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권 4화
잠시 발목이 묶인 수혁의 옆을 영체가 된 바알이 웃음을 지으며 지나쳤다.
[남의 보물을 탐하지 말라. 탐욕스러운 인간의 군주여.]
직후 바알은 괴로워하는 알버트의 왼손에 잡힌 붉은 구슬을 집어들었다.
[때가 되면 다음 만남이 다시 있을지니, 그때가 된다면 전력을 겨루어 볼 수 있겠…….]
뒤를 돌아보며 마지막 말을 남긴 바알의 검은 연기가 흩어지고 있을 때였다.
[특수: 전쟁군주는 불패한다 -
lv.2]
수혁의 몸에서 푸른빛이 폭발할 듯 터져 나왔다.
내지른 주먹은 음속을 돌파하여, 초음속의 속도로 극강기를 쏘아 보냈다.
파직-!
전류가 흐르고 검은 아지랑이에 둘러싸인 바알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 순간이었다.
회전하던 스톰브링거로부터 더욱 거센 기운이 터져 나오며 수혁의 극강기와 부딪쳤다.
과과광-!
폭음과 함께 바알의 신형이 뒤흔들리며 세계의 일부가 찢어졌다.
[크아아-!]
바알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 순간 스톰브링거의 폭풍을 찢으며 무섭게 달려든 수혁의 손이 바알이 놓친 붉은 보석을 향하는 순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섬뜩함을 느낀 수혁이 보석을 잡은 채 뒤로 물러났다.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검이 수혁이 잡은 붉은 보석의 절반을 잘라냈다.
[안 돼! 염제炎帝의 신물이……! 1당황한 바알이 목소리를 드높이며 남은 절반의 붉은 보석을 잡아당겼다.
과드드득-!
시공간이 뒤틀리며 바알의 몸이 어둠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건방진 인간 놈……! 보물의 가치조차 모르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인 줄 아느냐!]
천둥소리와 같은 분노의 음성이 세상을 때렸다.
하나 수혁은 그를 무시한 채 바알에게 달려들었다.
'용참조.’
초음속의 육체는 시공간을 넘어가는 바알의 목덜미마저 움켜쥐고, 단숨에 뜯어버렸다.
좌악-!
[크아아악-!]
비명과 함께, 어둠 속으로 말려든 바알의 분신이 사라졌다.
“쳇!”
그 순간 다시 한 번 손을 내뻗었던 수혁이 혀를 차며 몸을 물렸다.
저 검은 기운 속으로 억지로 더 파고드는 것은 위험했다.
본능적인 직감이 수혁의 손길을 막아섰다.
바알이 완전히 사라지며, 그가 흩뿌렸던 검들 역시 종적을 감추었다.
주변으로는 스톰브링거가 남긴 폭풍의 잔해와 다름없는 바람이 불어왔다.
“끄으으으-!”
지면에는 전신이 완전히 검은 빛으로 물든 채 바짝 말라비틀어진 알버트가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수혁은 한 손에 쥔, 반쪽짜리 붉은 보석을 품에 집어넣었다.
‘염제의 신물이라고?’
염제라는 이름은 의외로 굉장히 흔했다.
다만 악마왕인 바알이 신물神物이라 불릴 정도의 물건이라면, 그 범위가 매우 줄어들게 될 터였다.
수혁의 머릿속에 문득 하나의 이름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에 맞다면 이 보물의 가치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악마왕 바알이 다소 무리를 하면 서까지 분신을 보내 회수하려 한 이유가 납득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녀석한테 애초에 쥐어줬다는 게 신기할 일이군.”
수혁은 죽어가는 알버트의 앞에 섰다.
염제의 신물과, 바알의 기운마저 빠져나간 채로도 그는 제법 강력한 각성자였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라도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수준의 각성자였다면, 이미 죽어 먼지 가루가 되어 흩날렸을 터였다.
“살……려줘……
알버트가 수혁을 보며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어쩌면 이런 지독한 삶의 의지가 여태까지 그를 지탱하고 있는 원천일지도 몰랐다.
“아쉽지만,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다.”
