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4화
“밥까지 사고 웬일이냐.”
“네가 수고해 주는 거니까 봉사비는 내야지.”
박종혁과 나는 학교 근처에 있는 제육 덮밥 가게에 와 있었다.
수업 끝나고 집에 들렀다가 다시 오면 박종혁이 땡땡이칠 확률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전생에서 녀석은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박종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날 관찰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부터 좀 이상한데…… 말투도 바뀐 것 같고…… 묘하게 건방져진 것 같고…….”
“건방지다니.”
“진짜 이상한데…….”
박종혁은 동물적 감각이 뛰어난 녀석이었다. 나는 마침 다가오는 사장님의 쟁반 위에 들린 우리들의 점심 식사를 가리켰다.
“왔다!”
“크, 왔네.”
사장님이 우리의 식탁 위에 제육 덮밥 두 그릇과 단무지, 그리고 김치를 놓았다.
“맛있게 먹어라~.”
“네~.”
“넵!”
어린 몸은 늘 배고프다. 학교 근처의 음식점은 건강보다는 맛을 생각하기 때문에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건 다 때려 박는다.
하얀 밥 위에 수북하게 쌓인 고기를 보니 군침이 절로 돌며 위가 쿵 내려앉는 감각을 느꼈다. 박종혁도 마찬가지일 거다.
우리는 정신없이 숟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쯤 먹었을 때야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박종혁이 입에 반쯤 밥을 채운 채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아침에 너 X나 열심히 하더라.”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
“태상 선배가 너 간 다음에 나한테 너 아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축구 했다고 했지.”
“그렇구만.”
밥을 꼭꼭 씹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뭐…… 열심히 해봐라. 네가 축구부에 돌아오면 나야 좋지.”
“너 주전 자리 뺏길 수도 있는데?”
“웃기시네. 포지션도 다르면서.”
“나 어디든 다 뛰는 거 알잖아.”
초등학교 시절에는 포지션이라는 게 딱히 없고 그냥 잘하는 놈은 어디서 뛰든 다 잘한다.
그중 가장 잘하는 애들이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같이 앞쪽에 자연스럽게 서게 된다. 축구는 결국 골을 넣어야 하는 스포츠니까.
내 과거를 아는 박종혁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 위긴데? 오늘 너 도와주지 말아야겠다.”
물론,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제발, 불쌍한 중생을 살려주세요.”
“미친놈.”
내가 두 손을 모아서 말하자 박종혁은 킬킬거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당연히 먹은 값은 해야지.”
“역시.”
농담 따먹기를 하다 보니 점심을 다 먹었다. 우리는 오락실에 잠시 들러 소화를 시키고,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두 개의 축구공을 챙겨왔고 신발은 진작부터 신고 있었다.
오늘은 충분히 즐겼다. 박종혁은 언제나 그렇듯이 좋은 녀석이었고, 함께 있으면 에너지가 생기는 느낌을 받는다.
운동장으로 먼저 향하는 박종혁의 뒷모습을 보니 첫 번째 전생에서의 박종혁과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첫 번째 전생에서 나는 무릎부상으로 은퇴해야 했다.
의사에게 사실상 축구선수로는 끝이라는 말을 듣고 구단에도 나가지 않으니, 박종혁이 찾아왔었다.
* * *
작은 원룸에 찾아온 박종혁을 빤히 노려봤다. 내 오른손에는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내 몰골은 말이 아닐 것이다.
박종혁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개의치 않고, 내 앞에 앉아 줄줄이 말했다.
-야야, 집에 박혀 있다고 뭐가 되냐.
-어휴~ 술 냄새 봐라.
-내 삼촌이 사업 확장하는데 너랑 동업하는 조건으로 내가 투자금 넣어주겠다고 했거든? 우리 삼촌이 장사는 빠삭하니까 한번 배워 봐.
-축구를 못 하게 되면 뭐 어때, 괜찮아! 우리 살날 많이 남았잖아! 나도 곧…… 음, 뭐, 하하, 선수 그만두면 사업할 생각이었거든! 그러니까 네가 먼저 가서 길 닦고 있으면 나중에 같이…….
잠자코 있던 나는 녀석의 말 중 한 문장에 반응했다.
-뭐? 축구를 못 하게 되면 뭐 어떻냐고?! 축구는 내 전부였어! 할 줄 아는 건 이것밖에 없고 배운 것도 이것뿐이라고! 내 인생이 날아갔다고!
