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권 22화
북해제의 말에 흑산자는 코웃음을 치고 싶었다.
비웃으며, 그대로 한 줌 핏물 덩어리로 만들고 싶었다.
참을 수 없는 욕구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강해. 북해제 저놈도, 그리고 저 괴이한 팔찌도……
모두 위협적이었다.
순간 흑산자의 머릿속에 번갯불이 번쩍였다.
'북해제! 그렇군! 과연 저놈이……!’
수혁이 말했던 새로운 적들 중 하나.
어떤 놈인가 궁금했는데, 실제로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재수 없는 놈이로군.”
본래 동물이란 자신과 닮은 동류에게 알 수 없는 적대감과 거부감을 느낀다.
그리고 흑산자는 그런 감정을 감추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후후……
다만 북해제는 웃음을 홀릴 뿐이었고, 여전히 여유로웠다.
자신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죽여 버리고 싶어.”
흑산자는 그렇게 말하며 거친 기운을 일으켰다.
그리고 저택 쪽으로 손을 뻗으며 장포를 털었다.
깃털처럼 뻗어나간 흑산자의 기운이 무언가를 움켜쥐고는 빠르게 잡아 당겼다.
우응-!
순간 북해제의 팔찌가 커다란 진동을 일으켰다.
“오오?”
북해제가 눈을 크게 뜨며 감탄한 순간이었다.
다가온 복희의 조각을 한 손에 움켜쥔 흑산자가 허공으로 날아올 탔다.
이후 한 손에 조각을 쥐고는 싱긋 웃어 보였다.
“이걸 가지고 싶어?”
거칠게 솟아나는 기운은 저택 너머 지옥 숲 전체를 뒤덮었다.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마라. 보물의 값어치를 모르는 녀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북해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질 수 없다면, 보물은 똥보다도 못 하지.”
“건방진……
북해제의 팔찌로부터 황금빛 구슬들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흑산자의 기운이 폭발하듯 솟아나 세상의 일부를 때렸다.
쩌쩍-!
순간적으로 세계의 틈새가 입을 벌렸다.
그리고 흑산자는 망설임 없이 그사이로 복희의 조각을 내던졌다.
“이런……!”
북해제가 재빠르게 허공으로 날아올랐지만 흑산자의 검은 기운이장막처럼 그를 막아섰다.
아주 짧은 순간.
그 틈새에 차원의 벽 너머로 사라지는 복희의 조각을 확인한 북해 제의 눈이 붉어졌다.
“노오오옴-!”
커다란 분노가 청천벽력이 되어 마른하늘을 회색 구름으로 뒤덮었다.
과과과광-!
천둥이 울려 퍼졌고 벼락이 내리쳤다.
동시에 다시 한 번 세계의 틈에 균열이 생겼다.
아직 완전히 차원의 문이 닫히지 않았던 탓이다.
북해제의 시선이 빙글 돌아갔다.
흑산자를 향해 커다란 적의를 내비친 그는 망설임 없이 차원의 벽을 뛰어넘었다.
“다시 만나면, 네놈의 영혼조차 고통 받게 해주마!”
저주와도 간은 원한을 남긴 북해 제가 모습을 감추었다.
허공 위, 입가로 비웃음을 그린채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던 흑산자의 몸이 휘청거렸다.
“케에엑-!”
입 바깥으로는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급격하게 전력의 마력을 쏟아 부어 차원의 벽을 깨버린 탓에 육체의 균형이 크게 무너진 탓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당장에 그는 북해제의 손가락 짓도 막지 못할 만큼 허약해졌다.
나약했다.
싸웠다면, 패배는 물론 뒤에 있는 수혁과 네펠리아노까지 위험했을 터였다.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지면으로 떨어져 내린 흑산자의 눈에도 불똥이 튀겼다.
“제길, 제길, 제기랄!”
답답함과, 분노로 머리끝까지 새카매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만나면 내 영혼을 고통 받게 해주겠다고?”