수혁은 천단검을 만들어내어, 알버트의 목을 베기 위해 휘둘렀다.
“잠깐만!”
그 순간, 알버트의 앞으로 뛰어든 것은 흑산자였다.
“시바!”
저도 모르게 흑산자의 본명을 부른 수혁이 움찔하며 천단검을 거두었다.
“왜 방해하는 거지?”
분노 섞인 음성에 흑산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 녀석, 악마의 계약자다.”
“무슨 상관이야?”
“판데모니움에도 있었지. 흑마법의 진리를 훔쳐 배우려는 도둑놈심보를 가진 녀석들.”
“자기소개 하는 건 아니지?”
“헛소리! 난 본인의 의지로 직접 흑마법의 진리를 꿰뚫는 통찰자다!
그런 가짜 사기꾼들하고 같은 취급을 한다면 아무리 너라고 해도 참을 수 없어.”
붉어진 눈의 흑산자가 단호한 음성을 흘리며 분노를 내비쳤다.
어지간하면 수혁을 향해 이정도 로까지 말하는 경우가 없단 사실을 보아할 때, 이는 흑산자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 듯했다.
“그래서, 본론이 뭐야?”
때문에 한 걸음 물러난 수혁이 본론을 꺼냈다.
악마의 계약자인 것과, 그의 죽음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놈이 바알의 계약자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
애초에 바알이 이 자리에 강림했던 것도 그 덕에 가능했을 일이다.
아무런 연고 없이, 그쯤 되는 대악마가 분신이나마 차원 너머로 내던진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계약자라는 것이 뭘 뜻하는지는 제대로 모르겠지.”
가볍게 혀를 찬 흑산자가 죽어가는 알버트를 향해 기운을 흘리기 시작했다.
검은 피부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던 알버트의 두 눈이 더욱 부릅떠졌다.
“크아아악-!”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는 그를 곁눈질로 본 흑산자가 말을 이었다.
“놈이 죽으면, 영혼 자체가 계약한 악마에게 복속된다.”
“……그래서?”
“평범한 놈이었다면, 악마 바알의 밑에서 수행을 하는 시종, 혹은 기껏해야 졸병 정도가 되었겠지.”
“흐음……
수혁이 가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대충 흑산자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죽여도, 놈은 다시 내 적으로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거군.”
“그렇지.”
뒤처리가 깔끔하지 않은 일은 수혁의 입장에서는 그리 탐탁지 않았다.
때문에 어지간하면 적으로 만난 상대는 죽였다.
그런 의미에 있어 알버트의 죽음은 낍찝한 뒤를 남기는 일이었다.
흑산자가 말린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살려둬도 귀찮은 건 마찬가지 지.”
“내가 제약을 걸겠다.”
흑산자의 시선이 여전히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알버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놈에게 새로운 계약을 걸면 돼. 반동이 있겠지만, 죽지는 않을 거다. 이미 바알에게 한 번버려진 입장에서는 나쁜 제안이 아닐 거야.”
“새로운 계약이라 하면?”
“내가 놈에게 사기꾼의 길을 제시하는 거다.”
“악마의 계약과 같은 방식이란 거군.”
수혁이 눈을 반짝였다.
“맞다. 결국 악마란 놈들도 기본적으로 흑마법의 진리에 닿아 있는자. 인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놈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그 진리를 숨쉬듯 깨닫는다는 거다. 재수 없는 놈들.”
“오호……
수혁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게 가능해? 놈은 자그마치 악마왕의 계약자 아닌가?”
“예리한 놈. 맹점을 꿰뚫는군.”
따지자면 흑산자의 방법은, 계약을 훔치는 거였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될 경우 계약자인 바알이 가만히 있을까?
상식적인 현대인의 근로 계약서를 가진 업체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악마의 계약이라면 더욱 악독할 것이야 불 보듯 뻔한 바.
하지만 흑산자는 그 의문을 자신의 품에서 반쪽이 난 푸른 보석을 꺼내 들며 풀어주었다.
“그건……?”
수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미 그의 왼손에는 비슷한 물건이 쥐어져 있지 않았던가?
