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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3화 (3/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3화

오랜만에 꽤 예전의 꿈을 꿨다. 세 번째 전생이었을까 네 번째 전생이었을까.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알았었나…… X바, 진짜 오래됐네.

박종혁과의 술자리였다. 변성기가 완전히 지나 굵어진 녀석의 그리운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지며 눈을 떴다.

컴컴한 천장이 눈앞에 보인다.

“일어나야지.”

나는 어제 회귀했고, 열한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어제는 저녁 내내 방에 틀어박혀서 이번 인생에서 해야 할 핵심적인 일들을 정리했다. 그렇다 보니 예전에 있었던 일을 꿈으로 꾼 모양이었다.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다섯 시. 첫 아침부터 시작이 좋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어젯밤에 챙겨놓은 가방을 메고, 방구석에 얌전히 모셔져 있는 축구공을 들었다.

피버노바. 2002년 월드컵 공인구다. 우리나라가 이룬 기적의 증거. 볼 때마다 생각이 많아지는 공이다.

나도 이들처럼 기적을 이루기 위해선…… 이번 생에서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더 자고 싶어도 나가야지, 가자.

양말을 신고 방문을 열었다.

거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

문제집을 풀던 형이 볼펜을 든 채로 손을 흔들었다.

이번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형이다. 형은 고등학교 3학년이다 보니 야간자율학습을 한다고 내가 자고 있을 때 집에 왔을 것이다.

“좋은 아침. 운동 좀 하고 오려고.”

“올. 정신 차렸네.”

“내가 이 정도긴 해.”

형은 피식 웃었다. 어젯밤에 어머니에게 내가 축구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는 얘길 들었을 것이다. 형은 그런 얘기는 일절 않고 늘 하던 대로 손을 내저었다.

“개소리 그만하고 다녀와.”

“응, 형도 고생해~.”

“엉.”

자고 있을 아버지, 어머니, 동생을 깨우지 않기 위해 나는 조용히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소리 나지 않게 닫았다.

그리고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축구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침마다 세워놓은 계획이 있었다.

큰일도 기본부터. 아침에는 체력을 끌어올리고 코디네이션 훈련을 통해 몸이 다양한 움직임에 익숙해지게 만들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이 동네에서 직선거리가 가장 길고 교통사고의 위험이 없는 우리 중학교 운동장으로 가야 한다.

10분 정도 가볍게 뛰니 운동장에 도착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있는 시계는 새벽 5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시간에도 어르신들은 운동장 테두리를 따라 열심히 걷고 계셨고, 축구부 애들은 창고를 막 열고 있었다. 6시부터 시작할 훈련을 위해 장비를 꺼내고 공을 꺼내기 위해서겠지.

대부분 1학년으로 보였고, 2학년도 간혹 보였다.

그때 까무잡잡하고 길쭉한 녀석이 날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어이!”

“어어!”

“어어어어!?”

“어어어어어어!”

괴상한 소리에는 괴상한 소리로 답해준다.

친구 박종혁은 내가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않자 내 쪽까지 뛰어왔다.

우리는 으어어 거리며 장난치다가 킬킬 웃고 대화를 시작했다.

“뭐 하러 왔냐?”

“운동하러 왔지. 운동장 가로질러서 좀 뛰려고. 여섯 시부터 훈련 시작하지?”

“어.”

“아침에 운동장 다 쓰냐?”

“어. 뺑뺑이 돌릴 거 같은데?”

뺑뺑이는 운동장을 몇 번이고 달리는 구보, 그러니까 달리기를 의미한다.

“여기서 해야 할 것만 빠르게 하고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야겠네.”

“왜? 그냥 하지.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외곽 돌잖아.”

“축구부 감독한테 찍혔거든.”

“빠따한테?”

축구부 감독 지상철은 가끔 몽둥이를 들고 애들 엉덩이를 패는 경우가 있었기에 빠따라는 별명이 있었다.

“엉. 교무실에서 찍힘.”

“처음 듣는 얘긴데.”

나는 간단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줬다.

“아이고, 빠따 있는데 그런 얘길 왜 하냐.”

“안 들릴 줄 알았지.”

“X신. 암튼 오늘 오후에 놀자고 했지?”

“놀기는. 공 차는 거 도와주기로 했잖아.”

“에이, 안 먹히네.”

박종혁은 낄낄거리며 웃다가

“고맙다 친구. 너만 믿는다.”

내 너스레에 더 크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고 있는데.

“야! 박종혁!”

