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Chapter 40 (4)
그런데 지금, 르브론 제임스는 과거의 ‘더러웠던’ 기분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것을 애써 떨치기 위해 평소보다 더 기합을 넣고 팀 동료들을 독려했다.
삐익-!!!
“파울! 덕 노비츠키!!!”
[데릭 로즈에게 일격을 맞은 뒤, 새크라멘토 킹스의 킹, 르브론 제임스가 직접 반격의 검을 뽑았습니다. 하지만 덕 노비츠키의 파울로 인해 르브론 제임스는 자유투 라인으로 이동합니다.]
[오늘 경기에서 자유투 4/6을 기록 중인 르브론 제임스인데, 이번 두 개의 자유투는 어떨지요.]
르브론 제임스의 자유투는 뭔가 상대 팀을 기대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덕 노비츠키는, 자신이 아직 0파울이라는 걸 적극 활용하기 위해 분위기를 다시 침체시키려 하는 르브론 제임스를 상대로 아낌없이 파울을 한 개 내준 셈이다.
“후!”
첫 번째 자유투. 르브론 제임스는 크게 심호흡하더니 신중하게 자유투를 던졌다.
핑그르르르-.
사뿐하게 림 위로 올라간 공은 림을 몇 바퀴 돌더니…….
통- 통통통…….
[MISS!!!! 르브론 제임스, 첫 번째 자유투를 놓칩니다!!!!]
[물론, 아직 18점 차이인지라 자유투 하나를 흘리는 게 큰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댈러스 매버릭스가 여기서 맹렬하게 추격할 경우, 저 자유투 하나가 정말 몇 번이고 떠오를 상황이 올 수도 있거든요! 점수는, 얻을 수 있을 때 확실하게 얻어야 합니다!]
와아아아아아-!!!!
댈러스 매버릭스의 홈 팬들의 괴성. 투명한 백보드 뒤로 보이는 정신 산만한 움직임들.
르브론 제임스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짜증을 유발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2구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쏘아 올렸다.
슉-.
[2구는 성공시키는 르브론 제임스, 점수는 70 대 89! 19점 차이입니다!]
첫 구에서 너무 신중하게 접근한 나머지 제대로 된 릴리즈 포인트를 잡지 못했던 르브론 제임스. 그래도 이런 경험이 워낙 많다 보니 정신을 집중한 채 2구는 성공시켰다.
퉁- 퉁-.
댈러스 매버릭스의 4쿼터 두 번째 공격. 호영은 천천히 공을 쥐고 지공 사인을 보낸 뒤, 하프라인을 넘었다.
훅!
호영은 오늘 컨디션이 상당히 괜찮아 보이는 덕 노비츠키에게 높은 패스를 띄웠다.
미드레인지 존에서 네마냐 비엘리챠를 등진 채, 공을 받은 덕 노비츠키는 곁눈질로 코트를 한번 싹- 둘러보았다.
본인에게 오는 선수는 없는 상황.
사실, 지금 라인업에서 가장 ‘약체’가 덕 노비츠키였기 때문에 네마냐 비엘리챠면 1 on 1으로 충분히 수비를 해낼 것이라 믿고 있는 셈이다.
‘아니…… 혹시 몰라.’
하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던 르브론 제임스는 지미 버틀러를 막는 와중에도 덕 노비츠키 쪽으로 슬쩍 시선을 두며, 반보 정도 덕 노비츠키 쪽으로 옮겼다.
어쨌든 르브론 제임스 이외에는 덕 노비츠키가 뭔가 해낼 거라고 믿는 사람이 별로 없는 상황.
“후…….”
덕 노비츠키는 속 안에 모든 숨을 내뱉은 뒤, 공을 두 손으로 잡았다. 드리블을 치던 와중 두 손으로 공을 잡으면 다시 드리블을 칠 수 없는 상황. 즉, 덕 노비츠키는 여기서 네마냐 비엘리챠와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툭.
등으로 한번 네마냐 비엘리차를 밀어 본다. 같은 유러피안이긴 하지만, 네마냐 비엘리챠가 덕 노비츠키에 비해 몇 살이나 어리고, 생생하고, 피지컬이 살아 있는 상황. 그나마 신장의 우위는 있지만 속도도, 힘도, 민첩성도 이젠 덕 노비츠키가 열세였다.
끼긱-.
