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6화
최진호는 대양중학교의 1학년 체육 선생님이다. 그는 정미영처럼 올해 처음 부임했고, 본래 체육 선생님들끼리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체육대회 예선의 심판을 거의 다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일종의 짬을 당했다. 부조리이긴 하지만 군대에서 이미 겪어봤기에 최진호는 웃으면서 하기로 했다.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지루할 줄만 알았던 일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삑, 삑!
“반칙! 발이 너무 깊잖아!”
반칙을 저지른 3학년 학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반칙을 당한 1학년 학생은 오히려 웃으면서 일어났다.
다른 반 학생들과의 대결에서는 이럴 때 싸움이 나서 말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러니한 모습을 자주 봤기에 최진호는 태연했다.
1학년 2반의 경기는 대부분 이랬다.
상대 팀은 학년에 상관없이 울상이 돼서 무리한 태클을 했고, 그런 상황에 익숙한 1학년 2반 아이들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한다.
경기 스코어 2-0.
전반전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승기가 완전히 넘어가 있었다.
1학년 2반 아이들은 특별했다. 아이들이라고 불러야 하나 선수라고 불러야 하나 애매할 정도로.
왜냐면 이 아이들에게는 전술이 있었다. 전술을 함께 수행한다는 건 제대로 팀 게임을 한다는 얘기고 제대로 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보통 선수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경기를 본 최진호는 1학년 2반의 경기를 언제가 기대했다. 경기마다 성장하고, 의도해서 팀 플레이를 하는 모습은 운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재미있고 즐거운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1학년 2반만 특별할까.
다른 반들과 다른 게 뭘까.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했었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야! 야! 이지성! 쓸데없는 개인기는 3점 이상 차이 날 때 하랬지! 다른 애들 헷갈린다고!”
송현준, 저 아이 때문이었다.
친한 동기 정미영에게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부를 했었고 2년간 축구를 그만뒀다가 다시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학생이다.
요즘은 저 학생이 축구선수가 아니라 코치나 선수를 하는 게 맞지 않냐는 생각이 많이 든다.
“저…… 쌤. 전반전 끝난 거 같은데요.”
그때, 송현준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언제 감독다운 모습을 보였나 싶을 정도로 그 나이대 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최진호는 손목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 휘슬을 불었다.
삐익-!
“전반전 끝!”
다행히 10초 정도만 지나 있었다. 경기장에서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최진호는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아 준 송현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최진호는 이어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그늘 쪽 벤치로 향했다.
거기에는 아는 얼굴이 있었다.
“아이고, 언제 오셨습니까? 구경 오신 건가요?”
“응, 고생했어.”
배영호였다. 2학년 5반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최진호의 동기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지만, 경력 많은 선생님인 건 사실이었다.
최진호는 그런 사람 앞에서 퉁명스럽게 대할 정도로 사회성이 없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1학년 2반 애들은 어때?”
최진호는 가감 없이 얘기했다.
“2학년 5반 애들이랑 좋은 승부가 될 거 같아요. 2학년 5반이 개인 기량으로 경기를 풀어나간다고 하면 얘네들은 팀 플레이를 해요.”
배영호의 눈썹이 찌푸려졌지만, 최진호는 좋아하는 1학년 2반을 설명하느라 신나서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요. 중학교는 학년마다 엄청 차이 나잖아요. 체격이. 근데 그걸 팀 플레이로 이겨내고 있다니까요? 정말 굉장해요! 응원하고 싶어질 정도예요.”
배영호가 최진호를 째려봤다. 그제야 배영호의 분위기를 눈치챈 최진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수습해 보려 했다.
“아하하, 뭐 말이 그렇다는 얘기죠. 그래도 2학년 5반 애들이랑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막상 결승에서는 허무하게 질지도 모르고.”
“그래…….”
“그런데 사전 탐색하러 오신 건가요?”
“뭐, 그렇지. 1학년 2반 애들이 잘한다길래.”
