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3화
친구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얼떨떨해하는 기색보다는 승부욕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건 당연히 나지.”
“현준아, 그 패스 하는 방법 좀 알려줘.”
다른 애들이 자기가 잘할 거라고 얘기하는 동안 김현호는 내게 이론을 물었다.
그런 김현호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현호 너는 맨 뒤에서 수비하는 자리를 맡아줘.”
“뭐……?”
김현호에게서 순간 실망한 기색이 읽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팀 전체를 이끄는 사령관 자리야. 우리 팀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고 ‘너’만 할 수 있는 자리야. 너만 아까 ‘유일’하게 내 말들을 다 이해했잖아.”
“…….”
난 김현호를 다루는 방법을 알았다. 찰나였지만 김현호의 눈동자가 커지는 걸 제대로 봤다.
“부탁해도 될까?”
“……응!”
김현호는 리더 자리를 선호했다. 타고난 머리나 운동 신경이나 딱 보통이지만, 김현호는 리더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하는 노력파였다.
노력 덕분에 김현호는 운동과 공부 전부 상위권 수준으로 잘했다.
괜히 학기 초에 반장을 하겠다고 나선 게 아니었다.
“그럼 현호야. 너는 파라 패스 테스트 좀 도와주라. 너희들은 여기에 서고, 현호는…… 이쪽에.”
나는 스탠드 쪽을 바라보며 섰고, 친구들은 스탠드 쪽을 등지고 날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섰다. 그리고 김현호는 그들의 오른쪽에서 공을 받기 위해 섰다. 완벽한 기역 자였다.
“자, 한 명씩 해볼 거야. 한 줄로 서서 한 명씩 해보자.”
“어떻게 하는지 안 알려 줘?”
지상준이 물었다.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아. 라고 작게 말했다.
“일단 해보고 안 되면 알려줄게. 잘할 애들은 설명도 안 듣고 잘하는 경우도 있거든. 내일부터 예선전이니까 바로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안 되면 이 전술은 포기할 수도 있어.”
친구들을 자극했다.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들 중 두 명은 볼을 다루는 센스가 있었으니까.
“너희들도 예비 명단이라고 쭈뼛쭈뼛하지 말고 똑같이 테스트 보고, 똑같이 훈련할 거야. 주전 명단은 제출됐지만, 축구는 많이 다치는 운동이라고. 발목이라도 삐면 바로 교체로 들어갈 수 있어.”
조웅진, 김진규, 이진호에게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말 그대로였다. 경기장 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예비 명단이든 주전이든 똑같이 훈련할 거였다.
교체는 규칙으로 금지돼 있지만 미숙한 중학생들끼리 하는 경기에서 부상은 꽤 흔한 일이었다. 부상 당하면 교체가 가능하다.
여덟 명에게 차례로 패스했고, 여덟 명은 차례로 내가 아까 했던 파라 패스를 흉내 냈다.
단 한 번 만에, 아니, 사실 하기 전부터 누굴 뽑을지 정해뒀지만 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여섯 번씩 기회를 줬다. 왼발로 세 번, 오른발로 세 번.
친구들은 스스로 깨달았다.
합격자가 누구인지.
셋은 우쭐한 기색으로 어깨를 들고 있었다.
“지욱이, 지성이가 서자. 지욱이가 왼쪽 지성이가 오른쪽. 그리고 예비 명단에서는 웅진이인데 웅진이는 오른쪽으로 연습하자.”
이지욱은 흔하지 않은 왼발잡이라 왼쪽 자리에 무조건 넣을 생각이었다. 테스트에서 못하더라도 말이다. 다행히 이지욱은 테스트에서도 잘했다.
이지성은 오른발잡이 중에 볼을 다루는 센스가 가장 독보적이었다. 조웅진은 다른 전생에서 주전으로 오른쪽에서 뛰는 녀석이었다. 예비 명단에 있다니 든든하다.
“성환이는 가운데, 세진이는 왼쪽 공격수, 병근이는 오른쪽 공격수 자리에 일단 서 보자. 너희 셋의 역할이 엄청 중요해. 쟤네가 아무리 파라 패스를 잘해준다고 해도 너희가 마무리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거든.”
실망한 기색의 다섯 명에게도 의욕을 불어넣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보자!”
* * *
“으어어어…….”
한 시간 만에 좀비 떼가 만들어졌다.
친구들은 체력이 좋은 김현호를 제외하고 다 운동장에 눕거나 스탠드에 주저앉아 헉헉대고 있었다.
“X나…… 아파.”
골키퍼 지상준도 죽어 있었다.
파라 패스 연습은 수비 5명, 공격 4명으로 진행됐고, 김현호만 무조건 수비팀으로 보내게 하면서 공격과 수비를 반복해서 시켰다.
