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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1화 (11/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1화

도덕 선생 배영호였다.

“어이구, 정 선생, 아까는 미안했어~.”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정미영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배영호와는 문자 그대로 어색한 사이였다. 왜냐면 배영호는 정미영이 들어오고 초반에 잘해주더니 식사 자리에서 더 깊은 만남을 가져보는 건 어떻겠냐고 들이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정미영은 당연히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다.

거절당하면 민망할 만도 한데 배영호는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소대로 말을 걸어와 데면데면 지내는 사이였다.

김은주와 정미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배영호는 정미영 옆 의자에 턱 하니 앉아 대화에 끼었다.

“정 선생네 반에 축구부 박종혁이 있지? 이번 100m는 1학년 2반에서 가져가겠네.”

“종혁이가 100m한다고 손드니까 다 내리더라고요.”

“종혁이 엄청 빨라. 축구부 훈련할 때 보면 장난 아니야.”

정미영도 아는 얘기였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배영호가 입을 열었다.

“우리 학교 체육대회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만큼 중요한 거 알지? 준비할 시간도 제대로 안 주면서 성적 나쁘면 이사장님이 술자리에서 한마디 하실 때도 있다니까. ‘학생이 공부도 중요하지만 자고로 기본은 체력 아닙니까?’ 라시면서.”

“아하하, 그래요? 열심히 해야겠네요.”

정미영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자 김은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심지어 따로 성과상여금도 챙겨줘요.”

“정말요?”

“진짜 웃기는 이사장님이라니까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1등한 것보다 더 많이 줘요.”

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긴 들었지만, 상여금까지 챙겨준다는 얘기에 정미영은 신기해했다. 하지만 딱히 욕심이 나지는 않았다.

“저는 애들이 그냥 재밌게만 했으면 좋겠어요.”

“태평하네.”

배영호가 비꼬듯 말했다.

정미영은 당당했다.

“제가 막 재촉해서 1등 한다고 해도 애들이나 저한테 별로 안 좋을 것 같아서요.”

“정 선생은 너무 물렁해. 중학생 애들은 말이야. 아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그러니까 아까도 막 시끄럽고 그랬지.”

“…….”

정미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가 초임 교사긴 하지만, 담임으로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확고했다.

김은주가 배영호 몰래 정미영에게 씁쓸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정미영은 기분이 좀 풀어졌다.

배영호는 정미영의 대답이 없자 입술을 삐죽대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른 종목은 어때? 대회에서도 꼴찌 하면 안 되니까 열심히 해야지~.”

“……선생님?”

잘 참고 있던 정미영이 울컥했다.

“말씀이 좀 그런 거 같은데요.”

“응? 뭐가?”

“저희 반이 체육대회에서도 꼴찌 하면 안 된다고…….”

“그게 뭐?”

뻔뻔하게 나오니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정미영은 화가 났다. 자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이 기분 나빴다.

“저희 반이 중간고사 꼴찌라고 체육대회에서도 꼴찌 한다는 식으로…….”

“뭐어? 난 거기까지 생각 안 했는데?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냥 이번에 꼴찌 안 하면 좋겠다는 뜻이잖아.”

기다렸다는 듯 바로 말하는 태도를 보면 의도한 것 같았지만, 정미영은 지금 자기가 사과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죄송합니다.”

“자자, 그만하세요. 슬슬 쉬는 시간이니까 수업 준비 하자고요.”

김은주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더 말하려는 배영호를 막았다. 그리고 정미영을 토닥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미영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영호는 그대로 앉은 채로 얘기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아무튼, 정 선생네 반에 축구에 누가 나오나? 그 초등학교 때 선수였다는 애는 안 나오지?”

“네.”

“그럼 우리가 이번에도 우승하겠네. 축구부 출신 애들 없으면 우리 애들 세상이지. 상금 받으면 교무실에 오렌지주스 돌릴 테니 기대해~.”

생각해 보면 송현준을 비롯한 초등학교 축구부 출신 선수들의 출전을 막자는 얘길 꺼낸 것도 배영호였다.

어제, 교무회의에서 갑작스럽게 그 얘기를 꺼내서 별생각 없이 그러겠다고 했었는데. 혹시 송현준을 저격했던 건가.

송현준과 박종혁의 대결은 구경꾼이 많았던 만큼 꽤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정미영은 이렇게라도 얘기하고 싶었다.

“현준이는 대신 애들 감독해 주겠다고 했어요.”

“감독? 그런다고 2주일 만에 애들이 어떻게 되나.”

“잘 가르치면 다르지 않겠어요?”