이후에 몇 마디를 더 나눴다. 딱히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리고 최진호는 학생들이 다시 경기장에 모이는 걸 보았다.
후반전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저 망할 놈. 생각해 보니까 앉으라고 하지도 않았네.’
최진호는 배영호랑 얘기하는 내내 서 있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최진호는 속으로 투덜댔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하고.”
겉으로는 웃으면서 인사하고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다.
배영호는 벤치에 앉은 채로 다리를 꼬았다. 배영호는 축구를 잘 몰랐다. 하지만, 누가 잘하나 못 하나 정도의, 기본적인 건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다.
1학년 2반은 압도적이었다.
자기가 맡은 2학년 5반이 저 아이들을 이길 수 있을까? 3년 내내 체육대회를 통해 성과급을 최대한 많이 챙길 생각이었는데 머리가 아파졌다.
“아니, 자고 있는데 왜 불러.”
까치집이 생긴 더벅머리를 긁으며 중년의 남자가 배영호 옆에 걸터앉았다.
“언제 왔냐.”
“지금 왔지.”
시답잖은 얘길 나눈 배영호와 축구부 감독 지상철은 친구 사이였다.
“하암~. 그러니까 저 팀이 얼마나 잘하나 봐달라고?”
“어.”
“에이, 축구부도 아닌 애들이 수준이 높으면 얼마나 높다고 저녁까지 산다면서 날 불러…… 오?”
지상철은 체육대회 축구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는 말이 맞을까. 요즘 지상철은 몇 주 앞으로 다가온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것 같아 요즘 술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지난번 폭력 사태는 그동안의 성과와 직접적인 개입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운 좋게 넘어갔지만 성적까지 내지 못한다면 옐로카드 두 장째다. 해고 당한다.
그런 지상철에게도 방금 1학년 2반이 보여준 플레이는 눈길이 갈 정도로 신선했다.
“이야.”
지상철의 탄성에 배영호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감탄만 하지 말고.”
“얘네 전술을 이용할 줄 아네.”
“뭔 전술.”
“하라네 하라.”
“하라?”
“응. 하라 패스를 이용한 전술을 하라라고 부르거든. 파라라고도 하고. 풋살이라고 아냐? 5:5로 하는 소규모 축구인데 거기 선수들이 필수로 연습하는 거야.”
배영호는 당연하게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삐뚤게 기울였다.
지상철은 계속해서 재미있어했다.
“이야. 그렇네. 운동장 다 쓰는 거 아니면 하라가 효과적이겠네. 똑똑하네. 자기들끼리 배운 건가? 쟤네 중에 몇 명 축구부에 뽑을까? 음, 아니네. 기본기가 너무 쓰레기네. 근데 왜 저렇게 잘해? 누가 가르친 것처럼…….”
“쟤.”
“뭐?”
“쟤가 가르쳤다고. 네가 그때 말한 애 있잖아. 건방진 놈 있다고.”
“누구?”
지상철의 눈에 송현준이 들어왔다. 송현준은 경기장의 친구들을 향해 또렷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상철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제야 배영호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쟤가 코치한다고 하더라고.”
“쟤가 맡아서 보통 학생들이 저렇게 됐다고?”
송현준은 이제 팔짱을 끼고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옆에서 신나 하고 있는 정미영, 다른 학생들과는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차분하면서 신중하게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중간마다 들고 있는 노트에 뭔가 적기도 했다.
지상철의 표정이 점점 나빠졌다.
“칭찬 취소.”
“이길 수 있겠냐?”
배영호의 물음에 지상철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희 애들이 잘하기는 하는데…… 전술적인 움직임까지 더해져서는 힘들지 않으려나. 하, 짜증 나긴 하는데 쟤네 전략도 한 개가 아니네.”
같은 파라 패스로 시작됐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중앙의 선수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반대쪽 사이드의 두 선수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서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지상철은 자기가 만약 저 팀을 상대하는 감독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입 밖으로 내뱉었다.
