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1화
검마, 패철웅은 분명 패자强者라 불릴만한 시대의 기린아였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남은 물론, 마음속에 가득 품은 탐욕으로 인해 노력을 멈춘 적도 없었다.
행동 전에는 신중하며, 실천한 순간에는 날랜 범과도 같았다.
마공을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모든 마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마脫魔의 경지 입구까지 도달한 것이 그 증거였다.
검마는 자신했다.
무황제 이후, 새로운 강호의 왕은 자신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미 사도 무림의 대다수는 검마의 이름하에 무릎을 꿇었다.
정도무림 역시 거대하지만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시작점은 창왕, 진성운을 꺾고 소창진가를 무릎 꿇리는 일부터라고 생각했다.
계획은 잘 준비되었다.
귀안성에 있어 소창진가 다음 가는 무림문파 혹은 가문 중에서 후보를 뽑고, 은밀하게 접촉을 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측은 귀안청가였다.
청가의 가주, 청두일은 어떻게 해서든 진성운을 꺾고 귀안 제일로 올라가고 싶은 야망이 넘치는 자였다.
또한 패철웅이 접근하기도 전부터 이미 기회를 노리고 움직이고 있었다.
새 황제, 손익정에게 버림받으며 약해진 소창진가쯤은, 본래부터 귀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몇몇 무림문파와 가문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밀어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계획을 가진 청두일과 손을 잡은 문파가 제법 있었다.
패철웅의 입장에서야 너무나 기쁜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준비하고 있던 계획을 먼저 시작한 이가 있었다.
청두일과 패철웅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졌다.
물론 서로가 바라는 이상향은 많이 달랐다.
귀안청가는 패철웅이 이끄는 사도연맹, 마혈림을 이용하고 떡고물만 조금 떨궈주고 내칠 생각일 터였다.
패철웅이 바라는 바는?
말할 것도 없었다.
독식獨食이 었다.
귀안청가와, 그를 따르는 어설픈무림문파에게 나눠줄 건덕지는 조금도 없었다.
애초에 패철웅이 없었다면 그들의 계획은 성공할 수조차 없었다.
분명 소창진가는 약해졌다.
새로운 제국의 황제가 즉위하며, 이빨과 발톱이 모두 빠져 버렸다.
때문에 패철웅도 소창진가를 첫 목표로 잡은 것이다.
하나 이빨이 빠져도 호랑이는 호랑이, 고양이한테 물려 죽는 일은 없었다.
패철웅의 머릿속에는 이상적인 그림이 완성되었다.
남은 것은 상처 입고, 지친 호랑이를 사냥하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귀안성에 몰래 숨어 들어와 움직일 때를 노리고 있던 시점.
귀안청가의 삼남이 시장에서 시비에 말려 두드려 맞고, 집까지 끌려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무단 잠입한 사내는 귀안청가는 봉문封門하라며 억압을 가했다.
어지간하면 숨죽인 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패철응이라고 하여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청가의 삼남이 두드려 맞아 죽는 것은 그의 알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귀안청가가 봉문을 하게 되는 것은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또 하나, 청가를 방문한 손님의 인상이 낯이 익었다.
산군, 장삼팔.
같은 사도무림이나 다름없는 산적 집단의 두목.
기회였다.
애초에 산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워낙 신출귀몰한 자라 어떻게 찾을 방법이 없어 놓아뒀었는데, 이건 제 발로 굴러들어온 복덩어리, 기회나 다름없었다.
재빨리 뛰쳐나가 장삼팔을 제압하려 했다.
아직까지 산군이라 불리는 장삼팔이지만, 이미 한 시대 전의 무인이었다.
그는 더 이상 강해지지 않았고, 검마는 탐욕을 부리며 꾸준히 성장했다.
두렵지는 않았다.
실제로 승리도 자신했다.
하나 썩어도 준치라고 하였던가?
장삼팔의 도는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싸움이 길어졌고, 이내는 도주하는 장삼팔을 놓치기까지 했다.
추적에 나섰고, 그가 동료들이 있는 것 같은 객점으로 뛰어든 것까지도 좋았다.
