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서로를 모르는 아버지와 아들 (Ⅱ)
3일이 지나고 기사 대회 당일.
이날 오전에는 미클롱 도시에서 첫째 왕자 랄프의 황태자 임명식이 개최되고, 오후에는 기사 대회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미클롱 도시에서 큰 두가지 행사가 있는 바람에 몇일 전부터 이곳의 포탈 마법진은 마케니안 제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리들과 주변국의 사절로 정신없이 바쁜 상태였다.
특히, 라트시아 왕국은 첸틀러 공작이 사절로 파견되어 나왔다.
라온은 아침 일찍 헤이프론 황후, 에띤느 후궁, 랄프 왕자, 프론 왕자, 에론 왕자, 디오나 공주 그리고 수십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미클롱 도시로 왔다.
멕스와 그의 약혼녀 라일리도 멕베인 후작가와 크림슨 후작가의 자제로 황태자 임명식에 참가했다.
황태자 임명식은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이런 큰 행사는 마케니안 왕국이 제국으로 바뀌고나서 처음이라 그 어느것보다 화려했다.
황제인 라온과 황후인 헤이프론이 서있는 가운데 황태자가 될 랄프가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자 라온은 랄프의 머리에 황태자가 쓸 관을 씌워주었다. 그리고 랄프를 부축해 일으킨 후에 준비한 망토를 입혀주고 황태자 인장이 표시된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또, 황태자가 들고 다닐 지팡이도 건내주었다.
라온은 원래 어떤 아들이든 아델리오의 망토에서 빛이 나는 아들이 있다면 그를 황태자로 내세우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델리오의 망토를 입혀주려 했지만 그런 아들이 없기에 망토는 다른 것으로 대체시켰다.
황태자 행사가 오전에 성대하게 끝이났다.
저녁에 연회가 있을 예정이었지만, 점심에도 각국 축하 사절이 참석하는 식사가 있었다. 라온은 여기서 첸틀러 공작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교활한 자식. 이제 꽤 늙었을텐데 죽지도 않았구나.’
라온은 겉으로는 미소지으며 속으로는 욕을 퍼부었다.
첸틀러 역시 지난 20여년간 바뀌어버린 마케니안 제국과 갈메시아 왕국의 운명. 그리고 지금은 라트시아 왕국의 공작이 된 자신의 처지 등을 생각하며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라온을 바라보았다.
‘그때 공작께 진언드려 반드시 죽였어야 했다. 마법이 분명히 걸렸거늘…..’
첸틀러는 아직도 라온이 백치가 되었던건지, 백치 행세를 했던건지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마법을 잘 알기에 라온이 마법에 걸리지않고 숨어서 실력을 키웠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첸틀러로서는 라온이 평생 가장 큰 실수였다.
“라트시아 왕국의 첸틀러 공작 잘 왔소.”
라온은 손을 내밀었다.
첸틀러는 라온의 손을 맞잡고 손등에 키스했다.
“황제 폐하, 축하드립니다.”
첸틀러 공작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공작?”
“예!”
“라트시아 왕국에는 커다란 마탑이 세워졌다는데 그건 뭐하는 것이오?”
“네, 제가 마법을 연구하는 곳입니다.”
“흑마법?”
라온은 툭 건들여보듯 물었다.
순간 ‘네’하고 대답하려던 첸틀러 공작은 움찔했다. 아직 대륙에서 흑마법은 금기시되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냥 마법이죠.”
“그런가? 혹시 기억이 날지 모르지만 예전에 내가 왕으로 오를 때에 아주 불미스런 일이 있었소. 본 와이번이 나타나 행사에 참가했던 아르니아 왕국의 스타베 왕이 죽는 사태가 발생했었지.”
“…………”
첸틀러 공작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흠흠, 이번 행사 기간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소. 참, 공작은 수행원을 꽤 데려오셨던데, 숙소가?”
“미클롱 도시에 자리가 없어 외곽에 잡았습니다.”
“아, 루이스 원수가 그러더군. 마케니안 제국을 떠나기 전까지 숙소를 바꾸지 마시오.”
“네?”
“지금 이유를 묻는건가? 감히 황제에게?”
라온은 무서운 눈으로 첸틀러 공작을 노려봤다.
첸틀러 공작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황제 폐하.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좋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만간 답례로 라트시아 왕국을 찾겠소. 그때 마탑을 구경하겠소. 준비하시오.”
“네에?”
라온의 말이 끝나자 첸틀러 공작은 깜짝 놀라했다.
