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권 7화
동시에 사방을 휘감던 빛 무리로부터 거대한 손이 형성되어 수혁의 전신을 단숨에 잡아챘다.
“뭐하는 짓이지?”
“그건 본래…… 내 것이다.”
아후라 마즈다의 격이 폭사하자수혁의 몸에 자리 잡은 앙그라 마이뉴의 격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왔다.
어찌 막을 틈도 없었다.
아후라 마즈다의 말처럼, 앙그라 마이뉴는 본래 그의 분신이었다.
또한 그가 빼앗은 힘 역시 아후라 마즈다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힘이 원래 있던 자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에 있어, 수혁은 어떠한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삽시간에 병상에 누워 있던 아후라 마즈다의 격이 크게 부풀어 올탔다.
수혁의 어깨가 무겁게 짓눌리며, 머리가 떵하고 울려왔다.
‘그러고 보니……
눈매를 찌푸린 수혁은 주변에 데 우스 엑스 마키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온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군.”
“고맙다. 내 것을 다시 되찾아와 주어서……
침상에서부터 천천히 반신을 일으킨 아후라 마즈다의 주름진 얼굴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젊은이의 모습이라고까지 할 건 아니었지만, 단숨에 10년 정도는 회춘한 듯한 모습이 된 아후라 마즈다의 주변으로 빛과 어둠의 힘이 동시에 넘실거렸다.
“내가 버린 것을…… 네가 다시 회수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입가로 이죽거리는 미소를 지은 아후라 마즈다의 오연한 시선이 수혁을 향했다.
거대한 빛의 손에 잡힌 채 꿈쩍도 못하는 모습을 보자 입가로는 자연스레 미소가 흘렀다.
침상 아래로 내려온 아후라 마즈다가 팔을 뻗자 커다란 빛의 창이 형성되었다.
“완전하진 않지만…… 네 녀석의 격까지 삼킨다면 건방진 놈들을 따로 벌 줄 정도는 될 수 있겠지.”
수혁은 그 모습을 차분히 지켜보며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빛과 지혜라더니…… 흑산자 녀석이 간교의 신 칭호를 내놓아야 할 것 같은데.”
“지혜란 사용하기 나름이지.”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나?”
“애초부터 네 것이 아닐 뿐이다.”
수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야.”
“뭐?”
이어서 내뱉은 말에 천천히 다가 오던 아후라 마즈다가 의문을 토했다.
“사실 기분이 조금 더러웠거든.
한데 네가 이런 놈이란 걸 알게 됐으니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겠어.”
“헛소리를 내뱉는……
아후라 마즈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수혁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혼돈기가 아후라 마즈다가 만들어낸 빛의 손을 단숨에 찢어버렸다.
쿠릉-!
천둥이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뇌룡이 된 수혁의 손길이 아후라 마즈다의 가슴에 맞닿았다.
쾅-!
폭음과 함께 뒤로 밀려난 아후라 마즈다의 주변으로도 회색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혼돈기……! 그쯤이야, 빛과 어둠이 하나가 된 형태가 아니던가!
마침 바로 이 몸과 같군. 흐하하웃음을 터트리는 그를 보며 수혁역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같은 혼돈기를 쓴다고 해서, 격이 똑같은 건 아니지.”
“격! 아주 옳은 말을 하는구나.”
아후라 마즈다로부터 대신의 격이 사방으로 뻗쳐 나왔다.
일부분일 뿐이라지만 무게감은 역시 무거웠다.
기껏 얻은 격의 일부를 빼앗긴 수혁이었기에, 그 힘에 위축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괜찮아.’
하지만 수혁은 침착했다.
빼앗긴 격이 아쉽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면 큰 문제도 아니었다.
‘격이란 위엄이다.’
또한 위엄이란 존재감이었다.
수혁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한번, 아후라 마즈다의 격을 가진 채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경우는 엄연히 달랐다.
호흡을 가볍게 가다듬고 상대를 차갑게 직시했다.
수혁은 이 순간, 자신이 대신과다름없는 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이는 확신이었고, 그 마음은 격이 되어 수혁의 주변을 휘감았다.
숨통을 조일 듯 억눌러오던 아후라 마즈다의 격이 일부 해소됐다.