입가로는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그때가 되어서 웃는 쪽이 누가 될지는 모를 일이지.”
폭발할 것 같은 분노가 머릿속을 새까맣게 점했다.
당장 저택으로 돌아가는 흑산자의 머릿속에는 북해제의 이름이 강렬하게 새겨졌다.
지옥대전이 끝난 전장의 한복판.
실질적으로 지옥을 좌우하던 군주들이 모두 사라진 탓일까?
그 전쟁의 격렬함을 모두 잊은 듯 한동안의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세계의 일부에 작은 균열이 일었다.
워낙 작고, 은밀한지라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그 틈새 너머로 한 인영이 걸어 나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중년인.
입고 있는 옷은 현대인이 보기에는 다소 시대착오적인 형태의 중국식 무복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사내의 어깨 위에 작고 새하얀 붉은 눈의 여우가 올라타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 맞아? 아무것도 없는데?”
그리고 놀랍게도, 여우는 인간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사내 역시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우주협의회 측에서는 이 근방이라고 제보했으니까. 뭐, 언제나 한발 늦는 거야 흔한 일이지."
“……난 우리가 늦게 움직인다고 생각하는데.”
여우의 묘한 반발에 부드러운 웃음을 보인 사내가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머리를 긁어주었다.
기분 좋은 듯 부드러운 털로 사내의 볼을 비빈 여우가 다시 물었다.
“정말 잡을 생각이 있긴 한 거야?”
“응. 생각은.”
“……기묘한 말이네.”
“하하…… 어쩌나. 이번에도 놓친 것 같은데……. 오랜만에 먼 곳까지 나선 보람이 없는 걸.”
난감하다는 듯 볼을 긁적거리던 사내의 시선이 갑작스럽게 하늘 위를 향했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번쩍이는 황금빛이 회색 구름을 뚫고 그 너머,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무슨 일이야?”
“근처에 있어.”
“응? ”
“이 세계에서 멀지 않아. 놈이 힘을 썼다. 멸망환의 기운도 함께 느껴져.”
“……골칫거리 둘이 모두 모여있단 거네? 설마 이 상황에서도 외면하려는 건 아니겠지?”
여우의 질문에 사내의 몸이 잠시 움찔 하고 떨렸다.
하나 곧 미소를 지으며 뒷짐을 지었다.
“그럴 순 없지. 가보자고.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당장도 가능할 테지만.”
“하하……
웃음을 홀린 사내와 여우가 지옥한복판을 느긋이 걸어 나갔다.
마치 이곳이 지옥인 줄 모른다는 듯,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혼돈기공을 제작했다.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니, 수혁은 난생 처음으로 재능의 벽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아갈 수 없어.”
그림자 거울 속, 끊임없는 실험과 수련을 반복했지만 혼돈기를 다루는 능력은 크게 발전이 없었다.
2개라는 혼돈석이 내어준 혼돈기의 생성과 제어 능력.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기랄!”
처음으로 수련을 하다 답답한 마음에 욕을 내뱉은 수혁이 그림자 거울을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드러누웠다.
‘결국 혼돈석을 더 모으는 방법밖에 없나.’
조금씩 자신이 없어졌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있었지만, 애초에 나아가야 할 방법조차 모를 정도로 빛 한점 보이지 않는 경험이 처음인 탓이었다.
‘대체 혼돈기는 뭐지?’
수혁의 생각은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혼돈기라는 것 자체를 제법 이해 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무공을 운용하듯 조금 더 쉽게,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실제로 그 효용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한데 다시 혼돈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빛과 어둠, 양측 모두가 뒤섞인…… 혼돈 상태?’
고작 딱 그 정도의 단어로 이해 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도武道는 끝이 없다.
혼돈이라는 단어의 표현 역시 그런 듯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 감히 어떠한 형태로 빚어낼 자신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정말 포기할 수는 없었다.
“쯧……
혀를 찬 수혁이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내팽개친 그림자 거울을 붙잡고 정신을 집중했다.
‘아무리 높은 벽도 계속 부딪치고 부딪치다보면 답이 있겠지.’
