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권 1화
순식간에 녹빛으로 자욱하게 퍼진 강기가 당황하는 자유의 날개간부들의 목을 잘라버렸다.
예상치 못한 습격이었고, 그 위력조차 상당했기에 그에 반응할 수 있는 인물은 몇 없었다.
핏물이 튀기는 순간, 상황을 인지한 이들의 눈이 살기를 발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녹색 강기 뒤에서 은빛 화살 여럿이 허공을 갈랐다.
“음모를 꾸민다는 놈들은 왜 이렇게 어두컴컴한 지하를 좋아하는지.”
쐐에엑- 퍼벅-!
또다시 한 번에 다섯 이상이 머리가 꿰뚫려 제자리에서 쓰러졌다.
죽음.
현대인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고 각성자라고 하여도 포털 밖의 세상에서는 낯선 일이, 너무나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채웠다.
살기를 일으키던 눈동자에는 공포가 차올랐다.
그 정점은, 다시 한 번 지붕이 무너지며 수염을 길게 기른 장년인 이 나타나 검이 보이지도 않게 휘두른 순간이었다.
퍼버벅-!
마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가는 그 광경을 맨눈으로 보고도 제정신일 인물은 몇 없었다.
심지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하나 같이 최소 9등급, 세계 기준으로 보아도 상위권에 꼽히는 각성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제대로 된 반응조차 못한 채 순식간에 죽어나갔다.
개중에는 11등급, 혹은 최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12등급 각성자도 섞여 있었다.
한데 모두 제대로 손조차 쓰지 못하고 당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 뿐이었다.
백무정.
자유의 날개라는 암중 길드의 사장인 그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들이……
이제야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 대다수의 간부들과 다르게 백무정은 처음 등장한 장삼팔이 도를 휘두르는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최소 유니버셜 8급의 강자가 나타났다.
문제는 기척이 하나가 아니라는 부분이라는 데 있었다.
‘최소 셋.’
백무정은 이 싸움이 아무런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단숨에 힘겹게 성장시킨 길드가 망할 위기였지만,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
'길드는 다시 만들면 돼.’
상대의 목적은 몰랐다.
정체도 몰랐다.
하나 그를 따지고 들 여유 같은 것도 없었다.
백무정은 이 자리를 벗어나 목숨을 챙기는 쪽을 택했다.
‘내가 살아야 자유의 날개도 있는 거지.’
이미 그런 백무정의 심성을 잘 아는 간부들 몇몇은 그보다 더 발빠르게 도주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백무정도 그들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또한 고수들 사이를 빠져나가 살아남을 방법도 잘 알았다.
‘유체화.,
다섯이나 되는 백무정의 특성중, 가장 먼저 개화한 초능 계열의 능력이 발휘되었다.
단숨에 백무정의 미간을 꿰뚫듯 날아든 은빛 화살이 반쯤 투명해진 백무정의 미간으로 날아와서는, 마치 빈 허공을 나는 마냥 반대편으로 넘어가버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종리연의 눈■이 번쩍였다.
‘저건 또 뭐야?’
쫓아오는 시선을 느끼며, 웃음을 보인 백무정이 달리기 시작했다.
‘유체화 상태에서의 이 몸은 아무런 물리적 타격을 입지 않지.’
이동 속도 또한 상당히 빨라졌다.
기본적으로 육체 계열 강화 능력도 가진 백무정이기에, 유체화를 펼친 동안은 어지간한 초인 이상으로 달릴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유체화 상태에서는 백무정 본인도 남에게 공격을 가할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야말로 도망치기 위한 능력.
겁쟁이인 백무정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특성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단숨에 지하 비밀 벙커를 벗어나 지상으로 뛰쳐나온 백무정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어디가 가장 안전하지?’
상대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들킨 적 없는 그들의 비밀 벙커를 찾아왔다.
어지간히 노출된 지역은 위험하다고 봐야 했다.
그 순간 백무정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알버트.’
과거, 최강자라 불리던 유니버셜 8중 하나.
그리고 실제로 현재 백무정이 알고 있는 각성자 중 노네임드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인물이었다.
‘놈에게 간다.’
알버트와 함께라면 갑작스러운 침입자들이 다시 쫓아온다고 해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 뒷모습을, 머지않은 곳, 그림자에 숨어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있는 줄은 모른 채로 말이다.
종리연, 장삼팔, 패철웅.
단숨에 자유의 날개 비밀 벙커를 습격해 학살을 감행한 그들은 빠르게 달아난 백무정의 뒤를 쫓으려 했다.
문제는 백무정은 생각보다 빨랐고, 육체가 투명화 되었기에 흔적을 쫓기도 힘들었다.
“젠장, 아무리 생각해도 놈이 두목 같은데……
종리연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설프기 그 지없는 각성자들이 가득 있는 그사이, 유일하게 눈에 뜨이던 인물이었다. 때문에 종리연이 빠르게 화살을 겨누어 그가 움직이기 전에 죽이려 한 것이다. 한데 상대는 대적이 아닌 도주를 택했다.
문제는 정확하게 날아간 화살이 투명해진 그의 육체를 통과하고 지나간 것에 있었다.
‘각성자란 놈들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정확히 할 수가 없으니……
예상치 못한 방심이었고, 분명 실수였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종리연이 곳곳에 남은 자잘한 흔적을 쫓았다.
흔적은 옅었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중하게 움직인다면 결국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시간이 꽤나 걸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래 가지고는 놈이 지구 반대 편으로 달아날 때까지 못 잡겠군.”
패철웅이 답답하다는 듯 종리연의 뒤에서 불만을 토했다.