-아니, 그런 의미가…… 그리고 나도…….
-듣기 싫으니까 꺼져!! 꺼지라고!!!
-……내일 또 올 테니까 진지하게 생각해 봐.
박종혁은 정말로 다음 날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래도 녀석은 계속 찾아와서 몇십 분을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갔다.
그리고 나는 녀석에게 사과도 하지 못하고 어이없게 죽었다.
* * *
박종혁은 내가 가장 힘들 때, 내게 힘이 되어주려고 했던 친구였다. 녀석이 그날 하지 못했던 말이 무엇인지 전생들을 겪으며 알고 있었다.
박종혁도 실패자가 된다. 나보다 조금 늦은 시점이긴 했지만, 아무튼 이대로 두면 녀석이 망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어릴 때부터 신경 썼더라면 이 꼴은 안 됐을 텐데.
또 다른 전생에서 박종혁이 실패했을 때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박종혁은 국가대표급이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 프로리그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도움받을 계획도 있다.
친구로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아주 크니 박종혁이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건 일석삼조의 일이었다.
일할 시간이다.
“박종혁, 일단 몸풀기로 내기할래?”
“내기?”
“응. 누구 슈팅이 더 센지 시합하자.”
내 말에 박종혁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단호하게 되물었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기냐?”
박종혁은 자신만만했다.
내 지금 키는 167㎝, 박종혁의 키는 180㎝. 키만큼이나 박종혁의 힘이 훨씬 좋았고, 전체적인 근육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박종혁과 나는 같은 초등학교 축구부 출신이었고, 포지션도 비슷하면서 겹치지 않아서 친하게 지냈었다. 그렇다 보니 박종혁은 내 킥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킥력만큼은 언제나 박종혁이 위였다.
2년 전에도 그랬는데 축구를 2년이나 쉬었던 내가 슈팅이 센지 내기를 하자니 박종혁은 기가 찰 거다.
당연히 난 자신 있었다.
“내가 축구는 안 했어도 몸 관리는 꾸준히 했거든. 발목 힘은 너보다 좋을 거야.”
박종혁은 코웃음 쳤다.
“그래, 그럼 해보자. 몸풀기로 딱이겠네.”
대결을 꺼리지 않았다.
나는 규칙을 설명했다.
“그러면 페널티 에어리어 선에서 동시에 차서 먼저 골망 흔든 쪽이 이기는 거로 하자.”
“골라인 넘어가는 거로 해야 하지 않나?”
“확인해 줄 사람이 없잖아.”
“그렇네.”
박종혁은 납득했다. 이어서 말했다.
“도움닫기는 딱 두 걸음만 하자.”
“좋아.”
“그리고 내기 내용은…… 내가 이기면 오늘 훈련은 부탁하는 거 군말 없이 따라주기.”
“내가 이기면? 아, 그래. 봐준다.”
박종혁은 자기도 조건을 걸려고 했다가 자기가 너무 유리하다고 생각한 건지 이렇게 말했다.
개이득이다.
“받아.”
나는 박종혁에게 공을 던져줬다. 모래 운동장이었지만 골대 근처에는 페널티 라인이 그려져 있었다. 오전에 축구부 훈련을 하고 남은 흔적이었다.
우리는 공을 내려놓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몇 판 할 거야?”
“딱 한 판만 하자.”
“괜찮겠냐?”
“응.”
여유로운 박종혁에게 그렇다고 선선히 대답하며 슈팅 자세를 잡았다. 박종혁은 하나도 긴장하지 않았다는 태도였다.
저 모습이면 여유롭게 이길 수 있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차는 거다.”
“어이쿠, 찰 뻔했네.”
박종혁은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시작한다. 하나- 둘- 셋!”
우리는 동시에 두 발자국 내디디고 슈팅했다. 내 발에서는 뻥 하는 경쾌한 소리가 났고, 당연하게도 내 공이 먼저 골망을 흔들었다.
“…….”
“어때?”
어깨를 으쓱했다.
박종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다시 해. 내가 진지하게 안 했어.”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기에 난 여유롭게 답했다.
“그래.”
다음번에도 박종혁은 가볍게 패배했다.
“다시!”
“다시 해!”
“다시 하자니까!”
박종혁은 승부욕이 정말 강한 녀석이다. 그렇다 보니 점점 더 발끈해서 도전했다.
축구부로서의 자존심이 있겠지만, 나는 열 번의 전생의 경험을 담아 슈팅을 날리고 있다. 근육이 부족하더라도 기술만 있다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다.
