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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9화 (19/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9화

“안 돼.”

뭐라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김현호는 단호한 얼굴로 답했다.

김현호가 말했다.

“교체 안 해. 그러면 진다고. 여기까지 다들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웃기지 말고.”

“심한 부상도 아니야. 그냥 발을 접질린 건데…….”

“제대로 뛰진 못하잖아.”

“일단 전반전만이라도 마무리하게 해 줘. 얼마 안 남았잖아.”

“안 된다니까!”

우리 분위기가 이상해 보였는지 체육 선생님이 휘슬을 불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경기가 잠깐 멈췄다.

김현호가 나를 보고,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저 보고 뭘 하고 싶냐고 했죠? 저는 이런 게 좋은 거 같아요. 책임지고 팀을 이끄는 거요.”

침착한 모습이 당연하다 여겨질 정도로 항상 차분한 김현호가 격한 목소리로 쏟아내듯 말하고 있었다.

거친 경기 때문에 모래투성이가 되어버린 체육복이나 까져서 피가 맺힌 종아리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앞으로 조금만, 제발, 전반전만이라도 책임을 다하고 싶어요. 이런 경험을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무리는 안 할게요.”

선생님은 복잡한 얼굴이었다.

나도 아무 말도 못 했다. 회귀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게임 속 NPC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웬만하면 다 내가 예상한 대로 움직이니까.

하지만, 김현호는 지금, 생동감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현준아,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 근데, 교체 사인해도 안 나갈 거야. 선생님도 저 교체하면 평생 원망할 거예요.”

김현호는 그렇게 말하고 경기장 중앙으로 돌아갔다.

느리게라도 달리면서 자기가 괜찮다는 듯 말하는 것 같았다.

심판을 맡은 체육 선생님이 다가왔다. 옆에서 우리 얘길 대충 들은 모양인지 이렇게 물었다.

“교체할 거니?”

김현호를 바라보았다. 느리게는 달릴 수 있지만 뛰는 건 안 된다.

발목이 온전하지는 못했지만, 저 상태면 남은 전반전은 뛸 수 있을 것이다.

정미영 선생님은 김현호와 날 보며 아무 말 않고 있었다.

나는 체육 선생님과 정미영 선생님에게 동시에 말했다.

“혹시라도 한 번 더 부딪히거나 상태가 이상해지면 교체하죠. 전반전 끝나면 무조건 교체할 거고요. 남은 전반전은…… 현호를 믿어 볼게요.”

“좋아.”

체육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경기를 재개했다.

“…….”

정미영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김현호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예비 명단에 소속된 친구들을 불렀다.

예비 명단 친구들은 결의에 찬 눈빛이었다. 김현호의 결심을 들었으니 피가 끓어오르리라.

“나 이제 계주 다녀와야 하니까. 다녀와서 교체할게.”

“응?”

“내가 1번이니까 다녀와서 할 수 있어. 만약에 늦으면.”

다들 내 말에 집중했다. 정미영 선생님도 날 보고 있었다.

“진규가 현호랑 교체해. 그리고 성환이한테 현호 자리를 맡아달라고 하게 네가 성환이 자리로 가.”

“알겠어!”

그때였다.

“1학년 2반! 2반 계주 나가는 학생들 왜 안 오니!”

돌아보니 박종혁과 두 친구가 있었다. 진작 계주 인원들을 부르고 있었고, 이들은 날 기다려 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가자. 미안.”

박종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경기장을 봤다.

“괜찮을까?”

“계주에만 집중하자. 대신…….”

나는 박종혁에게 계주 후에 어떻게 할지 얘기하며 본부석을 올려다보았다. 배영호가 이사장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머릿속에 대략 그려졌다. 김현호의 부상은 예상외였지만. 그것도 포함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심을 마쳤다.

* * *

“……졌네.”

“그럼 제가 제일 안쪽이죠?”

“그래.”

나는 계주에서 가장 안쪽 자리를 따냈다.

가위바위보를 통해 얻은 성과였다. 일대일로 하면 열 번에 아홉 번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가위바위보에는 필승법이 있으니까.

TV에서 우연히 보고, 전생들에서 가벼운 내기를 할 때 많이 써먹어서 몸에 익어 있다.

일단 나는 가위, 보자기만 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가 주먹을 펼치려고 하면 무조건 가위나 보자기니까 그걸 보면 무조건 가위를 낸다. 그러면 비기거나 이긴다.

만약 상대가 주먹을 펼치지 않는다면 보자기를 내면 무조건 이긴다.

가위, 보자기만 내면 되니까 생각이 단순해지고, 내 동체 시력과 반응속도를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잡기술이다.

아무튼, 나는 계주 1번 주자로서 가장 안쪽에서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김현호의 상황 때문이라도 한시라도 빨리 계주를 끝내야 했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차분한 마음을 가지려고 했다. 전생에서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된 난 다른 스포츠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기본적인 기술을 배우곤 했었다.

특히,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의 주법은 상황에 따라서 축구에서도 쓸 수 있었다. 공을 몰고 달리는 게 아닌 상황, 예를 들면 공을 빼앗겼을 때 다시 뺏기 위해 달리거나 할 때는 그들의 주법을 배운 것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준비!”

계주는 축구 경기가 쉬는 동안 치러진다.

나는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친구들을 슬쩍 보고, 자세를 취했다. 앉아서 출발하는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취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무시했다.

