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화 chapter 4 (7)
데릭 하퍼 해설의 말대로, 댈러스는 호영이 공격에서 진두지휘를 하면서 팀 내 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J.J 바레아나 데빈 해리스도 분명 한 팀의 공격을 지휘할 기량은 충분했지만, 현재 팀 컬러가 점점 템포 빠른 농구가 되면서 노쇠화로 발이 느려진 둘에게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릭 칼라일 감독과 이고르 코코스코프 감독, 두 감독은 별말 없이 서로 악수를 하고 자신의 벤치로 돌아왔다.
크게 감정적으로 요동칠 것도 없었기에, 이고르 감독은 평소와 동일하게 오늘 경기에서 ‘이기겠다’는 마인드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초이, 오늘 경기는, 이전 전술 회의에서 이야기했듯 빠른 템포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상대의 수비가 단단하겠지만, 그 수비에 균열을 내는 가장 큰 포인트는 바로 빠른 템포 운용이니까, 이 점에 포커스를 맞춰 주길 바란다.”
“네. 공격에서는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대신, 적어도 3포제션마다 한 번꼴로는 딜런이나 해리스에게 공격 전개를 맡기고, 제가 스크린을 서면서 픽 앤 팝이나, 픽 앤 슬립을 걸어서 공격 패턴이 다양하다는 걸 인식시키고 싶은데, 그건 괜찮을까요?”
“좋아. 대신에, 공격이 안 풀린다 싶으면 바로 공을 달라고 어필하고. 공격이 다양해서 상대에게 한쪽 수비를 강요할 수 없게 만드는 건 좋지만, 그로 인해 템포가 늦어지거나 하면 오히려 우리 손해니까.”
“알겠습니다.”
그저 지시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감독과 조율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한 팀의 주축 포인트가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외에, 세부적인 공격 조율은 초이, 자네의 판단에 맡기겠어. 물론, 타임아웃이나 쿼터 종료 시에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는 확인 후에 말해 줄 테니, 너무 걱정 말고.”
“네, 이고르.”
두 사람은 서로를 보더니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이야기 끝났다는 제스처였다.
“수비에서는 해리슨, 자네가 중심이 되어서 내/외곽 전방위로 신경 써 줘야 해. 대신, 타이릭 에반스가 만만찮은 선수인 만큼, 자네의 마크맨을 최우선으로 막는다는 스텐스는 가져가고.”
“네.”
“외곽 수비는 딜런이 중심으로, 골 밑 수비는 뱀이 중심으로 수행해 줘야 해. 그리고, 도리안, 자네는 미드레인지 존에 들어오려는 선수를 최대한 막아 내는 것에 집중해. 마이크 콘리, 타이릭 에반스, 마크 가솔. 셋은 미드레인지에서 점퍼도 공격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선수들이니, 거기서 많은 실점이 나선 안 돼. 마지막으로 초이, 자네는 아이반 랍을 막는 것과 스위치 디펜스만 집중하고.”
호영은 공격에서 대체적으로 에너지를 쓰다 보니, 수비에서는 팀 수비, 혹은 공격력이 그리 많지 않은 빅맨을 상대로 수비하는 역할이었다. 그렇게 모든 지시가 끝나고, 양 팀 선수들은 코트 위로 향했다.
“…….”
점프볼은 뱀 아데바요와 마크 가솔의 싸움.
마크 가솔이 6-11(211cm), 뱀 아데바요가 6-9(208cm)이지만, 점프력이나 윙스팬에서는 뱀 아데바요가 압도적이었다.
탁!
[점프볼은 댈러스 매버릭스가 가져가는군요!]
[뱀 아데바요의 탄력이나 윙스팬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죠. 대신, 골 밑 싸움에서는 아무래도 마크 가솔이 더 유리해 보이긴 합니다. 근력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마크 가솔이 더욱 우위일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죠. 이걸 뱀 아데바요가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중요하겠습니다.]
퉁- 퉁-.