장삼팔의 동료라고 해봐야 산적 나부랭이들.
어차피 그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한데 무황제라고?’
젊은 청년, 수혁이 웃으며 내딛는 첫걸음에 식은땀이 흘렀다.
단순한 이름 탓만은 아니었다.
흑산자보다 훨씬 더, 무황제를 흉내 내는 이들은 많았다.
가짜, 어설픈 사기꾼들.
하나 수혁이 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런 생각은 싹 지워졌다.
무거웠다.
퍼져 나온 기세가 주변을 뒤덮었다.
거대한 용이 그의 앞에 좌리를 틀고 있는 것만 같은 환상까지 보였다.
자존심이 상했다.
만약 눈앞의 수혁이 정녕 무황제라면, 진짜라면 그와 본인의 격차가 이만큼이나 멀단 말인가?
‘말도 안 돼.’
그는 검마.
새로운 무황제가 될 사내이며, 과거를 뛰어넘어 또 다른 전설을 쓸 인물이었다.
‘질 리가 없다. 지금 나는 과거의 무황제를 뛰어넘었다r 비등할 리가 없었다.
무황제는 패철웅의 목표였다.
그만큼 누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원했고, 알아보았다.
과거 무황제는 본인과 비등한 경지, 혹은 그보다 못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마공은 무황제의 무공보다 강했다.
질 리가 없었다.
무조건 적으로 이긴다.
“과거의 유산 따위가-!”
대기가 찢어지는 순간, 발악적으로 휘두른 검에서 검은색 강기가 자라나며 거칠게 휘둘러졌다.
타다다닥-!
그 강렬함에 허공으로 불길이 타오르며 화려한 꽃을 피웠다.
하나 검 끝에 걸리는 감각은 없었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깊이 숙인 패철웅의 머리카락 위로 날카로운 손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 감은 좋은데?”
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섬뜩한 음성에, 이를 악문 패철웅의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솟아났다.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고 머리카락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필실기, 마왕강림魔王降臨!”
언젠가 무황제, 혹은 동급의 고수와 만났을 때 사용하리라 마음먹으며 감추어 두었던 패철웅의 필살기가 펼쳐졌다.
강기가 하늘을 뒤덮다 못해 뿔이 솟은 거대한 동상으로 자라나 세상을 뒤흔들었다.
쿠르릉-!
천둥이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동상의 손에 들린 검이 휘둘러 졌다.
피할 곳은 없어 보였다.
거대한 검은, 세상 전체를 뒤엎을 듯 거대했으니 말이다.
그 아래 선 수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후 푸른빛 극강기가 마치 가시바늘처럼 솟아나 쏘아졌다.
쩌저적-!
어둡던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세상을 뒤덮은 것만 같던 거인의 동상은 마치 유리조각 파편처럼 변하여 흩날렸다.
너무나 허망하게, 쉽게, 간단하게 어둡던 세상이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어, 어쩌 마왕강림이…… 쿠에 에엑-!”
패철웅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피를 쏟았다.
바로 그 정면으로 나타나, 엄지와 검지를 말아 이마에 가져다 댄 수혁이 말했다.
“마왕강림?”
입가로는 조소가 흘렀다.
“진짜 마왕을 보지 못했으니 할 수 있는 헛소리지.”
따악-!
손가락이 튕겨지며, 패철웅의 이마가 뒤로 크게 넘어갔다.
“커어억시”
비명을 내지르는 그의 멱살을 잡아당겨, 다시금 끌어올린 수혁이 시선을 마주했다.
“자, 말해 보자. 검마. 내가 누구라고 했지?”
고통, 그리고 처음으로 겪어보는 압도적인 상대가 내뿜는 적의에 대한 공포로 잠식된 패철웅은 입을 열지 못했다.
딱-!
다시 한 번, 수혁이 딱밤을 튕겼다.
“꺼어억-!”
비명을 내지른 패철웅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가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내가 누구라고?”
“ O O O. ?I n 마....”
-, ? -一-一L I上 ?
패철웅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이런……. 골수에 차오른 마공부터 빼줘야겠군.”
딱-!
