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마케니안 왕국의 기사 대회 (Ⅲ) (48/88)

제4장. 마케니안 왕국의 기사 대회 (Ⅲ)

본격적인 토너먼트가 벌어지자, 드디어 타이탄을 탑승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토너먼트 첫날은 시합은 벌이지 않고 타이탄을 타고 훈련할 시간을 주었다. 이건 타이탄이 처음인 자들을 위한 배려였다.

인원이 160명이라 오전, 오후로 나누어 타이탄을 빌려주었다. 처음 타이탄을 대회 참가자들에게 빌려주는 거라, 혹시나 난동자나 도망자가 생길까 염려하여 라온은 수십기의 타이탄으로 하여금 전투장 주위에 서서 감시하도록 했다.

그동안 마케니안 왕국의 타이탄이 불과 28대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감시하는 타이탄만 수십기에다 참가자들에게 빌려주는 수십기까지 합쳐 적어도 50기는 넘는다는 사실에 놀라워 했다.

만약 이들이 마케니안 왕국이 가진 타이탄이 156기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절할만큼 깜짝 놀랐을 것이다. 또, 라온이 가진 미스릴로 만들어진 타이탄 비스벡이 그 위용을 나타내면 더욱 놀랄 것이 분명했다.

한편, 갈메시아 제국의 견습기사 시절에도 자신의 타이탄을 가져본 적이 없고, 다른 사람의 타이탄을 탑승할 기회도 없었던 쥬니끄는 비록 빌려서 타는 것이지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 드디어 타이탄을 탑승하다니. 마케니안 왕국은 보잘 것 없는 왕국으로 생각했는데, 타이탄 보유수가 장난아니게 많구나. 이번 대회에서 꼭 마케니안 왕국의 기사가 되어 나만의 타이탄을 받을테다!’

쥬니끄는 굳게 결심하며 타이탄과 계약을 마치고 타이탄의 머리부분에 탑승했다.

“시야 개방.”

쥬니끄가 말을 마치자, 어두운 타이탄 내부가 밝아지며 마치 자신이 공중에 뜬 것처럼 보였다.

“하하, 신난다.”

쥬니끄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무척 신난 상태였다.

“마법도 시험해볼까?”

쥬니끄는 흥분해서 타이탄에 새겨진 마법 이외에는 시전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타이탄에 탑승한 채로 마법을 시전했다.

“슬립!”

손을 내밀며 마법을 외쳤는데, 그녀의 손을 통해 마법은 나갔으나 실제 타이탄은 손만 올릴 뿐 마법을 내뿜지 못했다.

(주인, 탑승 상태에서 마법은 시전할 수 없다.)

타이탄이 알려주자, 그제서야 쥬니끄는 문제를 깨달았다.

‘맞다. 탑승하면 마법을 못쓰지. 휴~ 나같은 마검사는 단점이네. 내가 쓰는 마법을 미리 새길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텐데….. 이러면 우승은 힘들잖아.’

쥬니끄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타이탄을 타고서 펼치는 전투에서 그녀가 만난 첫 상대는 검에 오러를 일으키는 소드 익스퍼트 초급의 사내였다.

소드 액트에 불과한 그녀는 타이탄에 탑승한 상태로 마법을 펼칠 수도 없었기에 오러를 일으키고 달겨드는 상대를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쥬니끄는 들고 있는 방패로 상대의 공격을 연신 막기만 하다 첫번째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한번의 패배로 토너먼트에서 떨어진 쥬니끄는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로선 패자부활전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쥬니끄! 너무 실망하지마.”

마리에가 옆에서 위로했다.

“그래요. 쥬니끄. 패자부활전에선 꼭 이길껍니다.”

마리에 옆에서 얘기를 거들고 있는 것은 니콜이었다.

“어? 마차에서 만났던?”

“하하, 맞아요.”

니콜은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었다.

“마리에! 어떻게 이 사람이랑 같이 있어?”

쥬니끄는 이상해서 마리에를 쳐다보며 물었다.

“으응, 이분은 니콜이라고 해. 1차전에서 떨어지고 우리가 묵었던 여관에 오셔서 다시 만났어. 실력이 꽤 있으셨는데 아깝게 떨어지셨어. 몇일 같이 얘기를 나눴는데 참 좋은 분이야.”

어느새 마리에는 니콜의 입담에 넣어갔는지 니콜을 칭찬하고 있었다.