처음에는 내 지시가 필요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연습 틀이 잡혔고 나는 그때부터 지상준을 미니 골대 앞에 두고 슈팅을 계속 날리며 막아보라고 했다.
정말 온갖 슛을 다 했고, 특별한 기술 같은 건 안 가르쳤다.
다만, 그냥 전부 팔로 막으려 하지 말고 땅볼 슛일 때는 발로 튕겨내도 된다고, 그리고 1대 1일 때는 빠르게 달려들면서 주저앉으라고.
이정도만 말했다.
굳이 설명이 더 필요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 슛을 이 주 내내 매일 막는다면 실전에서 못 막을 슛은 없을 테니까.
우리 학교에 나보다 슛이 강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근데 말이야. 우리 기본기 연습 같은 건 안 해도 돼?”
김성환이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보고 있는 건 내 발 위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는 축구공이었다.
쉴 틈이 있을 때마다 발등으로 공을 통통 튕기는 리프팅을 하고 있었다.
“궁금하면 알려줄 수는 있는데 지금처럼 실전연습하면서 배우는 게 가장 빨라. 대회 끝나면 자잘한 기술들도 알려줄게.”
“알겠어. 근데 너처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말하면서도 계속하냐.”
“실수도 안 하네. 그 정도면 신기하다.”
“아까 상준이한테 슛하는 거 봤냐. 진짜 살벌하더라.”
“공 휘는 것도 말도 안 됐어.”
다른 친구들도 한 마디씩 던졌다.
“X발…… 난 죽는 줄 알았다고.”
지상준의 한탄에 친구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더 오래 살고 더 많이 했고, 솔직히 말하면 재능도 더 있어서 잘하는 거였다.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운도 컸기에 친구들 앞에서 칭찬을 들으면 쑥스러웠다.
“하하…… 나도 처음에 잘 못 했는데 매일 연습하니까 늘더라.”
“지금은 왜 하고 있는 거야? 허세냐?!”
김성환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농담인 걸 알았기에 나도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별생각 없이 솔직하게.
“시간 날 때마다 연습해야 감각을 유지할 수 있거든. 슈팅이든 패스든 뭐든 기본은 볼을 다루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니까.”
“그럼 매일 하는 거야?”
“어, 하루도 거르면 안 돼. 다시 축구를 시작하려면 하루도 쉴 수 없거든.”
친구들이 조용해졌다.
“내가 뭐 이상한 말 했냐.”
“내가 X나 한심하게 느껴져서 그래. 열심히 해야겠네.”
“공감 또 공감합니다.”
“우리 성실하게 배울게.”
뭘 잘하려면 당연히 꾸준히 해야 한다. 당연한 걸 말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에 그동안 대충 산 게 아니었다는 실감이 잠시 들어서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나도 열심히 알려줄게. 아무튼, 오늘은 수고했어. 내일 잘 해보자.”
* * *
-삐익!
심판을 맡은 체육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운동장 위의 친구들이 고개를 숙였다. 내 주변에서 응원하던 반 친구들과 정미영 선생님도 순간 침묵했다.
“3학년 1반 골!”
“와아아아아!”
지금 우리는 축구 대회 예선전을 치르고 있었다.
상대는 3학년 1반. 덩치 차이가 있어서 친구들이 초반에 움츠러든 게 느껴졌는데 5분 만에 골까지 먹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사장배 축구 대회는 이렇게 진행된다.
1학년 남자반 5반, 2학년 남자반 5반, 3학년 남자반 5반을 두 개 조로 나눈다.
A조 : 1학년 1, 2, 3반 / 2학년 1, 2, 3반 / 3학년 1, 2반
B조 : 1학년 4, 5반 / 2학년 4, 5반 / 3학년 3, 4, 5반
같은 조의 모든 팀끼리 한 판씩 붙어서 1, 2위를 한 팀들을 뽑는다.
그리고 체육대회 당일, 오전에 준결승전을 치르고 체육대회 마지막 종목으로 축구 결승전을 치른다.
그러니까 말이다. 오늘 한 경기 정도는 져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곱 경기 중 한 경기니까 말이다. 나는 친구들의 습득력을 알았기 때문에 점차 잘해질 걸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격 전술만 가르치고 수비 방법 같은 건 가르치지 않았다. 하루 만에 배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얘들아 힘내!”
나는 명목상의 감독이라 정미영 선생님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예비 명단 친구들 세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선생님, 저 잠깐 소리 좀 질러도 될까요?”
“어? 소리?”
“네.”
전반전 20분, 후반전 20분. 총 40분이다.
엄청나게 짧은 시간이었다. 경기장 위에서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다.
시작하자마자 5분 만에 한 골 먹었고, 그 골로 패닉에 빠진 건지 13분이 지나가는데 다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있었다.
파라 전술을 배워놓고 단 한 번도 안 하고 무력하게 얻어맞고만 있단 말이다.