또다시 한 발 더, 오뚝이처럼 일어난 검마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야, 검마.”
“제발, 제발 그만해……:’
“대답만 똑바로 해. 내가 누구라고?”
“무황……제.”
그때가 되어서야, 흡족한 웃음을 지은 수혁이 멱살을 놓았다.
이후 그는 제자리에 무너진 검마에게로 다가가 검지 끝을 들어 올렸다.
“절대로 잊지 마. 내가 진짜 무황제, 양수혁이다.”
몇 번의 점혈.
“끄어아아아으]-!”
그 끝에 펼쳐진 분근착골에 온몸이 뒤틀린 검마가 괴성을 내질렀다.
수혁의 무심한 시선은 그를 지나쳐, 치료가 끝난 장삼팔에게로 향했다.
“장삼팔.”
“예, 옛!?”
두 눈에 공포의 감정을 가득 담은 장삼팔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이 새끼 어디 있었어?”
“그, 아까 시장의……
“귀안청가?”
“예.”
“안내해. 위치 기억하지?”
강호의 법도는 잔인하다.
칼을 뽑지 않았다면 모를까, 뽑은 순간 그 이후로는 끝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강호의 무인은 검을 뽑는데 있어 신중해야만 했다.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야지.”
그래야만 뒤끝이 없는 법이었다.
귀안청가.
귀안성 내에서는 내로라하는 거대한 가문 하나가 하룻밤 만에 망했다.
가문의 고수들은 모두 단전이 파괴되고 혈맥이 끊어졌다.
일상적인 생활 정도야 지장이 없을 테지만 다시는 무공을 익힌다거나, 싸움 등은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무인으로서의 삶이 끝난 사람들이 모인 무가武家는 존재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 귀안에서 영위를 누려온 귀안청가가 고작 하룻밤 새에 망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나 아무도, 그 누구도 그런 귀안청가의 멸망滅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고 커다란 소문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무황제가 돌아왔다.
발 없는 말은 천리를 간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말이란 당연히 날 수 있는 마馬를 뜻하는 바가 아니었다.
사람의 목을 넘어 혀끝에서 뱉어지는 이야기, 말.
수혁은 보란 듯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사건을 벌였다.
덕분에 채 삼 일이 되지 않아 넓은 귀안성 전체에 무황제란 이름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 상태로 한 달 정도 지나면 경성까지도 소문이 닿겠군.’
그리고 두 달 이내에는 전 대륙에 무황제의 이름이 울려 퍼질 것이다.
여기서 수혁이 더 많은 곳에서 깽판을 치고 다니면, 그 속도는 훨씬 빨라 질 터였다.
투왕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수혁을 찾아오게끔 만들어줬다.
‘기왕이면 근처에 있어서 빨리 찾아와주면 좋겠다만.’
느려도 큰 상관은 없었다.
수혁은 어차피 환 대륙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 사건들을 처리해나가며, 투왕을 기다리면 될 뿐이었다.
검룡이 진짜 투왕이라고 밝혀진 이상, 그가 마음을 먹고 움직인다면 수혁을 찾아오는 데 있어 며칠도 걸리지 않을 터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수혁은 다음 날 곧장 머물던 객점을 떠났다.
발걸음은 제국의 성도, 경성으로 향했다.
다만 속도를 처음 흑산자를 찾을 때처럼 급하게 높이지 않았다.
느리지는 않지만, 전력은 아니게.
딱 일행 내에서 최고 하수인 조화경의 무인, 장삼팔이 무던히 쫓아올 수 있는 속도로 달렸다.
‘제국 내에 문제가 있으면 적당히 정리하고, 소문도 만들고.’
그리고 그 와중에 수혁은 흑산자와 진성운을 제외한 일행들의 무공을 지도했다.
귀안청가를 멸망시킨 이후, 어째서인지 기분이 좋아진 네펠리아노는 수혁을 따라 열심히 무공을 수련했다.
그리고 용족답게 빠른 성장을 이룩하고 있었다.
객점을 떠난 지 고작 일주일, 네 펠리아노는 순수 무공만으로도 이 류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의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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