크라우칭 자세를 위한 장비가 없다면 오히려 비효율적이니까.

적당히 다리를 벌리고, 체중을 앞다리에 실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탕!

“출발!”

화약 냄새가 풍겨오기도 전에 난 출발했다.

이 계주는 100m씩 네 명이 400m를 돌아야 한다.

첫 주자는 짧은 직선 질주 후 바로 코너를 돌아야 했다. 순수하게 직진만 하는 거였다면 모를까 코너라면 무조건 치고 나갈 수 있다.

오전 예선은 적당히 했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했다. 빠르게 끝내고 쉴 시간을 1초라도 더 확보해야 했다.

나는 완벽한 스타트로 앞으로 치고 나간 후, 코너에서는 몸을 살짝 왼쪽으로 기울이며 왼팔은 짧게 휘두르고, 오른팔은 의도적으로 더 크게 휘두르며 완벽한 시선 처리를 했다.

원심력의 영향을 받으며 가장 빠르게 뛰는 방법이었다.

코너를 완벽하게 돈 나는 뒤도 보지 않고 직선 코스를 쭉 가로질렀고, 코너 바로 앞에 있는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내밀었다.

배턴을 받으려는 친구의 표정에 경악이 서려 있었다.

“정신 차리고 뛰어!”

“어, 응!”

친구는 배턴을 받자마자 바로 뛰었다.

나는 곧장 돌아서 마지막 주자라 아직 운동장 중앙에 있는 박종혁에게 다가갔다. 박종혁도 벙찐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빨리 뛰어!”

“빨리!”

“너무 느리잖아!”

박종혁 주변의 후발 주자들이 자기 반 학생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이러는 동안에야 배턴을 전해주러 도착할 정도로 나와 다른 첫 주자 간의 격차는 컸다.

“그럼 부탁한다! 무조건 일등 해!”

“어, 알겠어!”

박종혁에게는 첫 주자 역할만 마치고 바로 축구팀에게 가겠다고 미리 말해뒀다.

나는 박종혁과 친구를 뒤로하고 이사장과 정미영 선생님, 그리고 배영호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할까.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미안해.

첫 번째 전생에서의 선생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 * *

박종혁이 주기적으로 날 찾아오던 시기였다.

중학교 이후 연락 한번 없었던 정미영 선생님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문 뒤에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저기……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나 정미영 선생님이야…….

축구를 그만둬야 한다는 얘길 들었던 나는 반쯤 폐인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방도 엉망이었다.

문을 열기 위해 걸으려다가 불현듯 선생님에게는 이 더러운 방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긴 침묵 끝에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갈게요.

구석에 오래 박아둬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블레이저를 대충 걸치고 문을 열었다. 정미영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더 울먹이기 시작했다.

-따라오세요.

집 근처 술집이었다. 나와 선생님은 소주 한 병을 다 마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계속 내 눈치를 보았다. 어릴 때는 나와 키가 비슷했던 선생님이 이제는 나보다 한참 작아져 있었다.

나는 소주 한 병을 더 갖다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새로 잔을 따르고 있는데, 정미영 선생님이 참던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미안해.

나는 울컥했다.

-뭐가 미안해요.

-축구를 다시 시작해 보자고 내가 말하는 바람에…… 네가, 네가…… 이렇게…… 미안해…… 내가 참견하지만 않았으면…….

-…….

그 순간 미워할 대상이 없어서 휘몰아치고 있던 감정이 선생님에게 쏟아졌다.

-그렇네요. 선생님이 증오스러워요. 축구 같은 거 다시 시작하지도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때, 정미영 선생님의 그 표정은 열한 번째 인생을 사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술집 주변을 맴돌며 찬 바람을 쐤고, 선생님과 조금 더 이야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술집으로 돌아가다가 차에 치여 죽었다.

그리고 회귀가 시작되었다.

어느 전생이나 마찬가지로 첫 번째 회귀를 하자마자 정미영 선생님을 만났다.

그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갑자기 만난 선생님이 축구를 해보겠냐고 제안하자 발작하며 도망치듯 교실을 떠났었다.

이후 선생님과 다시 얘기해서 축구부에 들어가고, 첫 번째 전생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았다.

두 번째도 축구부에 너무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축구를 즐겁게 하지는 못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지상철 감독 때문에 무릎이 박살 난 상태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전생이 끝날 때까지 정미영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세 번째, 축구부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조기축구회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을 때, 나는 국가대표 축구 선수이자 세계에서 한 손에 꼽히는 공격수가 되었다.

선생님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축구부에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과 어색했기에 일부러 피해 다녔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전생을 잊지 못했다. 선생님의 그 얼굴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첫 번째 전생에서 죽은 나이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학교에 찾아갔다.

나는 그때 전국적인 스타였다.

전교생, 특히 남학생들이 날 보며 비명과 환호를 질렀고 내가 정미영 선생님에게 오랜만이라면서 꾸벅 고개를 숙이자 교실이 부서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함성이 쏟아졌다.

나는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잘 지냈니?

-네.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그 말에 선생님이 안심한 것 같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말을 꺼냈다.

-아마도…… 선생님이 축구를 다시 해보자고 말해주신 덕에 이렇게 잘 된 거 같아요.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언제나 처음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계기를 만들어 준 덕분에 다시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었고, 그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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