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0장. 서로를 모르는 아버지와 아들 (Ⅰ) (76/88)

제10장. 서로를 모르는 아버지와 아들 (Ⅰ)

미클롱 도시의 중심가를 지나 부둣가까지 내려온 라온은 마나의 기운이 강한 젊은이가 걸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음, 괜찮군. 어느 정도인지 볼까?’

“뷰 오브 마나.”

젊은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이 시전되자 젊은기의 몸뿐만 아니라 단전에 모여있는 커다란 마나의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제외하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몸 전체에 마나가 퍼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인간도 단전에 마나를 모으는 자를 본 적이 없었다.

‘신기하군. 알아봐야겠다.’

라온은 젊은이에 대해 알아볼 요량으로 그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라일의 경우는 홀로 조용히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접근하는 느낌을 받자 곧 고개를 돌렸다.

어둔 밤이라 잘 확인은 안되지만 중년의 사내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이다. 몸 놀림도 평범하지는않아.’

라일은 ‘뷰 오브 마나’ 같은 마법은 쓰지 못했지만, 남들과 다른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라온을 읽어냈다.

라일의 눈초리와 그의 몸에서 긴장감이 풍겨나는 것을 라온도 똑같은 신체 능력으로 읽어냈다.

‘응? 저 젊은이 상당히 긴장하는군. 설마 내 마법이 읽힌건가?’

라온도 자연스레 경계하게 되었다.

상대가 이미 자신을 눈치챘다고 판단한 라온은 인사를 나누고 젊은이에 대해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어이, 젊은이. 왜 홀로 부둣가를 거니나?”

“누구십니까?”

라일은 정체모를 라온을 의심하며 되물었다.

“하하, 나는 플로라고 하네.”

라온은 자신의 타이탄 슈트의 이름인 플로의 이름을 쓰며 임기응변으로 답했다.

“그런데요?”

“바닷바람을 쐬로 나왔는데 자네가 보여서 그냥 말친구나 할까 해서. 하하.”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라온은 웃었다. 그러면서 라일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웃던 라온의 얼굴이 금새 굳어졌다. 젊은이의 얼굴이 자신과 아주 비슷해서였다.

이건 라일도 마찬가지였다. 라온의 얼굴에서 왠지모를 친숙함이 느껴졌다.

“………….”

“………….”

두 사람 간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짧은 몇초였지만 서로의 눈빛을 통해 왜 상대방이 긴장하는지 이유를 알았다.

‘이상하다. 이상해.’

라온은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이름도 모르는 처음보는 사람. 상대방이 라온에게 어떻게 한 것도 아니었다.

‘너무 말이 없으면 어색하다. 긴장을 풀자. 그저 닮았을 뿐이야.’

라온은 자신이 먼저 다가가기로 했다.

“험험, 난 이름을 밝혔는데, 자네는 이름이 어떻게 되지?”

“라일입니다.”

‘라일? 나는 라온인데. 라일이라……’

이름에서조차 낯설음이 느껴지지않았다.

“반갑네. 라일. 미클롱 도시에는 어떻게 온건가?”

“마케니안 제국의 기사 대회에 참가하러 왔습니다. 플로 님은 여기 사시는 분인가요?”

“응? 나? 난 그냥 일 때문에 왔지. 곧 떠날꺼네.”

“죄송하지만, 검을 다루십니까?”

“어어? 왜?”

라일의 난데없는 질문에 라온은 당황했다.

남루한 천옷을 걸쳤는데 왜 라일이 자신에게 검을 다루냐는 질문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몸놀림이 아주 가벼우십니다. 몸에서 나오는 기운이 남다릅니다.”

라일의 질문에 라온이 다시 당황했다.

‘기운?’

“하하, 기운이라니.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오히려 자네 기운이 남다른데?”

“제가 왜요?”

“중심이 아주 딱 잡힌게 말이야. 여기 말이야. 하하.”

라온은 은근슬쩍 자신의 단전 부위를 손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이번에는 이 모습을 본 라일이 당황했다.

