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화 chapter 3 (16)
“J.J…….”
그런 호영의 감정을 눈치챈 베테랑, J.J 바레아는 호영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후려쳤다.
“뭘 쫄고 그래?”
“아…… 그냥, 평생을 바라던 무대에 오른다고 생각하니까, 저도 모르게.”
“뭐, 그렇긴 하지. 특히 언드래프티는 팀에 합류한다 해도 NBA 무대 한번 못 밟고 G리그 지박령처럼 빌빌대다가 퇴출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나도 그런 걱정에 잠 못 든 적도 많고.”
J.J 바레아 역시 언드래프티 출신답게 호영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극복하는 방법도 역시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걱정해 봐야 아무도 해결 안 해 주더라. 결국 내 실력 믿고, 단 1분 만에 감독, 코치, 동료, 팬을 모조리 매료시킬 만큼 가진 능력을 200% 발휘하는 게 직빵이더라.”
J.J 바레아의 조언은 심플하지만 어떤 말보다 호영의 가슴을 울리기 충분했다.
기회가 한정적이라면, 그 한정적인 기회 속에서 가진 걸 모두 쏟아 내고 보는 이의 마음을 훔쳐라!
‘그래, 지금 긴장된다 어쩐다, 그런 여유로운 생각이나 할 때가 아냐.’
파앙!!!
호영은 오른손 손바닥으로 왼쪽 가슴팍, 심장 부근을 세차게 두드렸다. 긴장을 떨쳐 내기 위한 일종의 발악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가슴팍이 아려옴과 동시에 긴장은 어느 정도 날아갔다.
삑!
[데니스 슈로더의 손을 맞고 공이 나갑니다. 4쿼터 남은 시간은 2분 42초. 양 팀 선수 교체가 진행됩니다.]
[서머리그와 프리시즌에서 매우 핫한 경기력을 보인 호영 최가 드디어 NBA에 데뷔하는군요. 남은 시간이 3분도 채 되지 않아 아쉽겠지만, 짧은 시간 속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이번 교체로 인해 댈러스는 J.J 바레아 / 딜런 브룩스 / 도리안 핀니 스미스 / 호영 / 뱀 아데바요 라인업으로 변경되었다.
팀에서 최단신인 J.J 바레아가 포인트가드 자리에 위치했으니, 호영은 자연스럽게 뱀 아데바요의 빅맨 파트너로 투입되었다.
“헤이, 초이.”
경기가 재개되기 전, J.J 바레아는 호영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 수신호는 호영과의 2 대 2 게임을 하겠다는 뜻이었고, 호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휙!
사이드라인에서 날아온 패스를 받은 호영. 그와 동시에 호영을 향해 달려오는 J.J 바레아.
‘데니스 슈로더를 떨궈 내고.’
호영은 받은 공을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은 채, J.J 바레아가 달려오는 속도를 속으로 계산했다.
‘오케이!’
두 손으로 공을 잡았던 호영은 일순간, 공을 오른손으로만 쥔 채 그 손을 낮게 내렸다.
탁!
[호영 최의 핸즈오프! J.J 바레아, 공을 건네받곤 호영 최를 타고 넘어갑니다!!!]
공을 J.J 바레아에게 넘겨주자마자 스크린을 서서 J.J 바레아를 위한 벽이 된 호영.
그러자, J.J 바레아를 따라오던 데니스 슈로더는 호영의 스크린에 걸려 허둥지둥했다.
[핸즈오프 직후 스크린도 좋네요! 데니스 슈로더가 J.J 바레아를 놓칩니다! 매치업 상대가 바뀌었죠?!]
[맞습니다. J.J 바레아가 존 콜린스와, 호영 최가 데니스 슈로더랑 매치가 되었네요.]
J.J 바레아는 데니스 슈로더를 막아선 후, 한 템포 쉬고 골대로 파고드는 호영을 보며 피식 웃었다.
‘짜식, 타이밍도 잴 줄 아네?’
빅맨의 스크린을 활용한 공격에는 몇 가지 파생 공격이 있다.
그중에서 스크린을 선 빅맨이 골대로 파고드는 걸 ‘픽 앤 롤’이라고 하는데, 이건 가드가 패스를 줄 수 있는 타이밍에 맞춰 동선을 고려한 돌파가 이루어져야 했다.
남들이 보면 2 대 2 공격의 기본 중 하나이며,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은 기술이라 인식하기 쉽지만, 타이밍을 한쪽이라도 제대로 못 맞추면 상대에게 패스가 끊기는 게 다반사다.
호영은 J.J 바레아가 가장 선호하는 타이밍을 비디오 분석으로 알고 있었기에, 살짝 느린 템포로 파고든 것이다.
