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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9화 (9/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9화

김채아를 만난 후, 집에 돌아와서 집에 돌아와서 빠르게 샤워하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아들~ 엄마는 다 봤지롱.”

그리고 식탁에 앉으니 어머니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음흉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뭘요?”

“우후후.”

어머니가 그렇게 웃자 TV로 뉴스를 보시던 아버지와 잠이 덜 깨 반쯤 눈을 감고 있던 여동생이 관심을 보였다. 참고로 형은 7시도 되기 전에 학교에 갔다.

“뭔데 그래?”

“오빠가 뭐 했어?”

어머니는 왠지 모르게 뿌듯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침에 여자애랑 운동하던데?”

“정말?”

“정말이냐?”

이마를 짚었다.

오늘 아침이 두부 된장찌개에 두부조림인 걸 보고 알아차렸어야 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은 아니고 가끔, 시장에 있는 두부를 사러 초등학교를 지나는데 그때 나와 김채아를 본 모양이었다.

“뭐…… 맞아요.”

“와! 오빠가 여자랑…… 얼레리 꼴레리~.”

“밥이나 먹어라.”

어머니처럼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얘기하는 여동생의 머리에 꿀밤을 먹여줬다.

“엄마…… 아빠…… 오빠가 때렸어!”

“때리기는 무슨 손만 갖다 댔는데.”

“그래도 쳤잖아~ 메롱, 바보 멍청이.”

여동생은 이런 장난을 자주 쳤다. 그래서 어머니랑 아버지는 여동생에게서 시선을 옮겨 나만 바라봤다.

여동생도 궁금했는지 장난을 그만두고 날 빤히 바라보았다. 짱구처럼 헤죽헤죽 웃으면서 말이다.

어머니가 물었다.

“그래서 누구니?”

“김채아라고 같은 학교 애예요.”

“김채아? 처음 듣는데.”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여자애들의 이름이 지나가고 있을 거다.

“오늘 처음 본 애예요.”

“오늘?”

“네. 저 운동하는 거 보고 같이하자고 그래서요.”

“그으래? 되게 귀엽게 생겼던데 우리 현준이는 좋겠네~ 여자애가 먼저 말도 걸고~.”

어머니가 히죽 웃으셨다. 여동생도 따라서 히죽 웃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몹시 자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역시 내 아들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아니지. 엄마를 닮아서 그런 거지.”

“에이, 아들인데 아빠를 닮았지.”

“원래 아들은 엄마 닮는 거 몰라?”

어머니랑 아버지가 만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웃었다. 몇 번을 살아도 이런 모습은 한없이 좋았다.

김채아에 대한 질문은 어제 처음 봐서 잘 모른다로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앞으로 아침마다 수시로 이 화제가 올라올 것 같았다.

“잘 먹었습니다.”

아침은 정말 맛있었다. 배뿐만 아니라 마음도 가득 찬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출근을 위해,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가방을 챙겨 현관으로 나섰다. 어머니는 아직 씻지 않은 여동생을 화장실로 끌고 가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둘 다 잘 다녀와~.”

* * *

“어제 야인시대 봤냐?”

“김두한 늙어지고 안 본다니까.”

“정치 얘기 존나 재밌으니까 제발 봐달라고. 내가 고자라니~ 니들도 맨날 이러면서 놀잖아.”

“어 안 봐~ 고자라니는 합성이 웃기잖아.”

등교하자마자 본 건 나와 박종혁의 책상 주변에 모여 있는 친구들이었다.

내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친구 놈의 발을 살짝 밀어내고 가방을 건 후 의자에 앉았다.

“현준아, 넌 봤지?”

“어젠 안 봤는데 지난주 건 봄. 무슨 내용이었는데?”

나이 먹고 보니까 재미있어서 가끔 정주행했다. 야인시대는 2부가 진짜인데 애들은 뭘 모른다. 이번엔 시간이 부족해서 안 볼 거지만 그래도 내용은 다 알았다.

“역시 현준이는 뭘 안다니까. 그러니까…….”

지금 야인시대를 봤다는 친구, 지상준은 역사를 좋아하는 녀석이었는데 야인시대 2부가 근현대사 내용이다 보니 뻑가 있었다. 가끔 고증 때문에 지랄해서 귀찮긴 하지만.

나는 지상준과 열심히 떠들고 내 책상에 앉아 있는 놈과 박종혁의 책상 위에 앉은 놈은 선풍기에 체육복을 말리는 중인 박종혁과 떠들었다.

“얘들아 안녕.”

“안녕하세요!”

그러고 있으니 담임선생님, 정미영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지금은 조회 시간이었다.

시끌벅적하던 반 애들은 선생님이 얘기를 시작하니 알아서 집중했다.

“오늘은 따로 공지할 건 없어.”

“네!”

“근데.”

