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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2화 (2/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2화

“현준아~ 밥 먹어야지.”

“네 엄마. 갈게요.”

마지막 회귀이자 진짜 인생이 될 이번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회귀 전에 짜둔 계획을 그대로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회귀를 아무리 해도 기억력은 딱히 좋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은 무조건 글자로 적어놔야 했다. 컴퓨터에 적는 방법도 있었지만, 지금 했다간 업데이트 과정에서 파일이 깨져서 내용을 홀랑 날려 먹는 수가 있기에 노트에 적는 게 안전했다.

“현준아! 아빠도 기다린다!”

“네!”

나는 남은 몇 글자를 쓰고 노트를 덮고 거실로 향했다.

식탁에는 언제 봐도 반가운 두 얼굴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는 의자에 앉으며 두 분에게 물었다.

“형은요?”

“오늘부터 야간자율학습이라더라.”

“현지는요?”

“친구 집에서 먹고 온대.”

“아하.”

내가 앉자 아버지가 숟가락을 드셨다. 아버지가 식사하기 전에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우리 집은 밥 먹을 때 얘길 별로 안 하기도 하고, 아버지는 오늘 대형산불 특별대책 기간이라 다시 구청으로 돌아가셔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빠라고 불렀던 시간보다 아버지라고 불렀던 시간이 더 길었지만, 나는 오글거림을 꾹 참고 말했다.

“아빠.”

“응? 왜?”

“이번 주부터 아빠가 주말마다 나가는 조기축구회 같이 가도 돼요?”

“응, 당연하…… 뭐?”

아버지는 느릿하게 대답하며 엄마와 눈빛을 교환했다.

2년 전에 축구를 그만두고 공 한번 찬 적 없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손짓으로 재촉했다.

아버지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아빠랑 가볍게! 정말 가볍게 공 차자꾸나.”

“말투 이상해요.”

“내가 뭘? 하하하.”

아버지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어머니가 날 왜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는지 잘 안다.

나는 더러운 일을 당해 축구를 그만뒀었다.

팀의 확고한 에이스인 나 대신 뒷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다른 녀석을 선발로 내세운 감독 때문에 축구에 정이 떨어졌었다.

그 감독은 ‘네가 쟤보다 못해서 주전에서 빼는 거야. 분한 얼굴 하지 마. 네가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쓰레기였다.

진실을 알고 화가 난 나는 그날로 축구부를 그만뒀었다. 지금은 너무 오래돼서 그때의 감정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건만큼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왜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하실 거다.

“아무튼 아빠, 오늘부터 저녁에 공 차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시간 될 때만요.”

“……당연하지!”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할 테니까요.”

자식의 이 말만큼 기쁜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영문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놀란 듯한, 그러나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로 물었다.

“무슨 일 있었니?”

“하고 싶은 게, 해야 하는 게 정말 많아졌거든요.”

“그래? 우리 아들이 뭘 하고 싶길래 그럴까?”

나는 최대한 장난스러운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돼서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싶어요.”

“뭐?”

“뭐라고?”

간결하면서 명확한 목표였지만, 두 분 다 곤란해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해외 축구가 보급되지 않은 시절에도 세리에 경기를 챙겨보시던 축구 매니아고, 어머니는 내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축구에 대해 잘 알았다.

그렇기에 둘은 현실적으로 내 꿈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경력이 2년이나 단절된 아들이 하는 말이다.

아버지가 굳게 결심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아들, 목표가 너무 허황된…… 아, 여보! 왜 꼬집어!”

“아들이 꿈을 말하면 들어줘야지. 그래그래, 우리 아들은 할 수 있어.”

아버지가 바로 진압 당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투덕대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농담이에요. 근데 그러면 좋겠어요.”

“그, 그렇지?”

아버지가 안심한 기색으로 내게 당부했다.

“열심히, 몸 건강히만 하면 돼.”

“네. 명심할게요.”

몸 건강히 월드컵 우승을 할 거다. 내 몸을 관리하는 건 월드컵 우승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단계니까.

* * *

“죄송해요, 선생님. 축구부 제안은 거절할게요.”

“아…… 그러니?”

정미영 선생님이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 고민돼서요. 그래도, 어제 오랜만에 축구공을 다시 꺼내 봤어요. 선생님 덕이에요.”

“그래?”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말하니 선생님이 활짝 웃으셨다.

오랜만에 보는 선생님의 젊은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선생님은 표정이 참 풍부한 사람이었다.