‘저렇게 멋지게 롤 해서 들어가면, 패스를 안 줄 수가 없지!’
훅!
J.J 바레아는 림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날아가도록 공을 높게 던졌다.
유려한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간 패스는 호영이 뛰어올라 잡기 딱 좋은 속도와 궤적이었기에, 호영은 별 무리 없이 힘차게 뛰어올랐다.
호영을 뒤따라오던 데니스 슈로더는 다급히 동료 센터, 드웨인 데드먼에게 막으라고 소리쳤지만, 그가 막기에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상황.
콰아앙!!!
[WOW!!! J.J 바레아 TO 호영 최!!! 멋진 앨리웁 플레이가 펼쳐졌습니다!!!]
[이야, 호영 최, 공격 조립이나 패스, 슛에 좀 더 능한 선수일 줄 알았는데, 제 생각을 바꿔야겠네요. 저런 픽 플레이도 할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20점 가까이 뒤처진 팀을 응원하는 홈 팬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지만, 정작 림에 매달렸다 내려온 호영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을 뻔한 기분이었다.
‘와씨…… 잘못했으면 앨리웁 패스 못 받았다.’
긴장을 어느 정도 덜어 냈다 해도, 몸이 굳어서 삐그덕대다 보니 가진 점프력의 80% 정도밖에 발휘되지 않았다.
정말 온 힘을 다해 뛰었는데, 약간 버거웠다고 해야 하나…… 아슬아슬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런 식으로 앨리웁을 마무리 지었기에 자칫 잘못했으면 되게 쪽팔린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뭐야~ 어제 햄버거라도 먹고 잤어?”
“그러게. 몸이 한참 무거운데? 완전 작대기 덩크인 줄~.”
뱀 아데바요와 딜런 브룩스의 깐죽거림에 호영은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햄버거도 안 먹었는데, 몸이 무겁다는 건 그만큼 NBA라는 무대가 주는 프레셔가 상당하단 뜻이었다.
‘그래도 첫 플레이에서 앨리웁 덩크로 첫 득점한 거니까, 멋지게 스타트 끊은 거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2점을 올리고 나니 그제야 몸도 좀 부드러워지고, 긴장도 많이 사라진 호영.
팬들의 함성에 호응해 주고, 짧긴 해도 남은 시간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냈다.
그 결과, 호영은 2분 42초간 4득점, 2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다른 슈퍼 루키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적이었지만, 호영에게는 아주 값진, 90년을 기다린 성적표였다.
삐이이익-!!!
호영의 감동적인 NBA 데뷔와는 별개로, 릭 칼라일 감독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처참한 개막전 패배.
경기가 끝난 후, 릭 칼라일 감독은 냉랭한 표정과 목소리로 짤막하게 라커룸 대화를 끝마치곤 선수단을 해산시켰다.
호영은 데뷔전을 가졌고, 짧지만 평생의 숙원을 이루었다는 것과는 별개로 댈러스 매버릭스가 졸전을 거듭한 끝에 패배했다는 것에 기분이 다소 꿀꿀해졌다.
“초이, 타코나 먹으러 갈래?”
“좋아. 그럼 뱀이랑 도리안, 해리슨도 괜찮은지 한번 물어나 보자.”
이런 기분에 집으로 가 봐야, 혼자서 오늘 경기 비디오 분석이나 하다가 또 침울해질 게 뻔했다.
차라리 딜런이 제안한 타코라도 먹으며 기분 전환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그거, 나도 같이 갈 수 있을까?”
그렇게 딜런과 타코나 먹으러 가자는 계획을 짜는 중에, 한 선수가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나도 타코 좋아하거든. 내가 한턱 쏠 테니까 같이 갈래?”
딜런과 호영 사이에서 편안한 미소를 짓는 남자. 그 남자는 바로 오늘 경기에서 12점 5리바운드로 명성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인 덕 노비츠키였다.
* * *
“…….”
평소와는 다른 조합에 댈러스 스터디 멤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베테랑과 신인 사이에서 윤활유처럼 분위기를 잡아 주는 해리슨 반즈가 이번 미팅에서는 빠졌다 보니 더더욱 가교 역할을 할 만한 선수가 없었다.
‘아마, 덕이 해리슨에게 부탁한 거겠지.’
스터디에 참석한 이후, 소극적이던 모습을 조금씩 탈피하며 가교 역할에 적극적이던 해리슨 반즈라면, 오늘같이 분위기가 축 처진 날, 본인이 먼저 신인 선수들을 모아서 저녁이라도 한 끼 사 줬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슨 반즈가 별 이유도 없이 ‘오늘은 먼저 갈게. 좋은 시간 보내.’라고 하면서 집에 간 걸 보면, 분명 신인들과 갈등도 없었지만 접점도 거의 없던 덕 노비츠키가 개인적으로 부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덕, 어떤 고기를 좋아하세요? 여기가 좋은 게, 여러 재료를 원하는 대로 조합해서 시킬 수 있거든요.”