‘응? 단전을 아나?’

아까도 라온이 심상치않았는데 단전까지 가리키는 모습에 라일은 라온이 분명 범상치않다고 판단했다.

“혹시 기사 대회에 나가십니까?”

“응? 아니야.”

“그래요? 대련해보고 싶은데 괜찮으십니까?”

“대련?”

라온은 당돌한 라일의 질문에 또 당황했다.

잠시 대답을 못하고 라일을 이리저리 살피던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네. 하지만 여긴 자리가 안좋으니 한적한 곳으로 가지. 내가 인도하겠네.”

라온은 라일을 데리고 미클롱 도시 뒷편의 숲으로 향했다. 그 시간 이미 렉스와 다린은 얘기를 나누고 헤어져 숲에는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

미클롱 도시 뒷편의 숲 속.

라온과 라일이 숲 길을 걷고 있었다.

‘얼마나 잘 따라오나 보자.’

라온은 은근히 라일이 어둔 숲 길에 겁이라도 먹으라고 횃불도 들지않고 달빛과 별빛에만 의지해 숲 길을 걸었다.

‘응? 잘 따라오네.’

자신은 뛰어난 신체 능력이 있어 눈이 밝아 문제없지만 라일이 아무렇지않게 뒤따르는 것이 신기했다.

드디어 숲 속에 빈 공터에 이르자 라온이 발걸음을 멈췄다.

“잘 따라오는군. 어두울텐데 말이야.”

“사막에서 자라서 눈이 밝습니다.”

“사막?”

“융 사막에서 자랐습니다.”

“오, 그럼 혹시 제롬 부족을 아나?”

“네. 사막을 지나며 제롬 부족이 있는 곳도 들렸습니다.”

라일은 제롬 부족이라는 말에 반갑게 대답했다.

“사막을 지났다니? 자네, 어디에서 왔나?”

“전 움사쿤족의 땅에서 왔습니다.”

“헛! 움사쿤?”

라온은 라일이 아주 먼 곳에 왔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랬다.

‘나이가 많아야 20살 정도인거 같은데 그 큰 융 사막을 건너서 이곳까지 오다니.’

“혼자 왔나? 부모님은?”

“부모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저를 돌봐주시는 분과 함께 있습니다.”

“으음, 좋아. 대련을 원했으니 어디 실력부터 볼까?”

스르릉.

라온은 철검을 꺼내들었다.

젊은이가 위험할까 염려하여 마나를 주입하지는 않았지만 검을 들자 라온의 눈빛이 달라졌다.

“예! 그러시죠.”

라일도 검을 꺼냈다.

‘저 사람은 보통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라온의 눈빛에선 사막에서 만난 하이에나가 느껴졌다. 라일은 자기도 모르게 검에 힘이 들어갔다. 즉시 단전에서 마나가 끌어올려져 검에 주입됐다.

푸슛~! 부웅~! 우웅~ 웅.

붉은 색 오러가 검에서 일어났다.

라일이 오러를 일으키자 라온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오러? 그렇다면.’

라온도 질 수 없기에 단전에서 마나를 끌어올렸다. 온전히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상대의 수준에 맞추어 붉은 색 오러를 일으켰다.

푸슈슛, 부웅, 웅~ 웅.

라온의 검에도 오러가 일어났다.

당황해서 오러를 일으켰던 라일은 라온의 검에서도 오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며 잔뜩 긴장했다.

‘역시! 실력자였어.’

라일은 다린 외에 오러를 사용하고 대련하는 것은 라온이 처음이었다.

콰쾅!

붉은 색 오러가 충만한 두 자루 검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우웁!”

라일은 검이 부딪치면서 가슴 밑에서부터 울컥하고 피가 솟아났다.

입가에 피가 새어나오는 모습에 라온은 자신이 너무 심하게 하는 것같아 미안했다. 하지만 라온으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라일이 적당히 검을 놀리도록 해주질않기 때문이었다.

