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화
「오늘부로 은퇴하겠습니다.」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기자회견장에 퍼졌다.
이번 인생에서 난 세계 축구 역사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축구선수였다.
덕분에 기자회견장에는 축구계와 관련 있는 온갖 고위직과 전 세계에서 온 유명한 언론사들로 가득했다.
무수한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리기 시작했고, 보안요원들의 제지에도 기자들은 도떼기시장의 상인들처럼 온갖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중, 내 귀에 또렷하게 들린 질문이 있었다.
「마지막 월드컵에서 2002 월드컵의 전설을 다시 한번 이룩하셨습니다! 송현준 선수! 당연히 만족하시겠죠?!」
시야가 구석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눈앞이 캄캄해지고 있다. 기자들의 얼굴도 점점 흐릿해진다. 이번 인생도 끝나가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질문한 기자를 지목하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왜죠? 월드베스트일레븐에 발롱도르, 그리고 월드컵 골든볼까지, 하나로도 대단한 상을 모두 수집했는데요! 심지어 아시안컵 3회 우승에 월드컵 8강 두 번, 올해는 월드컵 4강까지 이끄셨잖습니까!?」
왜긴, 질문에 답이 있잖아.
「월드컵 우승은 못 했잖아요.」
말을 마친 순간, 이번 인생이 완전히 끝났다.
기자의 입이 벌어졌다 다물어졌다 하는 게 무언가 더 말하는 것 같았지만, 목소리가 희미해지더니 결국 아예 들리지 않았다.
이어서 기자들이 어둠에 삼켜졌고, 나도 그렇게 됐다.
어둠 속에 나 혼자만 있다는 감각, 아홉 번이나 겪었던 익숙한 느낌이 찾아왔다.
《0》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 또렷하게 나타난 숫자 0.
처음에는 10, 그다음은 9, 가장 최근에는 1이었다가 지금은 0이다.
이 정도면 나도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확신할 수 있다.
남은 숫자는 0, 이번이 마지막 회귀라는 얘기였다.
열 번의 인생이 끝났고, 열한 번째 인생이 시작한다는 얘기였다.
그렇다. 나는 회귀자였다. 그것도 여러 번 회귀했다.
첫 번째 인생에서 나는 억울하게 실패한 축구선수였다.
그래서 두 번째 인생이라는 기적 같은 기회를 받았을 때, 축구선수로서 무작정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다. 물론, 잘 되진 않았다.
세 번째 인생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했고, 축구선수로서는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렇게 네 번째도 축구선수였고 열 번째인 지금도 축구선수였다.
나는 언제나 축구선수였다.
다른 인생을 살아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었지만, 나는 내 의지로 그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축구에 재능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또, 축구는 같은 경기를 여러 번 해도 매번 다른 양상이 나온다. 아니, 단순하게 말해서 축구를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축구를 하면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축구를 할 이유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축구를 계속했다.
회귀할 때마다 몸은 어려졌다. 축구선수로서의 지식은 쌓였고, 이것들은 내 재산이 돼서 점점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게 도와줬다.
덕분에 웃겼던 일, 한심했던 일, 슬픈 일, 아쉬운 일, 멍청했던 일…… 그리고 행복했던 일도 많이 겪었다.
그중 유난히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들이 있다. 바로 내가 개인상이든 우승이든 무언가 이뤄냈을 때였다.
처음에 나는 개인상이나 우승이나 전부 날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 인생 첫 우승을 해냈을 때, 날 좋아해 주는 수많은 사람이 기뻐했다. 앞으로 살아갈 원동력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내가 우승하는 걸 보면서 버텼다는 사람도 있었다.
말로 직접 듣기도 했고, 신문에 쓰인 기고문을 보기도 하고, 인터넷에 올라온 글과 댓글 그리고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내 우승을 통해 많은 사람이 기뻐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너무 행복했다.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기분이었다.
이후 나는 개인상이든 우승이든 모든 걸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날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날 더 기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훌륭한 축구선수가 탈 수 있는 모든 개인상을 탔고, 단 하나의 대회를 제외하고 전부 우승했다.
단 하나가 뭐냐.
바로 월드컵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대회답게 빌어먹을 정도로 우승하기 어려웠다.
수십 번을 도전했는데 4강도 몇 번 못 갔다.
메시 같은 선수가 왜 월드컵에서 고생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비슷한 위치까지 올라오니 알 수 있었다.
월드컵은 그만큼 대단한 대회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축구는 열한 명의 주전과 감독이 하는 스포츠다. 작은 대회라면 이들만 잘해도 우승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대회를 우승하기 위해서는 열한 명의 주전과 감독뿐만 아니라 주전 선수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함께 훈련하는 후보 선수들, 효율적인 훈련을 고안하고 승리의 방법을 찾는 코칭 스태프들, 선수들의 생활을 책임져주는 직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문제는 월드컵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다.