“네. 적어도 운동이라도 해보려고요. 생각이 더 바뀌면 말씀드릴게요.”

“그렇구나…… 좋네! 정말 좋아! 그렇게 천천히 시작하면 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줄 테니까…….”

그때였다.

“야, 송현준.”

선생님과 내가 얘기하고 있는 장소는 교무실이었다. 그리고 꽤 멀리 떨어진 곳에 다른 선생님과 얘기하던 축구부 감독이 있었다.

익숙한 그 목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축구부 감독 지상철, 그가 우리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진짜 지금 축구부 안 들어올 거야?”

“아…… 네.”

지상철이 ‘난 아주 불만이 가득해요.’라는 얼굴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 시점의 나와 지상철은 안면이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직접 날 찾아와서 축구부에 들어올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당연히 거절했다.

우리 둘 사이에 생긴 침묵이 스멀스멀 퍼져 나가 교무실이 점차 조용해졌다.

“네 실력이면 복귀도 금방 할 텐데?”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지상철은 단순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회귀를 거듭할 때마다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는 쉬웠다.

“아직도 초등학교 때 일 때문에 그러는 거냐? 애도 아니고…….”

“애 맞는데요?”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유도했고, 일부러 발끈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지상철을 올려다보았다.

그 태도에 지상철이 눈을 부릅떴다.

“이게 어른한테 말버릇이……!”

“…….”

지상철은 초등학교 시절 뒷돈을 받고 날 명단에서 제외한 감독과 선후배 사이였다. 그래서 내가 왜 축구를 그만뒀는지 알고 있었다.

“아이고, 상철아. 그만해라.”

“지상철 감독님!”

지상철과 친한 배영호 선생이 지상철의 옷깃을 붙잡았고, 우리 이야기를 자리에 앉아 듣고 있던 정미영이 발끈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교무실은 한층 더 조용해졌다.

교무실 안에 있는 모두가 우릴 보는 게 느껴졌다.

난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지상철은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화난 기색을 애써 지우며 투덜댔다.

“싸가지 없는 놈은 축구부에 필요 없어.”

내가 축구를 그만뒀던 뒷사정을 다 알고도 회귀마다 똑같은 얘길 하는 걸 보면 지상철은 구제 불가능한 놈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다.

어차피 곧 성적 부진으로 잘릴 거니 스스로 자길 망치게 두면 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지상철이 먼저 시비를 건 게 보이기 때문에 지상철과 친한 몇몇 빼고는 다 지상철을 힐난의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지상철이 몇 마디 더 투덜거리려는 것 같았지만, 정미영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만 좀 하세요! 현준이 사정 아는 것 같은데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세요?!”

정은영의 분노에 찬 일갈에 지상철이 멈칫하더니 그제야 교무실의 시선들을 확인했다.

지상철은 쳇 하는 소리를 내고는 미안하게 됐수다, 라고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교무실을 나갔다.

마침,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선생님은 다급하게 교과서와 노트를 챙겼고, 날 재촉해서 교무실을 나섰다.

* * *

“그…… 괜찮니?”

“네.”

“그리고 사과할게.”

“뭘요?”

“선생님이 현준이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축구를 왜 그만뒀었는지 물어봤었고, 들었거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정미영 선생님은 내게 축구부 권유를 하기 전에 내가 축구부를 그만둔 이유를 발로 뛰어서 알아보았다. 직접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과 관련자들 몇몇을 만난 것이다.

딱히 비밀도 아니니 미안해할 건 없었지만, 뒷조사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게 미안하다는 얘기였다.

“괜찮아요. 숨긴 것도 아니고요.”

“음, 그래도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려고 했는데…… 아하하, 생각대로 안 되네.”

선생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 해했다.

“정말 괜찮아요.”

“그러니?”

잠깐의 침묵 후에 선생님은 고개를 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튼, 선생님은 현준이가 첫발을 내디딘 것만으로도 너무 기특해 죽겠어. 앞으로 꼭 축구를 안 하더라도 분명히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네, 열심히 할게요.”

“그래그래. 수업도 열심히 듣고. 선생님은 운동한다고 해서 수업 열심히 안 듣는 거 이해가 안 간다니까.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고…… 에휴, 근데 학교 지침이라 뭐라 할 수는 없고.”

“저는 열심히 들을게요.”

“정말?”

“네, 축구부 들어가서도요.”

