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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21화 (21/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21화

“채아야~ 수고했어.”

“일 등! 일 등이야! 대박이야! 짱이야!”

“고마워.”

막 여자부 계주를 마치고 돌아온 김채아는 방긋 웃었다. 1학년 9반의 계주 마지막 주자로서 배턴을 받을 때까지는 3등이었지만 3학년 둘을 단번에 역전해서 1등을 거머쥐었다.

승부에서 이기고, 환호를 받는 건 즐겁다. 어떤 스포츠나 이런 시스템이었기에 김채아는 모든 스포츠를 좋아했다.

김채아는 모처럼 학교에 있는 게 행복하다고 느끼며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김채아를 축하한다고 말하던 정은영이 김채아의 뒤편, 그러니까 운동장을 보며 말했다.

“채아야? 쟤…… 그때 걔 아냐?”

“응? 누구?”

김채아는 몸을 돌려 정은영이 보고 있는 곳을 향했다.

그리고 형광색 조끼를 입고 1학년 2반 선수들과 모여 있는 송현준을 발견했다. 송현준은 경기장 위에 있었다.

“어어…… 맞는데…….”

“경기 뛰는 거야?”

“어제는 못 들었는데…….”

오늘은 체육대회가 있었기 때문에 새벽 운동을 쉬자고 합의했다. 어제는 평소와 똑같았다. 그래서 김채아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냥 같이 있는 거 아니야? 무슨, 감독 같은 거 한다며.”

김채아의 친구들, 이지혜와 김혜진도 송현준을 보며 얘기했다.

그때였다.

[아아, 이번 체육대회 마지막 경기가 될 축구 후반전에, 선수 교체가 있습니다. 이렇게 따로 공지하는 이유는 상황에 따라 규칙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김채아는 이사장이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각 반에서 학생들이 부상을 입는 바람에, 축구부원과 축구부 경력이 있는 학생이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후반전도 페어플레이로! 좋은 경기를 기대합니다!]

“와, 대박. 그럼 쟤 하루에 세 종목이나 하는 거야? 계주도 방금 뛰었잖아.”

김혜진이 말했고, 김채아는 온갖 생각이 들어서 입을 다물었다.

걱정된다. 김채아도 계주 선수였기에 운동장 위에 있었고, 송현준이 뛰는 걸 지켜봤었다.

송현준은 정말 멋있었다. 예선전에서 거르고 걸러진 여섯 명 중에 압도적으로 치고 나가는 모습에 여학생 남학생 할 것 없이 환호성을 보냈다.

아까 남학생들끼리 닭싸움할 때도 끝까지 버텨서 1등을 했었다.

그것도 멋있었지만, 아무튼.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까 쟤 달릴 때 진짜 멋있던데.”

“나 아까 비명 질렀잖아. 어떻게 그렇게 빠르지?”

“닭싸움은 되게 웃겼는데, 이기니까 멋있더라.”

“이제 축구까지 나가고…… 멋지다. 부상당한 친구를 위해서 그런 거라고 했잖아. 채아야, 채아야. 나 쟤 소개해 주면 안 돼?”

이지혜와 김혜진이 대화를 주고받다가, 이지혜가 느닷없이 말했다.

“뭐……?”

“응? 채아야~.”

“…….”

김채아는 잠시 침묵했다.

정은영은 그 모습을 보며 김채아와 얼마 전에 했던 상담 내용을 짧게 떠올려 봤다.

-자꾸 걔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생각나…….

김채아는 송현준을 특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단계로 보였다. 물론, 아직 특별한 관계까지는 아니었다. 그런 김채아가 저러는 건 논리적으로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정은영은 운동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저거 봐, 걔가 공 잡았다!”

송현준은 1학년 2반의 가장 뒤 정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2학년 두 명이 동시에 송현준에게 달려들었다.

송현준은 왼쪽 2학년의 돌진을 공을 발바닥으로 한 바퀴 왼쪽으로 굴리면서 피해 버렸다. 그로 인해 오른쪽 2학년은 왼쪽 2학년의 몸에 막혀, 자신에게 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와…….”

단순하면서 쉬워 보이는 기술이었지만, 김채아는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단번에 이해하고 멍해졌다.

송현준은 바로 왼쪽의 친구에게 패스했고, 그 친구는 아웃사이드로 바로 패스, 그리고 패스받은 왼쪽 윙 친구가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는 송현준 앞에 공을 밀어줬다.

송현준은 공을 잡고 또 다른 2학년을 맞닥뜨렸다. 축구부원이라고 소개됐던 그 선배였는데, 긴장감이 오를 새도 없이, 다른 학생들과 똑같다는 듯 가볍게 제쳐 버렸다.