“해보라고 해봐. 심지어 걔 축구 2년 쉬었다며.”

“네…… 수고하세요.”

여유로운 태도가 아니꼬웠지만,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정미영은 자리를 피했다.

정미영은 자기 자리에 앉아 다음 시간에 있을 수업을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분했다.

-잘했어요. 우리 정 선생님이 뭐가 부족하다고 그런 사람을 만나요?

김은주 선생님이 한숨을 쉬며 해줬던 얘기를 떠올렸다. 배영호가 대시 해 왔다고 상담하자 해준 말이었다.

-남 뒷얘기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긴 하는데…… 정 선생님이니까 말할게요. 배 선생님은 참…… 욕심 많고 자존심 센 사람이에요. 꼴 보기 싫을 정도로요. 얼마나 욕심이 많냐면 상여금 좀 더 챙기겠다고 근처 초등학교 지인들 통해서 공부나 운동 잘하는 애들 미리 알아놓고 반 배정할 때 자기 반에 꼼수로 더 데려갈 정도라니까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도 하지 말아요! 알았어요?

정미영은 정정당당한 걸 좋아했다. 그래서 공부가 참 좋았다. 그녀의 경험으로는 열심히 하면 한 만큼 점수로 보답 받았었으니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학년이 다르니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체육대회는 가능하다.

그렇지만, 배영호 선생님의 반은 작년 1학기 체육대회에서는 2등, 2학기 체육대회에서는 1등을 했었다고 했다. 1학년이었는데도 말이다.

3학년으로 갈수록 눈에 띄게 신체가 성장하는 중학교에서는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체육대회든 성적이든 뭐든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정미영은 우울했다.

* * *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점심시간이다.

배가 많이 고팠지만 수업 내용을 가볍게 복습했다.

내가 그러는 걸 박종혁이 턱을 괸 채로 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이상하긴 하다.”

“뭐가.”

“너 말이야 너. 오늘, 아니, 이번 주 내내 모범생인 척하고. 지난주까지는 안 그랬으면서.”

박종혁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중학교 1학년, 공부에 이상한 반항감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이긴 하다.

“모범생인 척이 아니라 모범생이 될 거거든. 지난주에 선생님 말씀 듣고 정신 차렸어.”

“그럼 난 정신 안 차린 놈이냐?”

“어.”

농담이라는 걸 알았기에 박종혁도 내 단호한 대답에 낄낄대며 웃었다.

2교시부터 4교시까지.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들었다.

전생 중에 한 번 작정하고 공부한 적 있는데 그 이후에는 수업만 열심히 듣고 복습해도 상당히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또 보고 싶었다.

겸사겸사 선생님도 좋아하실 거다.

박종혁은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 할 말을 했다.

“근데 축구 감독은 뭐냐?”

“개인 훈련하면서 공부했는데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고, 자신도 있고.”

“그래?”

“그리고 뭣보다.”

“뭣보다?”

“우리 반이 우승하면 고깃집에서 파티잖냐.”

“그거…… 아까도 생각했는데 너무 좋은데?”

“그렇지?”

“응, 고기를 부탁한다?”

“당연하지.”

마침 교실 앞문이 열렸다. 급식당번들이 도착했다.

우리 학교는 따로 식당이 없었기에 급식당번들이 우리 반 몫을 들고 온다.

딱히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정미영 선생님이 두 눈 뜨고 번호순으로 로테이션을 돌리기 때문이었다. 나와 박종혁과 친구들은 급식을 퍼서 자리로 돌아왔다.

“음.”

밥, 오징어 국, 작은 계란찜, 김치, 코다리 조림.

보자마자 딱 든 생각은 ‘채소와 단백질이 부족하다.’ 였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역시 급식은 기복이 심하다.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아침이나 저녁에 영양 보충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밥을 먹었다.

점심을 다 먹고 식판을 반납하고 돌아오니 박종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체육대회는 체육대회고 일과는 일과다.

오늘부터는 박종혁과 함께 점심시간마다 발목 운동을 해야 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렇게.”

운동용 고무 밴드가 있다면 좋겠지만 이 시대에는 쉽게 구하기 어려웠다.

부모님은 운동과는 딱히 관련 없는 직업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받은 자전거 타이어 속 고무를 가방에서 꺼내 박종혁에게 건넸다.

“자, 일단 앉아 봐.”

박종혁은 맨 뒤 구석 자리. 나는 그 바로 옆자리.

덕분에 편하게 운동할 수 있었다.

박종혁의 발목과 종아리 아래에 돌돌 만 수건을 깔고, 발목에 고무를 둘러 내 쪽으로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발을 네 쪽으로 당겨봐.”