“왜 그리 놀라시오. 내가 가면 안되오?”
“어찌 황제께서 부족한 저희 왕국에……”
“부족하지않소. 이번달 안으로 가보겠소.”
라온은 으름장을 놓듯 선언했다.
첸틀러 공작은 크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가 가버리자 렉스 재상이 라온에게 살며시 다가와 나즈막히 물었다.
“라온, 진짜 갈꺼야?”
“마탑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궁금해서.”
“무슨 일을 벌이는데?”
“도통 모르겠어. 첩자를 아무리 파견해도 그 안에는 아무도 들어가보질 못했지.”
“그렇게 위험한데 갈꺼야?”
“안가. 사실 내가 두려워하는 인간이 있다면 바로 저놈이야.”
“저 놈이 왜?”
“흑마법을 다루는 놈이지.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을지 가늠이 안돼. 오늘 손을 잡으며 그의 마력을 알아볼까 했는데 완전히 얼음장이었어. 도통 속을 모르겠어. 저놈은. 게다가 늙지도 않는거 같아. 처음 본 이래로 22년이 지났어. 그런데 변한게 없는거 같아.”
라온은 첸틀러의 차가운 손길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살아있는 자의 생기를 빨아먹나보지.”
렉스는 이렇게 대답하며 미소지었다.
오전의 황태자 임명식 행사가 끝나고, 오후에는 기사 대회가 시작되었다.
멕스는 긴장한 모습으로 기사 대회에 참가했다.
멕스는 기사 대회가 발표되고 지난 10개월여를 미친듯이 훈련에 몰두하여 드디어 소드 익스퍼트 초급에 오른 상태였다.
지난 날. 16살의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 초급에 올라 대륙의 기대주로 지목받았던 라온에 비해서는 4년이나 늦게 소드 익스퍼트 초급에 오른 것이지만 20살에 이정도 실력이라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멕스가 검에 오러를 일으키자 견습 기사들은 하나같이 부러운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멕스의 약혼녀인 라일리는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멕스에게 기사 대회에서 조심하라고 몇번이나 당부를 했다.
옛 왕실 기사단 훈련장은 기사 대회에 참가한 자들과 구경꾼들로 완전히 바글바글거렸다.
기사 대회가 열리는 옛 왕실 기사단 훈련장에 온 라온은 렉스에게 기사 대회에 대해 보고받았다.
“참가자가 5천명쯤입니다. 1회 대회와 같이 1대1 대결로 2차 참가자를 가릴 예정입니다.”
공식적인 자리에 많은 이가 보고 있기에 렉스는 정중한 태도로 라온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많이 왔군. 재상이 잘 알아서 진행하시오.”
“네.”
렉스가 물러나고, 잠시 후에 라온의 개막 축하가 시작되었다.
라온은 3층 높이의 단상에 올라 밑에 있는 참가자를 바라보며 연설을 시작했다.
한편, 밑에서 도열해 있던 라일은 라온 황제가 플로와 똑같이 생긴 것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가 잘못보는거겠지? 어두워서 플로의 얼굴을 제대로 못본걸꺼야. 어떻게 황제와 그가 같은 사람이겠어. 착각이다. 착각.’
라일 옆에 있던 다린도 라온을 주목하고 있었다.
‘라온. 널 꼭 만나겠다. 렉스에게 만들어준 그 타이탄을 나에게도 만들어다오.’
다린은 라온과 함께 서있는 렉스를 쳐다보았다.
렉스는 다린의 눈길을 의식한듯 그에게 미소지어보였다.
잠시 후, 라온의 연설이 끝이나고 1대1 대결이 시작되었다.
넓은 훈련장에는 폭이 20미터 정도의 둥근 원 60개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 원 안에서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무기를 들고 개인별 전투를 벌였다. 혹시라도 장비의 힘으로 이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사람당 오전, 오후로 하루에 2번씩 시합을 갖는데 4일간 총 7번을 싸운 성적으로 1차 시험을 통과하도록 했다.
첫날, 다린과 라일 그리고 멕스는 가볍게 승리를 거뒀다.
세 사람은 상대를 맞이해 검에 오러를 일으키자 상대방은 싸우기도 전에 크게 질겁하며 알아서 기권했다.
첫날 승리 후에 저녁이 찾아오자, 라일은 다린과 함께 라온과 헤어진 곳으로 왔다.
