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5화
“아빠 왜 그렇게 웃으세요.”
“그냥, 아들이랑 같이 나와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어제 종혁이랑 공 차고 올 정도니 아들이 진심으로 하려는 거 같아서 기분 좋은 거 같기도 하고?”
“당연하죠. 시작했으면 진지하게. 아빠가 가르쳐 준 거잖아요.”
“암암. 내가 가르쳤지.”
아버지는 기분이 좋은 건지 말이 많았다.
“아들이랑 같이 축구라니. 아빠의 로망이야 로망. 어릴 때 이후로 얼마 만인지…….”
“저도 좋네요.”
“뭐? 이 자식이 왜 이런데.”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팔로 감싸서 조였다.
“아아악. 아파요.”
장난을 받아주려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니 아버지가 머쓱한 표정으로 풀어줬다.
나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오늘 조기축구가 열릴 초등학교 운동장을 쭉 둘러봤다.
몇 번을 봤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지는 풍경이었다.
잔디 경기장은 아주 드물던 시절이라 당연히 모래밭인 운동장이 눈에 들어왔다.
라인을 그리는 아저씨도 있었고 공 상태를 살펴보는 아저씨도 있었다. 대놓고 옷을 갈아입는 분도 계셨다.
콘크리트로 된 스탠드 위에서는 오늘 당번이 육개장 조리에 한창이었다. 멀리서 봐도 육개장인 걸 아는 이유는 운동장 입구까지 매콤하면서 아찔한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으니까.
그 옆에는 막걸리가 궤짝째로 놓이고 있었다. 밥은 담아오신 건지 큰 스테인리스 통이 보인다.
아침을 미숫가루로만 때워서 그런지 벌써 군침이 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전생을 축구부에서 망친 이후, 나는 아빠가 다니는 이 조기축구회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냈고,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상진 형님 오셨어요? 근데 걔는?”
라인기로 운동장에 축구장을 그리던 아저씨가 아버지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 아들이야.”
“그렇게 자랑하던?! 손백호 축구상 받은 걔요!?”
“맞아.”
아저씨의 목소리는 몹시 화통했고, 그 말에 한가하게 공을 튀기던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버지를 놀리듯이 물어봤다.
“자랑했어요?”
“크흠.”
이어서 다가온 아저씨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송현준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인사성도 바르네.”
“똘망똘망하게 생긴 게 상진이는 듬직하겠어.”
“아들 잘 뒀네.”
덕담이 오갔고, 잡담을 나누며 몸풀기를 시작했다. 늦게 온 아저씨들도 인사하며 합류했다.
이미 알고 있는 아저씨들을 틈틈이 소개받으며 몸을 꼼꼼하게 풀었다. 아저씨들의 이름을 기억에서 꺼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트레칭도 하고 공을 주고받기도 하고, 혼자 볼을 다루기도 하고.
내가 여러 방식으로 공을 다루자 아저씨들이 한 마디씩 던졌다.
“이야, 고 녀석 볼 기똥차게 차네.”
“이제 로베르토 있는 팀한테 페널티 덜 줘도 되겠는데?”
이름이 나왔다.
로베르토 그릴로.
정미영 선생님에 이은 내 두 번째 은사님.
중학교 시절 축구부 생활을 즐겁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프로 선수 출신 코치다.
“이탈리아 사람도 양반은 못 되네. 자기 말하니까 딱 오는 거 봐.”
로베르토가 교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로베르토는 이탈리아의 명문 팀 피오렌티나의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금발 머리 외국인이 그런 복장을 하고 있는 데다가,
“아이고, 아저씨들~ 좋은 아침이에요~.”
이탈리아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구수한 한국어를 구사하니 존재감이 넘쳐흘렀다.
로베르토는 가방을 대충 벤치에 던져두고 우리가 몸을 풀고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되게 어려 보이는 애가 왔네. 누구예요?”
“상진이네 아들이야. 롭, 오늘 긴장해야 할걸?”
“왜요? 선수 출신이에요?”
“응, 2년 전까지 축구부였대.”