라일은 전투 기술이 없기에 단순히 빠른 몸놀림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빠른 몸놀림이 라온에게 여유를 주지않고 있었다.

‘몸이 아주 재빠르다. 감각도 아주 우수해.’

라온은 감탄했다. 그러면서 라일에 대해 속으로 가늠했다.

‘오러를 일으키니 소드 익스퍼트 초급은 넘겠지. 몸놀림으로 보면 상급? 아니, 그 정도는 아니겠지. 설마 저 나이에….. 하지만 초급 이상이다. 그럼, 중급? 설마…..”

라온은 자기를 제외하고 라일처럼 어려보이는 인물이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올라있는 것을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런 괴물이 움사쿤족이란 말인가? 움사쿤족은 원래 저렇게 강한가? 휴우, 그렇다면 움사쿤족의 진짜 실력자들은 도대체 얼마나 강할까?’

이제까지 자신은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온은 크게 오해하며 한번도 보지 못했던 움사쿤족에 대한 경외감까지 들고 있었다.

콰콰쾅!

라일이 달겨드는 바람에 라온이 막아서면서 오러와 오러가 부딪쳐 다시 큰 굉음이 일어났다.

“으읍!”

또다시 라일의 입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안되겠다. 멈추자.’

라온은 더이상 하다간 라일의 몸에 큰 해를 남기겠다는 생각에 뒤로 멀찍이 물러나며 오러를 거둬들였다.

“그만하지. 그러다 시합 때 제대로 힘을 못낼 수도 있어.”

라온의 말에 라일도 오러를 거둬들였다.

“네. 대련 감사했습니다.”

라일은 허리 숙여 절했다.

‘예의가 반듯하구나. 마음에 드는 젊은이야.’

라온은 흐믓한 마음이 들었다.

“몸이 어떤지 내가 좀 살펴봐도 될까? 내상이라도 입었으면 내가 너무 미안해지니깐 말이야.”

“괜찮습니다.”

“아니야. 자, 이리와서 앉아보게.”

라온이 라일의 손을 잡아끌자 라일은 못이기는척 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항상 다린 앞에서 이렇게 앉다보니 습관적으로 가부좌를 했다.

라온은 라일의 등 뒤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손바닥을 펴고 라일의 등에 갖다 대었다. 라일은 눈을 감으며 다린과 매일같이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혈도에 흐르는 마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응? 운기조식? 어떻게 운기조식을 알지?’

라온은 다시한번 라일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세계에 와서 운기조식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제외하고 처음이었다.

‘좋아. 그럼 마나를 더 잘 흡수하겠군.’

라온은 단전에서 마나를 끌어올려 손바닥에 보낸 후에 라일의 몸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나자 우욱하며 라일이 검은 피를 쏟아냈다.

라온은 등 뒤에 있어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라일이 피를 뱉어내는 것을 직감하고 잠시 마나를 더 주입해 준 후에 손바닥을 떼어냈다.

라일은 소매로 입을 닦은 후에 일어서서 라온에게 다시 절했다.

“감사합니다.”

라일의 반듯한 모습을 본 라온은 가슴 밑에서부터 울컥하는 느낌이었다.

‘이 아이가 내 아들이었으면. 이 아이가 내 아들이었으면……’

이렇게 뛰어난 젊은이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바라던 아들의 모습이었다.

“아니, 내가 더 감사하네. 자네같은 사람을 만나서 말이야.”

“전 많이 부족한데요.”

“무슨 소리! 혹시 몇 살인가?”

“해가 바뀌어 17살이 되었습니다.”

“헉!”

라온은 신음성을 낼 정도로 놀랐다.

‘17살?’

믿기지가 않았다. 17살에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성취였다.

“호, 혹시 움사쿤족은 모두 자네처럼 뛰어난가?”

라온은 마케니안 제국 사람들과 비교되는게 부끄러웠지만, 그 생각을 무릅쓰고 묻지않을 수 없었다.

