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7화
-난 세계에 이름을 알릴 정도의 대단한 선수는 못 됐네.
회귀 직전, 그러니까 열 번째 전생에서 박종혁이 내게 했던 말이었다. 녀석은 그날 은퇴식을 해서 감성에 잔뜩 젖어 있었다.
난 녀석이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프로 입단에서 살아남아 국내 리그에서 주전으로 뛴다는 건 그것 자체만으로도 재능이 있었다는 증명이다.
탈락한 사람들의 좌절한 얼굴들을 기억하기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박종혁은 잘했고, 잘 살아남았다.
국내 리그에서 주전이나 후보를 오가며 꾸준하게 뛰었고, 국가대표로 두 경기 출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솔직하게 너 정도면 대단하잖아- 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그렇게 말하면 기만이거든. 스트라이커랑 중앙 미드필더 두 자리에서 월드 베스트 받은 놈이…… 심지어 중앙 미드필더 뛸 땐 다른 역할로 두 번 받았잖아.
-그렇게 말하니 할 말 없네.
-부러운 새끼.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정신 나간 놈. 따라갈 생각도 안 든다.
열 번의 전생 전부에서 박종혁과 친하게 지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여덟 번은 녀석이 어떤 축구 인생을 보냈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그래서 확신을 두고 장난스럽게 물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후회하냐? 나랑 인생 바꾸자고 하면 바꿀래?
-아니.
녀석은 참 단호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니까.
박종혁은 말 그대로 사랑받는 선수였다. 같이 뛰는 동료뿐만이 아니었다. 감독, 코치, 팬, 심지어 구단 직원들까지 녀석을 좋아했다.
은퇴식에서 대체 몇 명이나 울었는지 모를 정도로 좋은 축구 인생을 보냈다.
그렇기에 내 두 번째 전생에서의 박종혁과 달랐다.
녀석이 첫 번째 전생에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 두 번째 전생에서 알 수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박종혁도 선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던 거였다.
박종혁은 고질적인 발목 부상을 앓다가 29살에 은퇴해야만 했다. 그리고 날 툭하면 술자리에 불렀고, 언제나 술에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현준아. 나 부끄러워 죽겠다. 이 구단에 뼈를 묻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이딴 식으로 뼈를 묻을 생각은 없었다고.
-사람들을 실망시켰어.
-그냥 다 미안해.
두 번째 전생의 박종혁은 특이한 녀석이었다.
첫 번째 전생의 나는 박종혁처럼 비참하게 은퇴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과 달랐다. 첫 번째의 나는 나만 생각했지 주변 사람들에게 약속한 걸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았다.
-X발…… 어릴 때부터 꾸준하게 해야 했는데.
녀석은 내가 본 그 누구보다 팬을 생각할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술에 취해서 헛소리하는 척하며 약속을 했다.
-근데 만약에 말이야.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너한테 그 운동 강제로 시켜도 돼?
-당연하지. 하루에 30분씩만 했어도 이 지경 안 났다. 근데 그때 내가 시킨다고 하려나.
박종혁은 시뻘게진 얼굴로 어린 시절을 되새겼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태상 선배 제외하고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태상 선배도 언젠간 제칠 거라고 믿었고…… 그래서 무의식중에 거만했던 거 같고.
그럴 만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나이대까지는 성장이 빠르게 끝난 선수들이 신체 능력만으로 잘하는 경향이 있다.
박종혁은 초등학교 6학년 때에 180㎝를 찍고, 그 이후로 성장이 멈췄다.
-그래서?
-태상 선배만큼 큰 벽을 느낀다면 나도 바뀌지 않을까?
-그 벽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나면 어떨까?
-딱인데? 너 그때 운동 쉬어서 몸도 엉망이었잖아. 심지어 호빗이었고.
-이 자식이 호빗이라니.
중학교 1학년 1학기 당시 내 키는 167㎝ 정도였다.
170㎝라고 거짓말하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물론 나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급격하게 성장해서 185㎝까지 자란다.
-지금은 크잖아…… 봐줘…… 인생 망한 놈의 넋두리라고.
-그래.
-발목뿐만이 아니야. 기술도 갈고 닦았어야 했어. 축구를 우습게 알았어.
-그럼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정신 차리게 해줄게. 아주 짓밟아줄까?
-그래, 아예 뭉개 버려라. 한 번 뭉개는 게 아니라 계속.
-약속했다. 원망하지 마.
-크크, 그래.
두 번째 전생에서의 기억은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제나 노트에 적고 되새긴다.
