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댄스 - NBA DREAM-232화 (232/233)

232화 Chapter 47 (2)

‘움직여라, 움직여!!!’

어느샌가 안정감 있는 플레이가 ‘과감하지 않은 플레이’로 바뀌어 간다는 걸 로드리고 보브와도 알고 있었다.

본인도 그를 바꾸기 위해 최근 심리 상담까지 적극적으로 다닐 정도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지금 이 경기에서 발휘되지 않으면…….

특히나 파이널 경기에서 뒤처진 상황을 뒤집는 데 몸을 날리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셈이다.

“으아아!!!”

짜악!

로드리고 보브와는 괴성을 지르더니 자신의 허벅지를 힘껏 때리곤 앞으로 몸을 날렸다.

말을 안 듣던 다리에 채근을 하듯 후려치니, 그제야 몸이 움직인 로드리고 보브와.

쉘빈 맥도 분명 준수한 피지컬을 지니고 있는 선수였지만. 로드리고 보브와는 과거 스피드로 NBA에서 라이징 스타 소리를 듣던 선수였다. 원, 투 스텝을 밟은 뒤 몸을 앞으로 날리니 쉘빈 맥을 어느덧 앞질러 버리곤 공에 손을 먼저 대는 데 성공했다.

“세스!!!!”

휘익!

로드리고 보브와는 코트에 처박히기 직전, 고개를 홱 돌려 세스 커리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세스 커리의 이름을 힘껏 외치곤 공을 낚아챔과 동시에 그에게 던졌다.

세스 커리는 그의 패스를 받는 데 성공했고, 로드리고 보브와는…….

콰아앙!

사이드라인에 세워진 광고판에 부딪혀 고꾸라졌다.

“달려!!!”

광고판과 부딪힌 등이 너무 아프고 쉘빈 맥과 뒤엉켜서 정신도 없지만, 로드리고 보브와는 그런 와중에도 지체 없이 달리라고 소리쳤다.

이 허슬 플레이 하나로 2점이든 3점이든, 아니면 하다못해 파울을 얻어 내든 소득이 있길 바라는 로드리고 보브와의 간절한 외침이었다.

“준비됐어, 초이?”

“물론이죠, 세스.”

속공 루트가 딱 맞은 세스 커리와 호영은 잠시 붙었다가 확 떨어졌다.

세스 커리가 공을 몰고 호영이 스크린을 서려는 모션.

토론토 랩터스의 선수들은 속공을 당하는 와중에도 둘을 막는 제레미 린, 파스칼 시아캄은 각자의 마크맨을 놓치지 않으려고 타이트하게 들러붙었다.

“흡!”

호영이 태산과 같은 스크린을 서고, 세스 커리는 좌측 45도 윙 지역으로 스리슬쩍 빠져나갔다.

여기서 해야 할 선택.

정규시즌 3점 46%의 미친 감각을 선보인 세스 커리를 막느냐.

파이널 시즌 3점 45%의 호영을 막느냐.

[아! 제레미 린, 파스칼 시아캄! 순식간에 세스 커리를 포위합니다!]

두 선수의 선택은 세스 커리를 막고, 사이드라인 밖으로 밀어 내자.

호영이 공을 쥐고 공격을 조립했다면 모르겠지만, 세스 커리가 많이 발전했다 쳐도 호영의 리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세스 커리를 막고 패스 경로만 막는다면 어떻게든 호영에게 공이 가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셈.

“크읏!”

세스 커리는 두 선수의 푸시에 버거운 신음을 내고 포스트 업 자세로 버텼다. 두 선수가 세스 커리를 몰아넣었다고 생각하여 더욱 강하게 붙은 순간.

“좋았어?”

휘익-!

제레미 린이 단 한순간, 세스 커리를 막아 냈다 생각해서 패스 길을 소홀히 봐 버렸기에 세스 커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드리블 능력이나 경기 조율이 생각보다 더디게 성장했다 쳐도, 이번 시즌 세스 커리는 ‘시야’에 있어선 확실히 개안한 모습을 보여 줬다.

호영이 공을 잡으려는 순간, 우다다 달려와서 세스 커리의 패스를 긴 팔로 끊어 보려 하는 도리안 핀니 스미스.

어차피 호영이 저 공을 잡는 순간 제대로 막긴 너무 어렵다는 게 정론이었으니, 도리안 핀니 스미스 입장에서는 충분히 해 볼 만한 도박이었다.