댈러스에서만 19시즌을 뛴 덕 노비츠키인데, 이 가게를 모를 리가 없다.
오히려 햇병아리 신인보다 훨씬 많이 가게를 방문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호영은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 약간 경직된 덕 노비츠키의 모습을 보곤 본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 그러면 칠면조 고기도 있나?”
“당연하죠. 저도 칠면조 고기로 먹어 봤는데, 상당히 맛있더라고요.”
호영이 먼저 덕 노비츠키와 시시콜콜한 ‘타코 속에 무슨 재료를 넣을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니, 다른 선수들도 슬쩍 눈치를 보더니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다섯 사람의 타코가 나올 즘엔, 이미 덕 노비츠키의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분위기와 유머러스함 덕분에 어색한 기류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덕 노비츠키는 대화의 물꼬를 터 준 호영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호영과 눈이 맞았을 때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호영도 싱긋 웃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줬다.
“아…… 어느 경기든 패배는 참 쓰라린 법이지. 거기에, 홈에서 열린 개막전인데. 팬들의 얼굴을 볼 용기도 없고, 이럴 때는 SNS도 들어가기 힘들어지거든.”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 점점 오늘 경기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덕 노비츠키는 오늘 경기의 패배를 잠시 곱씹더니, 방금 전까지 보여 줬던 유들유들한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농구에 대해서만큼은 진지하고, 열성적이며, 패배를 마주하면서 분노할 줄 아는 선수. 그게 바로 덕 노비츠키였으니까.
“솔직히, 오늘 경기는 개인적으로 넷한테 정말 미안해. 네 사람을 대신해서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말았으니.”
“아니에요, 덕. 저뿐만 아니라 초이, 딜런, 도리안까지, 누구도 덕과 오늘 경기를 뛴 선수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주어진 전술에서 최선을 다해 뛴 것뿐이잖아요.”
뱀 아데바요의 의젓한 말에 덕 노비츠키는 ‘그래도 미안한 건 어쩔 수가 없네.’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네 사람 모두, 분명 불만이 있을 거야. 내가 보기에도 우리 팀에서 넷만큼 훈련에 매진하고, 빠르게 기량이 성장하는 선수가 없거든. 거기에, 프리시즌에서도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정규시즌 개막전부터 외면당했다고 하면, 나 같아도 열 받을 것 같거든.”
“여기서 열 안 받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을 탓하고 싶진 않아요. 덕만 해도 루키 시즌에 주전이던 개리 트렌트보다 낫다는 걸 스스로 입증했기에 2시즌부터는 붙박이 주전으로 뛴 거잖아요. 저도, 여기 있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예요. 아직 덜 입증되었고, 감독님의 눈에 차지 않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정진하는 수밖에요.”
호영은 선수들을 대표하여 ‘교과서적인’ 옳은 답을 내놓았다.
이런 대답이 덕 노비츠키 정도 되는 노장에게 먹힌다는 생각은 1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뻔히 보이는 정석적인 대답을 대표해서 한 이유는 다른 선수들에게 허튼 말을 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이기도 했다.
여기서 만약 불만을 내비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호영은 덕 노비츠키가 인격자고, 농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대단한 레전드라 믿고 있었지만, 그가 댈러스의 프런트와 엄청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상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섣부른 언행은 금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노력해 주면, 정말 고마울 뿐이지. 하지만…… 다들 어느 정도 느꼈을 거야. 지금 댈러스가 정상은 아니라는 걸. 뭔가 어수선하고, 혼잡하고 그렇잖아?”
“…….”
신인 4인방은 대답 대신 무언으로 동의를 표했다.
덕 노비츠키 역시 섣부른 말을 꺼내지 않겠다는 네 사람의 의중을 충분히 파악했기에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말하기 힘들지만…… 딱 5~10경기 정도만 날 믿고 기다려 주면 좋겠어. 몇몇 선수들은 넷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기도 하지만, 그래도 믿고 기다려 주면 넷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움을 줄게. 훈련이라든가, 댈러스에서 사는 데 어려운 게 있다거나 그런 것들.”
덕 노비츠키의 이야기를 들은 호영은 지금까지 느꼈던 어떤 이질감에 대해서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5~10경기를 언급한 걸 보면, 뭔가 수뇌부 사이에서 딜이 오간 것 같네.’
라스트 댄스 - NBA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