월드컵은 국가 단위의 노력이 필요했다.
한 나라가 생활체육부터 유소년 축구, 아마추어 축구, 프로 축구까지 수십 년 동안 인프라를 탄탄하게 구축해야 하고, 그게 하나의 대표팀에 모여야만 월드컵에서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이 비법을 나중에서야 깨닫고 열심히 해봤지만 잘 안 됐다.
한 사람이 이룩하기는 어려운 일이 맞다.
하지만, 나는 월드컵 한 가지만 빼고 모든 걸 이뤘다.
월드컵은 전 세계인이 가장 주목하는 대회다.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선수 생명을 걸고 부딪치는 장소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얼마나 기쁠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뻐할지 상상만 해봐도 황홀했다.
그래서 이번 생에선 반드시 월드컵 우승을 하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시도할 계획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인생이니까.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눈을 감은 뒤 다시 떴다.
어둠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나는 왠지 모르게 포근하게 느껴지는 햇빛이 들어오는 교실에 앉아 있었다.
교실 맨 앞, 그러니까 선생님이 수업하는 교단 바로 앞에 위치한 책상이었다.
교실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교단 위에는 대학생티를 막 벗은 것 같은 젊은 선생님이 내게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현준아, 진짜 선생님이 정말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너무 나쁘게 듣진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회귀한 직후에는 몸이 갑자기 어려져서 그런지 몹시 어지럽다. 어지럼증을 참으며 교탁에 팔꿈치를 댄 채로 날 내려다보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축구를 다시 해보지 않을래?”
처음은 언제나 똑같다.
“선생님이 현준이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랑 통화도 했거든. 현준이 너 정말 대단했었다며. 그, 그 뭐였지. 그…… 우리나라에서 정말 유명한 분이 주는 상 있잖아. 아! 손백호 축구상도 받았었다고!”
손백호 선수는 80년대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다.
해외 축구를 일찍 경험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선 유망주를 키워야 한다는 걸 알았던 손백호 선수는 유망주, 그것도 초등학생들을 위해 ‘손백호 축구상’을 매년 수여하기로 결심했고, 바로 실행했다.
90년도 초부터 시작된 손백호 축구상 시상식은 마땅한 개인상이 없던 한국 유소년 축구계에서 유망주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개인상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잘하던 놈들이 나중에도 잘한다. 그렇다 보니 2002년 월드컵의 기적을 이룬 선수 중에서도 이 상을 받은 선수들이 꽤 있었다.
“선생님은 그 상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랐는데, 작년에 기적을 이룬 젊은 선수들도 다 이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운이 좋았던 거예요.”
“아니야, 아니야. 운으로 받는 상이 아니던데! 현준이가 대단해서 받은 상이지!”
“……감사합니다.”
지금은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며칠 뒤.
담임인 정미영 선생님이 방과 후에 날 따로 불러 축구를 다시 시작해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한 날이었다.
이 시절의 나는 성적은 중간, 체육 시간에는 딴짓, 방과 후에는 PC방을 전전하던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중학생이었다.
“아, 으음…… 그러니까…….”
정미영 선생님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말문이 막혔는지 이어서 할 말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날 설득하고 싶은 거다. 같은 장면을 열한 번째 보는 건데 그녀의 생각을 모르면 바보다.
나는 그녀가 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숙이고 작게 웃었다.
그녀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고, 그게 전혀 밉지 않은 사람이었다.
올해가 임용 첫해, 초임 교사인 그녀는 처음으로 하는 수업이나 서류작업도 벅찰 만한데 우리, 그러니까 처음으로 담임을 맡은 학생들의 진로를 적극적으로 찾아주고 싶어 했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바로 지금처럼.
그녀는 인기 많은 선생님이었다. 회귀 전의 어린 나도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는 늘 밝았고, 솔선수범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난히 새하얀 피부가 그녀의 노력을 상징하는 다크서클을 늘 부각했기 때문에 팬더 쌤이라고 놀려먹기 좋기도 했고.
그녀의 나이는 24세, 회귀 전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걸 보면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했을지 매번 생각하게 된다.
“혹시 이런 얘기 꺼내는 것도 싫니……?”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대답 없이 잠자코만 있자 선생님의 얼굴이 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대화를 이었다.
“갑자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당황스러워서 그랬어요.”
“아, 그렇겠구나. 선생님이 너무 흥분해서 그랬어. 선생님 생각보다 현준이가 더 대단한 사람이어서.”
선생님은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두 손을 모았다.
“현준이도 기억하지? 작년에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꿈꾸는 듯한 얼굴. 2002년 월드컵의 기적을 겪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10번의 전생 중 2002년과 비슷한 수준의 결과를 낸 건 단 두 번밖에 없을 정도로 2002년 월드컵 4강이라는 성적은 기적 그 자체였다.
