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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는 무신님-410화 (410/454)

- 17권 8화

손길은 이상할 정도로 싸늘하고 딱딱하였으며, 차가웠다.

“수혁!”

하나 그를 부르는 음성만은 따뜻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녀가 돌아왔다.

본능만이 지배하던 수혁의 의식 속 짧게나마 이성이 떠오르며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반응을 보이자 육체가 부서져가는 속도가 이전에 비해 현저히 느려졌다.

그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싶다는 탐욕에 의하여 스스로를 돌아보지 조차 못하게 하던 끔찍한 상황을 가까스로 탈출한 덕이었다.

“아후라 마즈다! 이 미치광이 신이-! 감히, 감히, 감히!”

다소 흐릿한 의식 너머, 데우스엑스 마키나의 분개한 음성이 들려 왔다.

수혁 역시 무엇이라도 답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되지 않았다.

기운을 풀어헤치고 녹여내려 했지만 오랜 시간을 살아온 대신이 가진 영혼의 무게감은 지속적으로 수혁의 육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내가 교만하였나?’

칠죄종 중, 루시퍼의 교만을 삼킨 덕일까?

어쩌면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어찌하겠는가?

엎질러진 물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수혁은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했다.

‘적어도 아직은 죽고 싶지 않으니까.’

그것도 이런 간교한 꾀에 빠져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미래 따위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몸이 붕괴되는 속도를 최대한으로 늦추며, 느릿하게나마 폭사하는 힘을 스스로의 것으로 녹여 나갔다.

옆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계속해서 소리를 치는 듯하였으나 더 이상 음성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나 그와 달리 분명히 선명하게 전해지는 음성 또한 존재했다.

[으어어어……!]

이성을 잃은 아후라 마즈다의 괴음.

수혁은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그의 육체를 갉아먹는 것이 아후라 마즈다의 영혼이라면, 그의 의식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수혁이 승리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줄다리기.

수혁은 그 속에서 조금씩 아후라 마즈다의 괴성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이긴다. 이기고 있어.’

다소 긍정적인 상황에 절로 심장이 뛰었지만, 수혁은 침착하려 했다.

천천히 지금까지처럼 느긋하게 해야 했다.

버티지 못하고 먼저 부서질 것만 같던 육체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지탱되고 있었다.

여유를 가져도 됐다.

마음의 평안은, 더 손쉽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내.

[말…… 도…… 안 되는…….]

아후라 마즈다의 영혼에 남아 있던 의식이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녹아내 렸다.

육신을 갉아먹던 힘의 폭사 역시 빠르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이겼다.’

한숨을 내쉰 수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어?’

그리고 기묘한 사실을 두 가지나 체감했다.

첫 째는 눈앞에서 눈물과 콧물을 잔뜩 쏟으며 울고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당황이었다.

‘왜 울어?’

묻고 싶었다.

하나 이상하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수혁은 그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육체 중 절반 정도가 느껴지지 않는 감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아후라 마즈다의 영혼은 완전히 이 세계에서 사라졌다.

우주의 이름 높은 여섯 대신 중 하나가 완전히 소멸한 것이다.

본래라면 수혁은 자신의 손으로 이룬 첫 대신 살해에 전율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끝날 일이었다.

‘육체가……

붕괴된 절반의 육체를 되돌리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내뿜는 은빛 기운이 수혁의 전신을 몇 번이고 휘감았다.

그리고 실제로 은빛 기운이 화려하게 반짝일 때면 수혁의 육체가 다시 되돌아오는 듯도 했다.

하나 딱 거기까지였다.

‘돌아오지 않네.’

수혁은 다소 담담하게 자신의 상황을 직시했다.

한 번 부서진 육체가 회복되지 않았다.

엘라임을 불러 치료를 부탁한다고 해결될까?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못하는 일을……

또 다른 여섯 아니, 이제는 다섯이 된 대신 중 하나인 데우스 엑스마키나조차 절박하게 기운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수혁의 육체를 본래 대로 되돌리지는 못했다.

어쩌면 고작 ‘절반’ 정도밖에 잃지 않은 것 또한 그녀의 도움 덕일지 몰랐다.

중간부터 수혁은 자신과 아후라 마즈다와의 줄다리기가 생각보다 본인에게 여유롭게 진행된다고 느꼈다.

그 모든 것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도움이 있었던 덕이 아닐까?

‘아, 이거 곤란하네……. 흑산자 녀석한테도 선물을 줘야 되는데.

손귀공이랑 화해도 시켜야 하고……

난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 한편 어딘가는 우그러지듯 아파왔다.

‘남은 곳이 왼쪽인 덕인가. 그래도 심장이 아픈 건 느껴지네.’

다소 담담함을 가장한 시선이 울고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로 닿았다.

‘넌 대체 왜 우는 건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안해, 미안해.”

고개를 크게 내저으며 사과를 건네는 그녀를 보니 담담함을 가장하려는 감정이 계속해서 흔들렸다.

‘네가 뭘 잘못했는데? 오히려 넌 날 최선을 다해 도왔어. 지금도 돕고 있고.’

위대하다 일컬어지는 대신조차도 전지전능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계일 뿐이잖아.’

그뿐이었다.

수혁도 최선을 다했다.

죽지 않기 위해, 허망한 삶을 끝내지 않기 위해 전력을 쏟았다.

본인의 일이니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했으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한데도 이렇게 되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탓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애초에 말리지 않았으면…… 바보 같이 속아서 자리만 떠나지 않았어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마치 자신의 죄를 찾는 듯했다.