완성되지 않은 박종혁이라면 더더욱.
“…….”
무참히 밟았다.
고질적인 발목 부상에 시달려 꿈도 제대로 못 펼치고 은퇴해야 했던 박종혁을 보기 싫었으니까.
“이제 다음에 하자. 이러다간 슈팅만 하다 끝나겠다. 내기는 내가 이겼으니까 오늘은 내가 하자는 거 해줘야 한다?”
“……그래.”
몇 번 박종혁이 이기기도 했지만, 박종혁은 거의 다 졌다. 한두 번 이긴 걸 가지고 박종혁은 납득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박종혁은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은 절대 못 이긴다는 걸 깨달았을 테니까.
대신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지만 대놓고 물어보진 않았다.
“오늘은 좀 많은 걸 할 거야. 일단 일대일 드리블 돌파. 내가 공격할 테니까 막아봐.”
가볍게 뚫었다.
“이번엔 네가 공격해 봐.”
가볍게 막았다.
“프리킥 찰 테니까 벽처럼 서 줘.”
“내 크로스 받아서 헤딩해 봐.”
“크로스 올려줘.”
“이번에는 땅볼로!”
“롱 킥!”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축구에 익숙하지 않은 몸으로만 열한 번째다. 익숙하지 않은 몸은 익숙하지 않은 대로 다루는 방법이 있었다.
일대일로 연습할 수 있는 축구에서 나오는 다양한 상황을 서너 번씩 시도하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내일 조기축구회에 나가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좋아. 이제 끝이야. 정말 고마워.”
박종혁은 필요한 대답 외에는 일절 하지 않고, 내 훈련을 도와줬다.
훈련 종목을 바꾸고, 내 실력을 보여줄 때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였지만 애써 질문을 참는 것 같았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말이다. 아침 훈련도 해서 힘들 텐데 진심으로 고마웠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오늘은 특별히 팥빙수라도…….”
“야, 너 뭐야?”
박종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눈에는 불신이 가득하다. 화도 난 것 같다.
“뭐긴.”
“이상하잖아. 너무 잘하잖아.”
내 실력은 금방 드러난다. 난 어릴 때부터 규격 외의 천재로 활약해야 했다. 어린 메시나 펠레처럼 말이다.
그래서 숨길 생각도 없었다.
다만, 실력이 갑자기 오른 이유를 그럴듯하게 말해야 했다.
초능력이 생겼다, 같은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면 자길 기만하냐고 화를 낼 테니까.
“나 사실 축구를 포기한 적 없었어. 몰래 개인 훈련을 했어.”
“그걸 왜…….”
“너한테 처음 말해주는 거야. 부모님도 몰랐었거든. 솔직히, 자신감도 없었고.”
“…….”
“오늘 훈련을 도와달라고 한 건 다른 사람이랑 같이 했을 때도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어서였어.”
처음 말해준다는 것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이 담겨 있으니까.
“그래도 말은 해주지. 도와줄 수는 있었을 텐데.”
박종혁은 마치 츤데레처럼 툴툴대며 말했다. 화를 내려다가 그러지 못하게 돼서 저렇게 말하는 거다.
픽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럼 방금 그게 개인 훈련의 결과인 거야?”
“어, 인터넷으로 해외 자료 찾아서 공부했거든.”
“해외 자료?”
박종혁이 관심을 보였다. 아직 세계화가 애매하게 되었던 시대였다. 인터넷으로 접할 수는 있지만, 언어를 비롯한 여러 장벽 때문에 제대로 접하기 어렵기에 해외 자료라는 건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단어다.
“어, 일단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가자. 아무튼 정말 고맙다.”
“뭐…… 그래, 고마워하라고. 개인 훈련한 건 비밀로 해줘?”
“어. 축구부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말아줘.”
“알겠어.”
“고맙다.”
박종혁은 금세 평소 모습대로 돌아왔다. 우리는 공을 챙겨 운동장을 나섰다.
다만 박종혁은 다른 전생에서처럼 내게 말했다.
“그렇게 고마우면 다음 주에 다시 승부해.”
“그래, 얼마든지.”
우리는 학교 앞 문방구로 향했다.
계획대로 잘 풀렸으니 내게 아이스크림이라는 상을 내릴 생각이었다. 같이 고생했고 앞으로도 고생할 박종혁에게는 특별히 팥빙수를 사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