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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23화 (23/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23화

김채아는 운동선수가 어떤 동작을 할 때, 팔과 다리의 각도나, 몸통은 언제 돌리는지 같은 걸 세심하게 관찰할 줄 알았다.

실제로 나는 전생에서 여러 슛 폼을 연구했고, 호나우두의 슛 폼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 반 템포 빠르게 어느 각도에서나 양발로 슛을 하기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좋아하기도 했고.

“정답이야.”

“정답?”

“응, 실제로 그 선수 슛 폼을 연구해서 연습한 거거든.”

“정말?”

김채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목소리에 기쁨이 묻어났다.

그제야 나는 표정을 좀 풀 수 있었다.

“이런 부분 덕분에 너랑 같이 훈련하는 건 도움이 돼.”

“도움이 된다고? 언제?”

“내가 가끔 내 자세 괜찮냐고 물어보잖아. 네가 관찰력이 좋다는 건 금방 알았거든.”

“아…….”

김채아가 이해했다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거울이나 카메라 같은 게 없다면 자기의 움직임을 전부 볼 수 없다.

실제로 전생 중에 김채아가 훈련에 도움이 되는 이유가 이 점이었다. 이 동네에서는 흔하지 않은 눈이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너는 관찰력이 좋아서 그런가 동작도 깔끔해. 자세히 보고 있으면 도움이 많이 돼.”

“그, 그렇구나.”

“그러니까 같이 훈련하는 게 방해되냐 뭐 이런 식으로 물어보지 마.”

“응…….”

김채아가 고개를 숙였지만 기분이 좋은 듯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놓치지 않았다.

시계를 바라보았다. 얘길 하다 보니 시간이 애매해져 있었다.

양 손바닥을 뒤로 짚으며 편안하게 앉았다.

“에이, 새벽 훈련은 여기까지 하자.”

“아직 남지 않았어?”

“학교 가야 하고, 시간도 애매하니까 남은 건 오후에 혼자 하지 뭐.”

“그래도 괜찮아?”

“응.”

훈련만큼 중요한 할 일이 생겼다.

김채아를 너무 일찍 만나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오늘의 소심한 김채아를 보니 확신이 들었다.

내가 아는 김채아와 너무 다르다.

김채아는 날 일찍 만났기 때문에 앞으로의 인생이 꼬일지도 모른다.

전생에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고, 현생에서도 김채아를 통해 받을 생각이었던 도움이 몇 가지 있었다.

당장 2학기에 김채아의 도움을 받아 간간이 자세 교정을 해야 했다.

여름방학부터 성장기가 찾아올 예정인데, 나는 167㎝부터 185㎝까지 한 번에 자란다.

때문에 체형까지 바뀌게 되고, 그에 따라 축구에 필요한 각종 자세들을 효율적으로 봐줘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물론, 전생에서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도 내가 움직이기로 한 이유 중 하나였다.

김채아에게서 많은 걸 받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

집에 바로 가서 계획을 정리해야 한다.

그에 맞춰서 지금 해둬야 할 말도 있었다.

“너 풋살 한다고 했지?”

“응, 오빠랑, 오빠 친구들이랑.”

김채아에게는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같은 유전자를 받았기에 초등학교 5학년까지 축구부를 하다가 스카웃 되어서 야구로 종목을 바꾼 분인데, 이 시기에 취미 겸 진지하게 풋살을 하고 있다.

아무튼, 용건은 이거다.

“나도 거기 들어갈 수 있을까?”

“정말?”

“응, 여름방학 전까지 팀 경기를 해보고 싶거든.”

“좋아! 오빠한테 바로 얘기해 볼게!”

김채아는 고민도 없이 대답해 줬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체육대회도 끝났으니 이제는 새로운 계획을 시작할 때였다.

* * *

집에 빨리 돌아와서 샤워를 마쳤다.

어머니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냐고 갑자기 물어보셔서 숙제가 생각났다고 거짓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혼났다. 억울했지만 다른 핑계를 생각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뭐, 덕분에 아침을 먹기 전까지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방문을 잠그고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책상 구석에 숨겨둔 공책을 꺼내서 펼쳤다.