“와우. 반가워. 난 로베르토 그릴로. 롭이나 로비라고 불러줘.”
로베르토와 악수했다. 로베르토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오늘 재밌겠는데?”
“살살해 주세요. 운동 쉰 지 오래돼서…….”
“하하하, 당연하지.”
로베르토는 내 등을 두들겨줬다.
“자자, 모여봐.”
곧바로 형광색 조끼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 박스를 아버지가 들고 왔다.
“팀이나 빨리 나누자고. 올 사람 다 왔으니까.”
“그래? 그럼 일단 롭이랑 현준이는 나누고, 현준이 팀에 젊은 애들을 많이 넣어야겠네. 상진이는 롭 팀으로 가도 상관없지?”
“좋아! 아들한테 본 때를 보여줘야겠네! 롭, 잘 부탁해.”
아버지가 장난스럽게 웃었고, 나 또한 마주 웃고 말았다.
내 목적은 로베르토의 눈에 드는 것이다 보니…… 죄송해요. 아버지.
30분이지만 좀 고통스러우실 거예요.
조기축구회에서 공 좀 찬다는 아저씨들부터 하나씩 팀이 배정되었고, 실력을 아직 잘 모르는 날 중심으로 한 팀과 로베르토를 중심으로 한 팀으로 나뉘었다.
“우리가 조끼 입을게.”
“한 2점 주고 시작할까?”
로베르토 팀 아저씨들은 자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로베르토는 이 조기축구회에서 호나우두급인 선수였으니까.
하지만 괜찮다.
“안 줘도 괜찮아요.”
“요 녀석 보게.”
“롭 진짜 잘해. 후회한다고.”
내가 자존심을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아저씨들이 날 귀여워하듯 말했다.
로베르토 또한 날 귀엽게 보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럼 그냥 오늘은 가볍게 할까?”
“내기 없이 가자고. 대신 다음 주 요리 당번은 경기 끝나고 가위바위보로 정하고.”
“좋습니다!”
이 조기축구회는 오직 친목만을 위한 곳이다. 그렇다 보니 경기에서 진 팀에서 다음 주에 먹을 요리와 술을 준비해 오는 것이 내기의 전부였다. 아까 육개장 끓이던 아저씨들이 지난주에 패배한 분들이다.
정리가 끝나자 로베르토 팀 아저씨들은 조끼가 든 상자를 들고 우리와 멀리 떨어졌다. 경기 시작 전 작전 회의 시간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그냥 포지션 정도만 정하는 시간이다.
“현준이는 포지션이 어디니?”
조기축구회에 막 가입한 젊은 사람의 포지션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와서 배려해 주는 거였다. 공격수를 서도 좋겠지만, 오늘은 아저씨들에게 좋은 인상도 남길 생각이었다.
“저는 윙백이나 수비형 미드필더 서는 거 좋아해요.”
내 말에 아저씨들의 눈이 반짝였다. 아저씨들 사이에 섞인 2, 30대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되겠어? 재미없을 텐데…….”
“제가 체력 하나는 좋거든요. 막 뛰어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우리 팀 아저씨들의 호감도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조기축구회에서 인기 많은 포지션은 당연하게도 공격수,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다.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축구 매니아 아저씨들은 중앙 미드필더를 맡는 경우가 흔하고, 골키퍼 같은 경우는 전담으로 하시는 분들이 꼭 있다.
경력이 많은데 체력이 떨어지시는 분들은 중앙 수비수를 선다.
그렇다 보니 나이가 젊은 사람이 많이 뛰어야 하는 풀백이나 수비형 미드필더를 선다고 하면 이렇게 좋아하는 거다.
“그렇게 말한다면야…… 수비형 미드필더 어떠니?”
“좋아요. 대신 가끔 앞으로 패스 찌를게요. 그 정도는 되죠?”
“당연하지. 처음 온 거니까 편하게 해. 편하게.”
계획대로다.
하지만, 아버지의 직장 동료여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서수환 아저씨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괜찮겠니? 로베르토는 저기 이태리 프로팀에서 잠깐이지만 선수로 뛰다가 프로팀 코치까지 하다 온 양반이고…… 키도 너보다 훨씬 크고 어른이고 중거리에서 감아 차는 게 기가 막히거든.”