선생님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른 선생님들 수업 잘 들어. 우리 반 중간고사 성적 꼴찌인 건 알지.”

반 애 중 몇몇이 멋쩍게 웃었다. 특히 저번에 올 빵점을 맞아보겠다고 까불거리다가 진짜로 한 문제 빼고 다 틀린 박종혁은 선생님의 눈을 피하며 딴청을 피우다가 선생님이 계속 쳐다보자 자포자기하듯 손을 들고 외쳤다.

“쌤! 제가 잘못했어요!”

“알면 성의 있게 문제라도 풀어. 그러고 꼴찌 하면 기분은 안 나쁘니까.”

“네!”

오히려 쾌활하게 나오자 반 친구들은 웃었고 선생님도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오늘 하루도 재밌게 보내. 그리고.”

선생님이 교탁을 양손으로 잡았다.

“다다음 주 금요일에 체육대회인 거 알지?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예선 치른다니까 종목마다 누가 나갈지 뽑아야 해.”

체육대회라는 말에 반 친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들뜬 분위기가 되고 있었다. 영향을 받은 건지 나도 설레기 시작했다.

내 인생 마지막 체육대회다.

할 것도 하겠지만, 즐길 것도 즐길 생각이었다.

“종목은…… 에이, 우리 반 진도도 빠르니까 그냥 1교시에 수업하지 말고 체육대회 멤버나 정하자.”

“와아아!!!”

수업을 빼고 다른 걸 한다는 소식에 친구들은 반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나도 동참했다. 신난다.

우리가 잠잠해지길 기다린 선생님은 뚱한 목소리로 우리 모두에게 물었다.

“이것들이……. 다음 시간에는 평소보다 진도 더 나가야 하는데 괜찮아?”

“그땐 그때죠!”

박종혁의 외침에 다들 맞아! 맞아! 하면서 소리쳤다.

그때였다.

“너희들! 정 선생님 계시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

교실 앞문에 마른 두꺼비처럼 생긴 까무잡잡한 중년 남자 선생님이 나타났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정미영 선생님이 나섰다.

“괜찮아요. 배 선생님. 같이 놀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요? 그럼, 뭐. 크흠.”

도덕 선생, 배영호가 헛기침하며 사라졌다.

“뭐냐.”

“노총각이라 히스테리 부리잖아. 저렇게 눈치가 없으니까 결혼을 못 했지.”

박종혁의 작은 투덜거림에 주변 친구들이 소리 죽여 웃었다. 박종혁은 수업 시간에 졸았다가 배영호에게 엉덩이를 맞고 시퍼렇게 멍이 든 적이 있어서 불만이 많았다.

그 웃음을 시작으로 분위기가 얼추 돌아왔다. 정미영 선생님이 교탁을 두들긴 후 말했다.

“자, 자. 그럼 1교시에 보자. 다들 화장실 미리 다녀오고 준비하고 있어.”

“네~ 선생님!”

수업 준비를 이미 마친 나는 배영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축구부 감독 지상철과 친하고, 우리 반이 성적도 떨어지고 정미영 선생님한테 대시하다가 까였다고 툭하면 우리 반과 정미영 선생님께 시비를 거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구분이 안 되는 사람이다.

님이라는 글자를 붙일 이유가 없는, 그냥 배영호다.

“자, 피구 나가고 싶은 사람? 참고로 체육광인 이사장님 때문에 종복이 엄청 많으니까… 참가 안 하고 쉬는 학생은 있을 수 없어. 그러니까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거에 손드는 게 나을 거야. 최소 한 종목은 나가야 해.”

정미영 선생님의 말에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선생님! 중복 출전도 되나요?”

“응, 두 종목까지 가능해.”

그렇다. 우리 이사장님은 나와 같은 조기축구회에 시간 될 때마다 나올 정도로 운동광이다.

그렇다 보니 거의 모든 학생이 반강제로 체육대회에 참가해야 했다.

“이름 적고 있니?”

“네!”

반장 김현호는 분필을 휘날리며 칠판에 우리의 이름을 적고 있었다.

농구, 씨름, 줄다리기, 기마전, 100m 달리기, 400m 계주 등.

서바이벌 닭싸움 같은 기괴한 이름의 종목도 있었다.

“서바이벌 닭싸움 나갈 사람.”

“저요!”

이건 내가 해야지. 체육대회 당일에만 해도 되고, 혼자서 하는 종목이라 편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 이때는 꽤 재미있는 기간이었다. 이 주 동안 체육 시간과 국영수를 제외한 수업 시간을 활용해 체육대회 예선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진도 맞추느라 고생이라는데 학생들은 잘 모르는 부분이니까 뭐, 아무튼 그렇다.

체육대회의 꽃 중 하나인 100m 달리기는 박종혁이 우리 반 대표로 나가기로 했다. 전교에서 손꼽히는 빠른 녀석이니 일 등이나 이 등을 가져올 거다.