한편, 라온은 렉스에게 라일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렉스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자 렉스와 다린은 뜨끔했다. 그리고 플로라고만 생각했던 라온이 황제와 똑같은 것에 라일도 당황했다.
라온은 자신을 밝힐 요량으로 복장도 전과 달리 황제의 옷을 입고 있었다.
“황제 폐하!”
라일이 놀라서 말하자 라온은 빙그레 웃었다.
“많이 놀랐나? 자네를 속여서 미안하네.”
라온이 황제임을 시인하자 다린은 급히 무릎을 꿇었다. 드래곤으로선 그럴 이유가 없지만 유희를 즐기는 중이기에, 그는 모든 인간의 법도를 따르고 있었다.
라일은 다린의 모습에 자신도 급히 무릎을 꿇었다.
“라일. 일어나라. 그리고 그쪽도.”
라온의 지시가 떨어지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라일, 아르니아 왕국 일은 미안하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렇게 일방적으로 전쟁이 끝날 줄 알았다면 좀 더 시간을 두고 대화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어렸다. 내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아르니아 왕국이 전쟁을 선포하자 바로 침공해 들어갔다.”
“…………”
라일은 라온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있었다.
“당시 포로로 잡힌 아르니아 왕국 기사나 마법사들은 회유를 통해 마케니안 제국의 기사와 마법사로 흡수했다. 물론 끝까지 저항한 자들이 있었긴 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라온은 죽였다는 말을 하지 못해 말끝을 흐려야 했다.
“제 아버님은 전투 중에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 전투 중에….. 어쨋든 성급히 왕국을 점령한 것은 후회한다.”
마케니안 제국의 황제가 일개 백성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전쟁을 선포해왔던 왕국 문제 일로.
다린은 라온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은 렉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라온은 라일보다는 플로랑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녀가 죽은 지금 라온은 그녀를 대신해 라일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상황을 모르는 라일은 라온이 거짓없이 말하는 모습에 한편 감동받았다.
“네. 알겠습니다.”
라온은 라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라일, 네가 좀 더 성장하면 너에게 아르니아 땅을 맡기마. 황제의 약속이다. 증인도 이자리에 두명이나 있다.”
“헉, 폐하.”
옆에 있던 렉스가 놀라며 라온을 바라보았다.
“렉스 재상. 걱정말게. 검으로는 이미 충분한 실력이 있으니. 다만, 세상 물정을 좀 더 알아야해. 라일, 그건 내 옆에 있으면서 배워라.”
라온의 말에 라일이 놀라워했다.
“네?”
렉스도 놀라며 라온에게 말했다.
“폐하, 아직 기사로 뽑히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이미 실력 테스트를 했네. 충분해. 소드 익스퍼트 초급은 넘어. 상급은 아닌거 같고. 중급일꺼 같아. 맞아?”
라온이 묻자 라일은 다린을 쳐다보았다. 라일은 자신의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린이 라일을 대신해 대답했다.
“폐하, 맞습니다.”
“음, 그대도 오늘 기사 대회에서 싸우는 것을 보았네. 라일을 지도할 정도니 실력은 그 이상이란 소리겠지?”
라온의 질문에 다린이 살짝 렉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라온에게 답했다.
“네, 사실 마스터의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린은 소드 익스퍼트 상급가지고는 라온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고 여겨 이렇게 대답했다.
“헉, 마스터? 자네 이름은?”
“다린입니다.”
“다린? 아델리오의 망토의 다린?”
라온이 직접적으로 묻자 다린은 속으로 찔끔했지만 금새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미안하네. 잠시 착각했네. 자네는 어디 출신인가?”
“그랜드 멜파소 산맥 너머의 바스테르 왕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간 대륙을 돌아다니며 떠돌이로 살아왔죠. 최근에 배를 타고 산맥 이쪽으로 왔습니다.”
다린의 대답에 라일은 속으로 융 사막도 건너 움사쿤족이 사는데까지 왔었다는 그의 말을 기억하고 쳐다보았지만 다린은 모른척 그의 시선을 피했다.
라온은 계속 놀라는 눈으로 다린을 쳐다본 후에 렉스에게 말했다.
“소드 마스터가 기사 대회라니. 렉스 재상?”
“네.”
“내일 당장 다린을 새롭게 창설되는 비젤 기사단의 단장으로 임명할테니 준비하게.”
“네!”
다린은 라온이 급하게 지시를 내리자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폐하. 대회에 참가했으니 끝까지 남겠습니다.”