“차라리 좀 거칠게 하게 해서 쟤들을 쫄게 만들던가. 어차피 애들이잖아. 대충 경기장에서 몸으로 몇 번 부닥치면 쫄아서 배운 것도 다 까먹지.”
“흠…….”
배영호는 생각에 잠겼다. 너무 거친 건 이사장이 좋아하지 않았다. 배영호는 직접적으로 학생들을 윽박질러서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타입도 아니었고. 그런 방식은 뒷일이 좋지 않다.
배영호는 자기가 스마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배영호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야, 혹시 말이다. 우리가 만약에 전반전에 밀리면 말이다. 후반전 정도는 축구부 애를 투입해도 되냐? 본인만 꼬드기면 이사장한테는 본인이 주장했다고 그러면 되는 거고.”
“너희 반 축구부면 박범철? 싫어 이 자식아.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쟤네 경기 얌전하게 하는 거 안 보여? 자기들 전술에 취해서 거친 플레이는 하나도 안 해.”
“아…… 싫은데.”
“이번에 성과급 받으면 좋은 데서 한 잔 살게.”
“흠…….”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딱 20분만. 그 정도만 쓰자.”
“으음…….”
커다란 나무 밑의 아주 어두운 그늘 속에서 그런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동안, 1학년 2반은 7승 0패라는 성적으로 예선전을 마무리했다.
송현준과 친구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배영호와 지상철의 눈에 비치고 있었다.
* * *
열 번의 전생에서 바꾸려고 애썼고, 열한 번째인 이번에도 바꿔보려고 했지만 실패한 게 있었다.
“자, 오늘은 다치지 말고 재미있게 하자.”
“네!”
“너희들…… 너무 귀엽다!”
체육대회 때는 반별로 개성 있는 복장을 준비한다. 반 티를 간단하게 만들어 입는 반도 있었고, 밀짚모자나 악마 뿔 같은 개성 있는 도구를 이용하는 반도 있었다.
우리는 후자였다.
나는 이번에도 막지 못했다.
“다들 노란 게 병아리들 같아!”
“병아리라뇨…….”
내 옆의 박종혁이 우중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녀석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복장은 아주 화사했다.
박종혁은 노란 우비를 체육복 위에 입고 있었다. 박종혁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우리의 반은 개그콘서트의 우비 삼 남매를 따라 하자는 아이디어를 이용한 우비 31형제였다.
속에 입은 흰 티의 가슴팍에 큼지막하게 우비 31형제라고 적혀 있었다. 남자반의 괴악하고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여기까지는 끔찍하지 않았지만 우비는 진짜 아니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은 우비를 입지 않고 허리에 걸치거나 목에 걸쳐서 망토처럼 만들었다.
지금은 5월, 점점 더워지고 있는 시기였고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그렇다.
우비는 X나 덥다.
매번 같은 아이디어를 매번 내는 반장 김현호를 혼내주고 싶을 만큼 더웠다.
“……비 오는 날의 조직폭력배 같은데요?”
그리고 박종혁의 이어지는 말처럼 우리는 조직폭력배 같았다. 근데, 그 말이 웃기긴 했다.
매번 들어도 재미있는 이유는 박종혁의 말에 반 친구들이 전부 웃으면서 서로를 가리키며 깔깔대며 웃어서겠지.
곤란하다는 표정의 정미영 선생님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아니야! 선생님은 귀엽다고 생각해!”
“얼마 안 있으면 우리는 우비 31형제가 아니라 망토 31형제가 되어버릴 거예요.”
“그것도 괜찮은데?! 현준이 너처럼 입는 것도 귀여워!”
내 투덜거림에 선생님은 그렇게 답했다.
“오, 귀여운 놈.”
“귀여운 자식.”
“귀여우셔라.”
친구들은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보고 있었기에 욕은 좀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입 닫고 거울이나 봐라, 이놈들아.”
우비를 입고 있는 31명의 빡빡머리들. 그 광경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게 있었다.
선생님조차 결국 소리 내서 웃기 시작했다.
우리의 웃음을 멈추게 한 건 체육대회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