로베르토는 섀도 스트라이커로 뛸 것이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내가 그를 주로 마크해야 한다.
로베르토의 우상은 이탈리아와 유벤투스의 핵심 공격수인 델 피에로, 로베르토는 델 피에로와 닮은 플레이를 하려고 늘 노력한다.
회귀 전에 좋아하는 팀은 피오렌티나인데 왜 델 피에로를 좋아하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자기가 어릴 때 직접 상대해 본 후부터 존경하고 있다고 했다.
로베르토가 어떻게 플레이할지는 머릿속에 다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잘 모르겠는데…… 열심히 해 볼게요. 제가 못 막으면 도와주세요.”
“괜찮아. 오랜만에 뛰는 거라고 했지? 부담 없이 해. 져도 되니까.”
“감사합니다.”
서수환 아저씨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공격수 자리로 향했다. 나는 중앙 수비수 아저씨들 앞에 섰다.
조끼를 입은 로베르토-아버지 팀도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나는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었다.
2년 동안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몸이었기에 체력을 한참 끌어올려야 하지만, 효율적으로 뛰면 되니 괜찮았다.
삑- 삐익!
휘슬이 울렸다. 경기가 시작됐다. 우리 팀이 선공이라 아저씨들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공이 내게로 왔다.
이번 경기에서 로베르토에게 날 증명하는 게 가장 큰 목표지만, 한동안 신세 질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도 싶었다.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것은 세 가지.
개인기를 최대한 하지 않는다.
공을 질질 끌면 안 된다.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망설임 없이 다시 중앙 미드필더 아저씨에게 패스했다. 로베르토는 날 우습게 보는 건지 센터 서클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팀 아저씨가 패스 실수를 했다.
공을 빼앗은 아버지가 로베르토에게 패스했다. 로베르토는 왼쪽 윙어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우리 골대를 향해 다가왔다.
윙어에게 패스하고, 다시 받았다.
그 순간.
“어어?”
“나이스!”
“현준아!”
로베르토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물러나던 나는 패스를 받으려고 로베르토의 시선이 돌아가는 순간 급가속해서 공을 빼앗았다.
당황한 로베르토를 뒤로하고 나는 중앙 미드필더 아저씨에게 패스해 줬다.
“제법인데?”
로베르토는 우연이라 생각하는지 느긋하게 뛰어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로베르토의 여유로운 표정이 굳어지기까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상대 수비에 막힌 중앙 미드필더 아저씨가 내게 백패스 했다.
기다렸던 타이밍이었다.
공격수 서수환 아저씨가 상대 중앙 수비수와 같은 라인에 서 있었다.
여기서 상대가 반응하기도 어렵게 빠르게 패스하는 게 아니다.
“수환 아저씨! 뛰어요!”
상대 팀이 다 들어도 상관없었다. 어떻게 할지 외치고 패스해도 충분했다.
왜냐고?
여기는 조기축구회다. 템포가 엄청나게 느리다. 회귀 전에 하던 대로 패스하면 우리 팀은 공을 받지도 못하고 나만 트롤이 된다.
내 발을 떠난 공이 상대 선수들 사이를 가로질러 수환 아저씨 앞에 적당히 떨어졌다. 수환 아저씨는 공을 이어받아 골키퍼와 일대일로 마주했고, 골키퍼가 뛰어나오기 전에 가볍게 공을 차서 골을 넣었다.
“오오오!”
“나이스 패스!”
골을 넣은 수환 아저씨가 내게 뛰어와 등을 두드려 줬다.
“아저씨 멋있었어요. 누가 보면 선순 줄 알겠는데요.”
“하하하, 이 녀석 보게.”
우리가 골을 축하하고 있는 동안 적 팀은 서로를 북돋고 있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두 골 넣으면 돼요.”
“그래, 롭만 믿는다.”
“내기가 안 걸렸다고 우리가 너무 살살했네. 이제 진짜로 한다?”
아버지의 도발에 나는 부드럽게 웃어줬다.