공책에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과 앞으로의 방침이 적혀 있었다. 이 공책은 내가 회귀한 날부터 사흘 동안 공들여 만든 이번 인생의 지침서 1권이었다.

회귀 직후부터 여름방학 전까지 해야 할 일을 읽어보았다.

―조기축구회에 들어가서 로베르토와 인맥을 다진다. 이사장과도 친분을 쌓으면 좋다.

―박종혁과의 내기에서 승리해 발목 운동을 시작하게 한다.

―로베르토와의 인맥을 통해 연습 장소를 확보한다. 연습 장소에 간 첫날 신정우와 만나 관계를 쌓는다.

―꾸준하게 몸을 다지고 감각을 끌어올리며 5월에 열릴 전국 축구 대회에서 지상철이 탈락하고 해고당하는 걸 기다린다. 로베르토가 여름방학 때 임시 감독으로 선임되면 축구부에 복귀해서 활동을 시작한다.

―기말고사에서 전교 20등 안에 든다.

전체적으로 몹시 순조롭다. 로베르토와 친해졌으니 연습 장소는 곧 생길 것이고, 그곳에서 신정우라는 사람과도 만날 것이다.

다만,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수준의 변수가 두 가지 생겼다.

하나는 체육대회에 출전하게 되면서 축구부 주전인 박범철과 대결했고, 축구부원들이 날 대하는 태도가 변할 수 있게 된 것.

둘은 김채아와의 예상 못 한 만남이다.

그래서 공책에는 금요일에 적어놓은 내용이 있었다.

―축구부에 들어갈 때 잘 섞일 방법을 지금부터 생각해 두자. 축구부원들의 정보를 떠오르는 대로 적어두자.

첫 번째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 적어둔 거였다.

그리고 지금 두 번째 변수에 대비하기 위한 계획을 적었다.

―여름방학 전에 김채아와 김지혁의 풋살팀에 들어가서 전국 4강 안에 든다.

원래는 2학기에 축구부 활동과 병행해서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앞당겼다.

풋살과 4강에 동그라미를 치고 신정우의 이름에도 동그라미를 치고 선으로 연결했다. 그 후, 풋살 4강이라는 단어를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회귀한다고 모든 게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비효과라는 말의 뜻처럼 사소한 일로 많은 게 바뀌어 버리는 게 흔했고, 한낱 인간인 난 그걸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받아들였다.

그래도 사람들의 미래를 얼추 알고 있는 나는 내가 아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면 불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런 변수가 생길 때 내가 경험한 전생의 정보들을 토대로 방향을 다시 잡는다.

나는 김채아라는 이름에 계속 동그라미를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쳤다.

“김채아…….”

전생들의 김채아는 다양한 인생을 살았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적도 있었고, 해외까지 따라와서 내 뒷바라지만 해준 적도 있었다.

두 인생 모두 김채아는 행복하다고 말했었다.

결혼하지 않은 전생에서 김채아는 회사원이 되기도 하고, 대학원생이 된 적도 있었고, 역시나 나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적도 있었다.

이때도 친구로는 지내서 김채아가 매번 충실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전생들의 김채아와 지금의 김채아는 너무 달랐다.

이번 인생의 김채아는 소심하고 솔직하지 못하다. 그런 모습이 객관적으로 잘못된 건 아니었지만, 전생들의 김채아는 원래 자기감정에 더 솔직하고, 할 말을 다 하는 사람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나와 일찍 만나 버려서 이렇게 된 건지, 앞으로 예전의 김채아는 볼 수 없는 건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김채아는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고, 친구가 되든 연인이 되든 앞으로의 내게 많은 도움이 되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4강이었다.

전국중학풋살대회에서 4강을 하면 김채아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다.

여러 삶을 지켜보고 직접 겪어보면서 느낀 건, 인생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보단 경험과 고민을 통해 자기가 직접 선택한 삶을 살아야 즐겁다는 것이다.