“전 움사쿤족이 아닙니다.”

“뭐? 움사쿤족의 땅에서 왔다면서.”

“맞습니다. 하지만 전 아르니아 왕국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융 사막으로 건너 움사쿤족으로 가시는 바람에 거기에서 자랐습니다.”

‘아르니아 왕국 사람? 아르니아 왕국에 이런 인재가 태어나다니! 사막을 건너 도망쳤다? 노예나 평민이 그럴리는 없다. 귀족 아니면 왕족이겠지.’

“믿을 수 없군. 아르니아 땅에 만약 자네같은 인재가 있었다면 절대 왕국이 무너지진 않았을꺼야.”

“과찬이십니다.”

“아니, 진심이네. 진심이야.”

라온은 정말 솔직한 심정이었다.

“혼자서 왕국을 지킬 수는 없죠.”

“혹시 마케니안 제국에 대한 복수심이 있나?”

아버지가 전쟁에 죽고 어머니가 융 사막을 건널 정도로 피신했다는 사실에 라온이 걱정하며 물었다.

“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아르니아 왕국을 재건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정작 융 사막을 건너와 알게 된 사실은 아르니아 왕국이 먼저 전쟁을 걸었더군요. 게다가 아버님은 전쟁 중에 사망하셨습니다. 마케니안 제국 입장에서 전쟁 선포를 한 아르니아 왕국을 막으려는 것이니 아버님의 죽음을 원망할 수 없더군요.”

‘아르니아 왕국의 재건? 일개 기사의 부인이 아들에게 왕국을 재건하라고 가르치다니. 숨겨진 왕족이었나?’

라온은 자신이 점령한 아르니아 왕국 누구에게도 이렇게 대단한 충성심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나?”

“기사였다고 하셨습니다.”

라일은 소드 마스터였다는 말은 빼버렸다.

소드 마스터는 아르니아 왕국 역사에 한번도 있지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아버지가 소드 마스터였다는 어머니의 말은 그저 아버지를 라일에게 잘 보이게 하려는 말로 여기기로 한 상태였다.

‘기사? 하급 귀족이었나?’

“어머니는?”

““저를 낳다가 병을 얻으셨습니다. 계속 병을 앓으시다 그것 때문에 작년에 그만……”

라일은 말을 멈추고 눈시울을 붉혔다.

라온은 라일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기 민망했다.

“미안하네. 쓸데없이 내가 질문을 해서.”

“이만 돌아가시죠.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라일이 돌아가려하자 라온은 조금이라도 그와 더 있고 싶은 마음에 괜히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 어쩌지? 나가는 길은 모르는데?”

“괜찮습니다. 제가 길을 잡죠.”

라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 나섰다.

“응? 어떻게 길을 잡으려고?”

“저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라일은 하늘을 올려보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 후. 두 사람은 숲을 나와 미클롱 도시가 보이는 곳에 서있었다.

라온은 라일이 길을 잡고 숲을 나오는 동안 그의 뒤를 따르며 라일의 등이 너무나 듬직해보였다.

‘볼수록 신기하고 대견한 젊은이다.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 아까워.’

“혹시 자네 타이탄은 타봤나?”

“네?”

“기사 대회에선 타이탄을 타고 겨루는 것도 있지. 타이탄을 타본 경험이 있다면 도움이 될꺼야.”

“그래요? 어떻게 하면 탈 수 있나요?”

라일은 순진한 얼굴로 라온을 바라보았다.

‘사막에서 자라서 잘 모르는군.’

“기사 대회에서는 빌려주네. 하지만 미리 연습해 볼려면 자기 타이탄이 있어야지. 그렇다고 타이탄을 함부로 꺼내면 제국에 침입한 적으로 오인받아 크게 혼이 나지. 하지만 기사 대회가 열리는 곳에서 훈련을 하겠다고 하고서 타이탄을 타면 괜찮을꺼야.”

“전 타이탄이 없는데요.”

