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Chapter 42 (4)
“흐음, 데릭이 하는 피자 가게?”
“초이, 거기 가면 무조건 두 판 먹잖아요. 그렇게는 안 돼요. 작은 사이즈로 한 판에 끝낼 수 있으면 가도 좋아요.”
“……흐흠, 그럼 다른 곳으로.”
데릭 로즈가 운영하는 블루로즈 피자에 가면 도저히 한 판으로는 끝나지가 않았다.
호영은 아쉬운 마음을 삼키곤, 다른 가게를 고민해 봤다.
“지미가 운영하는 올페이스 커피는요?”
“초이, 거기 가면 홀 케이크 하나 시켜서 통째로 다 먹잖아요. 조각 케이크 세 개 선에서 끝낼 수 있으면 가도 괜찮아요.”
“크윽…….”
호영은 몇 번의 ‘크윽’을 거친 끝에, 가게를 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블린도 그 가게는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호영은 이블린과 함께 밖으로 나가 차를 탄 뒤 곧장 시내로 향했다.
부우웅-.
“와…… 길거리가 온통 하얀색, 파란색이네요.”
댈러스 매버릭스가 2010-2011 시즌 이후 정말 오랜만에 파이널 진출을 확정 짓자, 댈러스 시내는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눈을 돌리는 곳에 댈러스 선수 중 한 명의 그림과 유니폼, 그리고 파이널 우승을 기원하는 문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팀 내 최고 에이스 호영의 그림이 가장 많았고, 그와 더불어 덕 노비츠키의 그림이나 사진도 상당히 많았는데, 그 이유는 팀 내 레전드인데 비해 NBA에서 이룩한 업적이 1회 우승은 너무 적다는 팬들의 안타까움을 이번 기회에 씻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덕이랑 J.J.가 이번에 우승 반지를 얻으면…… 두 번째 반지겠네요.”
“그렇죠. 데빈도 같이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호영은 두고두고 데빈 해리스의 코치 전향을 아쉬워했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해서 데빈 해리스의 노쇠화 속도는 J.J. 바레아보다 훨씬 빨랐다.
그래서 지금 J.J. 바레아와 경쟁한다 치면 데빈 해리스는 밀릴 수밖에 없다.
팀 내에서는 로드리고 보브와를 세 번째 볼 핸들러로 점찍고 팀 적응 및 나머지 잠재력 개화를 위해 공들이고 있어서 J.J. 바레아도 후순위로 밀린 상황이니…….
데빈 해리스가 어떻게든 올 시즌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쳐도 팀 내 4~5번째 포인트가드였을 터.
그러면 한 시즌에 절반이나 나오면 다행이고, 나와도 5~10분 뛰면 다행인 수준일 것이다.
나름 올스타 플레이어였던 데빈 해리스는 말년을 그렇게 처량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을 테니 충분히 이해하지만, 호영은 같이 반지를 땄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았다.
“데빈의 마음을 모르진 않지만. 그래도, 아쉬워요.”
“저도요. 데빈이 초이에게 많은 도움도 줬으니까. 이런 절호의 기회에 선수로 같이 뛰는 관계였다면 더 좋았겠죠.”
“……그래도, 코치로 우승 경험을 쌓아 주는 것도 데빈의 미래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해야죠.”
호영의 말에 이블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블린과 소소하지만 서로 즐길 수 있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차는 덕 노비츠키가 운영하는 ‘덕버거 (Dirkburger)’ 앞에 도착했다.
“어…….”
그리고 호영은 가게 앞에 대문짝만하게 전시된 자신의 사진과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MVP 게시글, 거기에 오늘 하루 모든 메뉴 50% 할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걸 보고 순간 당황했다.
“이, 이거……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인산인해로 몰려든 사람들. 이블린은 가게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한 팬이 호영의 차를 알아보곤 크게 소리쳤다.
“컨퍼런스 파이널 MVP!!!!!”
“MVP!!!”