‘참나, 별꼴이네. 딱 보아하니 마리에가 좋아서 접근했나보지?’

쥬니끄는 아니꼬운 눈으로 니콜을 째려보았다. 니콜은 쥬니끄의 눈길을 의식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듯 마리에만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토너먼트 시합은 총 5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하루는 타이탄을 타보는 연습이라 실질적인 대결은 4일이었고, 3일째엔 패자부활전이 치뤄졌다. 그리고 마지막날 10명이 최종적으로 올라와 순위를 가르며 대회가 끝이 났다.

대회가 마치자 멕베인 후작이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라온을 찾았다.

“왕자 저하, 이번 대회를 통해 타이탄 라이더 80명이 뽑혔습니다.”

“그래요? 신분은 어떻게 됩니까?”

“귀족 출신은 22명. 나머지 58명은 용병, 평민, 노예 등 출신이 다양합니다.”

“그럼 왕실 기사단과 자유 기사단에 나눠서 배치를 해야겠군요.”

“네. 이미 했습니다. 귀족 출신 22명은 왕실 기사단에 속하게 했고, 나머지 58명은 자유기사단에 속하도록 했습니다. 또, 라이더에 뽑히지 못한 자들 중에서 우수한 자들 72명도 있는데, 이들 중에 귀족 출신 11명은 왕실 기사단의 견습 기사단으로 보냈으며, 61명은 자유기사단의 견습 기사단에 보냈습니다. 이 외에 마케니안 왕국에 남기를 희망한 1,124명이 또 있습니다. 이들은 출신에 따라 구분해서 견습기사단에서 훈련을 받도록 할 예정입니다.”

“오, 수고하셨습니다. 흠, 그리고 혹시 쥬니끄라는 여전사는 어떻게 되었나요?”

“네? 잠시만요.”

멕베인 후작은 명단이 적혀있는 것을 살피며 쥬니끄의 이름을 체크했다.

“아, 패자부활전을 통해 라이더로 뽑혔군요.”

“그래요?”

라온은 속으로 자신과 함께 견습기사로 있던 쥬니끄가 뽑힌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쥬니끄는 견습기사 시절에 같이 있던 사이셨죠?”

“맞습니다.”

“한번 만나보시는게 어떨까요? 그녀는 이제 마케니안 왕국의 기사가 되었으니깐요.”

“흠, 하긴 그렇네요….. 혹시 라이더들 중에 마검사들이 쥬니끄 말고도 또 있나요?”

“네.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마검사들은 타이탄 안에서 마법을 쓸 수 없기 때문에 그리 큰 잇점은 없습니다.”

“그래도 전사가 마법까지 다루는 것은 쉽지 않죠. 마검사들 리스트와 그들이 쓰는 마법을 알아봐주세요. 그들이 쓰는 마법을 타이탄에 새겨서 타이탄을 타고도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면 되니깐요.”

“네, 알겠습니다.”

“이제 라이더가 갖춰졌으니 이들을 공사에 투입하면 기간이 단축할거 같습니다.”

라온은 공사를 빨리 끝낼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왕자 저하, 크림슨 후작에게 갈메시아 제국의 식량을 650만 골드나 구입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면 돈은 어쩌시려고…….”

“설명을 못들으셨군요. 대금은 400만 골드만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그쪽에서 급하게 요구해서 돈과 보석, 보물을 합쳐 400만 골드를 제공하고 650만 골드치의 식량을 받기로 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크림슨 후작이 크게 한건 했군요.”

멕베인 후작은 거래 규모에 놀라며 기뻐했다.

“생각보다 큰 거래를 크림슨 후작이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역시 크림슨 후작이죠. 덕분에 공사대금이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공사비를 돈 대신에 식량으로 지급할 계획입니다. 돈이 필요해서 휴신 왕자에게 일거리라도 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공사 대금을 식량으로 지급하도록 조치하세요.”

라온은 계속 큰소리를 쳤지만 솔직히 어떻게 돈을 벌지 딱히 아이디어는 없었다. 휴신 왕자를 통해 돈을 많이 벌었는데, 최근 두달간 의뢰가 없었다.

“진짜 휴신 왕자 측은 요새 연락이 없네요. 이젠 더이상 괴물기사가 필요없나봅니다. 공사 대금이 잘 해결된 것은 좋으나 저희가 가진 자금이 모두 소진되어 앞으로 예비금은 남는게 없군요. 제철소와 골리앗 크레인을 완성하려면 아직 돈이 더 필요하긴 한데요.”

