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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20화 (20/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20화

-정말…… 정말이니?

-네, 많이 생각해 봤지만 틀림없어요.

선생님은 그 말에 눈물을 터뜨리셨다. 거의 오열하듯 우셨다.

한참 그러시다가 내가 왜 그렇게 우시냐고 물어보자 이유를 얘기해 줬다.

세 번째 전생의 나는 나름 즐겁게 축구를 한 거였는데, 선생님은 그런 내 모습이 너무 벅차 보였다고 했다.

당연하다. 축구부를 비롯한 모든 운동부는 가혹할 정도로 힘들다.

로베르토가 감독을 맡은 축구부도 힘들긴 매한가지였고 로베르토의 축구부가 처음이었던 나는 그 당시 온갖 고생을 하긴 했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해서 교실에서 매일 잠들었었지. 이번에도 실패하는 건 아닐까 불안해서 언제나 굳은 얼굴로 살았고. 잘 웃지 않았다.

그 모습들을 보며 선생님은 내게 축구를 다시 시작해 보는 건 어떻냐고 제안한 게 옳은 행동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내게 원망을 들을까 봐 두려웠다고 말했다.

자기가 만용을 부린 건 아닌지, 선생님으로 제자에게 길을 알려주는 게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 건지 무게를 실감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조용히 지켜보기로 결심하셨다고 했다. 문제가 생긴다면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근데……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어…….

선생님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축구부에 들어간 나를 걱정하면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다른 선생님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내게 모였다.

그리고 정미영 선생님이 내 기사를 스크랩해서 모은 게 사전 한 권 두께가 되어버렸다는 말을 들었고, 그 스크랩 사전을 두 눈으로 본 나는 크게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전생에서도 선생님이 같은 행동을 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 번째의 나는 적당한 삶을 살았고, 내가 딱히 선생님을 찾지 않았기에 선생님이 날 만나러 오지 않은 것이다.

첫 번째의 나는 정말 완벽하게 망했기 때문에 무언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날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 날 도와주기 위해서 오신 거다.

선생님의 말은 계기일 뿐이었다. 축구 선수로서 망한 건 선생님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운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난 실제로 그 당시 선생님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날 잊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는 수백 수천 명의 학생이 아니라 한 명의 제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온갖 매체를 통해 내 소식을 계속 찾아봤을 거고, 내 은퇴 기사를 보고 날 찾아온 것이다. 주소를 알려드린 적도 없으니 수소문에 시간도 걸렸을 테고.

그런데 그런 내 입에서 증오한다는 말을 들었다.

선생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선생님의 잘못이 아닌데.

나는 그래서 세 번째 전생의 선생님을 안으며 죄송하다고 감사하다고 계속 말했다. 선생님은 얼떨떨하시면서도 날 안아주었다.

맞다. 처음에는 불행해졌었다.

하지만 그 전생을 계기로 나는 수많은 전생을 경험했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간에 나를 좋아해 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과는 그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주변 환경에 의해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난 정미영 선생님을 많이 웃게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특히, 진짜가 될 이번 인생에서 말이다.

* * *

송현준이 정미영 선생님에게 달려가는 동안 이사장이 정미영에게 무언가 묻고 있었다.

“그러니까…… 배영호 선생님은…… 5반 학생이 부상을 당했고, 대체할 만한 학생이 없다고 축구부 학생을 투입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사장이 조건을 덧붙였다.

“1학년 2반에서도 축구부를 투입해도 된다는 조건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배영호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많이 보던 모양새의 웃음이었다.

* * *

배영호는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이사장에게 향했다. 거친 플레이로 초반에 기세를 꺾어놓는 게 실패한 이상, 두 번째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이사장은 불만이 아주 많아 보이는 얼굴로 배영호를 맞이했다.

“왜 이렇게 거칠게 합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요?”

배영호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학생 중 하나가 부상을 숨기고 뛰었지 뭡니까. 무리해서 빨리 이기고 싶다고 팀 전체가 욕심을 내다가 이렇게 된 겁니다. 저도 방금 학생에게 들었습니다. 사과하겠습니다.”

“……그래요?”

이사장이 한층 누그러진 반응을 보였다. 배영호는 계속 말했다.

“그래서 그런데 축구 할 만한 애들이 다른 종목 때문에 다 지치거나 다쳤는데…… 축구부 애 하나를 교체 투입해도 될까요?”

“으음…… 그건 규칙이…….”

배영호는 계속 밀어붙였다.

“축구부 감독에게 허락도 받았고, 투입할 애한테도 물어봤습니다. 친구들을 위해서 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허어…….”

배영호는 박범철에게 깔아놓은 열등감을 바탕으로 ‘만약에 축구부 하나씩 끼고 한다면 수준이 다르다는 걸 보여줄 수 있냐?’라고 도발해 놓았고, 박범철은 그 도발에 완벽하게 말려들었다.

준비는 완벽했다.

배영호는 마무리를 위해 준비한 말을 꺼냈다.

“저도 막 억지를 부리려는 게 아닙니다. 만약에 저희 쪽에서 축구부 애를 투입한다면 1학년 2반도 투입해도 된다는 조건이지요.”

같은 축구부라 해도 1학년과 2학년의 수준은 달랐다. 1학년 중 가장 뛰어나다는 박종혁도 계주를 막 마치고 온 터라 박범철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배영호는 이사장이 이 제안을 달콤하게 여길 거라고 확신했다.