“그래. 흠, 내가 기사 대회까지는 3일이 남았네. 그래서 내가 3일간 빌려주고 싶은데 한가지 약속을 해줘야 해.”

“네.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

‘꼭 지킨다. 흠, 너무 순진하군. 실력만큼 어느정도 교활한 것도 필요한데. 그래야 적에게 쉽게 안당하는데.’

라온은 남을 잘 믿는 라일이 걱정되었다.

“자네, 남을 잘 믿는군. 그래선 앞으로 살면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전사도 교활한 마법사의 마법에 당할 수 있거든. 적의 간계에 빠질 수도 있고 말이야.”

“네, 조심하겠습니다.”

“여긴 지금 아무도 없으니 내가 타이탄을 꺼내 자네에게 주지. 3일이네.”

라온은 3일을 강조하며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다시한번 주위를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선 아공간에서 기간테스를 불러냈다.

“아크히, 기간테스!”

라온의 말이 끝나자 거대한 타이탄 기간테스가 나타났다.

“허억! 굉장하군요.”

라일은 감탄하며 기간테스를 올려다보았다. 라온은 라일을 바라보고 빙그레 웃은 후에 기간테스를 보고 말했다.

“기간테스, 난 너와의 계약을 해지한다.”

(라온, 왜 갑자기 해지하는가?)

“친구에게 주려한다.”

(친구? 으음.)

기간테스는 아쉬워하면서 라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두팔을 늘어뜨리며 기운을 잃은 듯 고개를 숙였다.

“됐다. 라일. 이제 타이탄 옆으로 가서 계약해. 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 옆으로 가면 타이탄의 음성이 들릴꺼다. 당황하지말고 너의 이름을 말하고 계약하면 된다.”

라온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라일은 자신의 타이탄 슈트 크로노스와 계약한 경험이 있었지만 아무말없이 기간테스 옆으로 가서 섰다. 그러자 라일의 머리 속으로 기간테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 이름은 기간테스! 그대의 이름은?)

“라일.”

(라일! 그대는 기간테스와 주종의 계약에 승낙하는가?)

“승낙한다.”

(라일과 기간테스 간에 주종의 계약이 성립되었다. 이제부터 기간테스는 라일의 명을 따른다.)

계약이 끝나자 바로 타보고 싶은 생각에 라일이 기간테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착용!”

(착용?)

기간테스가 의문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라온은 깜짝 놀랬다. 타이탄 슈트가 아닌데 거대한 타이탄을 바라보며 착용이라고 외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럼 뭐라고 부르지? 난 네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라일이 기간테스에게 물었다.

(탑승이라고 하면 된다.)

“알았다. 탑승.”

라일의 말이 끝나자 기간테스의 머리가 두개로 나눠졌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라일에게 그 위로 올라타도록 말했다.

라일일 손바닥 위에 올라가자 기간테스는 손을 들어 머리에 가까이 가져간 후에 머리 위에 라일이 서도록 했다.

(이제 머리가 닫힐 것이다.)

기간테스가 친절히 말하며 머리를 닫았다.

어둔 기간테스 속에 들어온 라일은 타이탄 슈트를 탔던 경험을 살려 다시 외쳤다.

“시야 개방.”

라일의 지시가 끝나자 어둔 밤과 수많은 별빛 그리고 밑으로 보이는 미클롱 도시와 대견스럽게 쳐다보는 라온의 모습이 모두 들어왔다.

잠시 주변을 감상한 라일은 기간테스에서 내려온 후에 기간테스를 아공간으로 보냈다. 라온이 가까이 다가와 질문했다.

“자네 타이탄을 모르는것 같더니 익숙하군.”

순간적으로 자신의 타이탄 슈트 얘기를 하려던 라일은 어머니인 플로랑스가 크로노스에 대해 숨기라고 했던 기억을 떠올려 다르게 말을 했다.

“처음입니다. 하시는걸 보고서 거꾸로 하면 될꺼 같아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 자네는 아주 똑똑하니깐.”