멕베인 후작이 지적하고 나서자 라온은 돈을 더 구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신 왕자 측에 먼저 얘기를 건내보시면 어떨까요?”

“먼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글쎄요.”

라온으로선 마케니안 왕국의 왕자였고, 박트니아 왕국의 후계자로 망토를 쓰고 활동했는데 일해줄테니 돈달라고 하기가 민망했다.

“나중에 제철소와 골리앗 크레인을 생각하면 뭔가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흐음…..”

‘뭔가 하라. 약탈이라도 해야 하나? 약탈? 하긴 갈메시아 제국이 적국인데 못갈 이유도 없지. 가서 약탈이라도 해서 돈을 구해야겠다.’

“멕베인 후작?”

“네.”

“대회도 끝났으니 타이탄들 새롭게 다시 개조해야겠습니다. 마케니안 왕국의 흔적을 없애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몇대나 개조하실 생각이신가요?”

“전부 다요.”

“끄응! 제대로 개조하려면 시간이 엄청 걸리겠군요.”

멕베인 후작은 이렇게 대답은 하지만 라온이 또 무리한 요구를 할 것을 알고 있기에 괴로운 표정이었다.

“원래 보유 중이던 마케니안 왕국의 타이탄 28기는 개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갈메시아 제국에서 가져온 것들을 제국의 흔적만 없앤 것들이라 겉에 칠이나 하고 박트니아 왕국 문양만 그려넣으면 됩니다.”

“흐음, 그래도 언젠가는 밝혀질텐데…..”

“밝혀질 때면 전쟁이겠죠. 전쟁까지 각오하고 있습니다.”

“타이탄은 언제까지 준비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워낙 덩치들이 커서 못해도 몇달은 걸리겠습니다.”

‘몇달? 오래 걸리는군.’

그동안 마케니안 왕국 일로 바빠서 밖에서 활동을 못했던 라온은 이번 기회에 다시 갈메시아 제국으로 가서 꼭 돈을 구해오겠다고 마음먹었다.

멕베인 후작의 조언에 따라 라온은 쥬니끄를 따로 불러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혹시라도 쥬니끄가 불편할까 하는 생각에 다른 이들은 내보내고 둘만 만났다.

백치 행세를 하던 모습을 4년이나 보아온 쥬니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라온은 그녀를 만나기 전에 상당히 어색한 상태였다.

‘쥬니끄를 그냥 친구라고 생각하자.’

라온은 쥬니끄를 만나기 전에 스스로 이렇게 말하며 불편함을 떨쳐 버리려 했다.

라온이 천막 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쥬니끄가 투구를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헛!”

라온은 전투장에서는 무기와 갑옷, 투구까지 쓰고 있는 쥬니끄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투구를 벗고 긴 빨강머리에 갸름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자 숨이 막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왜 이러지. 진정해.’

플로랑스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두근거림이었다.

“안녕하세요. 라온 왕자 저하.”

쥬니끄는 라온을 보자 정중하게 격식을 차려 인사했다.

“흠흠, 쥬니끄?”

“네!”

라온은 어색함을 떨치려고 이름을 불렀는데 쥬니끄는 정색하며 대답했다.

“쥬니끄,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대해. 4년간 견습기사로 같이 있었잖아.”

“응? 그럴까?”

쥬니끄는 바로 말을 놔버렸다.

“그래, 그게 편해.”

“있잖아. 견습 기사 시절엔 바보……였잖아. 어떻게 지금은?”

쥬니끄는 라온이 어떻게 이렇게 변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흠, 왕국에 돌아와 마법사들의 치유마법으로 회복된거야.”

“그래? 갈메시아 제국에선 누가 해친거였어?”

“굳이 누구라고 지목하라면 슈미트 공작이지.”

“그랬군. 소문은 진짜였어.”

쥬니끄는 고개를 끄덕였다. 견습 기사단에 라온이 암흑마법에 당해서 백치가 되었다는 소문이 자자했었다.

“쥬니끄? 사실….. 쥬니끄에 대해 알아봤어. 갈메시아 제국의 귀족 자제가 왜 마케니안 왕국에 와서 기사가 되려는지 궁금하니깐.”

“알아보니깐 답이 뭐야?”

“흠, 글쎄 블리미엥 가문은 원래 박트니아 왕국을 섬기던 귀족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그런데 그래도 뭔가 좀 부족해보여.”