아, 나는 지금 인생 빼곤 다 전생이라고 부른다. 어차피 바꿀 수 없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랬죠. 모두가 한마음으로 길가에서 응원하고 소리 지르고. 다신 없을 일이죠.”
그날의 감동을 되새기는 건지 선생님은 잠깐 눈을 감고 있다가 한층 더 들뜬 목소리로 말해왔다. 반짝이는 두 눈은 덤이다.
“맞아, 축구선수는 정말 대단해. 현준이는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선생님은 신나서 내 재능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지, 가능성이 있는지 들뜬 목소리로 말해주셨고, 나는 적당히 겸양을 떨며 이야기를 받았다.
이어서 나올 말들은 전생들과 똑같았다.
“그러니까 현준아. 다시 시작해 보지 않을래?”
아는 말이라도 벅차오르는 게 있었다. 선생님의 이 말 덕에 나는 축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잠깐 말문이 막혔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음…… 저는 지금 축구부도 아니고.”
“그게 해결될 것 같아. 축구부 감독님이 어제 널 콕 집어서 얘기하더라니까? 한번 테스트해 보고 싶다고.”
“그만둔 지 2년이나 됐는데 괜찮을까요.”
“괜찮대! 이 선생님이 다 물어봤지!”
그렇겠지.
회귀를 통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정미영 선생님은 진심으로 날 위해 이런 제안을 하는 거였고, 축구부 감독은 아니었다.
감독은 날 선수로 보는 게 아니라 성적을 위한 부품으로 보고 있다.
이 학교에 있는 축구부는 작년 전국대회에서 처음으로 4강에 오른 떠오르는 강호였고, 성적을 내는 방식은 최고의 선수 한 명에게 다 몰아주는 전형적인 에이스 원맨팀이었다.
이 시절 학원 스포츠는 에이스 몇 명이 게임을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강했고, 나머지는 그 선수가 활약하기 위한 부속품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선수의 자아를 누르는 일이기에 군기를 빙자한 폭력도 흔했고, 날 필요로 하게 된 이유도 그것이었다.
지난달 군기를 빙자한 폭력 사태가 드러나는 바람에 한 번에 몇 명이 부를 나가 버리거나 전학 가버렸고 축구부원이 부족해지게 된 것이다.
감독이 직접 나서서 폭력을 행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사태를 방조하거나 유도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건 이후 축구부원이 부족해지자 축구부 경력뿐만 아니라 운동부 경력이 있는 학생들을 전부 찔러보고 있다.
원래는 다른 학교에서 학생을 빼 오려고 했지만,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전생에서 나는 이 제안에 넘어가 축구부에 대책 없이 들어갔다가 3년 내내 몸이 갈려 버렸고, 고등학교 때도 비슷한 생활을 했다. 그 결과 28세의 나이로 축구계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은퇴해야 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미안해.
내게 사과하던 선생님을 기억한다.
두 번째 전생에서는 선생님과 거리를 뒀었다. 그리고 인생이 잘 풀리기 시작한 세 번째 전생 때 난 선생님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좋은 의도도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그냥 재수 없게 그렇게 되었을 뿐이었다.
고민하는 척하던 나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에 가서 더 고민해 봐도 될까요?”
“그럴래? 정말 좋은 기회 같아서 이렇게 남으라고 했던 거야.”
선생님과는 오랜 인연이 있었다.
중학교 3년 내내 담임선생님이셨고, 그 이후에도 언제나 나와 내 미래를 걱정해 주셨다.
무려 10번이 넘는 삶에서 한결같이. 어떤 변수가 있던. 내가 그녀를 대놓고 미워해도.
일곱 번째 전생에서 이유를 듣긴 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생의 방향이 바뀐 첫 학생이 나였다고 했다. 그래서 유난히 신경 쓰였다고 그랬다.
뭐, 무슨 이유든 상관없었다. 수많은 전생에서 좋은 의도로 날 대해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적고 귀했다.
그러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이 마지막 회귀다. 다음 기회라는 건 없다.
그래서 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절 생각해서 이런 제안을 해주신 거죠? 신중하게 고민해 볼게요.”
“어머머, 애가 말하는 거 봐.”
선생님은 부끄러워졌는지 너스레를 떨며 괜한 허세를 부렸다.
“선생님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대단하세요. 정말 존경스러워요.”
“어, 어어?”
한 방 먹였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교실을 나섰다.
건물에서 나오니 축구부 녀석들이 모래가 날리는 운동장에서 오리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몇 번, 저곳에 섞여서 같은 기합을 받았던 적도 있다.
물론 이번 인생에서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축구부에는 들어간다.
다만, 준비가 필요하다.
축구를 2년 쉬어서 엉망이 되어버린 과거의 내 몸을 단련하고 감각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동안 곧 있을 대회에서 성적 부진으로 기존 감독이 잘리고 새 감독이 들어올 것이다.
그때, 나는 축구부로 돌아갈 거다.
축구부 감독과 잠깐 눈이 마주친 것 같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교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