라온은 라일의 말을 고지곧대로 믿었다.

미클롱 도시에서 라일과 헤어진 라온은 포탈 마법진을 통해 왕성이 있는 수도 빅우드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에 자리를 비우고 라온이 돌아오자 헤이프론이 그를 찾았다.

“어디에 갔다오셨어요? 말도 없이?”

“헤이프론, 안잤어?”

“당신은 16년이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나를 헤이프론이라고 부르네요.”

“아, 미안. 황후마마.”

“칫, 장난은. 혹시 에띤느와 밤을 보내고 계셨나요? 오늘은 그녀와 함께 하는 날이 아닌데요?”

헤이프론은 질투심어린 눈빛으로 라온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바다 바람이 쐬고 싶어서 미클롱 도시에 갔다왔어.”

“그래요? 몇일 있으면 거기서 랄프의 황태자 임명식이 있잖아요.”

“응. 맞아. 그리고 기사대회도 있지.”

라온이 대답하자 헤이프론은 갑자기 라온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감사해요.”

“응? 뭐가?”

“난 당신이 랄프를 마음에 들어하지않는 줄 알았어요.”

그녀의 대답에 라온은 속으로 콕하고 찔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왜 그러겠어.”

“당신에 비해 부족한게 많으니깐.”

헤이프론은 짧게 대답했다.

라온은 그동안 티를 내지않았는데 헤이프론이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헤이프론은 계속 말했다.

“랄프만 그런게 아니죠. 프론도 그렇고, 에띤느가 낳은 에론도 그리고 디오나까지도. 에띤느랑 저랑은 둘이서 그 문제로 얘기를 나눴어요.”

“그 문제라니?”

“왜 아이들이 당신을 닮지 않는지 말이예요. 보통보다 우수하다고는 하지만 당신의 기준에서 본다면 턱없이 부족하잖아요.”

‘그래. 그렇지.’

라온은 속으로 긍정하며 오늘 만났던 라일을 떠올렸다. 라일과 자신의 아이들을 비교하면 완전히 천지차이였다.

“난 아이를 더 낳아야 할지 고민했어요. 솔직히 아이를 더 낳으려고 노력했는데 더이상 생기지는 않더군요. 그런데 에띤느도 디오나 이후로 아이가 생기지 않았죠. 나는 에띤느에게 라온을 닮은 아이가 없다고 얘기했죠.”

“그래서? 에띤느가 뭐라고 대답해?”

“에띤느는 뭐가 문제냐는듯이 가볍게 그럴수 있지 뭐 하더군요. 난 힘들어서 더이상 아기 못 낳으니깐 나보고 더 낳을 수 있으면 낳으라더군요. 에띤느의 낙천적인 면을 나도 닮았으면 좋겠어요.”

“하하, 에띤느도 참. 그러고도 남지.”

라온은 나이를 먹어서도 변하지않는 에띤느의 낙천적인 면이 좋았다. 잠시 웃고난 라온이 다시 말을 이었다.

“헤이프론, 네가 너무 예민한거야.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검을 들고 싸울 일은 없어. 오히려 통치자로서 자질이 필요해. 검을 나라를 세웠다고 검으로 통치할 수는 없잖아. 랄프는 첫째 왕자로서 충분히 나를 이을 자격이 있어.”

“고마와요.”

“내가 뭐 하게 있다고 솔직히 힘들게 아이를 낳은건 헤이프론이잖아.”

“그래도요. 난 라온이 계속 아이를 원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어요.”

“걱정마. 헤이프론.”

황후라고 불러야 함에도 라온은 다시 헤이프론이라 말하며 그녀를 껴안아 주었다.

한편, 라온과 헤어진 라일은 자신이 묶고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다린은 라일이 자리를 한참 비우고 돌아오자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라일. 어디에 갔다왔니?”

“부둣가를 거닐다 굉장한 실력자를 만났습니다.”

“굉장한 실력자?”

“네.”

