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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무신님-381화 (381/454)

- 16권 4화

푸른 하늘, 초목이 우거진 숲과 높은 산, 맑은 바다와 황토 빛깔대지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멀리서나마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대륙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 위.

짐승은 물론 아직은 돌로 만든 무기를 쥐고 다니는 이 행성의 인간들은 닿을 수 없는 가장 높은 곳에, 여섯이나 되는 인물이 다소 동시다발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짧은 시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다.

“뭐야? 둘이나 빠진 것 같은데?

벌써 어디 가서 뒈져버린 건가? 크하하.”

그중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장발의 사내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모습을 드러낸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렁이는 검은 안개와 같은 형태로 변한 이가 주변을 확인한 이후 사내를 향해 짧게 혀를 찼다.

“네놈의 목청은 여전하구나.”

“네 음흉한 목소리도 변한 바가 없고.”

사내의 도발에 검은 아지랑이가 고요하게 출렁였다.

진득한 살의가 퍼져 나오는 듯했으나, 그 기운이 폭발하는 일은 없었다.

“고자 따위랑 말을 섞을 필요가 없지. 흥.”

대신하여 날카로운 말이 쏘아졌고, 그 음성에 건장한 덩치의 사내이마 위로 붉은 심줄이 돋아났다.

“뭣? 이 개자식이…… 진짜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은밀하게 흘러나온 기운이 하늘을 때리며 천둥을 만들어냈다.

과르릉-!

뒤를 이어 땅이 흔들리며 지진이 시작되었다.

놀란 지상의 생명체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천지에 재앙이 일어날듯 위급한 그때.

넷이나 되는 나머지 인물들은 그를 모른 척 바라보기만 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전혀 흥미가 없는 듯했다.

각자가 시선을 다른 곳에 두거나, 또 다른 할 일에 집중하고 있는 채였으니 말이다.

그 순간 허공에서부터 또 하나의 기척이 떨어져 내렸다.

“둘은 또 만나자마자 말씽이로군.”

“북해제! 어디 가서 뒈져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살아 있었구나.”

그의 등장에 고개를 홱 돌린 장발의 사내가 기세를 거두며 웃음을 터트렸다.

“저 빌어먹을 악의 덩어리를 짓밟아 죽여 버리려던 차인데, 방해할 생각은 없겠지?”

“그러려고 마음먹었으면, 진즉에 했겠지. 진심이 아니면 싸우지도마라.”

“진심이라면?”

사내의 물음에 가면을 쓴 채 눈을 가늘게 뜬 북해제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위이잉-!

여덟 가지 빛을 내뿜는 회색빛 팔찌의 형태에 장발 사내뿐만 아니라 주변에 관심이 없는 듯하던 나머지 인물들까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만약 싸우려 든다면, 무대를 바꿔야겠지. 이 세계는 내가 찾은 땅이다. 만약 이곳에 피해를 입히며 싸우려 한다면, 나도 진심이 될 수밖에 없거든.”

북해제의 은은한 협박에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장발의 사내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그것과 싸워볼 수 있다면 영광이긴 하겠지만…… 내 목적과는 조금 달라서. 하하하!”

“쫄아서 빼기는. 누가 고자 아니 랄까봐.”

기다렸다는 듯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낄낄거리는 비웃음을 다시 한번 토했다.

“내 저 개자식을!”

장발의 사내의 눈이 다시 한 번 뒤집히려 할 때였다.

“앙그라 마이뉴, 그대도 나와 진심으로 싸워보고 싶은 겐가?”

한숨을 푹 내쉰 북해제가 물었다.

“……멸망환을 모두 완성했다고 너무 기고만장한 것 아니야?”

그에 검은 아지랑이, 앙그라 마이뉴가 크게 출렁이며 반발을 토했다.

“기고만장한 것인지, 실력인지는 직접 겪어보면 알겠지.”

“……딱히.”

“크하하, 깜둥이. 개자식 졸았군.

쫄았구먼.”

장발의 사내가 기다렸다는 둣 검지로 아지랑이를 가리키며 비웃음을 크게 토했다.

“그만, 그만."