송현준의 오른발 앞에 있던 공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가 공중에서 급격히 방향을 바꿔 송현준과 함께 왼쪽으로 향한 것이다.

김채아는 2002년 월드컵 때 브라질 선수가 보여줬던 플립플랩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너무 빨라서 동작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김채아의 친구들도 말을 잊고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저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몰랐지만, 송현준이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누구보다 몇 차원 위에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송현준의 앞에는 골키퍼뿐이었다. 골키퍼는 황급히 튀어나왔지만, 송현준은 골키퍼가 간격을 좁히기도 전에 골문 구석으로 땅볼 슛을 했다.

완벽한 팀플레이에 초월적인 개인 기량이 더해진 골이다. 전반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감까지 느껴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그렇기에 스탠드의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꺄아아아!”

이지혜나 김혜진처럼 비명을 지르는 학생들도 있었다. 스탠드는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김채아도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지금은 멍해져 있었다. 골을 넣은 송현준이 담임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고는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김채아는 송현준이 제대로 축구 하는 걸 처음 봤다. 풋살을 제대로 한 지 2년 차밖에 되지 않지만, 송현준이 방금 보여준 모습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운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송현준을 응원하는 친구로서 김채아는 경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김채아 본인도 모르는 감정도 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김채아는 아직 몰랐다.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으니까.

* * *

송현준이 골을 넣었을 때, 전율을 느끼는 바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던 정은영은 자기의 행동이 부끄러워 자리에 앉아 괜히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도 다른 이들도 전부 비명을 지르거나 환호하거나 박수 치거나 벌떡 일어났었기에 자기의 행동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정은영은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김채아와 김혜진, 이지혜는 경기에 눈이 빠지라 집중하고 있었다.

“아악! 이 나쁜 놈들아!”

송현준의 발목을 거칠게 노리는 2학년을 보며 소리를 지르는 김혜진과 이지혜.

“와…… 와아…….”

그런 플레이도 가볍게 피해내는 송현준을 보며 계속 감탄만 반복하고 있는 멍한 김채아.

그들이 과몰입하는 모습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남들 앞에서 과몰입하는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정은영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 선생님들, 심지어 이사장님도 벌떡 일어나서 경기를 보며 송현준을 응원하고 있었다.

정은영은 송현준이 차원이 다른 동갑내기라는 걸 지금 광경을 보며 이해했다. 작년에, 월드컵 때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했던 게 기억났으니까.

“와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악!”

송현준이 두 번째 골을 넣었다.

이번에는 혼자 드리블로 네 명을 제치고 골키퍼의 키를 넘겨서 넣었다.

정은영은 또 과몰입할 뻔하다가 애써 자신을 찾았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 플레이에 환호성을 지르게 된다.

송현준이 작년에 한국에 기적을 보여준 그 선수들처럼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몸을 너무 내밀어 앞 스탠드로 구를 것 같아 보이는 김채아의 옷깃을 붙잡으며 생각했다.

“채아야! 그러다 넘어져!”

“아, 어. 응. 고마워.”

앞으로 상담을 더 자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 * *

“우어어어어어!”

“와아아아아아아아!”

“해가 떠도 2반! 달이 떠도 2반! 2반이 최고야!”

같이 응원을 해야 하는데.

정미영은 송현준의 말이 계속 맴돌아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걱정뿐이었다. 그런데 송현준은 불과 5분 만에 걱정을 싹 없애 버렸다.

2-0

송현준이 들어가서 순식간에 만들어낸 점수였다.

우울하고 불안해 보였던 2반 아이들은 목이 쉬라고 응원을 하기 시작했고, 조용했던 스탠드의 전교생들도 송현준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소리를 지른다.

솔직히 정미영은 송현준이 꼭 축구 선수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재능은 최대한 시도해 보고 후회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금 억지를 부리더라도, 방황하던 자신을 이끌어줬던 선생님처럼, 정미영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면 어떡하냐는 걱정을 했다.

쓸데없는 참견이라서 원망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했다.

선생님이라는 자리는 너무 어렵다.

아이들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지 모르니 언제나 단어 하나를 조심해야 했고, 아이들이 싫어해도 과감하게 이끌거나 호통쳐야 할 때도 있었다.

수십 명의 제자를 책임지는 자리다.

자기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회의감이 들 때도 많았다.

그래도, 오늘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송현준은 선생님의, 나 정미영의 참견 덕에 축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맺혔다. 이렇게 기쁜 날에 눈물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제자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다. 김은주 선생님이 왜 자신을 보며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현준아! 패스!”

송현준이 경기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안 2학년들이 전부 송현준을 막으러 달려들었다.

친구들은 다급하게 송현준에게 패스를 달라고 외쳤지만, 송현준은 공을 살짝 앞으로 밀더니 그대로 슛을 때렸다.

