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댄스 - NBA DREAM
001화 chapter 0
NBA에 도전하는 신인들은 NBA 팀의 정식 계약을 받기까지 몇 번의 기회가 있다.
첫 번째, 매년 6월경에 열리는 NBA 드래프트.
여기서는 매년 상위 60명의 신인 선수를 각 팀에서 발굴하여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계락과 거래가 오고 가지만, 사실 여기는 쉽게 말해 ‘선택받은 신인’들만 입성할 수 있는 무대였다.
자신의 실력이 출중하다면 NBA 드래프트에서 뽑히는 걸 충분히 기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한다.
두 번째, 서머리그 계약.
드래프트가 끝난 후 대략 6월 말쯤 이루어지며, NBA 1~2년 차 신인, 혹은 NBA 산하 G리거, 유럽 등 각국 프로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서머리그 계약을 따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것이다.
숙식 제공에 경기를 뛸 수 있는 기회 정도만 제공하는, 그야말로 무보수에 가까운 계약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적어도 첫 번째에 언급했던 NBA 드래프트에 뽑힌, 선택받은 신인들과 겨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각 구단에 ‘너네가 뽑은 신인보다 내가 잘해!’라고 어필할 수 있는 무대.
하지만 그 신인들이 괜히 60위 안에 들었겠는가.
당차게 도전장을 내민 언드래프티(드래프트에서 뽑히지 못한 선수) 대부분이 서머리그에서 ‘선택받은 신인’에게 탈탈 털리고 아웃된다.
물론, 서머리그를 통과하게 되더라도 그다음 단계도 아직 많이 남았지만, 적어도 언드래프티 입장에선 서머리그에서 통과하는 것이 제1차 목표이기에 다음 단계는 일단 보류.
“흐음…….”
2017 댈러스 매버릭스의 올랜도 프로 서머리그의 감독을 맡게 된 마이크 웨이나는 서머리그 계약을 위한 워크아웃 결과가 썩 신통치 않다는 것에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서머리그에 큰 의미를 두진 않겠지만…… 그래도 칼라일이 한 말이니까 최대한 노력은 해 봐야겠고.’
마이크 웨이나는 릭 칼라일 댈러스 매버릭스 감독의 요청을 완수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평소에도 릭 칼라일 감독의 전술 능력은 내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 성적에 관한 압박을 받는 모양인지 평소보다 더 예민해졌다.
그래서 웨이나 감독도 그런 릭 칼라일 감독에게 꼬투리 잡히고 싶지 않았기에 열성적으로 임했다.
-뱀 아데바요의 프론트코트 파트너. 혹은 다양한 전술을 소화할 수 있는 BQ 좋은 포워드 자원 하나쯤은 올랜도에서 검증한 뒤, 라스베가스 서머리그로 넘겨주십시오.
“아니…… 뱀 아데바요랑 같이 짝지어 뛸 만한 선수이거나 다양한 전술이 가능한 BQ를 가진 신인이면 앞선 드래프트에서 뽑혔겠지요…… 하.”
갑자기 담배가 확 당겼지만, 그래도 운동하는 선수 앞에서 담배를 태우고 싶진 않았기에 마이크 웨이나 감독은 욕구를 꾹 참아 내고 2일째 워크아웃을 진행했다.
‘으음…… 볼 핸들링이 구려.’
‘시야가 엄청 좁네. 저래 가지고야…….’
‘슈팅이 아주 제멋대로 널뛰는구만.’
애써 좋은 점을 찾아보려 해도, 웨이나 감독 눈에는 자꾸 단점만 보였다.
‘가드나 포워드 중 괜찮은 녀석이 보이면 바로 계약할 수 있을 텐데…….’
대부분 바짝 얼어서 제대로 된 실력조차 내보이지 못하는 선수가 태반이었다.
별 소득 없이 이리저리 체육관을 돌던 웨이나 감독은 어떤 선수를 보더니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슉! 슉! 슉!
코치가 공을 던져 주면 잡자마자 곧바로 슈팅에 돌입하는 캐치 앤 샷으로 선수의 슛 능력을 체크하는 테스트.
그 테스트에 임하는 6-11(210cm)의 동양인 선수가 림에 몰두한 표정으로 연거푸 캐치 앤 샷을 성공시키니, 웨이나 감독은 뭔가 홀린 사람처럼 그 선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점점 그 거리가 멀어지면서 미스 샷도 하나둘 생겼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았다. 그만큼, 슈팅이 준수하다는 뜻.