“맞아. 부족해. 사실은 원치않는 약혼을 강요받았어. 아버님도 어쩔 수 없었지. 아마 내가 도망가길 아버지도 바라셨을꺼야.”

“약혼 때문에 도망쳐서 적국에 온다는건 좀…..”

라온은 아직도 쥬니끄의 행동을 납득하지 못했다.

“적국이라니. 박트니아 왕국 백성이었던 사람들에겐 갈메시아 제국이 적국이지. 박트니아 왕국을 도와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마케니안 왕국은 오히려 우리에겐 아군이야. 그래서 여기에 온거야.”

“그래? 그런데 말이야. 사실 기사 대회를 개최한 것은 상금만 주려는 것이 아니라 마케니안 왕국에 필요한 기사를 충당하기 위한 거야.”

“알고 있어. 타이탄 라이더를 뽑는다면서. 그것도 80명이나.”

“그래.”

“와~ 대단해. 인원이 80명이나 된다니!! 난 평생 소원이 타이탄 라이더가 되는거야. 말만 귀족이지 박트니아 왕국 출신 가문에게는 타이탄을 가지도록 허용되지 않았거든.”

쥬니끄는 흥분하며 좋아했다.

“실력이 좋은 자를 뽑을 예정이야. 하지만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케니안 왕국에 대한 충성이야. 그래서 묻지않을 수 없어서 묻는건데, 앞으로 갈메시아 제국과 전쟁을 벌일 수도 있어. 어쩌면 갈메시아 제국에 있는 박트니아 왕국 후손들과 싸워야 할 수도 있지. 그런데 마케니안 왕국 편에 서서 싸울 수 있겠어?”

라온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흐음.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되는데? 마케니안 왕국에서 쫓겨나?”

“글쎄. 쫓겨날 말이라면 못 들은걸로 할께. 대신 마케니안 왕국을 조용히 떠나줘.”

“좋아. 솔직하게 말할께. 첫째, 갈메시아 제국이 난 싫어. 둘째, 마케니안 왕국을 좋아하지만 충성까지는 아니야. 난 지금 내 이익을 위해 살고 있어. 셋째, 고향인 토보냐 지역에선 누구도 해치고 싶지 않아. 이게 내 대답이야.”

‘솔직하고 좋은 대답이군.’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쥬니끄를 바라보았다.

“합격이야.”

“하하, 다행이다! 쫓겨날까봐 긴장했어. 나 정말 갈데가 없거든.”

쥬니끄는 무척 기뻐하며 두팔벌려 라온을 끌어안더니 라온의 볼에 키스를 했다. 순간 그녀의 향기가 라온의 민감한 후각을 자극했다.

“어어~”

라온은 순간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휴~ 쥬니끄…. 너도 에띤느랑 똑같구나.’

얼굴이 벌개지면서 라온은 에띤느를 떠올렸다.

“어마, 어떻게 해! 미안. 왕자님에게 내가 실례했네.”

쥬니끄는 얼른 라온의 품에서 떨어져 다시 차렷 자세를 취했다.

“흠흠, 방금 전 행동은 없었던 일로 할께.”

“날 받아줘서 고마워.”

“대답을 잘 해서 그렇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명답이었어.”

라온은 쥬니끄로 인해 흥분된 가슴을 추스리며 대답했다.

“있잖아. 나 한가지 부탁이 있어.”

“부탁? 말해봐. 뭔데?”

“내가 뛰어난 마법사를 알고 있어. 능력도 뛰어나. 4서클 마법사야. 마케니안 왕국에서 영입할 생각 없어?”

“오! 4서클? 누군데? 당장 영입하지.”

라온은 4서클이란 말에 귀간 번쩍였다.

타이탄을 만들기 위해 4서클 마법사 30명이 필요한데 현재 마케니안 왕국에는 4서클 마법사가 고작 12명 뿐이었다. 타이탄이 아니라도 포탈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4서클 마법사가 필요했다.

“그래? 그럼 당장 부를께.”

쥬니끄는 마리에와 함께 마케니안 왕국에 있을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뻐했다.

대회가 끝나고 다음날.

크림슨 후작이 미클롱 도시로 돌아왔다. 그는 오자마자 갈메시아 제국에서의 거래에 대한 보고를 위해 라온을 찾았다.

“왕자 저하, 갈메시아 제국에서 거래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빨리 오셨네요. 식량은 어떻게 인도받기로 하셨습니까?”

