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마왕 네기오스의 부활
첸틀러는 30년 전에 사랑하는 여인에게 복수는 하였으나, 아직 가네시아 왕국은 건재했다.
처음에 첸틀러는 슈미트 공작에게 몸을 기대며 가네시아 왕국의 멸망을 계획했다. 하지만 제대로 뜻을 펴기도 전에 라온으로 인해 제국은 급히 무너졌고, 첸틀러는 슈미트 공작과 함께 라트시아 왕국으로 넘어왔다.
첸틀러는 복수를 꿈꾸며 마탑을 세우고 암흑 마법사들을 모으며 다시 복수를 계획했다.
마탑에서 한참 광소를 터트린 첸틀러는 책장에 가서 두껍고 큰 책을 가져왔다. 그리고 손으로 먼지를 툴툴 털어냈다.
‘드디어 이걸 쓸 시간이 왔다.’
첸틀러는 책을 유리 상자 앞의 단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유리 상자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윌렌. 한 때는 제국의 황태자로 모든 것이 발 아래 있었지. 나도 슈미트 공작과 함께 당신의 힘을 빌리려 했는데….’
유리 상자 안의 남자는 바로 윌렌이었다.
17년 전, 라온으로 인해 슈미트 공작이 등을 돌리며 첸틀러의 독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갔던 윌렌.
그는 지난 17년간 첸틀러의 마법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살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왜냐하면 특수하게 만들어진 약물이 담긴 유리 상자 속에서 담겨져 단 한번도 눈을 떠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첸틀러는 마왕의 육체로 선택된 윌렌을 다시한번 쳐다보며 빙그레 미소짓고는 몸을 돌려 입구 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첸틀러와 100명에 달하는 자들이 이곳에 들어왔다.
첸틀러를 제외하고 100명의 인물들은 모두 여기가 처음이었다. 이들은 검은 색 후드를 눌러쓰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첸틀러처럼 암흑 마법사였다.
대륙을 숨어살던 이들은 17년 전에 첸틀러의 연락을 받고 이곳에 모여 마법 건설과 마왕 부활에 힘썼다.
첸틀러는 100명의 암흑 마법사들이 모두 들어오자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오랜 시간 기다렸다. 그동안 나를 믿고 잘 참아주었다. 드디어 오늘, 우리는 우리의 주인과 함께 할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
“네!”
100명의 암흑 마법사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자, 마법진 주위에 서라.”
첸틀러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들은 유리 상자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주위로 둘러섰다. 인원이 많아 두개의 원을 만들었다.
첸틀러는 원 안쪽에 있는 마법진 앞에 섰다. 그리고 상자 앞에 있는 책을 집어들었다. 주위에 둘러선 암흑 마법사들의 기운 때문인지 마법진에서 흐릿한 빛이 솟아나왔다.
“모두 마력을 집중해서 마법진에 쏟아부어라. 오늘까지 우리가 견뎌온 날들을 기억하며 온 기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첸틀러의 지시가 끝나자 100명에 달하는 마법사들은 두손을 마법진을 향해 뻗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기운이 손에서 쏟아져 나와 마법진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우우웅, 우웅, 웅웅.
마법진에서 진동소리와 함께 환한 빛이 솟아났다. 그리고 마법진에 새겨진 문자와 도형, 기호들이 마치 살아난 것처럼 공중에 떠올랐다.
첸틀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을 펼치고 생소한 마법어를 읽어가기 시작했다.
“파으, 라아. 트우 르마르…… (후략)”
한글자, 한글자 책에 쓰여진 글이 읽혀질 때마다 마법진의 진동은 더욱 심해졌다.
웅웅! 웅웅! 웅!
뿌드득, 뿌드득, 빠지직.
마법진 밑에 있는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바닥뿐만 아니라 마탑의 벽까지 금이 생겨났다.
몇몇 암흑 마법사들은 두려운지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내리려했다. 즉시 첸틀러의 외침이 튀어나왔다.
“집중하라! 정신을 놓치마라.”
당황하던 암흑 마법사들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마력을 집중했다.
모두 안정을 찾자, 첸틀러는 다시 책에 쓰여진 주문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쩌억, 쩌억 소리가 나면서 유리가 깨지기 시작했다.
번쩍!
엄청난 빛이 마법진에서 나왔다. 이 빛은 마탑에 생겨난 틈을 통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기사 대회 마지막날.