한 줄기 아니, 한 점보다 작은 빛이어도 괜찮았다.
그 방향성만 잡는다면 이 답답함은 또 사라질 테니 말이다.
하니 노력했다.
‘애초에 노력 없이 무언가를 바랄 수는 없으니까.’
조급해하지 않았다.
수혁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숨을 푹 내쉴 때였다.
[3번째 혼돈석의 주인이 6번째 혼돈석의 주인을 살해하였습니다.]
[1 번째 혼돈석의 주인이 7번째 혼돈석의 주인을 살해하였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에 메시지가 던져졌다.
‘이건……?’
혼돈석의 주인들끼리 싸웠다.
그리고 누군가가 승리했다.
마치 수혁과 루시퍼의 싸움처럼 말이다.
그 싸움의 승패도 모두에게 알려졌고, 나머지 혼돈석의 주인들에게 자극점이 되었다.
‘우주 전체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던가?’
문득 루시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혁이 강해지려 하는 만큼, 상대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여덟 혼돈석의 주인.’
그중 셋이 죽었다.
‘남은 것은 다섯.’
개중 혼돈석을 하나밖에 보유하지 않은 이가 있었다.
그림자 거울을 붙잡고 수련에 집중하려던 수혁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라? 이거?”
가진 바 혼돈석이 많을수록 싸음에서 더 유리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리고 만약 혼돈석을 가진 이들끼리 서로가 알고 있다면?
두 개의 혼돈석을 가진 첫 번째 주인과 세 번째 주인이 움직일 방향이 훤히 보였다.
“제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군!”
억눌렀던 조바심이 다시 일어났다.
수혁은 그림자 거울을 챙기고 바깔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혼돈석의 주인들!’
이후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해 상대를 찾아내려 하였다.
삐빅-!
열람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하나 오랜만에, 정보 자체가 완전히 틀어 막혔다.
‘권한 레벨 탓이야? 아닐 텐데?’
만약 그렇다면 권한이 부족하다고 했을 터였다.
수혁은 혼란을 느끼며 제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해야 되지? 어떻게?’
북해제라는, 우주협의회라는 강적.
그리고 빛과 지혜의 신.
여기에 있어 또 다른 혼돈석의 주인들까지 얹어지는 건 너무 버거웠다.
쿵광거리는 심장을 한 수혁은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은 압박감에 빠르게 걸었다.
저택 내부는 모두 다른 일에 집중하는 듯 조용했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수혁이 눈매를 찌푸리며 저택밖, 지옥 숲을 향해 나아가려 할 때였다.
그 너머로 다가오는 한 중년 사내가 보였다.
뒷짐을 쥔 여유로운 걸음걸이.
어깨 위에는 새하얀 여우가 꽤나 도도한 붉은 눈을 빛내며 앉아 있었다.
눈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넌 누구냐?”
다소 사나온 수혁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린 중년 사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도 이미 늦은 것 같은데, 재는 왜 나한테 화를 내지?”
“미치광이 아니야?”
사내의 질문에 여우가 대답했다.
그 순간 여우를 바라본 수혁의 눈에 푸른빛이 번뜩였다.
‘그냥 여우가 아니었군.’
처음부터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다.
‘영물? 요물?’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혹시 혼돈석의 주인인가?”
그러길 바랐다.
하나 중년 사내의 대답은 다소 엉뚱했다.
“이 녀석 무공을 익혔네. 솜씨도 제법 쓸 만한 듯 보이고. 어린 나이인 것 같은데 재능이 제법인데.
딱히 신의 조각을 품은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오호……
“무공을 아는…… 그러고 보니 복장이……
마치 환 대륙의 무복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
수혁의 눈에 더 큰 의구심이 깃들 때였다.
[기계 장치의 신이 당장 물러나라고 합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큰 메시지가수혁의 머리를 때렸다.
기계 장치의 신이 이토록 질겁한 것은 처음 봤다.
작가의 말.
새 캐릭터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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