“예에!”

마침 축구부 선배가 박종혁을 불렀다.

박종혁은 능글맞게 대답하며

“이따 보자.”

빠르게 뛰어 돌아갔다.

난 축구부 애들한테 방해가 안 될 장소에 가방을 놓고, 운동장 끝으로 걸어가며 몸을 풀었다.

혼자서 체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에는 이 시절에도 인터벌 훈련, 회귀 직전에도 인터벌 훈련 뿐이었다.

운동장을 가로로 전력 질주, 원래대로 돌아갈 때는 천천히 뛰기를 반복한다. 전력 질주할 때는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 하면 안 된다. 온 힘을 쥐어짜 내야 한다.

이걸 제대로 한다면 어떤 운동선수라도.

“흐에엑. 흐엑. 헉. 헉.”

이렇게 된다.

불과 5분 만에 내가 숨을 쉬는 건지 몸을 들썩거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 나는 계속해서 달리고 또 달렸다.

토악질을 하며 달렸다. 위액이 섞여 나와서 시큼했지만, 그래도 달려야 했다. 천천히 달릴 때 침과 위액을 뱉어내고 계속 달렸다.

이건 몸의 반응이었기 때문에 회귀를 몇 번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강인한 체력은 어릴 때 만들수록 좋으니 몸을 가혹하게 다뤄야 했다. 그럴수록 더 튼튼해지니까.

아드레날린이 나오는데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한 인터벌 훈련을 견딘 나는 마지막 왕복을 마치자마자 모래 운동장에 무릎부터 꿇고 그대로 엎어졌다.

“흐어, 흐억. 헉. 헉. 헉. 퉤퉤.”

모래가 입에 들어가는 바람에 팔로 몸을 지탱해서 숨을 계속 골랐다.

그때 누가 내 머리맡에 다가온 게 보였다.

힘이 없어서 고갤 들 수가 없었다.

“너 우리 학교 다니니?”

“에, 네, 에, 헉…… 허억…….”

“몇 학년이니?”

“이, 이, 일……”

“일학년?”

“예. 예에.”

“혹시 축구부 들어올 생각 있니? 처음 뛸 때부터 쭉 지켜봤는데 되게 근성 있어 보이네.”

듣다 보니 익숙한 목소리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몸을 가누기 어려웠지만 난 억지로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아.’

회귀를 한다고 언제나 같은 상황만 만나는 건 아니다. 같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변수가 정말 많으니까.

선 얇은 미남의 정석이라고 할 얼굴이 보였다.

역시나 아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이른 시점의 개인 훈련에서 윤태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었다.

윤태상.

축구부 2학년이고 우리 축구부의 차세대 에이스다.

잘생긴 얼굴에 성격도 좋은, 아직 없는 말인 엄친아 그 자체.

그의 인성이 얼마나 좋냐면 2학년에 에이스라 감독이 잡일을 빼줬음에도 매번 일찍 나와 훈련 세팅을 도와줄 정도였다.

축구는 혼자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었기에 내 축구부 생활에 도움을 줄 사람이기도 했다.

잘 풀린다면 나중에 국가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추기도 할 거다.

그러니까.

“제안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최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럼…….”

“그런데 지금은 축구부를 그만둔 지 2년이 넘어서, 일단 뛰는 것부터 해 보고 있어요. 보시다시피 체력부터 엉망이라서요.”

숨을 계속 고르며 정중하게 얘기했다.

“그렇구나…… 축구 경험이 있다면 더 좋네. 기다리고 있을게.”

“네!”

나름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았다. 윤태상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삐익!

“모여! 다들 안 모여? 발 느리지. 발 다 보인다!”

어느새 6시가 된 모양이었다.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축구부 코치가 축구부원들을 다그쳤다.

“뛰어!”

축구부 감독은 게을러서 아침 훈련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럼 다음에 보자.”

“예.”

윤태상은 그 와중에도 느긋하게 할 얘기 다 하고 천천히 뛰어 돌아갔다.

윤태상이 늦는데도 코치는 윤태상을 다그치기는커녕 마지막에 도착한 윤태상의 어깨를 두드리며 친근함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보니 숨이 어느 정도 돌아온 걸 깨달았다.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끔 감독이 아침 훈련에 나올 때가 있는데 여기 있으면 보나 마나 거슬린다고 쫓아낼 게 뻔했다.

나는 우리 학교와 1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이동했다.

크기가 더 작은 대신 중학교 운동장보다 사람이 적었다.