이 이후 나는 박종혁과 밑바닥까지 속을 터놓고 얘기한 적은 없었다.
녀석은 나의 네 번째 전생부터 특별한 굴곡 없이 무사히 은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세 번째 전생 때 실수해서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남남이 된 적이 있긴 했지만, 그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래, 실패하지 않았다.
* * *
중학교 운동장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뒤섞여 노는 야생의 장소.
그렇다 보니 운동장 골대를 차지하는 건 2학년이나 3학년…… 그중에서도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축구부 소속인 경우가 많았다.
“선배님들. 딱 5분 안에 끝내고 빠지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규율이 센 집단이라도 박종혁처럼 싹싹한 녀석은 사랑받는다.
서글서글한 박종혁은 골대를 빌리고 있었고, 축구부 선배들은 선선히 그러라고 했다.
우리 뒤에 교복을 입고 우르르 몰려든 학생들을 보고 조금 질겁한 기색도 보였다.
“근데, 뭐 하려고 이렇게 모인 건데?”
“친구랑 누가 더 슈팅 속도 빠르나 내기했거든요.”
“너랑?”
축구부 선배는 고개를 갸웃했다. 박종혁의 신체 능력은 무척 뛰어났기에 슈팅을 비롯한 킥력도 정평이 나 있었다.
“제 친구도 좀 차요.”
“아…….”
축구부 선배들은 그제야 박종혁 옆에 있는 날 보고, 내 가슴팍에 달린 이름표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납득한 듯 고개들을 끄덕거렸다.
축구계는 은근히 좁다.
같은 피라미드 안에서 탈락자들만 걸러지는 구조다 보니 뛰어난 몇몇 이름은 알려질 수밖에 없다.
날 몰라본 윤태상이 이상한 거다. 윤태상은 내가 축구를 그만둔 해부터 축구를 시작한 이질적인 경우니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지만.
“안녕하세요. 송현준입니다.”
나는 꾸벅 허리를 숙여서 인사했다. 몇 명은 얼마 후에 같은 팀으로 뛰게 될 테니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그래.”
“잘 해봐라. 우리도 구경한다?”
“네!”
박종혁이 대신 대답했다. 토요일에 완벽하게 졌기에 불안하겠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
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박종혁은 결의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날 반드시 이겨보겠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언제나 승부욕이 꽤 있는 녀석이다.
나중에 만날 어떤 녀석처럼 병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규칙은 단순해. 골대에서부터 20걸음 떨어진 곳에서 나랑 종혁이가 동시에 슛을 할 거야.”
나는 심판을 봐준다고 자청한 친구 지상준에게 규칙을 설명해 줬다.
페널티킥보다 조금 더 먼 거리에서 동시에 찬다. 나는 오른발잡이, 박종혁은 왼발잡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 공이 부딪히면 무효고 골라인을 먼저 넘기는 쪽이 이긴다.
우리 둘이서 할 때는 골망을 흔든 쪽이 이기는 거였는데 이번에는 친구들이 골라인을 넘어가는 거 직접 보고들 판정해 주겠다고 했다.
인간 VAR이다.
“판이 커졌네.”
“그러게.”
박종혁의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들에서도 대부분 구경꾼이 이렇게 많았다.
그래서 큰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공을 들고 스무 걸음을 걸어 제자리에 섰다.
친구 놈들은 들고 있던 물통으로 우리 앞에 선을 그었다.
“오늘은 내가 이길걸?”
박종혁이 공을 자기 발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나 또한 공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박종혁을 바라보며 웃어주려고 했는데, 박종혁의 결의에 찬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갑자기 불편해 고개를 돌렸다. 뭐지.
“빨리하자……! 첫 번째!”
지상준은 구경꾼이 많아서 그런지 목소리를 살짝 떨며 외쳤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과 골대를 번갈아 봤다. 평상시의 루틴대로 하고 있는데도 묘하게 몸이 이상했다.
차분한 게 아니라 정신 사나운 느낌이다.
“하나, 둘, 셋!”
지상준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와 박종혁은 셋 하는 타이밍에 동시에 공을 찼다.
회귀의 원리는 모른다.
다만 경험으로 체득한 건 있었다.
몸이 어려지면 영혼이 신체의 영향을 받는 건지 머리가 맑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과거에 겪었던 일은 실제로 겪은 게 아닌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는다.
하지만, 수천, 수만, 수억, 어쩌면 수십억 번을 반복했을 킥 같은 건 영혼에 새겨지는 건지 잊히긴커녕 회귀를 거듭할수록 더 정교해진다.