결승에 오른 멕스의 천막.
멕스의 약혼녀이자 크림슨 후작의 손녀인 라일리는 멕스를 찾아왔다.
“멕스? 오늘이 결승이지. 오늘 꼭 승리할꺼야.”
“고마워. 라일리. 하지만 상대는 나보다 강해. 나이는 어려보이는데 그가 펼치는 오러는 나보다 강해.”
멕스는 결승전 상대인 라일이 자신보다 강력한 오러를 발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 지는거야?”
“아니, 나도 상대한 바가 있어.”
“어떤거?”
“음, 상대는 전투 기술이 전무해. 그게 헛점이야. 그걸 노릴 작정이야.”
멕스는 지금까지 라일의 전투를 지켜보며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라일은 단 한번도 전투 기술을 쓴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몰라서 저러는걸까? 아니면 숨기려고?’
멕스는 아직 정확한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멕스는 자신이 라일을 이길 방법은 전투 기술뿐이라고 생각했다.
라일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하지만 결승까지 올랐는데 전투 기술도 모를까?”
약한 라일리지만, 그녀도 견습 기사로 4년을 훈련받은 상태였다.
“그래, 그건 모르지. 하지만 아직까지 상대는 단 한번도 기술을 쓴 적이 없어. 그러니 나로선 그걸 노려야 해.”
“그래도 다행이야. 타이탄만으로 승패를 가르니 말이야. 10인전에 오르기 전에는 멕스가 다칠까 항상 조마조마했어.”
개인전은 사고의 위험이 크기에 최종 10인의 승자를 가르는 시합은 타이탄전으로 결판을 내기로 한 상태였다.
“걱정마. 라일리. 결승만 끝나면 결혼이잖아.”
멕스는 라일리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껴안았다.
둘은 결승전이 끝나고 한달 후에 결혼식을 치루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사랑해. 멕스.”
“그래, 나도!”
둘은 서로 껴안으며 사랑을 확인했다.
이때, 밖에서 결승전 참가자는 밖으로 나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일리, 나 갔다올께.”
“그래, 멕스. 난 관중석에서 응원할께.”
라일리는 멕스에게 웃어보였다.
잠시 후, 라온 황제의 자리는 비어있으나, 5천명이 넘는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라일과 멕스가 결승을 치르기 위해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사회자는 많은 관중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지금부터 제2회 기사대회의 결승전을 개최하겠습니다. 상대는 라일과 멕스! 대회에서는 출신 성분을 따지지않기에 이름만 호명합니다. 제한 시간은 10분이며, 타이탄전으로 승자를 가립니다.”
시합의 공정을 기하기 위해 개인의 타이탄을 이용하지않고, 제국에서 제공하는 스틸크로 만들어진 타이탄을 탑승한 채로 전투를 벌였다.
먼저 라일이 자신이 보유한 타이탄 기간테스를 불러내 계약을 해지하고, 제국에서 마련한 타이탄과 새롭게 계약했다.
라일이 예선을 통과하고 타이탄전을 시작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아다만티움으로 된 타이탄을 꺼냈을 때에 모두들 어린 나이의 라일이 이런 타이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랬다. 그리고 대회를 주최하는 측에선 이 타이탄이 라온 황제가 직접 하사한 것이란 사실에 더욱 놀라워했다.
한편, 멕스는 멕베인 후작이 가지고 있던 타이탄을 물려받았다.
이 타이탄은 미스릴로 만들어진 타이탄으로 라온이 황제가 되면서 멕베인 후작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을 교체해 준 것이었다.
멕스도 자신의 타이탄을 꺼내 계약을 해지하고 제국에서 제공하는 대회용 타이탄과 계약했다.
두 사람이 대회용 타이탄에 탑승하고서 마주섰다.
라일과 멕스 두 사람은 서로 타이탄용으로 만들어진 검과 방패를 들었고, 두 사람 모두 마나를 끌어올려 검에 주입했다. 즉시 검 주위에 오러가 일어났다.
부우웅~ 웅웅, 웅.
라일의 검이 더 선명하고 일어나오는 오러의 크기도 컸다.
멕스가 전투 기술로 라일을 끝장내겠다고 생각할 때에 반대편에 서있는 라일은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름대로 대처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시도해보자. 한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많이 봤잖아.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라일은 이번 대회에서 많은 기술들이 오가는 것을 지켜봤다.