운동장 구석에 도착했다. 씨름 경기장과 시소 앞에 코디네이션 훈련을 위해 준비해 온 장비들을 빠르게 늘어놓았다.

협응, 조화라는 코디네이션(Coordinotion)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내 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훈련을 시작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체력과 민첩성을 비롯해서 축구에 필요한 많은 것을 길러주는 훈련이기에 나중에는 우리나라의 유소년 축구선수들에게까지도 당연한 훈련으로 자리 잡는다. 나중에 말이다.

프로 팀은 이미 도입한 곳도 있었지만, 이 시절 유소년 축구부에서는 코디네이션 훈련의 일종인 스텝 레더(사다리 모양으로 생긴 바닥에 놓는 훈련 장비)를 깔아놓고 잔발 스텝 훈련을 하거나 칼라콘을 깔아놓고 지그재그로 뛰거나 점프하는 게 다였다.

코디네이션 훈련은 훨씬 더 다양하고 팀이나 사람에 맞게 다르게 해야 한다. 그런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만 획일화된 방식으로 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몸이 엉망인 나는 이 널리 알려진 방식으로 시작해야 한다. 널리 알려진 만큼 기본적인 신체 능력을 길러주니까.

나는 먼저 직접 만든 스텝 레더를 깔았다. 집에 있는 마 끈을 엮어서 만들었다.

칼라콘이 없어서 그냥 집에 있는 딱풀이랑 물풀을 가져와서 대충 세웠다.

훌라우프 같은 게 있다면 좋겠지만 들고 다니기 불편하므로 땅에다가 발로 원을 몇 개 그렸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하다.

먼저 스텝 레더를 이용해서 한 칸에 세 번씩 빠르게 스텝을 밟고 한 칸씩 앞으로 나가는 정면 스텝을 연습했다.

반대로 돌아갈 때도 똑같이.

그렇게 열 번 정도 왕복한 후에는 오른쪽으로 나갔다가 앞으로 한 칸 이동하고 다시 왼쪽으로 움직여 스텝 레더 안으로 돌아오는 사이드 스텝을 시작했다.

이후, 한 발에 세 칸씩 전진하는 넓은 스텝, 앞으로 두 칸 갔다가 뒤로 한 칸 이동하는 잔발 연습, 뒤로만 이동하는 후방 스텝 등 다양한 스텝을 연습했다.

스텝 레더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축구 경기 중에는 전후좌우뿐만 아니라 공중전에 바닥까지 모든 부분을 신경 써야 했기에 스텝은 다양하게 밟을수록 감각 강화에 좋았다.

이어서 칼라콘을 이용해서 지그재그로 달리는 것과 가볍게 점프하며 전진하는 걸 연습했고, 그려놓은 원을 이용해서는 멀리 뛰는 것과 양발로 헤딩을 한다고 가정하고 최대한 높게 뛰는 훈련을 했다.

쉴 틈이 없었다. 나는 스텝 레더를 해변처럼 푹푹 빠지는 모래가 가득한 씨름장으로 옮겼고, 똑같은 훈련을 반복했다.

스텝과 발목 강화를 동시에 노리는 훈련이었다.

그리고 시소를 이용해서는 높이를 조절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점프를 연습했다.

몸은 격한 인터벌 훈련으로 완전히 퍼져 있었기에 용을 써서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30분 후, 나는 뻗었다.

“아오, 아놔. 하, 하악. 헥.”

진짜 죽을 거 같다.

저혈압이 온 것처럼 까매지기도 하고 뿌예지기도 하는 하늘을 보며 별의별 소리를 내며 숨을 골랐다.

“후우, 흡. 후우, 흡.”

난 딱 스무 번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억지로 운동을 계속했다. 그렇게 30분을 더했다.

그리고 운동장에 다시 대 자로 누웠다.

후반부 30분은 운동 효율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지만, 몸의 신경을 깨워야 했다. 몸에게 말하는 거다. 나는 계속 이렇게 운동할 거라고.

그러니까 너도 적응하라고.

아직 축구에 완벽하지 않은 이 몸에는 젊음이라는 절대적 무기가 있었다.

이 어린 몸은 호르몬제를 막 때려 박은 성인의 몸처럼 어떻게든 회복하고 적응할 것이다.

매번 그래왔기에 난 확신할 수 있었고, 죽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운동할 수 있었다.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초등학교 건물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7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장비들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아침 먹고 학교에 가야 한다.

주5일제가 아닌 시절의 토요일은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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