나는 400m 계주에도 손을 들었다. 박종혁과 함께.

“자, 그리고 이번엔 7대 7 축구야. 한 명은 골키퍼고 나머지 여섯 명이 뛰고, 음…… 그리고 축구부는 제외! 할 사람?”

다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 박종혁이나 옆의 축구부 친구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사장은 축구부원들이 일반 학생들과 함께 뛰는 것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축구부원들의 부상 위험도 있고, 추계 전국대회 준비 기간과 겹치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고 한다.

전생에서 이사장에게 직접 사정을 들었다.

다만 선생님은 나를 잠깐 바라보았다. 저 행동의 이유도 알고 있다.

“저요!”

“저 할래요!”

“난 골키퍼!”

체육 시간에 축구를 즐기는 반 친구들 위주로 손을 들었다. 반장 김현호와 내 친구무리에 있는 역사 마니아 지상준도 포함되어 있었다.

열 명이 손을 들고 있었다. 그때, 나도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정미영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날 향해 말했다.

“음, 저기 현준이는. 교무실에서 미리 규칙 정하면서 얘기가 나왔는데 초등학교 때 축구부에서 뛴 적 있으니까 안 된다고…….”

“그게 뭐야.”

“이거 현준이 저격하는 거 아니에요?”

손을 들고 있는 지상준과 다른 친구들도 투덜댔다.

선생님은 미안하다는 얼굴이었다.

“회의에서 결정된 거라 선생님도 어떻게 못 하겠네.”

“괜찮아요! 어차피 저 축구 못 나가요. 이미 두 종목에 나가기로 했잖아요.”

“아, 그러네?”

나는 씩씩하게 답했다. 하지만 손은 그대로 들고 있었다.

선생님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그럼 왜 손을 들었냐는 의미겠지.

그래서 본론을 말했다.

“그러면 저 감독해도 될까요?”

“감독?”

이사장은 운동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체육대회의 스케일이 컸고, 남자/여자반 우승팀에게 주는 상금도 상당했다.

반 전체가 여유 있게 고깃집에서 회식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창 많이 먹는 중학생들 기준으로 말이다.

그리고 스케일이 큰 만큼 선생님들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체육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못하면 괜히 고개가 수그러진다고 전생의 정미영 선생님이 얘기해 줬었다.

“감독……? 괜찮을까?”

선생님이 염려하는 기색을 보였다. 당연하다. 우리는 다 동갑내기니까.

하지만 나는 이때를 위해 박종혁과의 대결을 대놓고 했다.

축구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손을 계속 들고 있는 친구들이 한 마디씩 말했다.

“전 좋아요!”

“저도요!”

“현준이 직접 봤는데 장난 아니에요! 2년 쉬었어도 축구부는 이겨요!”

나와 박종혁과 친한 지상준이 내 편을 들어주며 박종혁에게 실실댔다. 박종혁은 지상준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가 선생님께 한 소리 들었다.

조용히 있던 반장 김현호도 입을 열었다.

“현준아. 초등학교 축구부 때 배운 거 많지?”

“응. 다 기억해. 요즘 공부도 하고 있어.”

“그러면 저도 좋아요.”

박종혁과 대결하는 걸 직접 본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내 슈팅은 수많은 연습의 결과였기에 그 소리와 비주얼에 압도된 친구들은 내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역시 여러 사건을 연결해서 계획하면 상황이 편해질 때가 많았다.

친구들의 반응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선생님이 날 바라보았다.

“근데, 현준이는 왜 감독이 하고 싶니?”

선생님의 얼굴은 찰나였지만 진지했다. 나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재밌을 거 같아서요. 감독을 두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잖아요?”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나보다. 선생님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럼 일단 하는 거로 하고 다른 선생님들한테 물어보고 확실하게 알려줄게.”

“감사합니다! 근데 이러다 애들 손 떨어지겠어요!”

“어어?! 미안!”

내 말에 축구 대회 나가겠다고 손 든 친구들이 아우성쳤다. 선생님은 당황하며 가위바위보를 해서 7명을 정하라고 정리했다.

7명이 금세 정해졌다. 나머지 3명은 다른 종목 한 곳에만 나가고 주전 중 누군가가 다쳤을 때를 대비한 예비 명단에 넣기로 했다.

그렇게 체육대회 명단이 다 정해졌다.

우리 대영 중학교 체육대회는 1, 2, 3학년 구분 없이 다 같이 대결하고, 종목마다 점수를 매긴다.

특히, 이사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와 여자반 학생들이 하는 피구, 그리고 체육대회의 꽃인 400m 계주에 가장 큰 점수가 매겨져 있었다. 이 세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팀이 어지간하면 체육대회 종합우승을 거뒀다.

축구와 400m 계주, 난 이 두 종목에서 우승할 생각이었다.

아, 서바이벌 닭싸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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