대회 참가자들이 전투를 하면서 기술을 구사할 때마다 라일은 그들이 펼치는 동작 하나하나를 주목하며 숨죽여 지켜보았다.
이 중에서 라일은 3가지를 자신의 것으로 결정하고 머리 속으로 끝임없이 연습했다. 첫번째는 패스트 이베이드, 두번째는 서머썰트 그리고 마지막은 실드 어택이었다.
이 세가지를 선정한 이유는 패스트 이베이드와 서머썰트는 자신의 빠른 몸으로 구사하기 쉬운 기술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어려운 검으로 펼치는 스킬이 아니기에 혼자서 눈으로 익히기 충분했다.
사람들은 결승까지 오른 그가 전투 기술을 쓰지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라일은 이 세가지를 마지막 결승에서 쓰기 위해 이제까지 단 한번도 펼치지않았다.
중요한 결승전인 오늘, 라일은 이 세가지 기술을 모두 펼칠 작정이었다.
사회자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이제 전투를 시작합니다. 시작!”
말이 끝나자마자 라일과 멕스가 움직였다.
멕스는 기선을 잡기 위해 빠르게 라일에게 달겨들었다.
“익스팬드 파워 소드!”
휘이잉!
멕스의 검이 강하게 라일을 향해 날라왔다.
“서머썰트!”
라일은 허리를 뒤로 젖히며 한바퀴 회전했다. 회전 시에 들고 있는 검끝을 바닥에 찍은 후 뒤로 크게 날았다. 그 바람에 멕스의 공격은 무산되었다.
‘헉! 저 놈이 전투 기술을!’
이제까지 기술은 전혀 못쓴다고 생각했던 멕스는 크게 당황했다.
라일은 주춤거리는 멕스를 바라보며 반격할까 했지만, 아직 멕스에겐 다른 전투 기술들이 남아 있기에 몸을 사리며 가만히 있었다.
멕스는 라일이 가만히 지켜보자 자신이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에 더 화가 났다. 다시 검을 부여잡고 덤벼들었다.
“라이트닝 리플렉션.”
멕스의 몸에 주시하고 있던 라온은 멕스가 순식간에 접근해오자 방패를 들며 뒤로 몸을 날렸다.
쾅!
방패를 든 손이 찌릿찌릿할 정도였다. 두번째 공격이 이어질 것을 염려한 라일이 패스트 이베이드 기술을 사용하며 옆으로 잽싸게 피했다.
첫번째 공격이 실패한 멕스가 두번째 공격을 펼쳤으나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이때, 옆으로 물러나있던 라일이 들고 있던 방패로 멕스의 어깨를 강하게 쳤다.
“실드 어택!”
쾅!
떼굴떼굴.
멕스는 옆으로 쓰러지며 두번이나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이런, 제기랄!’
멕스는 자신이 당했다는 생각에 크게 화가 났다. 급하게 일어서며 반격하려는데 눈 앞에 라일이 보이지않았다.
‘응? 어디?’
멕스는 급하게 라일을 찾으며 한바퀴 빙그르 돌았다. 그런데 라일은 보이지않았다.
‘혹시 위?’
머리를 급하게 드는 순간, 쿵! 하면서 라일이 탄 타이탄의 두 무릎이 멕스가 탄 타이탄의 두 어깨를 내리찍었다.
(주인! 피해가 너무 커서 움직일 수 없다. 즉시 복구해야 한다.)
“안돼!”
멕스가 크게 소리쳤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승리는 라일의 것이 되었다.
라일은 멕스가 쓰러지자 얼른 움직였다. 서머 썰트 기술을 쓰면서 검끝으로 땅을 찍고 공중으로 크게 날았다. 그리고 몸을 둥글게 말고 한번 회전했다. 그 사이에 일어난 멕스는 라일의 존재를 놓쳤고 공중에서 이걸 확인한 라일이 무릎으로 내리찍은 것이었다. 멕스는 준우승에 그쳤다.
승패가 갈리자 렉스 재상이 나와 두 사람을 치하하고 상금을 내렸다.
멕스의 약혼녀인 라일리는 멕스가 준우승에 그쳤지만 전혀 상관하지않았다. 멕스가 다치지않고 대회를 끝낸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감사했다.