“무슨 소린가. 소드 마스터는 이쪽 대륙에 있는 모든 왕국을 통틀어 단 두명뿐이라네. 갈메시아 왕국의 칼릭스 후작 그리고 내가 있지. 세번째 소드 마스터가 나타났는데 대회라니. 내가 더 부끄럽네. 단장직이 아니라 자네가 후작의 직위를 달라고 해도 주어야지. 그걸로 모자르면 공작의 직위를 주겠네.”
“폐하. 아직 제 실력을 보지도 않으셨잖습니까?”
“라일이 증인인데 거짓말하겠나? 자! 그럼 지금 보여주게.”
라온은 자신의 검을 다린에게 내밀었다. 오러를 만들어보이라는 뜻이었다.
다린은 검을 받아든 후에 마나를 끌어올려 검에 주입했다.
푸슈슛~ 부아앙~ 우웅.
소드 마스터를 증명하는 푸른색 오러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오러로 인해 검신의 길이가 두배는 늘어났다.
네명 중에 푸른 색 오러가 나타나자 놀라는 것은 라일 하나였다. 라일은 오러의 색깔은 붉은 것만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라온은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다린. 충분하네.”
다린은 오러를 거둬들인 후에 라온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다린, 혹시 단장직 외에 더 원하는게 있는가?”
“…………”
다린은 렉스가 가진 타이탄 슈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라일에게는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타이탄을 주었네. 자네에게는 미스릴로 된 타이탄을 주지. 원하는게 있다면 말해주게. 난 자네를 꼭 마케니안 제국에 머물게 하고 싶으니 말이야.”
다린은 라일이 의식되었다.
“폐하, 나중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응? 나중에? 그래. 언제든 말하게.”
라온은 흔쾌히 승낙했다.
이때 옆에 있던 라일이 아공간에서 기간테스를 불러냈다.
“아크히, 기간테스!”
기간테스가 나타나자 라일은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기간테스에게 말했다.
“기간테스, 난 너와의 계약을…..”
“잠깐!”
라온이 급하게 라일을 말리고 나섰다.
“네?”
“라일. 그건 내가 내리는 선물이다. 해지하지않아도 된다.”
“네? 하지만 이건 3일간 빌리는 것이었습니다.”
“하하.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라면 아다만티움으로 된 타이탄을 탈 자격이 충분하다. 아니 미스릴로 된 타이탄을 타야 맞을거다.”
“전 아직 마케니안 제국의 기사가 아닙니다.”
“다린과 마찬가지로 자네는 대회를 통과할 자격이 충분해. 내일 특별 명령을 내릴테니 대회는 참가하지않아도 된다.”
“아닙니다. 전 꼭 참가해서 실력을 겨뤄보고 싶습니다.”
라일은 강하게 대답했다. 옆에 있던 다린이 나서서 라온에게 말했다.
“폐하, 라일은 아직 어리니 경험이 더 필요합니다. 대회에 참가하도록 두시지오.”
다린까지 이러니 라온은 승낙하지않을 수 없었다.
“알았다. 그럼 막지않으마. 대신 기간테스는 내 선물이니 꼭 받아라. 나중에 이것보다 더 귀한 것을 선물로 주마.”
라온의 말이 끝나자 렉스와 다린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은 직감적으로 라온이 타이탄 슈트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린은 내심 자신이 가지고 싶은데 라일에게 빼앗길까 염려가 되었다. 그리고 렉스는 왜 이렇게 라온이 라일에게 잘해주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인재라 하더라도 이제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잘해주는걸까? 닮아서?’
렉스는 라일을 보는 순간, 처음 라온을 만났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 그만큼 라일은 라온을 닮았다. 하지만 엄연히 라온은 황제, 라일은 일개 평민이었다.
라온이 말을 하자 라일은 순순히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기간테스는 선물로 받겠습니다.”
라일의 말을 듣자 라온은 크게 기뻐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모두 가서 술 한잔씩 해야지? 하하.”
“아닙니다. 저는 내일 시합이 있으니 오늘은 숙소에 가서 쉬겠습니다. 폐하, 용서하소서.”
“그래? 그럼 할 수 없군. 라일은 내일 시합이 있다니…….”
라온은 아쉬웠지만 대회에 참가할 라일이 저렇게 나오니 뭐라할 수 없었다. 다린은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폐하, 그럼 라일은 숙소로 보내시고, 저와 함께 가시지오.”
“으음, 그러세.”
라온은 대답은 했지만 라일을 데려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라일이 가버리고 세 사람만 남았다.