팬들은 일순간에 호영의 차를 알아보았고, 호영은 이러다가 포위되는 게 아닌가 싶어 순간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팬들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사진을 찍거나, 환호성을 지르는 것 정도에서 그치고 있었기에 호영은 이블린에게 잠시 차에 있으라고 한 후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호영이 차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호영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혹시라도 몰려드는 거 아닌가 싶었던 호영이었지만, 팬들은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아무 말도 없이 합심하여 길을 열어 줬다.
마치, 에미상 시상식 등에서 팬들이 좌우에 정렬하여 가운데 길을 걸어가는 스타 배우를 보는 듯한 모습이 되어 버린 셈.
호영은 머쓱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한 후, 이블린을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리게 했다.
어차피, 이미 언론에서 호영과 이블린이 좋은 감정으로 교제 중이라는 사실이 한참 전부터 까발려진 상태라 숨길 건 없었다. 다만, 사람이 워낙 많이 모여 있는 장소에 이블린이 버거워하진 않을까 싶었던 것.
그래도, 이블린이 나오자 호영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나 스마트폰은 집어넣은 채 그저 두 사람에게 환호만 보낼 뿐이었다.
둘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둘의 상황과 기분을 헤아려 주는 배려 있는 행동 덕분에 가게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오! 초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마침, 오늘 한 자리를 비워 놓고 싶더라고.”
덕 노비츠키는 해맑은 표정으로 가족들과 함께 나와 버거를 만들고 있었다.
호영은 덕 노비츠키에게 이게 다 무슨 소란이냐며 질문했고, 덕 노비츠키는 당연한 것 아니겠냐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들 축제 분위기인 거지. 거기에, 초이 네가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MVP까지 땄으니까. 사람들이 다들 고무될 만해.”
“그래도 이건 좀…….”
“이 정도 가지고 뭘. 이걸로 놀랄 거면 2010-2011 시즌 우승 때는 아주 까무러졌겠어?”
덕 노비츠키는 파이널 진출을 했으면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 허허 웃었다.
하긴, 2010-2011 시즌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 최초 NBA 우승을 따냈을 땐 이것의 곱절로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하는데, 덕 노비츠키는 그걸 실제로 겪어 본 사람이다 보니 이건 애교로 보이는 듯싶었다.
“데릭이나 지미 가게로 갈 줄 알았더니, 어떻게 여기로 오긴 했네?”
“음…… 그게 말이죠. 하하.”
호영은 옆에서 웃는 얼굴이긴 하지만, 데릭 로즈나 지미 버틀러의 가게가 언급되자 분위기가 무서워진 이블린을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덕 노비츠키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며 깔깔 웃었다.
“하긴! 초이가 피자나 디저트에 사족을 못 쓰는 편이긴 하지!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어? 지미네 가게 케이크 잘못 먹으면 헤어 나올 수 없다니까? 저번에 한번 고삐 풀려서 홀 케이크를 자리에서 두 개나…….”
“두…… 개요?”
이블린은 ‘분명 한 개라고 했잖아요?’라는 눈빛으로 호영을 째릿하게 바라보았고, 덕 노비츠키는 말실수를 했다는 것에 허허 웃으며 슬쩍 물러났다.
호영은 이 상황을 타개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발자국 물러난 덕 노비츠키를 애원하듯 불러세웠다.
“주, 주문이요! 주문!!”
호영은 다급히 덕 노비츠키를 불러 주문을 요청했고, 덕 노비츠키는 느릿느릿하게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엄…… 이브는 뭘 먹을……?”
“그렇게 불러도 안 넘어가요.”
“어…… 그게, 음. 미안해요.”
“두 개는 언제 먹은 거예요? 당장 활동량이 많고, 칼로리 소모량이 워낙 많아 몸에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고삐 풀린 것처럼 먹어 대면 곤란해요.”
“그게…… 간식을 한번 건너뛴 날에. 그러니까, 플레이오프 2라운드 때. 컨디션 때문에 심란하고 해서 기분 전환이나 할 겸 지미네 가게에 가서 한 조각 먹었는데…… 그게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호영도, 이블린도 꽤 스트레스를 받았던 시기였다.