[어어엇!!!! 스핀 무브! 호영 최의 우아한 스핀 무브가 도리안 핀니 스미스의 스틸 시도를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호영은 도리안 핀니 스미스의 기습 스틸에 놀라지 않았다. 양팔을 앞으로 쭉 빼서 공을 미리 잡고, 스핀 무브로 도리안 핀니 스미스를 스치듯 지나가 긴 보폭으로 눈 깜짝할 새에 미드레인지 존으로 파고드는 데 성공한 호영.

“휴!”

텅 비어 버린 토론토 랩터스의 골 밑.

호영은 가뿐하게 뛰어올라 림을 살포시 움켜쥐고 공을 림 안에 쑤셔 넣었다.

평소였다면 좀 더 다이나믹한…… 물론, 호영이 다이나믹하게 덩크한다 쳐도 팀 던컨의 작대기 덩크보다 좀 더 역동적인 수준이었겠지만, 어쨌든 역동적인 포즈로 기세를 끌어올렸을 것이다.

‘우욱…… 흥분했음 큰일 날 뻔했다.’

다만, 그랬다간 애써 지혈된 곳이 ‘팡!’ 하고 터져서 피가 또 났을지도 모를 일.

지금도 사뿐한 원핸드 덩크를 꽂았을 뿐인데 뭔가…… 알 수 없는 피 맛이 입에 도는 것 같았다.

‘결심했다.’

호영은 림을 놓고 사뿐하게 내려와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했지만, 얼굴은 평소보다 차분하고, 조금 차가워 보일 정도였다.

“초이?”

선수들은 호영이 다친 부위가 잘못되었나 오해했지만, 호영은 길게 숨을 내쉰 뒤 동료들에게 오해하지 말라고 했다.

“나, 오늘 경기, 팀 던컨이 될게.”

“…….”

“뭐?”

* * *

파이널이라는 건 참으로 기묘한 시리즈였다.

호영은 문득, 작전타임 도중 자신의 전생이었던 스페인리그 시절 파이널을 떠올렸다.

발렌시아 BC.

스페인은 축구뿐만 아니라 농구도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가 해 먹는 경우가 꽤 있었다.

물론 간혹, 바스코니아나 테네리페 같은 팀들도 우승권에 안착하며 이변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긴 했다.

발렌시아 BC는 냉정하게 중위권 팀이었다.

당시, 호영이 뛰던 2020-2021 시즌에는 과거 NBA 드래프트 1라운드 2픽으로 창창한 앞날만 있을 줄 알았다가 폭망했던 데릭 윌리엄스, 루카 돈치치와 같은 국적인 슬로베니아 센터 마이크 토베이를 제외하면 주전 선수들 중에서 ‘강팀’이라 분류할 만한 선수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 라인업에서 호영이 추가되며 데릭 윌리엄스–호영 –마이크 토베이 3~5번 트리오를 통해 오랜만에 파이널 무대에 진출.

그때 모든 선수들의 떨림과 긴장은 아직도 호영의 DNA 속에 박혀서 생생하게 재현되곤 했다.

-슛 던지는 게 너무 무섭다.

-속공할 때 내가 실수해서 놓치면…… 어떻게 하지?

-평소보다 훨씬 몸이 무거워. 드리블은커녕, 공을 제대로 쥐고 뛸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

숨 쉬기 힘든 압박감. 플레이에 대한 두려움. 한 번 실수하면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압박감…….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결국 선수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스타가 될 것인가.

패배하긴 해도 복수의 칼을 갈 것인가.

패배에서 벗어나지 못해 큰 경기, 큰 상황만 되면 벌벌 떠는 겁쟁이가 될 것인가.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자네들에게 제대로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손에 거머쥘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거머쥐기 어려운 느낌. 그게 바로 오늘 경기와 같으니까.”

팀원 중에서 못하는 선수가 있는가?

그건 아니다. 다들 제 역할을 확실히 해 줬고, 호영은 팀 던컨에 빙의되어 간결한 플레이를 통해 흥을 많이 끌어올리진 못했어도……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고 강하게, 30득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어금니 두 개 나간 것으로 30+ 트리플더블이면 남는 장사라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 상황에서 자신의 개인 기록이 중요할까.

중요한 건 트로피를 들고, 반지를 손에 끼울 수 있는가? 그뿐인 것을.

“오늘 경기에서 패배한다고 해서, 모두 끝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들 어느 정도 느끼고 있겠지. 이번 경기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이 시리즈 갑작스럽게 난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걸.”