“자, 그럼 우리도 가볼까?”
라일의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라온이 말했다. 이때, 다린이 나섰다.
“폐하, 폐하의 타이탄 슈트를 보고 싶습니다.”
“응? 타이탄 슈르를?”
라온은 다린이 타이탄 슈트에 대해 어떻게 알까 잠시 의심했다. 하지만 라온이 타이탄 슈트를 입고 활약을 펼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알겠네. 아크히, 지그프리드.”
라온은 아공간에서 지그프리드를 불러냈다.
타이탄 슈트 플로의 경우는 렉스를 제외하고 어떤 누구도 모르기에 라온은 끝까지 공개하지않고 감출 생각이었다.
아공간에서 순수한 미스릴로 만들어진 지그프리드가 나타났지만 다린은 만족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혹시 자네가 이걸 원한다면 새로 같은 걸로 만들어주겠네.”
라온은 말을 끝냈는데, 다린은 렉스를 바라보았다.
“렉스. 아무래도 안되겠다. 더이상 못참겠다.”
다린의 말투가 심상치않음에 라온은 무슨 일인지 몰라 렉스를 바라보았다. 렉스는 라온은 무시하고 다린에게 물었다.
“이번 유희는 여기서 끝내실 생각이십니까?”
‘유희? 그럼 다린은 드래곤?’
라온은 눈을 크게 뜨고 다린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될지는 황제와 얘기하고 결정해야겠지. 라온 황제?”
다린은 아까와는 태도늘 180도 바꾸고 말했다.
“혹시 진짜 드래곤입니까?”
“그렇네. 렉스보다 500살은 더 많지.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네.”
“혹시 아델리오에게 망토를 준 다린이 맞으십니까?”
“그렇네. 아까는 라일이 있어서 거짓말을 했네.”
“혹시 라일도 드래곤인가요?”
“하하, 궁금한게 많겠지. 가면서 얘기하지.”
다린은 라온을 바라보며 웃었다.
세 사람은 미클롱 도시의 포탈 마법진으로 가서 코이머스의 레어로 이동했다.
레어에 도착하자 라온은 레어 곳곳에 횃불을 밝혀 레어 안을 환하게 했다.
“잠시만 기다리게.”
다린은 폴리모프 상태를 풀며 본체로 돌아왔다. 화려한 골드 드래곤의 위용이 레어에 드러났다.
‘골드 드래곤이었군. 황금빛이 휘황찬란하다.’
라온에게 다린은 세번째로 만나는 드래곤이었다.
“황제, 난 자네가 렉스에게 준 것과 같은 타이탄 슈트를 보고 싶다.”
다린의 음성이 동굴에 쩌렁쩌렁 울렸다.
라온은 렉스가 이미 말한 것을 알자 아공간에서 자신의 타이탄 슈트 플로를 불러냈다.
“아크히, 플로.”
코이머스의 드래곤 본으로 만들어진 타이탄 슈트 플로가 나타나자 다린의 눈이 반짝거렸다. 다린은 다시 폴리모프 마법을 써서 인간으로 돌아온 후에 타이탄 슈트 플로를 이리저리 감상하기 시작했다.
“오, 대단해. 대단해.”
다린의 감탄 소리를 듣자 라온은 다린이 얼마나 가지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라온의 입장에서는 드래곤이 달라고 하는데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이번에도 렉스처럼 달라고 하겠군. 코이머스가 남긴 뼈가 더 있으니 외형이야 만들겠지만 드래곤 하트가 없으니 미렉션과 리렉션이 문제군.’
곰곰히 생각에 잠겨있는데 다린이 감상을 끝내고 라온에게 말했다.
“황제, 나에게 이걸 줄 수 없겠나?”
“흐음. 그냥 라온이라고 부르십시오. 그리고 렉스가 말했을테니 이건 얼마나 귀한건지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라온은 렉스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치, 알고 있네.”
“이 타이탄 슈트는 제가 설계했고 제작했습니다. 타이탄 슈트에 새겨진 마법은 렉스의 것이구요. 렉스에게 마법을 새겨달라고 부탁하는 댓가로 그에게 요구할 것도 많이 줄여주었습니다.”
“그래, 그것도 알고 있네.”
“게다가 매번 새로운 드래곤께서 나타나셔서 이걸 요구하시면 저로선 무척 곤란하구요.”
라온의 말이 이어지자 다린은 짜증이 났다. 솔직히 드래곤으로서 빼앗아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언가, 라온? 난 꼭 가지고 싶다.”