“식량이 650만 골드어치라 양이 워낙 많아서 드비쉬 강에 있는 토멀린 도시에서 배로 선적해서 나르기로 했습니다. 하하.”

크림슨 후작은 큰 거래를 잘 한 것이 스스로도 대견한지 웃으면서 보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왕자 저하, 크롬버그, 암뤼셀, 라쿤케이 상단에게 식량 운송은 지시하셨습니까?”

“으음, 곧 할 겁니다.”

라온은 세사람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하여 아직 말을 못하고 있었다.

“빨리 지시를 하셔야 합니다. 식량을 가져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식량을 모두 가져오는데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배로 가는데만 12일. 물건 싣는데도 5일. 돌아오는 것도 12일. 350척을 모두 동원해도 한번에 끝날 수 없으니 못해도 6개월은 날라야 할 것 같습니다.”

“6개월이면 너무 오래걸리는군요. 그러지말고 육로를 통해 가져오면 어떻습니까?”

“육로는 몬스터들 때문에 위험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배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타이탄을 이용하면 어떨까요? 포탈죤을 통해 기사를 보낸 후에 타이탄이 아공간에 가져가게 해서 다시 가져오면 말입니다.”

“글쎄….. 그게……”

크림슨 후작은 곤란한 표정이었다.

“네? 왜요?”

“몇기나 오픈하시게요? 갈메시아 제국에 알려진 저희의 전력은 아직 타이탄 28기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르르 타이탄이 나타나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타이탄 라이더가 다른 왕국에 들어갈 때는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하는게 원칙입니다. 만일 허락도 없이 잠입하면 전쟁 선포나 다름없이 간주됩니다.”

“그럼 28기만을 가지고 빠르게 왕복하면 어떨까요?”

“흠, 그쪽에서 승낙할지도 모르겠고, 저희에겐 포탈 마법을 쓸 수 있는 4서클 마법사가 12명입니다.”

“참! 이번에 4서클 마법사 한명이 영입되었습니다. 마리에라고 하는 여자 마법사입니다.”

“오, 그래요? 4서클 마법사면 얻기 힘들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소개를 받았죠. 하하.”

“좋은 소식이네요. 저도 갈메시아 제국에 승낙을 얻어보겠습니다. 하루에 한번씩만 해도 타이탄 28기가 움직이면 상당한 양이니깐요. 하지만 배도 같이 동원해야 합니다.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배가 350척이나 되니 싣는 양으로는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3개 상단에는 왕자 저하께서 꼭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라온은 괴로운 표정이었다.

다음날. 라온은 니콜, 에띤느, 멜빅을 호출했다.

아침 일찍 라온에게 온 세사람은 무슨 일로 라온이 자신들을 찾는지 전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에띤느는 미클롱 도시의 토목공사 건물에 오자마자 라온을 보고 한마디 던졌다.

“라온! 무슨 일이야? 요즘 날 많이 찾네. 외로워?”

“무슨 소리야. 난 세상에서 니가 젤 겁난다. 넌 외로울 때 겁내는 사람 부르니?”

“하하, 내가 겁나?”

“그래. 배가 불룩한 모습을 봤을 때는 기절하는 줄 알았어.”

“하하. 그래? 하하.”

에띤느는 아주 재밌다는듯 마구 웃어댔다.

“라온, 무슨 일로 부른거야?”

에띤느 뒤에서 니콜과 멜빅이 나타났다.

“먼저 자리에들 앉죠.”

라온은 조금 후에 세사람이 흥분할 것을 알기에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려고 했다.

잠시 후. 라온이 계획이 변경된 것과 갈메시아 제국의 토멀린 도시에 가서 식량을 날라줄 것을 부탁하자 세사람은 예상대로 흥분하며 소리쳤다.

“전에 말한 건 뭐야! 보석을 가져다 팔고 식량을 사오라면서! 근데 이제는 짐이나 나르라는거야?”

“너무하잖아. 왕자가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면 되는거야?”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상단에 많은 이익을 줬으니 이번엔 제 요청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매번 이익이 나는 일만 맡으려고 하면 곤란합니다. 돈도 이익이지만 갈메시아 제국에서 한꺼번에 식량을 공급해준다면 공사에 꽤 큰 도움이 될 것이 뻔하기에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제 요청을 받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라온은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어어, 왜이래. 왕자가~”

“부담스럽잖아. 왜 고개를 숙여.”