박종혁의 발목은 고무의 저항 때문인지 단숨에 올라오지 못하고 끙끙대며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 이걸 할 수 있는 만큼 반복해 봐.”

“이정도야 쉽지.”

박종혁의 발목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종혁의 눈빛이 점차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옆으로 할게. 같은 방식으로 하면 돼.”

“…….”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데도 녀석은 신중하게 발목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 내 방식이 생각보다 체계적이었고, 딱 봐도 발목에 좋아 보였기에 박종혁의 마음도 움직인 것이다.

“이거 꽤 힘들긴 한데…… 뭔가 괜찮은데?”

“뭔가가 아니라 진짜 좋은 운동이니까 점심시간마다 할 거야. 그리고 이번엔 네가 도와줘.”

“좋아 좋아.”

발목 힘과 유연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나 또한 기본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고무밴드 운동을 하고 있으니 반 친구들 몇 명이 다가왔다. 이번에 축구 대회에 나가는 친구들이었다. 예비 명단에 있는 세 명도 뒤에 보였다.

“우리도 할까?”

성실한 반장 김현호가 물었다.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당장 내일부터 예선전이잖아? 수업 끝나고 속성으로 알려줄게. 골키퍼는 누가 하기로 했어?”

“나.”

같이 놀던 무리의 역사 마니아 지상준이 손을 들었다.

지상준에게 악마의 미소를 지어줬다.

“골키퍼 속성 과외는 슈팅 막기밖에 없어. 내가 공 여러 개 가져와서 슈팅 계속 때릴 테니까 계속 막으면 돼.”

“……잠깐만.”

“알겠지?”

“아니, 잠깐만 현준아? 현준 씨?”

지상준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박종혁과의 대결에서 봤던 내 슈팅의 강력함 때문이겠지. 친구니까 가끔만 세게 때리고 적당히 조절할 생각…… 같은 건 없다.

강한 슈팅을 보다가 약한 슈팅을 보면 상대적으로 막기 쉬워진다. 나는 내 슈팅 연습도 겸해서 진심으로 지상준에게 슈팅을 날릴 것이다.

지상준을 무시하며 나머지 아홉 친구들에게 말했다.

“너희들끼리 포지션 정해놓을래? 내가 이따가 직접 보고 바꿀 수도 있겠지만, 일단 원하는 포지션을 알고 싶어서.”

“좋아.”

“너희도. 예비 명단이라지만 같이 하자. 10명이면 우리끼리 5대 5도 할 수 있잖아?”

내 말에 가위바위보에서 져 예비 명단에 있는 친구 셋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김현호를 바라보았다.

“현호야 부탁해.”

“응.”

교칙대로 완벽하게 깎은 각진 스포츠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김현호는 겉모습처럼 공부만 하는 애가 아니었다. 공부도 잘하는데 운동도 꽤 잘했다. 운동 신경이 좋다기보단 머리가 좋고 침착한 기질을 타고났다.

다른 전생에서처럼 나는 김현호에게 필드 위의 감독 역할을 맡길 생각이었다.

“야, 나 다 했는데.”

고무밴드를 잡고 끙끙거리던 박종혁이 날 불렀다. 박종혁의 이마에는 땀이 가득 맺혀 있었다.

선수들은 포지션을 짜기 시작했다.

그동안 박종혁과 함께 다음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엔 시범부터 보여줄게.”

수건 여러 개를 겹쳐 지면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그 위에 한 발로 섰다. 그리고 앞으로, 뒤로, 옆으로 숙이며 발목을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걸 보여줬다.

“따라 해봐. 넌 처음이니까 맨바닥에서.”

“나도 수건으로 해도 되거든. 내 운동 신경 모르냐.”

“해보든가.”

박종혁은 바로 넘어질 뻔했고, 붙잡아줬다. 구경하던 선수 겸 친구들이 낄낄거리며 놀렸다.

“다시 해볼게.”

그러건 말건 승부욕이 발동한 박종혁은 계속 나와 비슷한 동작을 시도했고, 실패를 반복하다 금세 그럴듯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옆에서 계속 완벽한 동작을 보여줬다. 나도 훈련해야 했으니까 겸사겸사.

그리고 훈련이 다 끝나기도 전에 수업 종이 울렸다.

“익숙해지면 점심시간 내로 다 할 수 있을 거야.”

감을 잡아가는 도중에 끊긴 게 아쉬운지 박종혁은 자리에 앉아서 발목을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을 보니 앞으로도 꽤 순조로울 것 같아 안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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