마케니안 제국에 황태자 임명식과 이를 축하하는 일주일간의 축제 그리고 기사 대회가 모두 끝이 났다.
라일은 비젤 기사단의 단장을 맡은 다린의 밑으로 들어갔고, 멕스는 귀족 신분을 고려해 왕실 기사단으로 들어갔다.
축제가 끝나고 라온은 홀로 코이머스의 레어로 갔다. 이곳은 라온에게는 작업실이면서 비밀 장소와 같은 곳이었다.
라온은 이곳에서 새로운 타이탄을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아다만티움으로 된 타이탄 기간테스는 라일에게 주었고, 코이머스가 죽고 남긴 드래곤 본을 이용해 만든 타이탄 슈트 지그프리드는 플로는 다린에게 주었다.
렉스는 이미 라온이 드래곤 본으로 만든 타이탄 슈트 코이머스를 가지고 있었다. 라온이 가진 것은 미스릴로 만든 지그프리드뿐.
이것으로도 라온은 만족했지만, 복잡한 감정 속에서 라온은 일이라는 탈출구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타이탄 슈트가 아니라 대형 타이탄을 만들고자 했다. 이건 라온이 단 한번도 만든 적이 없는 것이었다.
타이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설이 필요했다. 하지만 설계만이라면 문제가 없었다. 라온은 커다란 종이 위에 타이탄 슈트를 응용한 타이탄을 그리고 있었다.
‘그냥 크기만 크면 다른 것과 차이가 없어. 이건 내가 만드는거야. 그 어떤 타이탄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강한 놈으로 만들테다.’
라온은 모든 건 잊어버리고 설계도 제작에 매달리기로 했다.
한편, 라트시아 제국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허가받지 못한 자는 절대 접근할 수 없는 마탑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탑은 그냥 무너지는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밑으로 꺼지고 있다고 해야 했다.
이 모습을 목격하게 된 사람들은 크게 소리치며 탑에서 멀어지기 위해 달렸다.
“마탑이 무너진다! 마탑이 무너진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탑은 서서히 땅 밑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검은 연기가 거기에서 솟아나왔다. 그리고 연기와 함께 무수한 죽은 자들이 올라왔다. 이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스켈레톤, 썩은 살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좀비들이었다.
또, 타이탄만큼 거대한 몸집의 본 와이번과 드래곤리치도 있었다. 숫자는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수만이 넘었다. 수십만, 수백만에 달할 정도였다.
갑작스런 사태는 왕성에 있는 슈미트 왕에게까지 전해졌다.
“뭐라고? 첸틀러를 불러라. 첸틀러를!”
슈미트 왕은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당황하며 첸틀러를 찾았다. 그런데 평소에 항상 보이던 그는 아무리 슈미트 왕이 찾아도 나타나질 않았다.
잠시 후, 왕성에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들이 몰려들었다.
마탑이 무너지며 비상이 걸려 성벽에 모든 병사들은 시커먼 안개처럼 언데드들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또, 하늘에는 회색빛 거대한 물체가 날개짓하며 왔다. 바로 본 와이번과 드래곤리치였다.
“타이탄 라이더들은 타이탄을 모두 꺼내라. 궁수들은 활을 준비하라! 마법사들도 마법을 준비하라!”
라트시아 왕국의 왕실 기사단 단장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슈미트 왕은 왕성 꼭대기에 경비 기사와 대신들과 함께 서서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에 말을 잃고 있었다. 그의 팔을 대신들이 좌우에서 붙잡고 끌어당겼다.
“왕이시여! 피하셔야 합니다. 포탈 마법진으로 얼른 이동하소서.”
“포탈 마법진? 어디로 가려고?”
“다른 왕국으로 가시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대신의 대답을 들은 슈미트 공작은 얼굴색이 싹 변했다.
“놔라! 안간다.”
“네? 전하!”
“이미 십수년 전에 갈메시아 제국을 버리고 나온 나다. 이제 70이 넘은 내가 어디로 간단 말이냐. 첸틀러를 불러라! 그가 와야 한다. 어서!”
“첸틀러 공작이 바로 저 마물들을 불러낸 장본인입니다. 암흑 마법사들과 함께요.”
“그, 그럴리 없다. 난 그의 생명의 은인이다. 첸틀러가 나를 배신할 리가 절대 없다.”
슈미트 왕은 첸틀러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이때, 하늘에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다.