“왕자 저하! 험험.”

세 사람은 갑작스런 라온의 태도에 상당히 당황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라온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갈메시아 제국에서 제공하는 식량의 양이 워낙 많아 크림슨 후작의 말로는 금방 끝날 수 없다고 하더군요. 6개월까지도 걸릴 수 있다던데 그 기간동안 식량 나르기를 하다보면 지금 준비 중인 공장들이 가동되어 마케니안 왕국의 수출품들이 생겨날테니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라온은 세사람에게 다시한번 부탁의 말을 전했다.

기사 대회가 끝나고 바쁜 하루하루 속에 5개월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갈메시아 제국에선 윌렌 태자에 대한 탄핵이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갈메시아 제국의 휴신 왕자는 윌렌 태자에게 마케니안 왕국에서 구한 보석과 보물로 400만 골드를 제공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휴신 왕자를 따르는 귀족들에 나서서 윌렌 태자에 대해 탄핵을 시작했다.

예상된 수순을 밟아나가고 있기에 윌렌 태자는 아무런 대항도 없이 조용히 있었다. 다만, 가슴의 상처 치료 후에 회복을 위한 훈련을 위해 왕실 기사단을 자주 방문하고 있었다.

윌렌 태자는 기사단을 방문할 때마다 수하들을 데리고 갔는데, 매번 보자기에 쌓인 상자를 하나 들고 갔다.

그 상자 속에는 휴신 왕자에게 받은 보석과 보물들이 담겨져 타이탄 라이더인 300명의 왕실 기사들에게 나눠서 전달되었다.

태자의 하사품을 받은 기사들은 감격해 했으며 최근에 윌렌 태자가 귀족들에게 어려움을 겪는 사실에 분개했다.

마케니안 왕국에서는 드디어 미클롱, 델웨어, 포항 도시에 대한 토목 공사가 완료되었다.

3개 항구도시의 건설이 완료되자, 축하 행사를 위해 다리오 왕과 마케니안 왕국에 속한 귀족들이 미클롱 도시에 모이게 되었다.

다리오 국왕은 포탈죤에 서서 미클롱 도시를 내려다보며 감격에 겨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호~ 이게 네가 다 지은 것이냐? 이게 진정 마케니안의 항구란 말이냐?”

멀리 바다가 보이는 부둣가 쪽에는 대형 창고들이 늘어서 있는 가운데 50척에 달하는 배들이 정박해 갈메시아 제국에서 가져온 식량을 하역하느라 분주했다. 또, 바다에는 하역을 기다리는 배들도 100여척이나 대기하고 있었다.

라온은 갈메시아 제국에서 오는 350척을 세개로 나누어 미클롱 도시에 150척, 델웨어 도시에 100척, 포항 신도시에 100척이 오가도록 조치한 상태였다.

부둣가 뿐 아니라 전에는 도시 전체가 들썩이며 공사로 인한 온갖 소음들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수만채에 달하는 건물들이 들어서서 도시가 꽉 찬 느낌이었다.

특히, 건물들은 나무로 만든 컨테이너를 이용해 만들어져 네모난 규격 사이즈로 정렬이 잘 되어 있었고, 도로의 크기도 마차가 6대가 다니는 크기, 4대가 다니는 크기 등으로 너비를 정해서 바둑판처럼 조성해서 멀리서 보면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보였다.

도시를 위아래로 그리고 좌우로 나누는 십자가 모습의 중앙도로에는 상업지대로 수많은 인파가 바글바글 거렸다.

“아바 마마, 도시 뒤쪽으로 왕립학교, 왕실 기사단, 자유 기사단 그리고 각각의 견습 기사단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 그래. 하하. 마음은 당장 델웨어 도시와 포항 신도시도 돌아보고 싶구나.”

“그러면 오늘 축하 행사 후에 내일과 모레 벌어지는 델웨어 도시와 포항 신도시 축하 행사에도 참석하시지요.”

“그래! 그래야겠다. 하하.”

다리오 왕은 크게 기뻐하며 다시한번 미클롱 도시의 장관을 감상했다.

이렇게 감탄하며 대단하게 여기는 모습은 다리오 국왕뿐 아니라 그동안 라온 왕자가 벌이는 일을 탐탐치않게 생각하던 귀족들에게서도 보여졌다.

이들은 상상도 못할 도시가 1년만에 생겨난 사실을 놀라워했다.