해설이 잠시 마크 가솔과 뱀 아데바요의 골 밑 싸움에 대해서 논할 때, 호영은 자신에게 넘어온 공을 가볍게 튀기며 멤피스 벤치 쪽을 슬쩍 바라봤다.
‘좀 열 받긴 하네.’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릭 칼라일 감독에 대해 꽤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릭 칼라일 감독을 ‘상대 팀’ 감독으로 마주하니, 자신도 모르게 쌓였던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자리보전하려고 싸우는 데 매진하지 말고, 같이 잘해 보자고 으쌰으쌰했으면 좀 좋아?’
퉁퉁-.
‘안 되겠다. 오늘은 진짜, 저 사람 앞에서 제대로 날뛰어야겠다.’
호영은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빠르게 상대편 코트로 넘어갔다.
[멤피스는 호영 최를 막기 위해 아이반 랍을 그에게 수비로 붙였군요?]
[글쎄요. 아이반 랍이 사이즈도 괜찮고 피지컬도 좋은 선수인 건 맞습니다만, 대인 마크로 호영 최를 제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좀, 호영 최를 낮게 보는 느낌도 있는 것 같고요.]
릭 칼라일 감독의 진짜 의중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매치업 상대가 아이반 랍이라는 점에서 호영은 피식 웃더니 그의 앞에서 짧게 오른발 스텝을 내디뎠다.
끼긱-!
‘오호?’
오른발 잽스탭 한 번에 움찔거리면서 뒤로 물러날 채비를 하는 아이반 랍.
호영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움찔하면서 스턴에 걸린 듯한 아이반 랍을 내버려 두고, 호영은 도리어 그보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유려한 폼으로 3점을 던졌다.
[호영 최, 딥 쓰리!!!]
철썩!
[BAAAAANG!!!]
[림도 스치지 않은 깔끔한 3점! 아이반 랍을 잽스탭 한 번으로 떨쳐 내곤 노마크 스텝백 3점을 성공시킵니다!]
호영은 림을 통과한 공이 크게 튀어 관중석으로 넘어간 걸 확인했다.
이렇게 되면 공을 가져오고 다시 경기를 시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니, 호영은 유유히 멤피스 벤치 쪽으로 다가가 릭 칼라일 감독을 슬쩍 응시했다.
척-.
대놓고 그에게 엄지를 세우며 상큼한 미소를 날리고 백코트하는 호영.
릭 칼라일 감독은 호영의 세레머니를 보더니 아이반 랍에게 몇 가지 지시를 추가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호영은 아이반 랍 한 명으로는 날 막을 수 없다는 걸 몇 번이고 증명했다.
[호영 최! 아이반 랍의 등 뒤를 향해 패스를…….]
호영은 아이반 랍 뒤에 자신의 아군이 달려오는 것을 본 모양인지, 아이반 랍의 어깨 너머로 패스를 하기 위해 공을 휙 던지려 했다.
아이반 랍은 순간 움찔하며 자신의 등 뒤에 누가 있나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아이반!!! 초이를 막아!!!”
마크 가솔은 노련한 올스타 빅맨답게 그런 호영의 페이크에 속지 않고, 아이반 랍에게 호통쳤다.
하나, 고개를 돌린 순간, 이미 호영의 턴이었다.
슉-.
[와우!!! 패스 페이크로 아이반 랍을 속인 호영 최! 거의 노마크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골밑슛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완전 농락입니다. 아이반 랍을 농락하는 호영 최! 같은 신인 선수인데, 클래스 차이가 확실히 나네요!]
[오늘 아이반 랍도 1쿼터 8분을 쭉 뛰면서 자유투 1개 포함 3득점 2리바운드 1스틸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같은 시간 동안 무려 11득점 2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한 호영 최 앞에서는 너무 빛이 바래 보입니다! 제어가 안 되네요! 이번 득점으로 댈러스 매버릭스, 1쿼터 만에 30점 득점 고지에 오릅니다! 점수는 31 대 17!]
삐이익-!
[작전타임! 멤피스 그리즐리스!]
댈러스의 기세는 하늘을 뚫을 것 같았다.