“네가 나눠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이계의 신의 힘이 담긴 보물이다.”
“이계의 신이라고..?”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네놈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만.
지금은 자리가 좋지 않지.”
흑산자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바알과 수혁이 대치하며 세계의 공간 곳곳이 찢어지고 붕괴되었다.
왕급 존재 간의 격돌이란 그만큼이나 위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흑산자는 오랜 시간 이런 상황에 대해 연구해왔고,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웠으며 실제로 몇몇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적은 판데모니음의 신이다 보니까 말이지, 흐흐.”
그 말에 고개를 짧게 끄덕인 수혁이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으아악-!”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에서 비명과 함께 무언가가 끌어당겨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상대는 또 다른 능력을 사용해수혁에게 벗어나려는 듯 공간을 띄웠다.
잠시 허공에 빛이 번쩍이며 상대가 멀어졌다.
'순간 이동?’
거리가 짧았지만 분명 그런 느낌이었다.
수혁은 다시 한 번 조율을 이용해 상대를 잡아당겼다.
이후 순간 이동하려는 그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다.
찌이익-!
아직 특수 스킬의 효과가 남아 있었던 터라, 초음속으로 이동하는 상대의 전면에 도착한 수혁은 단숨에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과광-!
“커억-!”
폭음과 함께 움푹 파인 지면에 꽂힌 상대가 핏물을 흘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백무정.
갑작스러운 격전과, 알버트의 무시무시한 힘, 이어진 바알의 등장에 도망갈 타이밍을 잡지 못한 채 눈치를 보던 그가 수혁의 손에 사로잡혔다.
“네놈은……
“자유의 날개의 수장이야. 진짜 도망가는 데는 선수인 녀석이네.”
종리연이 수혁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이놈이……
자유의 날개.
한때 수혁에게 스카우트를 해왔던 김만수가 속한 조직의 리더였다.
“보잘것없군.”
그를 바라보는 수혁의 평은 간단했다.
상당히 다중으로, 복잡한 기운이 그의 주변을 넘실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반적인 각성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보자면 훌륭한 수준이었지만 수혁의 입장에서 보자면 하찮았다.
“몸에 너무 많은 기운이 꽉 찼어. 지금 정도가 네 성장의 한계란 거겠지.”
백무정은 너무 많은 기운을 복합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작은 그릇을 가진 인물이었다.
앞으로 그릇을 더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백무정의 성장 한계는 명확했다.
‘더 성장하려드는 성정도 아닌 것 같고.’
심지어 적이었다.
수혁은 이번에야말로 망설임이 없었다.
뿌드득-!
조율을 이용해 단숨에 백무정의 목을 꺾어버렸다.
“커격-!”
신음과 함께 몸을 뒤튼 백무정의 숨이 멎었다.
수혁은 그를 외면한 채 등을 돌렸다.
일단은 모두가 살아남았다.
그리고 머리를 복잡하게 하던 지구의 적, 알버트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또한 염제의 신물이란 보물도 얻었다.
당장은 사용법도 모르는 데다, 반쪽짜리였지만 그 가치가 없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백무정을 죽이면서 오랜만에 레벨이 하나 올랐다.
‘생각보다 얻은 게 많네.’
예상치 못한 일정 속에서 생긴 소득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수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흑산자는 조만간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다시 본래 포지션으로 복귀.”
이어진 명령에 그의 신하들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자유의 날개, 알버트의 문제까지 해결한 수혁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잠들어 있는 네펠리아노를 확인하니 마음의 안도가 피어을 탔다.
이후 머릿속에는 앞으로 해야 될 일들이 가득 떠올랐다.
‘우선 당장 가장 급한 건……
500조.
갑작스럽게 생긴 어마어마한 빚이었다.
난감하긴 하지만 수혁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알버트를 사로잡은 건 의외의 이득인가?”
수혁은 휴대폰을 들어 올려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가 지난 후, 다소 신이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네임드!? 오랜만이네!]
“블라디미르.”
작가의 말.
잊고 있던 부우자 친구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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