“저를 죽이고서라도 말입니까?”
“필요하다면.”
다린은 솔직하게 고백했다.
“흐음.”
라온은 신음소리를 냈다. 잠시 다린과 맞짱을 떠볼까 생각도 했다.
‘난 그랜드 소드 마스터다. 내 검이 드래곤의 비늘을 뚫지 못할리가 없다. 하지만 생사를 건 도박이다.’
황제로서의 자기 위치. 그리고 자기를 바라보는 헤이프론과 에띤느, 4명의 자녀. 주마등처럼 이들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휴, 좋습니다 드리지오. 대신에 조건이 있습니다.”
“뭔가?”
“먼저 질문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라온은 말을 마치고 품 속에서 아델리오의 망토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몸에 걸쳤다.
번쩍!
망토에 새겨진 일곱개의 별이 빛이 났다.
“오, 자네는 아델리오의 피를 이어받았군.”
“맞습니다. 다린 님의 축복을 받았죠.”
“아델리오는 유희 중에 만난 내 친구였네. 마치…..”
다린은 잠시 말을 멈추고 아델리오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마치 지금 라일과 같다네. 라일보다 신체 능력은 떨어지지만 순수함이나 열정은 비슷하지. 그게 매력이었어. 지금 생각하니 외모도 좀 닮았군. 그래, 질문이 뭔가?”
“네. 저에겐 4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동생 다빈도 자녀가 있긴 하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아데릴오의 망토는 빛을 내지 않습니다. 저희 대를 지나 다음 대에서 아직 후계자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후계자가 태어날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하나요?”
“응? 잠시만 기다리게.”
다린은 망토를 받아들고 자신이 시행한 마법을 다시 시전하며 눈을 감았다.
한참 후. 다린이 눈을 떴다.
“자네 다음 세대의 후계자가 이미 세상에 나와있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와 다빈의 자녀를 모두 검사해 보았습니다. 제 세대에 있어서 아델리오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은 저와 다빈뿐이었습니다.”
“글쎄. 숨겨놓은 자식이 있는지도 모르지. 어쨋든 망토의 마법은 이미 후계자가 세상에 있다고 알려주고 있으니깐.”
‘숨겨진 자식? 다빈이 그럴리가 없다. 하지만 세상에 있다니. 그건 말이 안된다.’
“어, 어디에 있습니까?”
“거기까진 모르네. 혹시 자네 모르게 자식을 낳은 여자가 없나? 아니면 동생쪽에서라도.”
“하하, 저 모르게 자식을 나을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에게 오직 헤이프론과 에띤느…..”
라온은 웃으며 말하다 갑자기 플로랑스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설마!’
라온의 얼굴이 굳어지며 하얗게 질리자 다린은 뭔가 있음을 눈치챘다.
“있긴 있었군.”
“하지만 그녀는 융 사막에서 죽었습니다.”
“사막에서? 아기를 낳기 전에? 아니면 후에?”
“모, 모릅니다.”
라온은 플로랑스가 숨기고 아기를 낳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플로랑스를 부탁했던 노엘 할아버지는 이미 10년 전에 돌아가신 상태였다.
‘혹시 살렘이?’
살렘이 플로랑스의 아기를 숨길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라온은 황급하게 소리쳤다.
“당장 가볼 곳이 있습니다.”
“어디?”
“융 사막이오.”
“하하, 성급하긴.”
“아까 어떤 요구를 들어주면 타이탄 슈트를 주겠냐고 하셨죠?”
“그랬네.”
“아델리오의 망토가 말하는 제 다음 세대의 후계자를 찾아주시면 드리겠습니다.”
“뭐?”
다린은 깜짝 놀랬다. 옆에 있는 렉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시니 미리 드리죠. 대신 드래곤의 위신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라온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당장 플로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라온으로선 숨겨진 자식을 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갑작스런 라온의 행동에 다린이 당황했다.
“후계자의 위치는 어디인지 나도 모르네. 대륙을 온통 뒤져야 할지도 몰라.”
“그러니 먼저 드린다는거 아닙니까? 이 타이탄 슈트는 아주 특별한 겁니다. 렉스가 타이탄 슈트에 새긴 마법이 어떤건지 저도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렉스는 아주 많은 마법을 새긴 것으로 압니다. 그렇지, 렉스?”
“맞아. 심혈을 기우려 만들었지. 마법을 새기는데만 1년이 걸렸어.”