3점 라인에서 한 발자국 들어가서 쏘는 롱 2도 준수하고, 딥 쓰리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스테판 커리나 카일 코버 등 3점에 일가견이 있는 가드를 제외하곤 대다수의 가드도 장착하기 어려운 딥 쓰리. 3점 라인에서 몇 발자국 뒤에서도 거침없이 쏘던 동양인 선수는 뭔가 아쉬운 모양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키에 롱 2, 3점, 심지어 딥 쓰리까지. 실제 경기에선 어떨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사이즈에 비해 상당히 희소성 높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건 확실해 보여.’
추가로 리바운드에 필요한 박스아웃, 낙구 지점 포착, 허슬 플레이도 나쁘지 않았다.
키나 체격에 비해 피지컬이 막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그걸 어느 정도 센스와 스킬로 커버한다는 느낌?
하지만 가장 놀란 점은…….
“혹시, 더 테스트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볼 핸들링과 리딩, 패스도 테스트받고 싶습니다.”
드래프트와는 달리 서머리그는 워낙 많은 선수가 문을 두드리니 모든 분야에서 테스트를 진행하진 않는다.
포인트가드, 슈팅가드, 스몰포워드, 파워포워드, 센터.
각 포지션의 덕목이라 할 수 있는 분야 위주로 체크하는 편인데, 저 선수는 빅맨 사이즈임에도 가드 분야의 능력도 테스트받길 원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간단하게 스크린을 활용한 픽 플레이, 그리고 드라이브 인. 마지막으로 킥아웃 패스 테스트를 진행하죠.”
코치가 스크린을 서는 역할. 동양인 선수가 메인 볼 핸들러.
간단한 수신호로 스크린 설 것을 요청한 동양인 선수.
그러자 그 사인에 맞춰 코치가 후다닥 달려가 선수 앞에 스크린을 선다.
투둥!
‘오, 리듬 좋고.’
엇박자 리듬으로 공을 두 번 튕기면서 가상의 수비수를 코치의 스크린에 걸리도록 했다.
볼 핸들러가 스크린을 가장 완벽하게 이용하기 위해선, 스크린을 선 선수와 스칠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는 게 베스트였는데, 그 선수는 마치 포인트가드라고 해도 믿을 법한 드리블 능력으로 스크린을 타고 골 밑을 향해 돌진했다.
‘뭐야, 빅맨 아니었어?!’
무게중심 낮고, 스틸 안 당하게 드리블을 몸 안에서 튀기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드리블하며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
퍽!
골 밑 마무리를 하려 돌파하던 선수 앞에 또 다른 코치 두 명이 상대 빅맨이 되어 선수에게 더블 팀을 들어간다.
순간 시야가 좁아졌기에 무리한 골 밑 마무리를 시도하다간 자칫 야투를 놓칠 수 있는 상황.
휙-.
하지만 그 선수는 더블 팀을 당했음에도 매우 지능적이었다. 시선은 골대를 향하게 하여 무리하게 골 밑 마무리를 할 것처럼 굴었는데, 막상 공은 우측 코너에서 대기하던 코치에게 정확히 배송되었다.
“휴.”
마지막까지 긴장한 기색은 전혀 없이, 그저 내 테스트에 집중하겠다는 차분한 마인드 셋까지 곁들여져 있으니…….
우당탕탕!!!
웨이나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전율을 느끼며 벌떡 일어났다. 그 반동으로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지만, 그건 웨이나 감독의 안중에도 없었다.
“크흠.”
‘일단 진정하자.’
웨이나 감독은 벌렁대는 가슴을 잠시 진정시키더니 동양인 선수의 테스트를 마친 코치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암스트롱 어시스턴트 코치님.”
“아, 웨이나 감독님.”
“방금 전에 테스트했던 동양인 선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호영 최라고 하네요. 편하게 초이라고 불러 달라고 해서 저나 코치들도 테스트 중에는 다 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에 대한 이력은 어떻습니까.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있던가요?”
데럴 암스트롱 어시스턴트 코치는 잠시 자료를 살펴보더니 뭔가를 발견했는지 그에게 넘겼다.
“NBA 글로벌 아카데미에서 아시아 최우수 선수, 아카데미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는군요. 거기에 10대부터 성인 한국 국가대표팀에 주전으로 발탁되어 뛸 만큼 기량이 좋은 모양입니다. 그를 눈여겨본 NCAA Division 1 대학이 꽤 많았는데, 아쉽게도 영어와 학력을 따라가야 하는 시스템 때문에 포기하고 G리그에서 1년을 뛰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래서 자신의 평가를 많이 깎아 먹었겠죠.”