“어…… 해보렴.”
“네.”
정미영 선생님, 응원 나온 반 친구들이 실망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 보여줄 녀석들이 아닌 걸 알기에 나는 짜증이 났다. 그 짜증을 한껏 담아 소리쳤다.
“야 이 멍청이들아! 연습한 거 딱 한 번만 해보자! 어제 개고생한 거 아깝지도 않냐!!!”
내가 소리친 건 지상준이 엉거주춤 공을 막아내고 골킥을 하려고 할 때였다.
지상준을 비롯한 친구들은 날 바라봤다. 믿었던 김현호마저 얼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패닉에 빠진 거다. 저런 상태는 단 한 번에 바꿀 수 있다.
팀 스포츠는 분위기 싸움이고 그 분위기는 단 한 번의 과감한 플레이면 바뀐다.
“뭐 해! 빨리해!”
내 말에 지상준이 지금까지 하던 대로 김성환에게 패스했다. 내가 소리치는 게 신기했는지 3학년 1반 형들은 허술한 진영을 유지한 채 날 힐긋거리면서 비웃는 듯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이때였다.
“김성환! 지금 해!! 이지성한테 패스해!!!”
경기 중일 때 괜히 감독들이 소리 지르고 세게 말하는 게 아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거나 절망하거나 체력이 떨어진 상태일 때 좋게, 길게 말하면 귀에 잘 안 들어온다. 명확하게 큰 목소리로 간결하게 말해줘야 한다.
김성환은 내 말에 움찔하더니 이지성한테 패스했다.
연습한 거 딱 한 번만 해보자는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일까, 아니면 어제 연습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일까.
어제 연습보다 템포가 느리긴 했지만, 김성환은 패스하자마자 돌아오는 패스를 받기 위해 뛰었고 이지성은 이번 경기에서 처음으로 파라 패스를 선보였다.
이지성을 압박하기 위해 다가간 형의 당황하는 표정이 여기서도 보였다.
이지성의 파라 패스는 처음치고는 아주 좋았다.
적당히 느린 속도, 어깨 정도의 애매한 높이, 그리고 완벽한 수직 방향의 패스.
3학년 형은 반응하지 못하고 공을 놓쳤고, 김성환이 패스를 받았다.
김성환은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았는지 볼을 아주 길게 트래핑했다. 공이 나갈 뻔하다가 가까스로 뛰어 잡았다.
그동안 반대쪽 공격수인 박세진이 뛰어 들어가며 외쳤다.
연습한 대로였다.
“김성환 X신아!”
“대충 패스해!!”
다른 공격수 최병근도 말했다.
김성환은 대충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최병근의 말대로 어중간한 패스를 했다. 다행히 공은 박세진 쪽으로 보냈다.
분명히 김성환이 완벽하게 플레이하지 않았음에도 3학년 1반 형들은 따라가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 나오는 상대 중 축구를 제대로 배운 사람은 없었다.
운동 신경 빨, 아니면 취미로 적당히 공을 차던 사람밖에 없다는 거다.
그런 전술도 없는 팀을 상대로 그럴듯한 전술을 내세우면 속도전에서 앞설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복잡한 생각을 건너뛰고 움직이니까.
박세진이 패스를 받았다. 연습했던 대로의 위치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상대 수비 두 명을 끌어들였고 그 덕에 왼쪽 윙 이지욱이 마크 없이 공간을 파고 들어갔다.
박세진은 이지욱의 앞으로 짧게 패스했다.
이지욱은 잡지도 않고 왼발로 공을 골대에 꽂았다.
-삐익!
“꺄아아아!”
“오오오오오!”
정미영 선생님이 비명을 질렀다.
골을 넣은 이지욱이나 패스해 준 박세진, 이 플레이를 만들어낸 김성환과 이지성 모두 얼떨떨해 보였지만 분명히 골을 기뻐하고 있었다.
“잘했어!! 한 번 더 해보자!!!”
엉성해도 괜찮았다. 함께 공격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팀플레이를 성공시켰다.
골이 안 들어가도 괜찮았는데 골까지 들어가니 금상첨화였다.
얼떨떨하던 경기장 위 친구들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스탠드에 앉기 위해 뒤를 돌았다.
앉으려고 움직이는 동안 무수한 시선이 느껴졌다.
예비 명단 친구들은 감탄하고 있었고, 박종혁은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반 친구들도 이상한 감탄사로 날 놀렸다.
아무튼, 자리에 앉는 데 성공하자 이제는 내 옆에 앉은 정미영 선생님의 시선만 느껴졌다.
괜히 마음이 찔려서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선생님, 저 멍청이라고 했지 욕은 안 했어요…….”
그 말에 정미영 선생님은 맹한 표정을 지었다가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내 어깨를 두들겨주며 말했다.
“그래그래, 봐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