“공사비가 전부 얼마나 들어간 것이냐?”

다리오 국왕이 다시 질문했다.

“토목 공사로만 480만 골드입니다. 한개 도시에 160만 골드씩 들어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오~ 480만 골드? 다음달에 완공되는 도로공사까지 합친다면?”

“그러면 720만 골드입니다.”

“와! 상상도 못할 금액이구나. 라온! 니가 아니었다면 꿈도 못꿀 일이었다. 장하다! 내 아들이지만 존경스럽구나. 너에게 해양 무역을 맡기길 정말 잘했다.”

“감사합니다. 아바 마마. 이제 내려가셔서 도시를 직접 구경하시죠.”

라온은 다리오 왕이 도시를 둘러볼 수 있도록 특별히 마련한 마차로 왕을 인도했다.

마차는 국왕을 위한 것뿐 아니라 귀족들이 타고 다닐 것까지 배려하여 백대를 준비했다. 마차를 타고 가면서 라온은 다리오 왕에게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시는 부둣가에는 한번에 50척을 정박할 수 있으며, 현재 미클롱 도시의 상업지구에서 나오는 세금이 한달에 2만 골드입니다.”

“오오~ 2만 골드?”

“네. 그뿐만 아니라 현재는 왕국에 속한 선박들이 갈메시아 제국에서 싣고 오는 식량을 실어나르느라 해외 무역에 힘쓰지 못하고 있지만, 저희 왕국 배가 아니라 다른 나라 선박이 와서 물건을 거래 하면서 걷히는 거래세가 한달에 1만 골드입니다. 앞으로 마케니안 왕국에 많은 생산품들이 만들어지면 거래세는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으음, 그래. 그래.”

라온의 설명이 계속 되면서 축하 행사 전에 몇시간에 걸쳐 도시를 둘러본 왕과 귀족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저녁에는 미클롱 도시에 속한 십만이 넘는 인파와 함께 왕과 귀족들이 참석한 성대한 축하 행사가 벌어졌다.

다음날.

다리오 왕과 귀족들은 미클롱 도시에서 델웨어 도시로 이동했고 여기에서 많은 가공공장과 창고, 세무 회계 학교, 가공제품을 만드는 기술자를 양성하는 전문 학교, 부둣가의 정박과 하역시설을 보고서 다시한번 다리오 왕과 귀족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무 회계 학교와 기술 전문 학교라니. 어떻게 이런걸 세울 생각을 했느냐?”

다리오 왕은 라온의 탁월한 생각에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무역거래을 위해 필요한 것이 세무 회계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생산품을 만들려고 보니 기술 전문가가 필요하여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래, 잘했다. 잘했어.”

다리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라온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저녁에는 델웨어 도시의 공사가 완료된 것을 축하하는 행사가 벌어졌고, 다음날은 포항 신도시로 이동했다.

이곳은 도시 뒤쪽의 거주지를 제외하고, 제철소, 타이탄 제조공장, 공장 기술자를 양상하는 전문 학교, 대형 창고, 무기와 장비를 만드는 시설, 종이 공장, 컨테이너 제조 공장과 부둣가의 정박과 하역시설까지…..

도시 전체가 하나의 큰 공장같았다.

라온은 도시를 둘러보며 다리오 왕에게 보고했다.

“제철소는 아직 완공되려면 3달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골리앗 크레인은 아직 하나도 만들지 못한 상태입니다.”

“음, 만들 자금은 남아 있느냐?”

“3개 도시에서 수입이 들어오고 있어서 일단 그것으로 충당하려 하는데, 자금이 더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골리앗 크레인을 만들려면 많은 강철이 필요하죠.”

“돈과 강철은 어디서 구할 작정이냐?”

“조만간 그랜드 멜파소 산맥에 가서 새로운 강철 광산을 확보할 생각입니다.”

“그곳은 크기도 클 뿐더라 산세가 험하고 몬스터들이 많다. 드래곤도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

다리오 왕은 걱정된 얼굴로 라온을 바라보았다.

“대신 강철이 묻혀있는 곳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아바 마마, 걱정하지 마소서. 제가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이번 일도 잘 해낼 것입니다. 포항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돌면서 광산을 찾겠습니다.”

라온은 다리오 국왕을 안심시켰다.

“그래, 하지만 한달 후에 도로공사가 끝나니, 이것부터 완료하고 광산을 찾아라.”

“네. 알겠습니다.”

라온은 순순히 대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