“흐음.”
흔히 있는 스토리다.
10대부터 등장하는 농구 불모지 지역의 에이스.
그런 에이스들은 미국 대학 시스템을 잘 몰라서 공부도 겸해야 하는 NCAA 진출 자체를 포기하거나, 진출하더라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니까.
그렇게 진출을 포기하거나, 중도 포기를 하더라도 대학교 1학년, 혹은 그에 준하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없는 원 앤 던 규정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타 리그에서 1년 단기 계약을 하거나, G리그에서 1년을 보내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굉장히 화려한 이력이군요. 이 정도면 G리그에서 1년 뛰었다고 해도 이력을 보면 2라운드 말석이라도 노릴 법한데. 그런 그가 드래프트에 낙방한 이유라도 있던가요?”
“아무래도 다재다능하지만 그게 전부 어정쩡하다는 평가를 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보셔서 알겠지만 6-11인데 가진 툴은 포인트가드, 스몰포워드, 파워포워드가 전부 가능한 선수입니다. 이런 선수들은 자신만의 킬링 무브가 없으면 드래프트에서 낙방하기 마련이잖습니까.”
“흐음…… 킬링 무브가 정말 없던가요? 제가 보기엔…… 어정쩡한 수준이 아니던데.”
“저도 그게 참 의문입니다. 기본기가 착실하고 다양한 스킬과 차분한 마인드 셋을 고루 갖췄으니까요. 솔직히, 저는 워크아웃 내내 완숙한 베테랑 선수처럼 느껴졌습니다.”
호영 최. 약칭 초이.
웨이나 감독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데럴 암스트롱 코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오늘 내로, 초이의 경기 자료나 기록이 있다면 어떤 거라도 좋으니 최대한 조사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빠르게…… 판단할 필요가 있겠다 싶군요. 우리의 테스트 말고도 그를 평가할 만한 자료가 더 필요합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모든 전문가는 최호영이라는 선수를 ‘모든 재능에서 어정쩡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호영이 오늘 보여 준 다재다능함은 평범함의 범주를 뛰어넘은 희귀한 재능임에 틀림없었다.
그걸 직접 확인했기에, 웨이나 감독은 최대한 빠르게 저 선수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만 끝내면, 곧바로 서머리그 계약 제안을 할 생각이었다.
“웨이나 감독하고 암스트롱 코치, 오랜만에 보니까 새삼 더 반갑네.”
웨이나 감독이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른 채, 서머리그 워크아웃을 끝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호영은 이미 두 사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영문 모를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 * *
최호영.
NBA 최초 한국인 구단주.
댈러스 매버릭스를 인수하여 59년간 팀의 우승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과 사치세를 감수한 농구에 미친 자.
월드컵을 뛰어넘은 세계인의 농구 축제, ‘월드림’의 창시자.
챔피언스리그를 앞지른 ‘슈페리어리그’를 만든 농구의 화신.
댈러스 매버릭스 팬이나, 전 세계의 농구 팬에겐 그야말로 영원한 아이돌.
하지만 그렇게 성공했음에도 NBA에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
그런 호영은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쌓아 올린 업적과 일구어 낸 인생을 모두 바쳐서라도 도전하고 싶은 게 있습니까?]
“네…….”
숨이 멎기 직전, 호영은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모기만 한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했다.
세계 농구 역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손색없던 호영의 죽음이었기에, 전 세계 농구 팬이 느낀 슬픔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러고 눈을 떠 보니.
호영은 만 20살로 돌아와 있었다.
드래프트에 도전했으나 낙방. 갑작스러운 국가 대표 차출.
큰 의미가 있지도 않은 중국과의 친선전에서 홀로 48득점을 맹폭하며 중국에게 승리를 거두었으나 4쿼터 막바지 상대의 악의적인 반칙으로 얻은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파열.
지옥 같은 재활 끝에 유럽 리그에 진출했고, 터키의 르브론 제임스, 스페인의 야니스 안테토쿰보로 불린 불세출의 선수였지만, 아킬레스건은 선수 생활 내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결국 그의 인생에 NBA는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와 있었으니까.
부상 없이 건강한 몸. 말끔한 정신. 전생의 경험.
3박자가 갖춰진 지금의 농구 선수 최호영이라면, NBA의 문을 두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꼭, NBA에 가 보자.”
라스트 댄스 - NBA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