농구화 밑창이 코트에 끌리는 소리가 나면서, 덕 노비츠키는 포스트 업 상황에서 스핀 무브로 네마냐 비엘리챠와 마주할 생각으로 왼쪽 어깨를 밀어 넣으며 반시계 방향으로 슬쩍 상체를 틀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구나.’
내심, 유러피안 레전드인 덕 노비츠키를 존경하던 네마냐 비엘리챠는 너무도 둔중해진 그의 무브먼트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과거에는 리얼 7풋으로 스몰포워드까지 소화하며, 코스트 투 코스트…… 즉 우리 팀 진영에서 상대 진영까지 혼자 맹렬히 돌격해서 속공까지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엄청난 속도와 피지컬의 사나이였던 덕 노비츠키.
하지만 이제는 코트 위에서 제자리 하나 차지하기도 힘들 정도로 늙어 버렸으니. 우상의 말년을 보는 네마냐 비엘리챠의 속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부의 세계는 냉정해야 하는 법. 그런 것에 안쓰러워하는 것 때문에 제대로 수비를 하지 않으면 프로로서 실격이고, 상대를 욕보이는 것이다.
[네마냐 비엘리챠, 오늘 좋은 컨디션을 반증하듯 상당히 경쾌한 스텝으로 덕 노비츠키를 따라붙습니다!!! 덕 노비츠키, 저기에서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마크 폴로윌 캐스터도 내심 안쓰러운 마음에 목소리가 높아지던 와중, 그는 자신의 멘트롤 모두 끝내지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덕 노비츠키’라는 레전드를 바라보았다.
왼쪽 어깨를 밀어 넣던 상체를 홱- 틀어 반대 방향으로 턴. 공을 잡은 뒤 아직 한 번의 스텝도 떼지 않고 피벗(중심 발을 고정한 채, 한쪽 발만으로 스텝을 밟는 것. 이럴 경우 스텝 카운트가 올라가지 않음.)으로만 네마냐 비엘리챠를 상대했던 덕 노비츠키. 그래서 상체를 반대 방향인 시계 방향으로 틀며, 중심 발이던 왼발이 떨어지는 건 문제 될 게 없다.
즉, 상체의 움직임과 피벗 드리블만으로 네마냐 비엘리챠를 속여 버리고, 본인은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림을 마주 보게 되었다는 뜻.
제아무리 둔중해지고, 기력이 쇠한 노장이라 해도, 전설은 전설.
피지컬이 여의치 않으면, 자신이 갈고닦은 십수 년의 잔기술로도 공격에서만큼은 충분한 몫을 해낼 수 있는 게 덕 노비츠키의 품격이었다.
“크읏!!!”
네마냐 비엘리챠가 커버할 수 없어, 노마크 상태가 된 상황.
르브론 제임스는 피벗을 밟는 덕 노비츠키를 볼 때부터 이상하단 기분이 들어 그쪽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 기분이 딱 맞아떨어지자 최대한 빠르게 달려들었다.
탓!
하지만 르브론 제임스가 앞으로 달려드는 와중에도 덕 노비츠키는 살짝 입을 벌린 채, 맛난 먹잇감을 보는 맹수처럼 입맛을 다시곤 ‘뒤로’ 눕듯이 뛰어올랐다.
전성기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낮아진 점프력에 뭔가 짠-한 느낌이었지만, 그 정도 점프로도 덕 노비츠키에겐 충분했다.
후웅-.
한쪽 무릎을 들어 올리고, 뒤로 눕듯이 뛰어 초고각으로 쏘아 올리는 그의 전매특허, 학다리 페이드어웨이.
점프력이 낮아져서 블락 위험이 높아졌다? 덕 노비츠키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미칠 듯한 슈팅 감각과 손끝에 새겨진 경험치만 있다면, 낮아진 점프력만큼 더 높게 포물선을 그리며 공을 쏘면 되는 것이니까.
철썩-!!!!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엔 림에 마이크가 달려 있어서, 림을 통과할 때 공과 림, 백보드에서 나는 소리가 굉장히 찰지게 울려 퍼진다.
림에 맞거나, 백보드에 맞을 땐 깜짝 놀랄 정도로 쿵! 하는 소리가 나고, 이런 식으로 림을 스치지도 않은 채 공과 그물만이 맞닿으며 빨려 들어갈 때는 시원한 파도가 몰려와 바위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를 낸다.