“이 강도 새끼가. 자기는 아무것도 안하고 지켜만 보는 주제에 누님한테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차라리 맹의 추적대를 불러오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한 말이다.
천하의 궁귀弓鬼도 한 물이 가긴 했군.”
“이 새끼가 정말……!”
다시 다툼을 시작하는 그들 사이로, 회색빛 피부를 가진 그레이가 떨어져 내렸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무심한, 감정 없는 눈으로 모두를 둘러본 그레이가 입을 열었다.
“따라 와라.”
“네놈은……!?”
패철웅의 물은 질문에, 대답도안한 그레이가 앞으로 뛰어 올랐다.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지금은 놓친 백무정을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일행들이 다 같이 그 뒤를 쫓았다.
그레이는 천천히 속도를 높여 서울을 벗어나서, 경기도 광명까지 움직였다.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빠르게 뛰어온 일행들의 눈에 의심이 가득 담길 때였다.
“저곳.”
다소 외진 논밭 사이에 지어진 3층짜리 단독 주택을 가리킨 그레이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저곳에 놈이 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가지.”
검마가 검을 뽑아들며 기운을 일으킬 때였다.
그레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네놈은 위험하다.”
“……뭐?”
“먼저 가면 죽어.”
“감히……. 괴상하게 생긴 놈이 이 몸을 무엇으로 알고! 본좌는 검마다!”
패철웅의 외침을 완전히 외면한 그레이가 한 손에 회색빛 기운을 응집시켰다.
사람 머리통 다섯은 합친 것 만한 거대한 강기의 구체를 확인한 패철웅의 몸이 움찔 떨렸다.
‘무슨……
당장 패철웅은 검에 저만한 위력을 가진 강기를 둘러싸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하나 그레이처럼 순식간에 형성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에 만드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
조화와 조율의 차이.
경지의 이름이 다른 그 벽 앞에 말문이 막힌 탓이다.
장삼팔과 종리연 역시 그를 보고 놀란 듯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그레이를 바라볼 때였다.
획-!
망설이지 않고 구체를 던진 그레이의 눈이 건물을 꿰뚫어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파앗-!
집안 곳곳에서부터 가시처럼 솟아난 검의 기운이 단숨에 그레이의 강기 구체를 꿰뚫고 사로잡아 터트렸다.
과쾅-!
그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모두의 눈이 다시 한 번 커다랗게 변했다.
“방금……
집 내부에서부터 엄청난 기운이 순식간에 퍼졌고, 다시 가라앉았다.
그레이의 말대로 함부로 접근했다면 아무리 패철웅이라고 하여도 최소 중상을 면치 못했을 터였다.
‘이놈……
패철웅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정체 모를 회색 괴인, 그레이가 범상치 않음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반면 그레이는 다시금 몸을 웅크리듯 숨을 죽인 건물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역시…… 그곳에 있구나. 알버트 크래스포.”
분노 가득한 음성이 자욱하게 울려 퍼졌다.
이어서 그의 등 뒤로 사람 머리통만한 강기의 구체가 수십이나 떠올랐다.
위력은 일전의 것에 비해 약하겠지만 그 숫자는 엄청나게 많았다.
손을 휘젓자 강기의 구체가 곳곳에서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파바밧-!
다시금 튀어나온 검은 마구잡이로 강기 구체를 꿰뚫었다.
과과과광-!
폭음 속, 그레이의 등 뒤로 회색 빛 악마 날개가 펼쳐졌다.
쐐에에엑-!
대기를 가르고 솟아오른 가시들 사이를 헤집은 그레이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크아아-!”
괴성과 함께 응집된 강기의 힘이 기다란 광선이 되어 날아갔다.
그 위력은 현저히 떨어졌지만 네 펠리아노의 용의 숨결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또한 틈을 노린 공격인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과광-!
폭음과 함께 건물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내부에서부터 두 개의 기척이 지상으로 뛰쳐 올라왔다.
산발의 머리어한쪽 눈을 가린 작은 안경을 낀 알버트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상대를 확인하고 놀란 백무정의 눈도 보였다.
“누군가 했더니, 네놈이었구나.”
알버트 역시 그레이를 보고 놀란듯 음성을 를렸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전장으로 뛰어든 종리연의 화살이 알버트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퍼버벅-!
머리가 꿰뚫린 알버트의 이마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핏물이 사방으로 비산되었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단숨에 죽음을 맞이할 상황.
하나 알버트의 육체는 터진 머리를 단숨에 복구하기 시작했다.
마치 세포가 자라나둣, 다시금 형체를 갖춰가는 알버트의 모습을 본 일행들이 눈을 부릅떴다.
“저건 무슨……!”
인간이 아니었다.
아무리 강력한 능력이라고 하여도 터진 머리를 재생시킬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흐흐, 놀랄 만도 하지. 이 몸은 인간을 뛰어넘었다.”
웃음을 흘린 알버트가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빛나는 붉은빛 구슬이, 알버트가 가진 검은 마기와 어우러져 기운을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존경하라. 어리석은 존재들이여, 이 몸은 인간을 뛰어 넘어 신이 된 제왕의 힘을 누리게 되었으니……
화르르륵-!
거대한 화염이 알버트의 머리카락에서부터 피어올랐다.
“이제야말로 완전한 초월자가 되었도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지면에서부터 타버린 것 같은 잿빛 피부를 가진 괴생물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언데드 군단을 보는 것 같은 모습.
검붉은 기운에 웅크린 알버트가 그들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 힘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는가. 자유롭구나, 자유로워. 왕의 힘이란 이런 것임을.”
그를 바라보는, 곁에 선 백무정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작가의 말.
제가 내일까지 지각을 하면, 전대머리가 되는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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