라일은 라온을 만난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다린은 이야기를 듣고나자 라온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실력있는 자가 왜 낡은 천옷을 입고 다닐까? 게다가 타이탄을 빌려줘? 어디서 돌려줄지는 정했냐?”

“아, 그건 안정했네요. 3일만이라고 했으니 아마 헤어진 장소겠죠. 3일 후 저녁에 가면 있을거 같은데요.”

“라일. 넌 좀더 주도면밀해야 해.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구나.”

“그 얘기도 그분이 하셨습니다.”

“그래? 좋아. 아침이 되면 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가서 타이탄을 꺼내보자.”

“네. 알겠습니다.”

라일은 대답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다린은 렉스와 마케니안 왕국의 라온 그리고 라일이 말해주는 신비로운 인물 플로까지 미클롱 도시에 와서 자꾸 예상치 못한 인물을 알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아침이 되었다. 라일은 몇시간 자지 못하고 일어났고, 다린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새운 상태였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라일이 받았다는 타이탄을 꺼내보기 위해 기사 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대회장에서 타이탄을 꺼내 연습하고 싶다고 부탁하자 그곳을 지키는 관리는 흔쾌히 허락했다. 이미 밤새 라온의 지시가 내려와있는 상태였다.

넓다란 훈련장 한폭판에 오자 다린이 라일에게 말했다.

“자, 이제 타이탄을 꺼내봐라.”

“네. 아크히, 기간테스!”

라일의 말이 끝나자 아공간에서 기간테스가 나타났다. 이를 본 다린이 깜짝 놀랬다.

“오오, 아다만티움으로 된 타이탄이잖아.”

다린은 그냥 스틸크로 된 타이탄일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공간에서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타이탄이 나온 것이었다.

‘이런 귀한걸 빌려준다니.’

플로라는 인물이 누굴지 더욱 궁금해졌다.

라일은 탑승이라고 외치며 기간테스에 올라탔다.

“시야 개방!”

지시를 내려 시야를 확보한 라일은 기간테스의 허리춤에 달린 검과 방패를 꺼낸 후에 처음으로 거대한 타이탄 시운전에 들어갔다.

한참 움직이며 거대한 타이탄에 적응한 라일이 기간테스에서 내려왔다.

“휴우, 저는 훈련을 마쳤습니다. 제가 계약을 해지할테니 다린 님께서도 훈련을 하시죠.”

“친절은 고맙다만 난 안해도 된다. 전에 타본 경험이 있거든.”

“아, 그래요?”

라일은 다린의 대답을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라일, 이게 마음에 드냐?”

“네. 그렇습니다. 이런 대단한걸 만들다니 신기합니다.”

“네가 탄 타이탄은 아다만티움 마광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보다 못한 것이 스틸크 마광석으로 만들어진 타이탄이지. 그리고 최고는 미스릴 마광석으로로 만들어진 타이탄이다.”

“아, 그럼 전 마케니안 제국이 기사가 되어 미스릴로 된 타이탄을 달라고 해야겠군요.”

“하하, 라일. 네가 달라고 해서 받는게 아니다. 그리고 미스릴은 귀한 마광석이라 아무리 마케니안 제국이라 하더라도 몇대 없어.”

다린은 웃으며 말했다.

“아다만티움으로 된 타이탄은 많은가요?”

“이것도 흔하진않다. 아니, 귀한거다. 타이탄은 다 귀해. 니가 만난 플로라는 자가 누구길래 이런 귀한 것을 너에게 빌려주었는지 모르겠다. 그를 꼭 만나고 싶구나.”

“3일 후에 같이 나가시죠.”

“그래. 그래야지.”

다린은 기간테스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런데 왠지 어제 렉스가 보여주었던 타이탄 슈트 코이머스가 떠올랐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타이탄은 더이상 최고가 아니다. 드래곤 본으로 만들어진 타이탄이 존재하니깐 말이야. 나도 꼭 가지고 싶다. 꼭!’

다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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