내뻗어지는 아후라 마즈다의 창을 쳐내고 용조를 형성한 수혁의 손이 거칠게 휘둘러졌다.
콰과광-!
폭음과 함께 사방이 진동했다.
“으음……
신음을 흘린 아후라 마즈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수혁의 변화를 그 역시 대충이나마 느낀 것이었다.
하나 수혁은 아직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생각만으로 모두 쫓을 수는 없단 거지.’
확신을 통한 어떠한 최면에 가까운 행위를 통해 수혁은 자신의 격을 일부 부풀렸다.
하나 최면은 진실이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완전하지도 않은 아후라 마즈다가 내뿜는 대신의 격을 모두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상태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올 때까지 버티는 건 충분히 가능하겠지.’
아후라 마즈다 역시 그를 느꼈는지 공세가 더욱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동작은 단조로울지 모르지만 공격은 빨랐고, 충격은 무거웠다.
“시간이나 끌 속셈인가……!”
아후라 마즈다가 불쾌한 목소리를 흘린 순간이었다.
“그럴 리가. 나답지 않아.”
침착하게 생각을 갈무리하던 수혁의 주변으로 혼돈기가 폭사되듯 터져 나왔다.
동시에 주변의 빛 무리가 단숨에 회색으로 물들었다.
광채 대신 혼돈기가 가득 찬 세상.
그에 맞춰 아후라 마즈다 역시 빛의 힘에 어둠을 더 얹었다.
'빛과 어둠의 속성을 동시에 가진 대신쯤 되면 혼돈석이 없이도 혼돈기를 다룰 수 있단 거지.’
그 점은 놀라웠다.
분명 신으로서 가진 격은 아후라 마즈다가 한 수 위라는 사실을 또 체감했다.
하나 이번 아후라 마즈다의 판단은 분명 실수였다.
수혁은 회색으로 물든 주변의 세계를 스치듯 바라보았다.
‘제멋대로 뒤섞인 혼돈의 상태.’
그야말로 혼돈기공에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 아닌가?
따지자면 신성력을 소모하지 않은 채 본인의 성역을 얻은 느낌이었다.
미소를 지은 수혁의 혼돈기공이 질주하듯 운용되며 더욱더 거칠게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지지 않겠다는 듯 아후라 마즈다 역시 자신의 힘을 모두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주변의 회색 풍경이 출렁이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아후라 마즈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것 또한 그 순간이었다.
“실수했다 싶지?”
수혁이 되물었다.
“이런……!”
뒤늦게 아후라 마즈다의 힘이 백색으로 돌변하기 시작했으나 이미 때는 뒤늦은 후였다.
“네가 아무리 혼돈기를 다룰 수 있어봐야, 격이 다르다니까.”
수혁이 혼돈기공을 이용해 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동시에 주변으로 가득 퍼져나간 채 출렁이던 기운이 수혁에게로 모두 몰리기 시작했다.
빨려들었다.
적어도 혼돈기로 가득 찬 이 공간에 있어 수혁의 존재감은 분명 대신 아후라 마즈다의 이상이었다.
“안 돼-!”
기겁한 아후라 마즈다의 얼굴에 다시금 깊은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손끝부터 붕괴되기 시작한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간절함이 수혁에게 빼앗긴 기운을 돌려받길 원했으나,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건 더 이상 네 것이 아니야.”
완전한 혼돈기로 변모하여 몸 전체에 자리 잡은 격과 힘을 느낀 수혁이 웃음을 흘렸다.
혼돈기에 대한 영향력은 아후라 마즈다가 무슨 짓을 해도 수혁을 따르지 못했다.
단순한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운을 다루는 방식, 그리고 재능마저도 달랐다.
“으아아아-!”
절규와 함께 아후라 마즈다의 몸이 다시금 빛 무리가 되어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처음에는 다소 느린 듯하였으나, 조금씩 가속도를 더하며 모든 것을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수혁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서는……! 1
아후라 마즈다의 음성이 사방을 때렸고, 그와 동시에 흩어지던 빛 무리가 하나의 빛의 덩어리로 변하였다.
수혁은 그 힘의 분열과 응축, 폭발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힘을 자주 사용하곤 했었으니 말이다.