수혁이 이런 상황이 된 모든 연유를 자신에게 투영했던 것이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바보 같긴.’

비웃어주며, 정이라도 떨어트리고 싶었지만 반쪽만 남은 육체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뿐이었다.

‘웃는 걸로 보일까?’

감정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는 몰랐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유달리 힘겹다고 느껴졌다.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육체가 왼쪽, 오른쪽으로 나뉘어 정확하게 절반이 사라졌다.

그 말은 즉, 뇌도 절반이 갈라졌다는 뜻이다.

멀쩡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이만큼이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죽게 하지 않을게. 약속할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알았지? 절대로…… 포기만 안 하면, 내가 살릴 테니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끅끅거리는 울음을 삼키며 수혁을 향해 말했다.

‘아아……. 그래주면 좋을 것 같은데.’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어떻게든 살아서, 이 생生을 이 어나가고 싶었다.

당연하다 싶은 본능이 수혁의 뇌리를 가득 채워가는 도중, 하얀 머릿결을 흩날리는 네펠리아노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슬픔과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후, 함께한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적었다.

여러 가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들이 많았다지만 이제 와서 떠올려보니 참 후회가 되는 일이었다.

떠올려보면 작고 어린 용이었다.

때문에 귀여운 여동생 같았다.

하나 잘 생각해보면, 그녀를 향한 감정은 어느 순간부터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죽어가는 이 순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진실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펠리, 보고…… 싶다.’

보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인간이 아닌, 이종족이었지만 아무렴 무슨 상관인가?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사랑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

입가를 비집고 흘러나온 유일한 목소리, 후회 섞인 탄식과 함께 볼가로 뜨거운 물기가 흐르는 감각이 느껴진 그 순간.

툭-!

마치 세상의 불이 꺼지듯 수혁의 의식이 암전暗轉되었다.

“그 건방진 꼬맹이가 뒈졌다고?”

갑작스럽게 전해진 소식에 우라 노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희망과 무패의 신이라는 놈에게 당했다.”

“이름 한 번 촌스럽군. 쿵.”

콧방귀를 뀐 우라노스의 시선이 그를 찾아온 타오르는 불꽃, 데이 모스를 직시했다.

“앙그라 마이뉴 녀석, 자의식 과잉이 심했지. 방심하다가 당했을 거다.”

“타나토스도 그에게 죽었다.”

“놈은 우리가 대신 사냥을 나설 때 혼자 따로 놀고 있었으니까

“북해제도 그에게 죽었다.”

“그 영감, 분명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거야. 아니, 못했다고 해야겠지. 내가 알기로는 은근히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결과는 분명하지. 모두 단 한 명에게 당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디 앱솔루트는 끝났다.”

데이모스의 선언에 우라노스의 표정이 악귀처럼 크게 일그러졌다.

“그 무슨 개 잡소리지?”

디 앱솔루트는 본래 다섯의 우주 협의회의 수배자가 모여서 만든 집단이었다.

이후로는 그들과 같은 목표를 가진, 현 우주의 체제를 바꾸고 싶어하는 동료들을 더 불렸다.

대표적으로 지금은 실종된 탐욕의 마몬, 타나토스 등이 그렇게 받아들인 멤버였다.

“최초의 다섯 멤버 중 둘이 죽었다. 총원 중에서는 넷이나 죽었지.”

“아직 넷. 절반이나 남았군. 너, 나, 알토, 그리고 필로스. 함부로 끝을 논하지 마라. 난 건방진 제우스 놈의 멱을 따다가 지면에 처박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들 모두의 죽음에 희망과 무패의 신이 연관되어 있다.”

“원론을 돌리지 마라. 놈들이 죽은 건 알 바 아니야. 목표만 명확히 하자는 거다. 우린 이 우주의 모든 대신을 살해한다. 북해제를 잃었지만, 아후라 마즈다를 사냥했다. 다음은 제우스 차례였어."

이름 높은 대신의 이름이 연이어 불리며 사방이 진동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이름이 불린 제우스가 둘의 위치와 존재를 느껴 쫓아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대신도 아닌 고작 인간 출신 상급 신에게 절반이 죽었다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하면 어쩌자고!? 정말 여기서 멈추잔 말이냐!”

우렁찬 음성을 내뱉은 우라노스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난 그러지 못한다. 하기 싫으면 네놈만 나가. 남은 우리 셋이서라도 제우스를 죽일 테니!”

팔짱을 낀 우라노스가 몸을 돌렸다.

더 이상 대화를 해봐야 진전이 없다면 의미가 없었다.

현재 그의 입장에서는 사랑을 좋아하는 반짝이 신, 제우스를 죽이는 계획을 짜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

“무리다.”

한데 그런 우라노스의 생각을 데 이모스가 철저하게 무시하듯 답했다.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가 보구나?”

눈을 돌린 우라노스의 몸에서 기세가 폭발했다.

더 이상 선을 넘는다면 참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우선 사랑을 좋아하는 반짝이 신은 빛과 지혜의 신과 달리 혼자가 아니다. 그의 주변에는 신들이 많지. 또한, 디 앱솔루트 멤버 중 남은 건 셋이 아니다.”

“뭐?”

“알토 또한 죽었다.”

“알토가? 갑자기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그리고 너 또한……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피어오르는 화염 속, 거대하고 단단한 용의 앞발이 튀어나와 단숨에 우라노스의 전신을 휘어잡았다.

광-!

“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로군.”

격과 기세를 동시에 떨쳐 단숨에 그 손길을 밀쳐낸 우라노스의 머리카락이 높게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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