나는 공이 완벽하게 발등에 얹히는 느낌을 받았다. 공은 완벽한 직선을 그리며 골망을 흔들었다.
한 타이밍 늦게 박종혁이 찬 공이 내 공이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
“…….”
나는 박종혁이 입술을 깨무는 걸 보며 친구들을 비롯한 구경꾼들이 술렁이는 소릴 들었다.
“오와아…….”
“봤어?”
내가 이 시점에서 박종혁을 이기기 위해서는 완벽한 킥을 성공해야 했다.
이론은 이게 다야?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단순하다.
완벽한 각도로 디딤발을 밟고, 공이 가장 튀어나온 부분과 발등에서 가장 튀어나온 부분을 완벽하게 부딪친다. 그렇게 내 위치에서 골대까지 정확히 직선으로 꽂아 넣는다.
박종혁이 진 이유는 단순했다.
박종혁은 지금의 나보다 신체 능력이 더 뛰어나고, 같은 기술로 공을 차면 나보다 빠를 거다.
하지만 박종혁의 슛은 나처럼 완벽한 직선으로 골대로 향한 게 아니라 휘어졌다. 그리고 완벽한 임팩트로 공을 차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힘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는 공을 다시 가지고 돌아왔다.
“두 번째!”
조금이라도 방향이 틀어지거나 임팩트 실수를 한다면 신체 능력이 더 뛰어난 박종혁에게 질 수밖에 없다.
기술을 이용해 내 몸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효율을 뽑아내야 한다.
“하나, 둘, 셋!”
“오오오!”
이번에도 실수하지 않았다.
내 슛은 완벽한 직선을 그렸고, 박종혁의 공도 이번에는 직선으로 나가긴 했으나 이런 식의 슛이 익숙하지 않은 건지 임팩트가 약했다.
“현준이 축구 했다는 거 구란 줄 알았는데 진짜였네.”
“공이 진짜 신기하게 날아간다.”
“요즘 다시 운동한다더니…….”
주변 사람들의 감탄은 당연했다. 완벽한 슈팅은 독특한 소리가 나고 공의 궤적이 뭔가 달라 보이는데,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게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치 노래에서 음정 박자 목소리가 딱 맞는 순간처럼 말이다.
“현준아 가자!”
“송현준! 송현준!”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내게 외쳤지만, 이상하게 계속 더 몸이 굳었다.
박종혁의 굳은 얼굴에 무언가가 겹쳐 보인다.
“세 번째!”
실수했다.
회귀 초반에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실수였다. 영혼이 기억하더라도 그걸 수행할 몸이 아직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종혁은 골을 넣었고, 나는 공이 아예 이상한 곳으로 튀는 바람에 구경 중이던 키 큰 여자애가 내게 공을 던져줬다.
그 공을 받으며 왜 컨디션이 이상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떨떠름한 얼굴을 한 박종혁에게 나이 들고 술에 절어 폐인이나 다름없게 됐던 박종혁이 겹쳐 보이며 환청이 들려왔다.
-꺼져.
세 번째 전생에서의 박종혁이다.
-네 말대로 하면 잘 됐을 거라고? 왜 다 아는 척해?
-왜 자꾸 찾아오는 거야! 네 얼굴도 보기 싫다니까!
환각이다.
현실의 박종혁은 그런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내게 들리는 건 환청이다.
“현준아? 갑자기 왜 그래?”
숫자를 세던 지상준이 내게 물었다.
“야, 갑자기 왜 그래? 얼굴이 하얘졌는데.”
박종혁도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니 내 얼굴이 완전히 굳어져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웃었다.
“방금 내가 너무 못 찼잖아. 민망해서. 아하하…….”
“그런 거야?”
박종혁도, 친구도 피식 웃고는 제 자리에 섰다.
나는 양 볼을 손바닥으로 짝 소리 나게 치며 집중했다.
마음을 가다듬는다.
나는 기계다. 나는 지금 공을 차는 기계다.
영혼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다.
-너는 잘나간다 이거냐?
세 번째 전생에서의 나는 이 내기에서 이기지 못했고, 다음번 내기를 하기 전에 박종혁이 훈련 중에 큰 부상을 입었다.
나는 녀석에게 내기를 더 걸 수 없었고, 박종혁은 긴 부상 때문에 조급해진 건지 재활 운동을 무리하게 하다가 또 한 번 다쳤다.
어떻게 복귀를 하고 프로선수까지 되는 데 성공했지만, 그 부상은 계속 박종혁의 발목을 잡았고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박종혁은 프로리그에 데뷔한 해에 은퇴해야 했다.