‘위험해!’
머릿속에 번갯불이 튀기듯 경고 성이 발했다.
대신이 스스로의 영혼을 불태워 만든 힘의 폭발이었다.
그 위력이 어떨지는 상상조차 쉽게 되지 않았다.
[으하하하-!]
아후라 마즈다의 웃음소리가 사방을 때렸다.
이어지는 힘의 폭사에 둘의 격돌에도 꿈쩍하지 않던 데우스 엑스마키나의 성역에 스파크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막아야 했다.
‘피하기엔 너무 늦었어.’
하면 어떻게?
정면으로 맞섰다가는 삽시간에 휩쓸려 아후라 마즈다의 의도대로 함께 죽게 될 것이다.
‘내가 잘하는 일, 잘하는 것만 생각하자.’
패도로 때려 부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폭발 시간을 짧게 당기는 것에 불과했다.
‘먹자.’
수혁은 이내 눈을 빛내며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저 빛 무리, 대신이 남긴 영혼을 불태운 힘을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생각 이후에는 몸이 곧장 움직였다.
양손을 뻗어 폭발하기 직전의 빛 무리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빛 무리 역시 자연지기의 일부라 생각하면 그를 빨아들이는 것도 어렵지만은 않았다.
[무슨……!?]
당황한 아후라 마즈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면…… 모르냐…… 이것도 내가 가질 거다.”
인상을 찌푸린 채, 힘겹게 답한 수혁에게로 아후라 마즈다의 힘이 폭풍처럼 빨려들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힘에 노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근육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으며, 칠공t空에서는 핏물과 함께 빛 무리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두뇌가 쪼개질 듯한 격통이 찾아왔다.
당장에라도 의식이 날아갈 듯 했지만 수혁은 두 눈에 힘을 준 채 눈앞의 기운을 모두 집어 삼키는데 집중했다.
‘참자, 참아야 해. 버틸 수 있다.’
대신이 지금껏 살아온 세월의 격을 모두 포기하며 쏟아낸 힘을 삼키는 것은 애초부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설픈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끄으으으-!”
홀러나오는 비명을 입술을 깨문채 쏟아낸 수혁은 이내 모든 빛의 덩어리를 집어삼켰다.
[어리석은……! 1
이제는 아후라 마즈다의 음성이 몸속에서 들려왔다.
근육이 부풀다 못해 터져 나오며 핏물이 쏟아져 내렸다.
온몸이 빛 무리에 휩싸여 잡아 뜯겨지는 듯한 고통.
굳은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다.
“으아아아아-!”
비명이 사방을 때리다 못해 쩌렁쩌렁 울리며 균열을 일으켰다.
‘굴복해라. 굴복해!’
그 속에서도 수혁은 강요했다.
자신이 몸속에 들어온 아후라 마즈다의 영혼을 계속해서 짓눌렀다.
‘네 모든 것이 내 것이다!’
끝없는 탐욕이 치밀어 올랐다.
이제 수혁에게 남은 것은 이성이 아닌 본능뿐이었다.
치열한 기세 싸움.
쉽게 끝날 줄로만 알았던 상황이길게 이어지자 아후라 마즈다 역시 공포를 느꼈다.
수혁의 안에서 피어오르는 지독한 탐욕과 집착에 욕이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을 정도였다.
[지독한…… 놈!]
떨려오는 음성 속.
아후라 마즈다 역시 최후의 힘을 짜내었다.
죽을 땐 죽더라도 쉬이 떠날 수는 없겠다는 그의 의지 역시 강력했다.
이내 수혁의 손끝 역시 빛 가루가 되어 부서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비명조차 내뱉을 수 없게 된 순간.
벌컥-!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만 같은 풍경 너머,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흩어지는 의식 속, 수혁은 자신의 몸을 다급하게 부여잡는 손길을 느꼈다.
작가의 말.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감기 몸살 기운이 있는데, 휴재는 할 수 없어 글을 붙잡고 쓰느라 많이 늦었습니다.
레벨업 하는 무신님이 밀리언 페이지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성원 덕이라 생각했고, 때문에 더 휴재라거나 포기를 생각할 수 없었네요.
완결까지 힘내서 쓰겠습니다.
레벨업하는 무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