그에 비해, 멤피스는 마이크 콘리, 마크 가솔이 중심이 되어 선수들에게 ‘이제 1쿼터다.’라든가, ‘괜찮다.’는 말을 해 주면서 다독였지만 분위기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이반, 기죽을 것 없다. 호영 최는, 분명 좋은 플레이어야, 그 정도면 충분히 기대만큼 제어했어.”
릭 칼라일 감독이 아이반 랍을 호영에게 붙인 이유는 호영을 무시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현재 멤피스 멤버 중에서 호영을 막을 만한 선수가 마땅치 않았기에, 사이즈와 기동성이 되면서 주전 선수보다 체력적으로 훨씬 나은 아이반 랍을 붙여서 호영을 괴롭히려 한 것이다.
‘어차피 줄 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문제는…… 호영 최에서 파생되는 패스를 받고 슛을 쏘는 선수들의 슛 감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호영이 아무리 패스를 뿌려도, 패스를 받은 팀원이 퉤! 뱉어 내 버리면 호영도 자신이 슛을 마무리 지으려고 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멤피스의 다른 선수들이 호영을 제외한 댈러스 선수들을 제어하지 못하면서 점수 차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현재 패스를 뿌리는 호영 최를 완벽히 틀어막을 선수는 없다. 그런 데다 호영 최에게 줄 건 주면서 다른 선수를 막자는 계획도 실패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릭 칼라일 감독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새롭게 바뀐 지시를 선수에게 전달했다.
“마이크, 타이릭, 챈들러, 자마이칼, 데본타. 이렇게 나간다. 자마이칼, 자네가 호영 최를 막는 거야. 수비에선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호영 최를 봉인한다는 생각으로. 댈러스의 패턴 상, 1쿼터 2분여를 남기고 교체하기 때문에, 아직 2분 정도는 더 뛸 텐데, 그동안 호영 최의 손을 차갑게 만드는 거야.”
“좋아요.”
릭 칼라일 감독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 수비 작전을 더 지시했다.
“마지막으로. 호영 최가 픽 플레이에서 핸들러 역할을 할 때는, 스크리너는 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에게 블리츠를 들어간다. 댈러스에서 현재 호영 최 말고는 딜런 브룩스, 해리슨 반즈 정도가 볼 핸들링이 가능한데, 그들은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하지. 앞서 그가 스크리너로 많은 공격 패턴을 보여 줬다지만, 결국 댈러스에서 가장 날카로운 공격 패턴은 호영 최가 공을 쥐고 있을 때다.”
멤피스 선수들도 확실하게 체감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피지컬하게 압박하고, 그에게서 패스가 시작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막는다. 그를 막으면 댈러스 공격도 굉장히 뻑뻑해지고, 템포도 늦춰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자, 가자! 이제 경기 시작했으니 14점 차이는 별거 아니다!”
릭 칼라일 감독은 호영에게서 시작되는 패스를 원천 차단하는 수비 전술로 전면 교체했다.
점수 차이가 조금 나는 상황에서도 먼저 박수를 치고 큰 소리를 내는 릭 칼라일 감독을 보며, 선수들도 어디 한번 해보자며 함성을 내지르곤 코트로 나갔다.
‘흠.’
호영은 저쪽에서 대충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눈치챘다.
그런 눈치도 없으면 포인트가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호영은 자신이 어떤 플레이를 했을 때 얼마나 통했는지를 계산하고, 상대가 어떻게 자신을 막을 것인지 늘 염두에 두며 플레이했다.
‘피지컬하게 나를 막으려고 하겠지. 그러면 뭐, 그에 맞게 뚫으면 되는 거고.’
슬슬 경기가 재미있어지려 한다.
호영은 교체되어서 나온 막시 클리바에게 독일어를 구사하며 친근하게 이야기를 붙였다.
“헤이, 막시.”
“오~ 초이.”
“우리, 좀 재미난 공격 한번 해 보지 않을래요?”
“재미난 공격?”
호영은 막시에게만 들리도록 뭔가 속닥거렸고, 막시는 그거 재미있겠다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라스트 댄스 - NBA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