“현준이는 정말 기특하네. 근데 안 그래도 돼. 수업 빼고 훈련해야 할 정도로 힘들다면서?”

그때였다.

“팬더 쌤 늦었다!”

“지각이에요!”

어느새 교무실에서 우리 반 앞까지 왔다.

우리 반에서도 유난히 짓궂은 애들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것들이, 복도에서 뭐 해!”

“고개만 내민 건데 왜요.”

“몸은 안 나갔거든요.”

선생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몸이 중학생이 되면 저런 억지 말장난조차도 재미있다. 호르몬의 작용일까? 나는 깔깔대며 웃다가 선생님에게 꿀밤을 한 대 맞고 뒷문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자자, 인사부터 해. 반장.”

“전부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세요!”

그 와중에 내 옆 분단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명은 엎드린 채로 쿨쿨 자고 있었다.

한 명은 친한 녀석이고 다른 한 명은 지금은 얘기도 안 해 본 애였다.

선생님도 자는 아이들을 흘깃 보고는 별말 없이 수업을 시작했다.

이 둘은 우리 반의 축구부원들이었다.

나는 그중에 가까이서 자고 있는 친한 녀석을 깨웠다. 난 수업 듣는데 얘는 자는 게 맘에 안 들기도 하고 할 말도 있었고.

“야야, 수업 들어.”

“어엉? 어어어엉?”

“시끄러.”

“송현주우우우우운.”

“시끄럽다니까. 선생님께 들린다.”

반삭발 머리로 시원하게 민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의 눈치를 한번 보고 날 봤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날렵한 얼굴처럼 녀석의 장점은 민첩함과 체력, 그리고 운동 능력이었다.

녀석이 따지듯이 말했다.

“송현준. 수업이라니 뭔 소리냐. 난 다음 기말고사 때 전교 꼴찌 할 거라고.”

“지랄하네.”

박종혁은 킥킥거리면서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자기 왼쪽에 앉아 있는 다른 축구부원을 보며 물었다.

“얘는 안 깨우냐?”

“안 친해.”

“깨워서 더 어색하게 만들어줄까?”

“제발.”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주자 박종혁은 또 한 번 소리 없이 킥킥댔다.

수업하는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박종혁에게 본론을 얘기했다.

“야 근데 너 내일 시간 있냐? 토요일이잖아.”

“그런 거 없다. 토요일에도 훈련 있고 일요일에는 선배들이 부를걸?”

운동부 녀석들이 괜히 수업 시간 때 잠자는 게 아니긴 했다.

새벽부터 훈련하고 오전 수업 듣고, 오후 수업 빼고 자기 전까지 훈련하고.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주말에도 훈련해 대고 쉬는 날에는 선배들이 불러대니 어떻게든 쉴 시간을 보상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당장 제대로 도와줄 만한 애가 얘밖에 없기도 하고, 할 것도 있었고.

“토요일은 오전 훈련만 할 거 아냐. 난 오전에 수업 듣고 넌 훈련하고 오후에는 나랑 놀자.”

“놀자고? 여자애들 불러서 노래방? 아니면 우리끼리 PC방?”

“아니, 간만에 공이나 차자고.”

박종혁이 정색했다.

“꺼져. 꿀 같은 쉬는 날에 너랑 공을 차라고?”

“아 제발.”

“근데 네가 웬일이냐?”

“다시 시작해 보려고.”

“……오?”

박종혁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와 같은 축구부에 있었고, 중학교도 함께 와서 내 사정을 알았다. 투덜대긴 해도 마음은 착한 녀석이다.

“그래 한 번만이다.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어.”

“예. 형님.”

역시 이렇게 말해줄 줄 알았다. 아마 한 달은 도와줄 거다.

박종혁은 이제 잠이 다 깬 건지 내게 몸을 기울이며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근데 정말 다시 할 거? 축구부 들어오게?”

“아마도? 근데 일단 내가 할 수 있는지 테스트 좀 해보게. 거기에 훈련 따라갈 체력도 안 될 것 같으니까…….”

“오오오, 본격적이구만 친구. 내 제대로 도와주겠네.”

“요즘에는 사극 보냐?”

“어떻게 알았냐?”

우리는 서로를 보며 킥킥댔다.

그리고.

“현준! 종혁! 수업 시작한 지 10분 지났는데!? 둘만 아주 신났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둘 다 뒤로 나가서 서 있어!”

선생님에게 들켜 선 채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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