* * *
“경식 아저씨!”
“지웅이 형!”
“귀남 아저씨!”
불과 10분 만에 우리는 두 골을 더 넣었다.
스코어는 3-0.
처음에는 내 실력을 확신하지 못해 평소대로 중앙 미드필더에게만 공을 주던 아저씨들이 전부 내게 공을 몰아주고 있었다.
“용률이 형!”
더 몰아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조기축구회에 완전히 녹아들기 위해 일부러 풀백한테도 패스하고 백패스도 하고 윙어에게 바로 찔러주기도 하며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승기를 잡은 경기에서 모두가 공을 잡을 수 있도록.
“나한텐 패스하지 말라니까!”
“네!”
물론 공을 잘 다루지 못해 패스가 올 때마다 공을 뻥 걷어내는 중앙수비수 강철 아저씨는 피하고.
“이익!”
로베르토가 내게 무리한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다.
공을 옆으로 살짝만 움직여 슬라이딩 태클을 피했다. 로베르토의 얼굴이 땀과 모래 범벅이 된 건 아까부터였다.
나는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고 팀원들에게 공을 전달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팀의 점유율이 올라가게 됐고, 상대는 거의 공을 만지지도 못해 어떻게든 공을 빼앗기 위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좀 내놔라!”
내게 패스가 오자 이번엔 로베르토가 밀착 마크를 해 왔다. 나는 팔을 이용해서 잠깐 접근하지 못하게 한 뒤 바로 패스해 버렸다.
“하.”
내 패스는 또 한 번 서수환 아저씨에게 전달돼 골이 되었다.
4-0이다.
의욕을 잃은 상대 팀은 조급하게 공격을 시도했고, 우리 팀 수비수들에게 금세 공을 빼앗겼다.
풀백으로 뛰고 있는 지웅이 형이 내게 바로 패스했다.
그러자 로베르토가 파울도 감수했는지 내 뒤에 바짝 붙어 몸싸움을 시도했다. 내 균형을 빼앗고 공도 뺏을 생각이다.
로베르토의 이를 악문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축구는 역시 즐겁다.
나는 다리를 벌려 무게중심을 낮추고 등으로 버텼다.
그리고 공을 받는 척하다가, 다리 사이로 공을 흘려 버렸다.
“X발! 카쪼(Cazzo)!”
내 뒤에 있는 중앙 미드필더가 패스를 받은 걸 본 로베르토는 한국어와 이탈리아어로 연속 욕을 내뱉고는 제자리에 서서 옆구리에 손을 올린 채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카쪼는 이탈리어로 음경, 그러니까 우리나라 말로 ‘X같네’다. 극찬을 들은 나는 그를 향해 씩 웃어줬다.
남은 시간은 10분이었고, 로베르토는 여전히 승부욕이 넘쳤다.
로베르토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덤벼들었고 나는 온갖 방식으로 그를 농락했다.
마르세유 턴이나 플립플랩 같은 화려한 개인기는 안 된다. 이런 개인기는 상대방을 열 받게 할 뿐이지 실력으로 인정하게 하기 어렵다.
팔 활용하기, 등지기, 발바닥으로 공다루기.
오직 깔끔하고 효율적인 기술로만 로베르토를 농락했다.
난 단 한 골도 넣지 않았지만, 점수판에는 6-0이라는 숫자가 적혔다.
상대 팀 아저씨들은 완전히 의욕을 잃었고, 결국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너, 너 뭐야.”
심판이 휘슬을 불기가 무섭게 로베르토는 내 어깨를 잡고 막 횡설수설했다.
로베르토의 얼굴에는 패배감이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좀 느끼하고 변태 같은 얼굴이긴 했지만, 나는 로베르토가 무슨 심정으로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미친, 이 정도였다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도와줄게!
전생에서 내 재능을 처음 본 로베르토가 외쳤던 말이었다.
로베르토는 프로레벨에서도 먹힐 만한 유망주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황홀감을 느끼고 있는 거다.
“2년 쉬었다고……? 대체 왜? 왜 쉬었어?”
“사정이 있었어요.”