당황한 슈미트 왕이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앗! 무, 무엇이냐?”
슈미트 왕을 경호하는 기사가 크게 소리쳤다.
“드래곤리치다!”
쿠오오오!
막을 틈도 없이 드래곤리치가 산성이 가득한 독안개를 뿜어냈다.
“크아아악!”
“으~아악!”
…….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슈미트 왕도 독안개에 휩싸여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왕의 옆에 있던 기사가 크게 소리치며 슈미트 왕을 부축했다.
“저, 전하~!”
다른 기사는 주위에 선 마법사와 궁수를 향해 소리쳤다.
“마법을 써라! 활을 쏴라”
“파이어볼!”
“라이트닝 볼트!”
피웅! 피웅, 피웅.
드래곤리치는 공격을 받자 다시한번 브레스를 쏟아냈다.
쿠오오오!
“으~아악!”
두번이나 이어진 독 안개로 마지막 생명의 힘을 끌어내 버티던 이들이 모두 쓰러져버렸다.
왕성 꼭대기에서 슈미트 왕이 죽는 그 순간.
첸틀러는 드래곤리치 한마리의 등에 올라타 공중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생명의 은인이었지만 슈미트, 당신은 욕심만 가득했어. 그동안 편히 살았으니 이제 죽어도 원은 없겠지. 너는 나의 이용물일뿐. 암흑 시대가 부활했다. 새로운 시대다.’
“하하하.”
첸틀러는 고개를 제치며 크게 웃었다.
푸드득, 푸드득.
한마리 드래곤리치가 첸틀러가 탄 드래곤리치에게로 날아왔다.
이 드래곤리치 등에도 충혈된 두 눈을 하고 머리에 두 개의 뿔이난 인물이 앉아있었다. 그는 첸틀러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첸틀러, 만족하냐?”
이 인물은 윌렌. 그러나 이미 마왕 네기오스가 그의 몸을 점령하고 있었다.
잠시 후, 왕성에 내려앉은 네기오스는 바닥에 널부러진 시체들을 밟으며 왕성의 창가로 걸어갔다. 첸틀러는 그의 뒤를 따랐다.
창 밑으로 보이는 라트시아 왕국 땅을 바라보며 네기오스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첸틀러에게 물었다.
“첸틀러!”
“네, 주인이시여. 말씀하소서.”
“내가 얼마만에 깨어난 것이냐?”
“3천년만입니다.”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구나. 지금 시대의 패권은 누가 쥐고 있느냐?”
“마케니안 제국입니다.”
“크크, 그래?”
“네. 지금 시대에는 타이탄이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타이탄 수십대로 드래곤도 제압할 정도입니다. 저 아래를 보십시오.”
첸틀러가 가리키는 곳에는 라트시아 왕국에 속해있던 타이탄 십여대가 고개를 늘어뜨리고 서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본 와이번이나 드래곤리치를 상대해서 전투를 벌이는 타이탄도 보였다.
타이탄이 힘겹게 버티고 있었지만, 백여마리의 본 와이번과 드래곤리치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쿠오오오!
화르르르.
드래곤리치 한마리가 불의 브레스를 내뿜었다. 타이탄 하나가 브레스에 직격을 맞아 녹아내리며 쓰러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네기오스가 첸틀러에게 다시 물었다.
“마케니안 제국에는 타이탄이 얼마나 있지?”
“1,000기입니다.”
“음, 맞구나. 타이탄이란 것은 인간이 들어가서 조종하겠지?”
“네, 맞습니다. 타이탄은 철광석 위에 마광석을 덧입혀 만들며, 그 안에는 미렉션이라는 장치가 있어서 인간의 마나를 증폭시켜서 그 힘으로 타이탄을 움직입니다. 타이탄을 타고 있는 자가 얼만큼 강한가에 따라 타이탄의 위력도 틀려집니다.”
첸틀러의 설명을 듣는 네기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마광석을 이용했다? 흐음, 인간이란 영악한 것들이다. 자신의 힘만이 아니라 도구를 이용하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마법의 영역까지 침법했지. 끝을 모르는 종족이야.”
“타이탄에는 스틸크 마광석으로 만든 것, 아다만티움 마광석으로 만든 것, 미스릴 마광석으로 만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첸틀러는 말을 하다가 중도에 멈췄다.