지쳤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쉰 북해제가 둘 사이로 내려앉았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본래라면 모두가 모였을 때 이야기해야겠지만, 현재 탐욕의 마몬은 완전히 흔적이 보이지 않더군. 멍청하게 당했거나, 아니면 또 괴상한 꿍꿍이나 꾸미고 있겠지.

그를 제외하고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뭔데? 궁금하게.”

장발 사내가 실실 웃으며 흥미롭다는 듯 되물었다.

감정의 변화가 꽤나 급격했다.

북해제는 익숙한 사내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라노스, 그대도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으응?”

“티탄 둘이 당했다.”

“당했다고? 뭐, 얻어맞고 다니는 거야 익숙한 녀석들이니까. 끅끅.”

“영멸永滅이다.”

웃음을 흘리던 우라노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불멸의 티탄.

죽지 않는 불사자에게도 끝이 존재한다면 분명히 영멸이란 단어가 쓰일 터였다.

그리고 여태까지는 단 한 번도 티탄에게 영멸이란 단어가 붙은 적이 없었다.

방금 전 북해제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멸한 이들이 누구지?”

“이아페토스, 포이베.”

“……귀여운 아들과 훌륭한 딸을 잃었군.”

장발의 사내, 우라노스가 혀를 차며 콧김을 내뿜었다.

눈매는 크게 찌푸려져 감출 수 없는 불쾌감을 토했다.

하나 곧장 분노를 쏟지는 않았다.

“우주협의회 놈들에게 팔려갔다고 들은 순간 이미 끝난 목숨이었지.”

차가운 분노.

우라노스에게서 느껴지기 힘든 감정을 목도한 북해제는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타오르는 불꽃.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형체를 가진 인물이 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주어야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네 후손이 벌인 일이다.”

타오르는 불꽃에는 그 거친 형태와 달리 동요가 없어 보였다.

하나 북해제는 잠깐이지만 불꽃내부의 기척이 흔들리는 것을 목도 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네펠리아노.”

무거운 사내의 입이 열렸다.

“그것이 후손의 이름인가?”

“……염원을 담은 이름이지.”

불꽃이 기지개를 키듯 크기를 부풀렸다.

“그녀를 어찌할 셈이지?”

티탄 둘이 죽었다.

우라노스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또한 홀로 살아남은, 화염의 고대룽에게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한데 북해제는 이곳에 일곱이나 되는 그룹을 모두 소집했다.

모두가 우주라고 부르는, 하나 따지자면 거대한 하나의 은하와 다름없는 드넓은 영역에서도 이름 높은 범죄자 집단, 더 앱솔루트.

서로가 하나도 닮은 면이 없는 그들이었지만 겉으로 추구하는 바는 같았다.

드넓은 은하에 자신들의 세계를 꾸리고, 주신主神으로 군림한다.

둘째, 현 은하에 존재하는 모든 대신을 살해한다.

계획을 이루기 위해 오래토록 숨을 죽여야 했으며, 은하 너머 또 다룬 우주로까지 이동하여 숨어 지내야 했던 세월이 수천 년이 우습게 넘었다.

그 험난한 시간 끝에 이들은 능력과 힘을 각자의 방식으로 키워 이 은하로 돌아왔다.

그런 와중에 죽은 티탄과, 고대 룡의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다.

“보아 하니 그녀의 정신에 재미있는 것을 심어두었더군.”

북해제의 말에 불꽃이 다시 한번 출렁였다.

이번만큼은 변화를 감추지 못했다.

북해제의 입가로 미소가 떠올랐다.

“빛과 지혜의 신이 그녀를 사냥하겠다고 나섰다더군. 천사들과, 우주협의회도 함께고 말이야.”

가면 아래 푸른 눈이 차갑게 빛났다.

“빛과 지혜의 신……!”

그 이름에 앙그라 마이뉴의 분노가 지독하게 주변으로 차올랐다.

“나는 그녀의 심장에 새겨진 악의惡意를 일깨워주고 싶네.”

북해제의 시선이 다시 불꽃 너머를 향했다.

고대롱이라는 종족은 타고나기를 선량하지가 않았다.