술자리에서, 이사장은 사실 축구부를 끼운 체육대회를 보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다만, 축구부원들이 부상 입으면 안 된다는 점과 축구부 감독도 이 중요한 시기에 체육대회 같은 데에 출전하는 건 방해가 된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마음을 접은 거였다.

그런데 축구부원 본인도 하고 싶다고 하고, 축구부 감독도 허락했다고 하고, 후반전 딱 20분이니.

“그러면 정 선생한테 물어보죠.”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배영호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입은 웃으면서.

* * *

그래서 지금 이사장이 정미영에게 축구부 투입 의사를 물어보는 거였다.

“괜찮은 거 같아요. 어차피 저도 교체고, 현호도 부상이니까 축구부 애가 들어가면 훨씬 나을 거 같아요.”

교체로 들어가려고 준비하던 학생이 그렇게 말했다. 정미영은 이사장에게 말했다.

“그러면…… 한 명은 계주에 나갔고, 나머지 한 명을 데려와 볼게요.”

정미영은 부반장을 찾았다.

“태영이 좀 불러올래?”

“태영이 아까 화장실 간다고 했는데요. 애들 보내서 찾을까요?”

또 한 명의 축구부원, 엄태영은 잠을 자는 걸 정말 좋아했다. 화장실 간다고 말하고 변기에서 잠을 자다가 발각된 적도 있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 벤치에서 잠을 자다가 수업에 늦게 들어온 적도 있었다.

정미영은 엄태양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엄태영이면 찾는 데 좀 걸리겠네. 그러면 후반전을 좀 늦게 해도 괜찮으니까 기다려 줄게.”

배영호는 선심 쓴다는 듯 정미영에게 얘기했다. 이사장도 그러라고 말했다.

그때였다.

정미영이 부반장과 아이들에게 엄태영을 찾아오려고 하는데, 송현준이 왔다.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계주는 진행 중이었다.

“현준아? 계주 아직 안 끝났는데…….”

“저는 끝났어요. 그거 제가 나갈게요.”

“응?”

“후반전에요. 축구부 대신 제가 나갈게요. 태영이는 찾는 데 오래 걸릴 거 아녜요.”

일부 전생에서 송현준은 이 상황에서 엄태영을 빨리 찾아오는 역할을 했었다고 회상했다.

근데, 김현호라는 중심축이 빠져서야 엄태영이 들어가 봤자 큰 의미는 없었다. 박범철이나 엄태영이나 펼칠 수 있는 영향력은 비슷했고, 나머지 선수들의 개인 기량만 보면 2학년이 우세했으니까.

100m 전력 질주는 체력을 많이 쓴다.

아까 닭싸움도 시간이 오래 걸려서 체력이 말짱하진 않았다.

하지만, 송현준은 전반전이 끝날 무렵 자신이 하겠다고 결정했다. 부상을 입은 김현호가 끝까지 경기를 뛰겠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인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이 경기를 뛰면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그랬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 미래보다 지금을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뒷일을 아예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잠깐만, 이리 와볼래?”

정미영이 송현준을 데리고 다른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겠니? 아무리 축구를 다시 시작했다고 하지만……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정미영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송현준은 생각했다.

아아, 그때도 그랬다.

회귀라는 걸 모르던 첫 번째 전생이 대차게 망했을 때, 선생님은 반쯤 폐인이 된 자신을 찾아왔을 때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지.

“선생님. 전 괜찮아요.”

송현준의 눈에는 예전의 선생님과 지금의 선생님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송현준은 웃었다.

그때도, 송현준은 축구 선수로 성공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걸 못했기에 화를 냈고, 증오했었다. 그때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지만,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응?”

“저 엄청 재능 있어요. 아마 축구를 다시 시작 안 했으면 평생 후회했을지 모를 정도로 재능 있어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저 천재예요.”

“뭐?”

어찌 보면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 말을 송현준은 덤덤하게 하고 있었다.

“축구를 안 했으면 뭐 하고 살았을지 걱정될 정도로 잘하는 거 하나 없는…… 저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참견 덕에 축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

정미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송현준이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는 알았지만, 와닿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선생님의 제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계속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송현준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경건하게 느껴져서 정미영은 잠시 말을 잊었다.

그래도 송현준이 고개를 들었을 때, 정미영은 간신히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래, 약속할게. 계속 지켜보면서 응원해 줄게.”

해줘야 할 말을 할 수 있었다.

송현준은 웃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 * *

“현준이가 한다고?”

이사장은 처음에는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물론, 그게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쪽은 범철이고.”

이사장의 말에 박범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박범철의 바로 옆에는 배영호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송현준을 보고 있었다.

“배 선생님, 어떤가요?”

“저는 괜찮습니다.”

“정 선생님도 괜찮다는 거지요?”

“네. 반 친구들도 좋다고 했어요.”

이사장이 송현준을 바라보았다. 기대가 그득하다.

“좋아. 이대로 진행하자고.”

“감사합니다.”

송현준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사장은 송현준과 매주 조기축구를 함께하는 사이였다. 원래 일이 바빠서 2~3주에 한 번 정도 나가는 수준이었지만, 송현준의 존재 때문에 최근에는 매주 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축구를 쉽게 하는 학생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그런 학생이 축구부에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준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만 돌아왔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지금 경기를 뛰겠다고 말하는 거였다.

축구부 감독 허락도 받았고, 축구부원인 박범철이 부상당할 염려도 조금은 들었지만, 송현준이 또래랑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이사장은 입가가 씰룩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송현준과 박범철이 투입되며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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