그리고 폐인이 되어버렸다.
또 다른 전생에서 첫 내기에서 지고도 박종혁이 부상을 입지 않아 잘 풀렸던 경우가 있긴 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전개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그런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네 번째! 하나, 둘 셋!”
동시에 슈팅했다. 나는 아까의 박종혁처럼 입술을 깨물었고 박종혁은 환호했다.
“이예스!”
분명히 제대로 찼는데 마지막에 힘이 빠져 버렸다. 체중을 실었어야 했는데.
“이제 동점이지?!”
“오오오!”
박종혁이 기세등등해서 외치고 구경꾼들이 환호했지만 내 속은 타들어 갔다.
공을 다시 가지고 와서 마지막 승부를 준비했다.
-그만 찾아오라고!
심호흡이다.
여덟 번째 전생에서부터 이런 식으로 과거의 나쁜 일이 환각이나 환청이 되어 날 괴롭히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괜찮다.
내 앞에 보이고, 들리는 것들은 가짜다.
-돈이나 빌려주든가.
그러니까 떠올리자.
-마지막까지 연락해 준 사람은 너밖에 없더라. 미안하고…… 음. 미안하다. 면목이 없네.
세 번째 전생의 녀석은 그런 얘길 하고 이 세상을 떠났었다.
아니다.
떠올리자.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훨씬 더 많았다. 환각이나 환청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좋은 기억을 떠올려 내는 게 가장 쉬웠다.
-네 덕이라니까. 너 때문에 그때 정신 차렸어.
열 번째 전생에서의 박종혁을 떠올렸다. 녀석이 가장 행복해 보였던 회차였다.
박종혁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걸 보면 나도 행복해진다.
월드컵 우승도 가장 큰 행복을 이루기 위한 목표니까.
나는 그걸 위해 마지막 인생을 살기로 했다.
“다섯 번째!”
그러니까 나는 기계처럼 움직여야 한다. 처음부터 실패할 수는 없었다.
“하나, 둘 셋!”
지상준의 목소리가 느리게 들렸다. 내 숨소리도 귓가에 들려왔다.
발을 내디뎠다.
한 발자국에 거리를 잡고, 두 발자국에 디딤발을 디뎠다. 그리고 내 오른발등을 정확하게 공에 맞춘다.
완벽하다.
“오오오오!”
여태까지 중에 가장 빠른 슈팅이 나왔다.
박종혁도 꽤 잘 찼지만, 내 공이 훨씬 더 빠르게 골라인을 지나갔다.
이겼다.
“와아아아!”
“에휴…….”
첫 단추를 잘 끼웠는데 기쁘기는커녕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으아아, X발…….”
많은 사람 앞에서 패배해서 그런지 쪼그려 앉은 채로 얼굴을 가린 박종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박종혁보다 내가 더 위라는 점을 보여줘서 녀석에게 상승 욕구를 들게 해야 한다.
진짜 귀찮은 녀석이다.
그래도 녀석은 우리나라 프로리그의 한 팀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가 될 것이다.
또, 내가 힘들 때 날 절대적으로 지지해 줄 것이다.
박종혁 것까지 공을 챙겨왔다. 박종혁은 그사이 친구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야! 난 너한테 걸었는데…….”
“미안하다…….”
“괜찮아. 내기 이긴 내가 얘 돈으로 떡볶이 쏨. 수업 끝나고 모여. 정문 앞에 가게로 가자.”
“오오.”
“뭐가 오오, 야! 내 돈으로 쏘는 건데…….”
“아무튼 난 이득 아니야?”
짧은 대화 동안 박종혁은 어느새 기운을 차렸다.
우리끼리 얘길 시작하자 구경꾼들은 금세 흩어졌다. 우리는 선배들에게 꾸벅 인사하고 교실로 향했다.
“현준아! 네 슛 진짜 신기하더라. 도움닫기도 안 하고 어떻게 그렇게 세게 차는 거야? 막 뻥! 소리가 나던데.”
“나중에 방법은 알려주마. 하는 건 네 몫이다.”
“오오오, 현준 님!”
친구들과 떠들다가 입술이 아주 살짝 튀어나온 박종혁을 툭 치며 말했다.
“아무튼 내기는 내기지? 내일부터 나랑 같이 점심시간마다 발목훈련이다?”
박종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투덜대듯 작게 말했다.
“……다음에 또 해.”
박종혁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 의욕이 철철 넘쳐흐르는 게 보였으니까.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