렉스는 맞장구를 치며 다린을 쳐다보았다.
“들으셨죠? 게다가 이 타이탄 슈트는 생명 유지 장치인 미력센뿐 아니라 마나를 흡수해서 저장하는 리렉션이 따로 있습니다.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레드 드래곤 코이머스와 싸워서 얻은 드래곤의 뼈를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제 필생의 노력이 담긴 것입니다.”
라온이 타이탄 슈트 플로를 만드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설명하자 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승낙하지. 그런데 말이야. 자네 생각과 달리 동생에게 숨겨진 자식이 있으면 어쩌지? 그것부터 알아보는게 순서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동생이 그럴리는 없으리라 봅니다.”
라온은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플로랑스가 충분히 자기 몰래 아기를 낳았으리라 생각했다. 자신의 왕국을 점령한 라온에게 절대 말하지않았으리라 생각했다.
“좋아. 그럼 당장 사막으로 가지.”
“포탈 마법진의 좌표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라온은 렉스와 다린에게 마법진의 좌표를 알려주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오는 융 사막의 바위산.
너무나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않던 이곳 마법진에 세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라온, 렉스 그리고 다린이었다.
렉스는 감탄하며 라온에게 말했다.
“와, 이런 곳에 마법진을 설치했군.”
“그래, 하도 안써서 좌표가 가물가물했어.”
라온이 너스레를 떨자, 옆에 있던 다린이 물었다.
“아무도 없는 사막에는 왜 온거지?”
“여기서 조금만 가면 제롬 부족이 사는 곳입니다.”
‘살렘은 아직 살아있겠지?’
라온은 하늘을 올려보고 방향을 잡은 후에 렉스와 다린을 이끌고 제롬 부족이 사는 곳으로 이동했다.
라온은 제롬 부족이 사는 곳에 도착해서 살렘을 만나길 요청했다.
밤늦게 손님이 찾아왔기에 모두들 경계했으나, 살렘은 라온을 알기에 천막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했다.
전에도 와봤던 대형 천막.
내부에는 살렘이 가운데 앉아있고 그 좌우로 호위를 하는 두병의 병사가 서있었다. 살렘은 라온이 렉스, 다린과 함께 천막에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간 후에 라온을 좌우로 껴안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이군. 라온 황제.”
“살렘 족장. 오랜만이다.”
“그래, 무슨 일로 황제께서 어려운 걸음을 하셨나?”
“자네에게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
“나에게?”
“플로랑스에 관해서다.”
“플로랑스? 아, 자네와 함께 왔던 아르니아 왕국의 공주!”
살렘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혹시 그녀가 여기 있을 때에 아기를 가지고 있었나?”
“아기? 잠시만.”
살렘은 당시에 플로랑스와 가까이 지냈던 여인들을 불러오도록 지시했다.
한참 후, 살렘의 지시에 따라 플로랑스와 가까이 지냈던 여인들이 천막에 모여들었다. 살렘은 이들에게 자세히 플로랑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이들과 대화가 끝나자 살렘은 라온에게 와서 말했다.
“라온, 당시에 플로랑스 공주가 아기를 가지고 있었던거 같다는군. 직접 그녀가 밝힌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입덧을 하는 것을 본 여인도 있고, 대부분 플로랑스 공주가 배가 나와보였다는 얘기를 하네.”
털석!
라온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라온!”
“폐하!”
놀란 살렘과 렉스 그리고 다린이 라온을 부축했다. 하지만 라온은 자신의 몸은 신경도 쓰지않고 살렘에게 물었다.
“그, 그녀가 아기를 낳았나?”
“아니, 그녀가 아기를 낳지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녀는 자살했지.”
“아니야. 아기를 가졌는데 죽을리 없어.”
“하지만 마지막으로 자네가 아르니아 왕국과의 전쟁 소식을 가져온 이후로 그녀는 크게 낙담했지.”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노엘 할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진실을 알텐데.’
라온은 진작에 찾아와서 노엘 할아버지에게 다구쳐 묻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플로랑스가 죽은 이후로 이곳은 오기 싫어, 단 한번도 찾아오질 않았었다.
살렘은 라온이 왜 이밤에 찾아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왜 아기 이야기는 묻는건가? 플로랑스가 죽은지 꽤 되었잖아. 17년? 18년?”
“그, 그래. 너무 늦게 왔어. 너무 늦게!”
라온은 두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지난 일을 후회했다.
‘프, 플로랑스! 넌 정말 죽은거니?’
