네. 걷지를 못하겠어요.”
유지민의 말에 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나.’
어지간하면 유지민과는 연관되고 싶지 않았지만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안전한 데로 모셔다 드릴게요.”
“가, 감사합니다!”
수혁은 유지민을 가볍게 품에 안고는 각성자 협회의 수호자들이 모이고 있는 장소를 향해 달려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여 각성자들 틈새에 앉게 된 유지민이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부탁드릴게요.”
그 사이 자신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다른 수호자들과 짧은 대화를 나눈 수혁이 떠나려 했다.
“아, 저기 혹시 우리 어디서 유지민이 다급한 목소리를 내뱉었지만, 이미 수혁은 제자리에서 사라진 채였다.
모여드는 시선에 얼굴을 붉힌 유지민이 재빠르게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 그래. 착각, 분명 착각일거야. 비슷한, 그래. 비슷한 느낌의 사람일 뿐이야.’
그녀는 잠시 떠올랐던 생각을 빠르게 묻으려 하였다.
물론 뜻대로 쉽게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 * *
유지민을 버리고, 다른 방향으로 도망을 간 신임철이 정신없이 달리고 있을 때였다.
“헉, 헉……
과광-!
거친 숨소리를 흘리는 그의 앞에 건물이 갑작스럽게 굉음을 내며 무너 졌다.
“으어아-!”
비명을 내지르며 걸음을 멈추는 신임철의 앞으로 자욱한 먼지 구름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 너머로 거대한 몬스터의 그림자가 비쳐왔다.
[크오오…….]
다른 방향을 보는 것 같던 몬스터의 고개가 바로 신임철에게로 향했다.
“아…… 아……
바로 코앞, 그토록 무시무시한 몬스터와 시선을 마주한 신임철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 어렸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죽음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고, 부들부들 떨며 의미 없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퍼어어억!
거대한 괴물의 몸이 옆으로 날아가 아스팔트 위로 처박혔다. 껍질이 박살났고, 녹색의 체액이 흘렀다.
“어?”
신임철은 그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강력한 괴물이 어째서 저렇게 된 거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신임철 앞으로 수혁이 떨어져 내렸다.
포털 위치를 찾는 와중에 사람들을 구하다보니 신임철과도 마주친것이다.
그의 시선 역시 유지민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노, 노네임드……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는 그를 보며 수혁은 또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 오늘 여러 가지로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줌까지 지린 신임철을 업고 데려다 줄 생각은 없었다.
“걸을 수 있으시죠?”
“아, 그게……
“회복 계열 각성자 같으신데, 조금만 힘내세요. 여기 계시면 죽어요.”
“네, 네!”
죽는다는 말에, 신임철이 다시금 양다리에 힘을 주고는 벌떡 일어났다.
역시 사람은 극한의 상황이 되면 한계 이상의 의지력을 보여준다.
“저쪽으로 가면 협회에서 나온 수호자들이 방어진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는 길에 제가 청소도 해놨고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뛰어요!”
“옛!”
신임철이 수혁을 가리킨 방향을 향해 축축해진 바짓가랑이를 붙잡고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찌 됐든 오늘 그는 목표대로 목숨을 건졌다.
‘잘난 척은 엄청 하더니, 무지 유약하네.’
수혁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한 번 차고는 다시금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번화가인 홍대 거리가 엉망이 되었다.
수혁의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6등급 수준의 몬스터가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는 이 시점에 포털의 위치를 찾지 못한다는 것은 갑갑한 일이었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보통은 포털이 나타나기 전에 어떠한 이변을 일으킨다.
그리고 굉장히 눈에 뜨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혁이 신촌에서 한 번 겪은 바 있듯 말이다.
‘기감으로 찾고는 있는데……
일반적인 포털에서는 강력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기운이라는 것이 빠져나온다.
때문에 그것을 쫓아야 하는데 지금 바깥에 나와 있는 몬스터가 너무 많아 포털이라고 확정할 만한 것을 쫓는 게 어려웠다.
‘높은 건물에라도 올라가서 한번 훑어봐야 하려나.’
하이퍼 아머에 내장 된 줌인 Zoom in 기능과 내공을 이용한 시야 확보를 동시에 운영한다면 홍대 거리, 서교동과 동교동 대부분을 빠르게 훑어볼 수 있을 듯도 했다.
결심한 수혁이 주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을 찾고 있을 때였다.
- 치직.
하이퍼 아머에 연결된 통신 장치가 짧게 울려왔다.
지금 수혁의 하이퍼 아머에 연결된 인물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네펠리아노? 찾았어?
-예. 펠리에요. 수혁 님. 그리고 포털 찾았습니다.
-어디쯤이야?
-영상 전송할게요.
어째서인지 일전에 알려준 자신의 애칭을 다시 한 번 강조한 네펠리아노가 수혁의 하이퍼 아머에게로 영상 데이터를 전송했다.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네펠리아노가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 전송되었다.
확연한 녹색 빛 포털이 강렬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거리는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3KM 정도인가?’
이제 보니 수혁은 반대로 뛰고 있었던 것이다.
네펠리아노와 길을 갈랐기에 다행이지 잘못하면 영영 못 찾을 뻔했다.
‘이러니까 못 찾지.’
어쨌든 크기는 제법 컸다.
엄청난 수준은 아니어도 다급한 현재 상황에 있어서는 곤란한 수준이었다.
-제법 넓은 세계관 같은데?
이런 몬스터만 사는 세계관이 덩치가 크면 골치가 아프다.
레벨업하는 무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