뻐-엉! 속이 뚫리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공은 춤을 추듯 빠르게 날아가 골대 구석에 정확하게 꽂혔다. 골키퍼는 손 하나 깜짝하지 못했다.

송현준은, 제자는 비록 정식 경기도 11대 11 경기도 아니라지만, 그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울면 안 됐다. 두 눈을 뜨고 봐야 했다. 웃어야 했다.

제자가 저렇게 빛나고 있는데 어떻게 우는가.

“으아아아아악!”

“미쳤어!”

“뭐야!!!!”

“송현준!”

“세 골이야! 세 골이라구!”

반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정미영은 작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제자가 부탁했으니 끝까지 책임지고 볼 생각이었다. 이번 경기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는지 전부 봐줄 생각이었다.

보고 싶기도 했고.

아마 송현준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제자가 되겠지.

정미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하게 웃고 있는 송현준을 바라보았다.

송현준이 자신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앞으로도 저렇게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정미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반 아이들과 뒤섞여 선수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 * *

[이번 체육대회 남자부 우승은 1학년 2반! 여자부 우승은 2학년 6반입니다! 두 반 담임선생님들은 앞으로!]

박수 소리가 운동장에 가득 찼다. 천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손뼉을 쳐 대니 비록 열린 공간이었지만 뭔가 벅차오를 것 같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2학년 5반 쪽을 바라보았다. 박범철이 혼이 빠진 몰골로 줄을 서고 있었다. 같은 축구부원이 박범철을 위로하려 했지만 박범철이 그 손을 탁, 하고 쳐냈다.

박범철이 안 좋은 감정을 품을 수도 있고, 이걸 계기로 축구부 사람들이 자길 안 좋게 볼 수도 있었다.

그동안과 다른 행동을 했기에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하지만, 축구부에 들어가서 이들과 융화될 자신이 있었다. 계획도 있었다.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고 해도 축구부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축구부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그들 중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다수가 내 동료이고 친구였다.

그러니까 괜찮다.

잘 맞춰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경기가 끝나자마자 날 끌어안아 주신 정미영 선생님의 따뜻함을 떠올렸다.

5-0으로 이겼고, 다섯 골을 넣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렇게 기뻐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보니 잘한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계주에서도 1등을 했다고 했다. 경기 중에 박종혁이 내게 외쳤었다.

너만 잘하면 우승한다고 얘기했었지.

그래서 나도 승리로 보답해 줬고.

우리 반은 남자반 중 압도적으로 1등을 쟁취했다.

배영호는 이제 신경도 안 쓰였다. 경기 중에 몇 번 봤는데 2-0까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다가 3-0이 되고 내 시선을 받자마자 자기 반 학생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멘탈 나간 얼굴로 도망치듯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우승한 반 친구들은 오늘 회식할 준비 하세요! 선생님들한테 회식비를 넉넉하게 넣어줄 테니, 못 먹으면 이사장한테 와서 일러요!]

“와아아아아!”

“고기! 고기! 고기!”

“꺄아아아!”

“이사장님 사랑해요!!!”

우리 반과 우승한 2학년 여자반 누나들이 소리쳤다. 다른 학생들은 우리를 부럽게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김채아네 반이 우승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엔 안 됐나 보다.

나는 고개를 돌리다가 키가 유난히 커서 찾기 쉬운 김채아를 바라봤는데, 어? 김채아도 날 보고 있었다. 김채아 주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거리가 꽤 있어서 들리지는 않았다.

[정미영 선생님. 먼저 소감을.]

연설대에서 이사장이 자리를 비켜줬다. 정미영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어, 어음…….]

우승한 두 반은 연설대 바로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정미영 선생님의 얼굴이 잘 보였다.

“팬더쌤 우신다!”

[이, 이게! 박종혁!!]

선생님은 발끈해서 외쳤다. 잠깐 싸해졌다가, 다들 웃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긴장이 풀리셨는지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 마이크를 잡았다.

[하나도 빠짐없이 열심히 해준 우리 반 아이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오늘만큼은 너희들이 최고야!]

“와아아아아아!”

나를 포함한 반 친구들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기말고사도 잘 봐서 꼴찌 탈출해 보자!]

“어어어…….”

이번에는 다들 우물쭈물했다.

정미영 선생님이 눈에 쌍심지를 켜려다가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교생이 우릴 보며 웃었다. 이사장도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아무튼! 잘했어! 그리고 고기는 당연히 먹는 거고! 다음 주에는 치킨이랑 피자도 먹자! 선생님이 쏜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고기! 치킨! 피자!”

선생님은 역시 분위기를 맞출 줄 알았다. 그 완벽한 연설에 우리 반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즐거운 체육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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