고열이 심하고, 몸살 기운까지 겹치는 바람에 경기는 제대로 못 뛰고. 밸런스는 엉망이고. 그런 와중에 새크라멘토 킹스에게 한 번 패배하면서 기분도 우중충한 상황이었다.
“……알겠어요. 그런 상황이었다면 저도, 이해해요.”
“이브…….”
“하지만 기왕 먹은 거 시원하게 말해요. 제가 피지컬트레이너 입장에서는 초이를 꽉 잡고 관리할 수밖에 없지만, 홀 케이크 1~2개를 그 자리에서 해치웠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건…… 초이랑 만나는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니까.”
호영은 이때다 싶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요?”
“잠깐…… ‘그래요?’는 뭐예요. 불안하게…….”
“사실 그때 입이 터지는 바람에, 솔직하게 이야기하자고 했으니까 그 헤이즐넛 시럽 들어간 아메리카노도 두 잔…….”
“자아~ 메뉴는 다 골랐나……? 어이쿠, 좀 더 이따가 올까?”
당을 하염없이 처먹었고, 그걸 두 번이나 축소하려 했던 호영이었다 보니, 이블린은 잔뜩 뿔이 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호영은 자기가 정말 잘못했다며 재빨리 메뉴를 시키려 했다.
“저, 저는 더블 비프 덕 버거 세트로…….”
“덕, 이거, 칠면조 버거라고 하셨죠?”
호영은 자신의 메뉴 발언권이 묵살당하는 와중에도 지은 죄가 있어서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아~ 맞아요. 몇 년 전에, 구단 측에서 덕 버거라고, 이벤트 상품으로 판 적 있었거든요? 그때 내가 하고 싶던 버거가 바로 이, 칠면조 버거였거든요. 그때는 대중성을 생각해서 비프 버거로 바꾸긴 했지만, 그게 아쉬워서 이 가게를 열게 된 거죠.”
“칠면조 패티에 루꼴라도 들어가 있고, 여러 재료가 풍성해 보이네요. 칠면조 버거 세 개로 주문할게요.”
“세트 말고? 초이가 감자튀김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인데?”
“이젠 아니에요. 그쵸, 초이?”
“어? 네? 네! 물론요. 그럼요. 버거집에 왔으면 버거를 먹어야죠.”
호영은 맞다면서 고개를 마구 끄덕였고, 이블린은 제로 콜라 두 잔을 추가로 주문했다.
덕 노비츠키는 ‘탄산은 아예 안 마시는 한이 있어도 제로는 안 마시는 초이가…….’라고 말하려다가 여기서 더 장난치는 건 뇌절이라 생각했는지 허허 웃으며 주문을 받고 사라졌다.
“초이.”
“네, 넷!”
“저야, 초이가 워낙 관리도 잘하니까 믿기도 하고. 사람이 가끔 정신 놓고 음식을 막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런 일이 있으면 줄이거나 늘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줘요.”
이블린은 퍼스널트레이너 입장에서도 조금 화가 났지만, 그것보다는 호영이 뭔가가 켕겨서 축소하듯 말하는 게 싫다고 확실히 말했다.
“그렇다고 초이가 찰스 바클리처럼 하프타임 때 피자 시켜서 한 판을 15분 내에 뚝딱 먹거나, 글레이즈드 도넛 더즌으로 시켜서 그 자리에서 다 먹거나. 그런 ‘습관’을 들이진 않을 거잖아요.”
“그건 당연하죠. 그렇게 하라고 해도 맨정신엔 못 하고. 특히…… 하프라인 때 뭘 먹으면 뛸 때 너무 힘들기도 하니까.”
“그래요. 제가 봐도 초이는 자기 관리가 철두철미한 사람이라, 가끔의 일탈이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런 일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기로. 아, 이전에 일을 여기서 다시 정정해서 말해 주진 마요. 괜히…… 들으면 더 얄미울 것 같아서.”
이블린의 뾰로통한 모습에 호영은 앞으론 절대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라스트 댄스 - NBA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