“하, 이탈리아에 있었으면 무조건 스카우트해 갔어. 2년 쉰 거면 앞으로 축구 안 할 거야? 너무 아까운데…….”
“아뇨. 이제 복귀하려고 개인적으로 운동하고 있어요.”
복귀한다는 말에 로베르토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내 주변으로 모래 먼지가 날리는 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이런 똥 같은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건 아니지?”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데서 뛰면 무릎 다쳐! 젊을 때는 괜찮지만 선수 생활 오래 못 한다고!”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로베르토는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페이가 세면서 단기로 일할 수 있는 통역으로 한국에 머무는 것뿐이었다. 우리 학교 축구부 감독이 되지 않는 세계선의 그는 언제나 다시 유소년 코치직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는 세리에의 명문 팀 피오렌티나의 유소년 총괄 감독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의 유소년 코치로서의 적성은 지금도 볼 수 있었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그는 뛰어난 유망주를 보면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안달 낸다.
“롭, 졌다고 화내면 안 돼.”
“롭이 오늘 제대로 당했지. 열 받을 만해~.”
어느덧 우리 주변으로 다가온 아저씨들이 놀리듯 말했다.
로베르토는 당황해서 팔을 허우적대며 항변했다.
“아니, 뭘 화를 내요.”
“목소리가 높던데?”
“그건 화낸 게 아니라…….”
“에베베베베.”
장난기 많은 아저씨들이 알이 더 말하지 못하도록 방해 공작을 펼쳤고, 말문이 턱 막힌 로베르토는 귀가 빨개지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어도 장난치고 싶을 때는 애가 된다.
나도 아저씨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나이를 먹어봤기에 잘 안다. 속은 별다를 게 없고 겉만 나이 든다.
그래도 나는 로베르토를 구해주기로 했다.
“맞아요. 롭 형이 제 칭찬을 해주고 있었어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저씨들은 머쓱해 하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아들아……. 인정사정없더구나…….”
마침 아버지가 좋은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거니까요.”
아버지의 불평을 시작으로 화제가 전환되었다. 내 말에 아저씨들이 크게 웃었다.
“말 잘하네!”
“아들 잘 뒀다!”
지친 아버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 와중에 아들 칭찬한다고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상진이! 네 아들 뭐야?!”
“당장 국가대표로 뛰어도 되겠는데? 하하하하!”
“2년 쉬었다더니 거짓말 아니야?”
“패스가 딱딱 발 앞에 오는데 이렇게 받기 편한 패스는 처음이라니까?”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은 대체로 목소리가 크고 호탕했다.
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니 뇌가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버지도 이 조기축구회의 일원이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점점 좋아지다가 이제 대놓고 웃기 시작했다.
“그럼! 누구 아들인데!”
내가 축구를 그만둔 2년 동안 마음 고생 하셨을 테니 이 정도는 봐 드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화제가 바뀌었다.
“근데 후반전 이대로 가도 되나?”
“그냥 싹 엎고 팀 다시 짜지.”
로베르토 팀에 소속돼 있던 아저씨들이나 우리 팀 아저씨들이나 모두 동의했다.
게임이 이미 너무 기울어지고, 경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남은 경기는 적당히 할 생각이었다. 로베르토의 눈에 들기 위해 이 악물고 진지하게 한 거지 조기축구는 이렇게 하면 재미없다.
조기축구는 프로축구처럼 죽기 살기로 안 해도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니까.
“근데 영대 형님은 안 오시나?”
“오늘 아예 밥 먹을 때 오거나 안 오실 수 있다고도 그러던데.”
그래도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전반전에 로베르토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목표였다면 후반전에는 영대 형님이라는 사람의 눈에 띄어야 한다.
영대 형님이라는 사람은 그동안의 경험상 후반전이 끝나갈 무렵에 오기 때문에 막바지에만 힘을 주면 된다.
운이 나쁘면 타이밍이 어긋날 수도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감수해야 한다.
아무튼, 최선을 다하자.
“좋아, 가자고!”
쉬는 시간이 끝났다. 아버지의 힘찬 목소리와 더불어 후반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