네기오스는 첸틀러의 이러한 반응에 고개를 돌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다음은 무엇이냐?”
“덩치는 저것에 비해 한참 작은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키 정도밖에는 안되지만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타이탄이 있습니다.”
“그래? 그건 누가 가지고 있느냐?”
“여긴 없습니다. 마케니안 제국의 라온 황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뺏으면 되겠군.”
네기오스는 미소를 띄우며 자신있게 말했다.
첸틀러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주인의 힘이시면 충분히 뺏을 수 있으십니다.”
“크하하하. 당연하다.”
거침없이 광소를 터트렸다.
한참 웃은 후에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대륙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 누군지 알아볼까? 이 시대에도 소드 마스터 정도는 있을테지? 첸틀러?”
“네, 소드 마스터의 수준을 넘어서는 자도 있습니다.”
라온이 그래든 소드 마스터라는 것은 대륙에 이미 널리 퍼진 사실이었다.
“넘어서다니?”
“마케니안 제국에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있습니다.”
“뭐? 그랜드 소드 마스터?”
부활한 마왕 네기오스는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껏 단 한번도 인간으로서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른 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아니, 들어본 적도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네기오스가 첸틀러에게 다시한번 확인 차 물었다.
“정말이냐? 정말 그랜드 소스 마스터냐?”
“네! 그렇습니다.”
“그 자의 이름은?”
“마케니안 제국의 라온 황제입니다.”
“하! 황제가? 아니, 황제가 말이냐?”
첸틀러의 대답에 네기오스는 더욱 놀라서 두번이나 반문하며 물었다.
검에만 빠져 미친듯 살아도 도달하지 못하는 수준이건만, 정작 주인공은 황제였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네기오스는 대답없이 가만히 있는 첸틀러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도대체 라온은 어떤 자냐?”
“그는 원래 마케니안 왕국의 왕자였습니다. 마케니안 왕국은 불과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대륙의 최약체국이었고, 땅도 가장 적었습니다. 라온은 16살에 소드 익스퍼트 초급에 오르며 대륙의 기대주 3인 중에 한명이었으며, 왕자의 신분으로 당시 대륙의 최강국이던 갈메시아 제국에 견습 기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설명을 들은 네기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어릴 때부터 자질이 있었구나.”
“하지만 갈메시아 제국에 왔을 때에 제가 암흑 마법을 걸어 백치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7서클의 암흑 마법을 익힌 상태라 마법에는 실수가 없었습니다.”
첸틀러는 혹시라도 자신의 실수였다는 말이 나올까 미리 7서클까지 익혔다고 얘기했다.
“백치를 만들었다구? 그런데 어찌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른단 말이냐?”
“네, 그것이 이상합니다. 4년 후에 마케니안 왕국에 돌아간 라온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냥 정상이 아니라, 과거보다 더욱 뛰어나게 변했습니다. 그는 소드 마스터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년 후에 그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올랐습니다. 아직까지 이것은 풀리지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설명을 들은 네기오스는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뭐? 불과 몇년 후? 그렇다면 라온이란 자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른지 얼마나 되었느냐?”
“16년입니다.”
첸틀러의 대답이 끝나자 네기오스는 네번째로 놀랐다.
처음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있다는 사실에, 두번째는 그 주인공이 황제라는 사실에, 세번째는 첸틀러의 암흑 마법으로 백치였다는 사실에, 그리고 마지막 네번째는 16년 전에 그랜드 소스 마스터에 올랐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미친!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유희 중인 드래곤이 자신의 능력을 그대로 다 나타낸 적이 있었던가?’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며 놀라서 말을 못하는 네기오스를 바라보며 첸틀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소드 익스퍼트 초급에서 그랜드 소드 마스터까지 불과 6년이었습니다.”
“하! 나라도 못할 그런 일을 인간이 해내다니. 도저히 들어도 믿을 수가 없구나.”
“주인이시여. 아직 한가지가 더 남았습니다.”
“뭐가 말이냐?”
“아직 놀라실 일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작지만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타이탄은 라온 황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직접? 그는 검으로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데, 직접 저런 것을 만들 정도로 머리도 뛰어나단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 라온 황제는 마법도 다루는 마검사입니다.”
첸틀러의 말이 끝나자 네기오스는 다섯번째로 놀랐다.
왠지 라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가장 최대 적은 드래곤이 아니라 라온이 될 거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