라온은 바닥을 두드리며 안타까와했다.
아무 소득없이 세 사람은 미콜롱 도시로 돌아왔다.
다린은 상심한 라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라온 황제. 내가 아침에 동생 다빈을 만날 수 있을까?”
“네? 왜요?”
“마법으로 그가 거짓말하는지 알아보겠네. 혹시 숨겨놓은 여자가 있는지도 모르잖아.”
“네, 그럼 아침에 만나보시죠. 동생은 수도 빅우드에 있습니다.”
라온은 힘없이 대답했다.
세 사람은 헤어졌고, 아침이 되자 라일은 기사 대회로 그리고 라온과 렉스, 다린은 수도 빅우드로 향했다.
수도에 도착해 라온의 지시로 다빈이 호출되었다.
다빈이 도착하자 다린이 나서서 그에게 몇가지 물었다. 다빈 모르게 다린은 마법을 시전해 거짓말을 탐지했다.
대화가 끝나고 다빈이 나가자 다린은 라온에게 말했다.
“숨겨놓은 여인은 없군. 적어도 그는 솔직하게 말했어.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자랑 잘 수도 있으니깐.”
말이 끝나자 렉스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다린 님, 그건 정말 희박한 경우입니다.”
라온도 렉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맞아요. 그럴 경우는 없죠. 아무래도 플로랑스가 아기를 낳은 후에 노엘 할아버지를 시켜 어디론가 빼돌린거 같아요. 그리고 자신은 자살한거죠.”
다린이 라온의 추측을 반대하고 나섰다.
“노엘 할아버지라는 자는 제롬 부족을 떠난 적이 없잖아.”
“하지만, 노엘 할아버지는 사막을 지나는 상인들도 많이 알죠. 그러니 어쩌면 상인들에게 아기를 넘겼는지도 모릅니다.”
“휴우, 그건 좀 억지같은데.”
“하지만, 지금 제 다음 세대의 후계자가 살아있다면서요?”
“그렇지. 그건 사실이야.”
다린은 순순히 인정했다.
“제 아이들이 사고를 치고 아이를 낳았다치더라도 그건 제 다음 세대가 아닙니다. 다빈은 숨겨놓은 여자가 없고. 제가 걸리는건 플로랑스예요. 플로랑스가 죽기 전에 우리는 몇번이나 잠자리를 같이 했죠. 그리고 그녀는 자살했고. 주변 여인들이 아기 낳은 걸 몰랐다고 하지만 그건 숨어서 낳아서 그런 걸 수도 있지요. 노엘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요. 남은 것은 노엘 할아버지. 그런데 그는 죽었고….. 으으으.”
쾅!
뿌지직.
라온은 답답함에 의자 팔걸이를 내리쳤다. 팔걸이는 당장에 산산조각으로 부셔졌다.
렉스가 라온에게 다가갔다.
“라온, 진정해. 진정!”
“렉스, 난 지금 미칠꺼 같아. 내 아이가 어디서 어떤 모습을 있을지 생각하니 플로랑스를 잃은 것보다 더 가슴이 아파. 플로랑스는 나에게 복수한거야. 자기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 그리고 왕국을 빼앗은거에 대한 복수를 정말 철저하게 했어. 흑흑. 너무해! 플로랑스! 왜 그랬어! 너무해!”
쾅쾅쾅!
빠지직, 빠지직.
라온 의자에서 일어나 주먹으로 앉아있던 의자를 마구 내리쳤다. 단단한 백년목으로 만들어진 의자는 라온의 주먹이 내리쳐질 때마다 조각조각 부셔졌다.
렉스는 라온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서 다린에게 다가갔다.
“다린 님. 찾으실 수 있겠습니까?”
“으음, 약속을 했으니 찾아야지. 하지만 솔직히 아무 단서도 없으니 난처하군. 욕심을 부린 댓가가 크네.”
다린은 타이탄 슈트를 가지고픈 마음에 덜컥 약속까지하고 타이탄 슈트도 넘겨받았지만 지금은 약속을 어떻게 지킬지 방법이 없어 타이탄 슈트를 얻은 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다린은 렉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막을 지나는 상인들에게 아기가 넘겨졌다면 노예로 팔렸을텐데. 그 노엘 할아버지라는 작자가 그렇게 잔인하게 했을까?”
“사람 속은 모르잖습니까.”
“제롬 부족에 가서 다시 조사해봐야겠군.”
다린은 다시한번 융 사막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8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