DIRK!!!!! DIRK!!!!!
2만여 관중 중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철썩! 소리가 경기장을 큼지막하게 울리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치켜들었다.
그 때문에, 관중석 뒤에서 찍던 카메라들은 관중이 일제히 일어나는 것 때문에 화면의 절반이 가려질 정도였다.
“그거지! 그거야!!!”
벤치에 앉지도 못한 채, 서서 경기를 지켜보던 댈러스 선수들은 자신의 일처럼 환호하며 기뻐했다.
특히, 같이 늙어 가는 처지이자, 영광의 순간을 같이 나눴던 J.J. 바레아는 감격스러운 나머지 코끝이 찡해지기까지 했다.
“초이, 초이 어딨어! 초이!”
덕 노비츠키는 자신을 믿고 어시스트를 내준 호영을 찾더니, 그를 향해 달려갔다.
덕 노비츠키가 달려오는 모습에, 호영도 흥을 내며 맞대응하듯 덕 노비츠키에게 달려갔다.
“허업!”
두 선수는 동시에 뛰더니 서로 몸을 맞대는 세레모니를 했다. 그 이후, 세 명의 댈러스 동료들이 덕 노비츠키에게 달려왔다.
삐이익-!!!!!!
[작전타임! 새크라멘토 킹스!!! 점수는, 72 대 89! 17점 차이!!! 4쿼터 시작 1분 20초! 아직, 점수 차이는 많이 납니다만, 댈러스 매버릭스의 추격이 매우 매섭습니다!! 이 상황을 새크라멘토는 한번 끊을 생각인 듯 작전타임을 요청했습니다!]
[작전타임이 참 적절할 때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데이브 예거 감독 입장에서는 난처할 수 있는 게, 댈러스 매버릭스가 3쿼터까지는 협업을 통한 공격 창출에 집중했는데, 4쿼터 시작하자마자 무슨 딴 팀이 된 듯, 각자의 능력으로 수비를 깨부수는 공격을 보여 주고 있으니 당황할 법도 합니다!]
데릭 하퍼 해설의 말처럼, 데이브 예거 감독은 선수들을 벤치로 복귀시킨 상황에서도 10초 정도 말없이 혼자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선수들도 그런 데이브 예거 감독의 반응을 눈치챈 것인지 침묵을 유지했고, 데이브 예거 감독은 생각을 정리했는지 헛기침을 한번 했다.
“저쪽이 어떤 패턴으로 공격을 하든, 우리의 수비는 바뀌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각자의 마크맨을 철저하게 따라붙고, 패스의 시작점인 호영 최와 세컨드 볼 핸들러에겐 무리한 더블 팀 대신, 패스가 나가는 길목을 막고 서 있는다.”
오늘 경기에서 호영의 턴오버를 유발한 건, 이전과 달리 호영을 막겠다가 아니라 호영의 ‘패스’를 막겠다고 생각을 전환한 데이브 예거 감독의 수비 전술 덕분이었다. 그 기조를 지금 와서 바꾸는 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
“상대가 개인 기량으로 공격을 해내려 한다면, 우리는 그에 맞게 일대일에서 수비가 뚫리지 않으면 된다. 내줄 점수는 어차피 내줘야 하지만,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면 아직 매우 유리한 건 우리 쪽이다. 24초를 최대한 모두 활용해서 공격하고, 상대가 흥을 낼 수 없게 느린 템포로 경기를 끌고 나가자. 르브론.”
“네.”
“자네가 포인트가드로 나서서, 지공 위주로 경기를 이끌어 주게.”
“알겠습니다. 최소 15초 이상 매 공격에 할애해 보죠.”
어차피, 지공 상황에서 마무리를 누가 할 것인지는 르브론 제임스에게 맡기는 편이었다.
데이브 예거 감독은 공격 마무리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언급하지 않은 채, 선수들에게 더욱 끈끈하고 느린 템포의 농구로 상대를 늪에 빠트리라고 지시했다.
“흐음…….”
새크라멘토 킹스의 바뀐 라인업을 살핀 호영은 ‘저거 무조건 지공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애런 팍스가 빠진 건 결국 속공을 극도로 제한하겠다는 뜻.
“그러면, 우리도 심플하게 가야지.”
이쯤 되면 저렇게 나올 거라 예상했던 호영이었기에, 그다지 놀란 기색은 없었다.
라스트 댄스 - NBA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