전 은하의 공격을 받아 멸족할만큼 파괴적이고 이기적이며, 지독했다.

한데 북해제가 만난 네펠리아노는 기묘할 정도의 선의와, 알 수 없는 복종심으로 가득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니 그 본성을 일깨울 수만 있다면, 더 앱솔루트라는 조직이 원하는 대신 사냥에 큰 도움이 될 것이야 볼 보듯 뻔했다.

본래부터 강력한 종족인 고대통.

그중에서도 완전체로 선택받은 유일무이의 괴수를 우주에 풀어 놓는 것이다.

“……후회할 수도 있다.”

“해서 데이모스, 자네는 이번 일에 빠질 겐가?”

북해제는 자신의 속내를 모두 고백했다.

그리고 그에 반응한 인물들은 모인 일곱 중, 정확하게 셋이었다.

거신 우라노스, 악신 앙그라 마이뉴, 고대룡 데이모스.

나머지 인물들은 그저 현 사태를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빛과 지혜의 신 놈이 좋은 꼴을 보는 건 용납할 수 없지. 난 나서겠다.”

앙그라 마이뉴는 타락 전선의 참전을 선언했다.

“재미있을 것 같군. 내 아들과 딸을 죽인 고대롱이라……

우라노스 역시 빠질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동족의 희망이 사냥당하는 꼴을 두고만 볼 수는 없겠지.”

짙은 고민 끝 데이모스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나까지 포함해서 넷. 나머지 셋은……?”

북해제의 질문에 대한 아무런 답없이, 이번 일에 아무런 의견을 보이지 않은 세 기운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관망자를 택한 것이다.

‘넷이면 충분하지.’

북해제는 개의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넷이 아니었다.

우주에서도 절대적 상위신이라 볼 수 있는 존재들로만 이루어진 집단.

설령 빛과 지혜의 신이 직접 나선다 한들 그들을 막기는 힘들 터였다.

수혁을 찾아야 했다.

기계 장치의 신의 전언을 받고, 지구로 돌아와 티탄들을 처리한 네 펠리아노는 한결 같은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가신 것일까?’

메시지라도 남겨놓았던 이토록 불안하지는 않았을 터다.

아니, 안다.

‘이상한 것은 나야.’

괴이할 정도로 수혁에게 집착하고, 수혁만을 바라보았다.

그가 없는 자리는 불편하였으며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시선과 정신이 한 곳으로만 흐르고 있었다.

‘대체 왜?’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현상일까?

괴이했다.

그녀의 기억 상, 선조들 중 누구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토록 처참하게 휘둘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감정은 뇌의 오류……

분명 그런 오류 정도는 붙잡을 수 있는 것이 고대롱이라는 종족이었다.

때문에 순간의 즐거움에 취할 순있지만, 그 감정에 모든 것을 받치지는 않았다.

어렵고, 이해할 수 없지만 네펠리아노가 바라는 바는 단 하나였다.

‘보고 싶어.’

어떻게든 만나서 그 얼굴을 쓰다듬고, 품에 안기고,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일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이번만큼은 수혁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으로 판데 모니음 대륙과 지옥, 지구 곳곳을 돌아보았지만 수혁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사도인 흑산자마저도 위치가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가슴 한편이 답답해질 정도로 숨이 꽉 막힐 무렵.

눈앞에 황금빛이 번쩍이며 작은 흰색 여우가 튀어나왔다.

“압. 이거 네 꺼.”

그리고 여우가 말을 걸어오며 입에 물고 있는 편지를 건넸다.

눈을 동그랗게 뜬 네펠리아노가 당황한 표정으로 여우를 바라보았다.

“여우가 말을 하네?”

“넌 도롱뇽이 말을 하네?”

여우의 반박에 네펠리아노의 입이 콱 틀어 막혔다.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나기보다는, 헛웃음이 흘렀다.

“네펠리아노 맞지? 양수혁이 네게 전해주란 거야.”

이어진 말에는 혼이 빠졌다.

손은 어느덧 거짓말처럼 움직여 여우가 입에 물고 있던 편지를 받아 밀봉을 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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