“…….”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3승 1패와 3승 2패는 엄연히 느낌이 다르다. 그것도 홈경기에서 패배를 해 버리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모든 선수들이 화끈하게 자신의 기량을 100%, 120% 발휘했음에도 점수는 110 대 112. 경기 남은 시간은 3초.

선수들은 모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상황에서,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다 보니 연장으로 가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토론토 선수들도 체력적인 한계에 다다른 건 맞지만, 댈러스는 그간 체력 관리를 위해 선수들의 출전 시간을 꽤나 균등하게 배분한 탓에, 로스터에 있는 대부분 선수들이 적든 많든 체력이 일정 수준 소진된 상태.

그에 비해 닉 널스 감독의 토론토 랩터스는 역설적으로 쓰던 선수만 쓰는 혹사 스타일 덕분에 아직 힘을 내서 뛸 수 있는 준주전급 선수들이 몇 명 남아 있었다. 하필 그게, 수비 스페셜리스트인 것이 문제라면 문제.

“우리에게 남은 건 딱 한 방. 한 방을 노리는 것뿐이다. 2점도 좋고, 3점도 좋고. 파울 겟도 좋다. 여기서 끝내는 걸 원치 않는다면, 다들 한 발 더 뛰고. 몸을 날려서라도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고르 감독의 이야기가 점점 먼발치에서 들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호영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슬로모션처럼 주변 상황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고, 갑갑했던 호흡은 점점 하늘을 유영하는 새처럼 자유로워졌다.

‘오, 저기, 크리스가 있네.’

크리스 헤임즈는 오늘, 엑셀 스포츠의 제프 슈왈츠 회장과 같이 경기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호영의 어금니가 두 개 나갔을 때만 해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만큼 충격을 받았지만, 그래도 팀닥터의 보고 덕분인지 침착한 표정으로 경기를 응시 중이었다.

‘제프 슈왈츠…… 당신은 내 어떤 모습을 보고 엑셀 스포츠로 끌어온 걸까?’

올랜도에서 한 첫 번째 서머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해도, 제프 슈왈츠는 유명한 선수를 수도 없이 보유한 상당한 수준의 에이전트였고, 에이전트 회사의 대표였다.

그런데 호영을 가져오는 데 거침이 없었으며, 크리스 헤임즈를 전담 에이전트로 붙여 주며 신입 에이전트가 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지원도 전폭적으로 지지해 줬다.

아마, 그가 보기엔 마지막 3초 내에 승부를 뒤엎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건지 몰라도…….

그의 얼굴은 어쩐지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드와이트랑 막시도 왔네.’

과거 같은 팀이었던 드와이트 파웰과 막시 클리바.

두 선수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좋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결국 탈락의 고배를 마시곤 복합적인 감정을 품은 채 댈러스의 경기를 직관 중이었다.

마음 같아선 호영도 같이 가고 싶었던 선수들이지만, 선수란 각자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법.

두 선수는 탄탄해지는 로스터를 보며 자신이 뛸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기회’를 위해 이적했고, 결국 그 이적을 통해 본인들이 원하는 걸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이야…… 브랜든. 얼굴 폈네.’

호영과 간간이 연락하는 브랜든 애슐리도 경기장에 와서 댈러스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드와이트 파웰과 막시 클리바에 비해선 한결 편한 모습이었는데, 그건 아마 NBA라는 꿈을 깔끔하게 접은 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유럽 무대에 매진하면서 많은 스트레스와 압박감, 본인에 대한 자괴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리라.

솔직히, 서머리그 이후 프리시즌에 뱀 아데바요나 딜런 브룩스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였지만, 호영도, 브랜든 애슐리 스스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같은 팀에서 뛸 시간이 많진 않을 것이라는 걸.

지금은 독일에서 아예 새살림을 차리고 모델이신 독일 여성 분과 꿀 떨어지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으니 그의 인생이 잘되길 바랄 뿐이었다.

“초이?”

이고르 감독은 평소엔 전혀 볼 수 없는 호영의 멍한 모습에 그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다른 이가 있는지 벤치를 살펴보려 했던 호영은 순간, 무아의 경지에서 벗어나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네. 죄송합니다, 감독님.”

“아니, 괜찮다. 우리가 이제 할 수 있는 작전은 딱 하나뿐이니까. 음……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 초이, 하고 싶은 말 있나?”

라스트 댄스 - NB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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