김현호가 체육대회 때 보여준 것처럼 본인이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현호는 금요일 회식 때 훨씬 더 밝아진 모습을 보여줬다. 발목에 붕대를 감은 채로도 말이다. 그날의 경험이 김현호에게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인생의 방향을 가를 중요한 선택의 기회에서 사람은 좌절하기도, 성장하기도 한다.

그 선택의 기회를 내 개입으로 좀 더 일찍 줄 생각이었다.

김채아는 그 기회에서 성장하는 타입의 인간이니까. 믿기로 했다.

세 번이나 결혼했던 사이다.

소중한 기억도 많고, 안 좋은 기억도 있었다. 김채아를 보면 좋으면서도 복잡했다.

다만 김채아가 불행한 삶을 사는 걸 상상하면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니까 기왕이면 좋은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나와 맺어지지 않더라도 불행하지 않도록 말이다. 겸사겸사 내 훈련을 도와주면 좋겠고.

“현준아~ 아침 다 됐는데~.”

“네~ 지금 나갈게요~ 숙제 다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풋살팀에 들어가는 것부터다. 나는 공책을 덮었다.

아침을 먹고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이사장을 찾았는데, 이사장이 출장을 갔다고 했다.

내일도 중학교 운동장을 쓰지 못하겠다고 아쉬워하면서도 평소 일과를 해냈다.

방과 후에는 새벽에 못 한 코디네이션 훈련을 이어서 했고, 저녁에는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평소보다 더 힘든 강도로 훈련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뻗었다.

보통 이렇게 피곤한 날은 눕자마자 잠이 드는데, 이상하게도 이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한 시간이나 잠이 오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특히, 오늘 계획을 변경한 김채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모든 전생을 통틀어 김채아와 처음 만난 날.

두 번째 전생의 나는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김채아를 만났다.

* * *

-아니, 감독님! 아, 끊었어!

스물세 살의 김채아가 꺼진 전화기를 노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김채아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맞은편의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도 속았어요?

-네…… 뭔가 이상하다 했어요. 커피 같은 건 손도 안 대는 양반이 카페에서 보자고 하길래…….

나는 갓 국가대표에 데뷔한 꽤 잘나가는 프로 축구 선수였고, 김채아도 비슷한 위치의 프로 배구 선수였다.

나는 국가대표에서 만난 선배가 안 오면 죽인다고 해서, 김채아는 같은 배구팀 감독님의 부름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된 거였다.

날 이 자리로 부른 선배는 전화도 안 받고, 문자로 ‘잘 해봐라.’라는 한 마디만 보냈다.

그러니까, 그들은 우리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우릴 속인 것이다.

진지하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휴일인데도 긴장하고 나왔더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중요한 일인 줄 알았더니…….

김채아는 내 혼잣말을 듣고는 뚱한 얼굴로 물었다.

-헐, 그럼 저는 안 중요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아, 아뇨! 아닙니다! 절대로요!

-허얼, 절대, 까지 간다고요? 장난이었는데.

김채아가 방긋 웃었다. 그 모습에 나는 시선을 빼앗겼다.

포니테일로 머리를 간단히 묶고 편한 훈련복 차림의 김채아는 소개팅에 나올 차림은 아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청바지에 면티 하나 입고 나와 있었다.

그런 편안한 차림 덕분일까 김채아의 미소에서 알 수 없는 친근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까…… 일단 얘기나 해봐요. 저는 김채아에요. 하랑 중공업이라는 팀에서 배구선수로 뛰고 있어요.

이상하게도 긴장이 되질 않았다. 나도 자기소개를 했다.

-대전 가람이라는 팀에서 윙으로 뛰고 있는 송현준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알죠. 얼마 전에 국가대표팀에서 뛰었잖아요? 저 어릴 때부터 축구 좋아해서 국가대표 경기는 꼬박꼬박 챙겨 보거든요.

-그걸 봤다고요……? 제가 골문 앞에서 한라산 대폭발 슛 날리는걸?

장난스럽게 물었지만 김채아는 만만하지 않았다.

-아, 그건 저도 보면서 좀 욱하긴 했어요.

-네?

-다음에는 꼭 넣으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시무룩하게 대답하고 김채아를 바라보았다. 마침 김채아도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가고, 우리는 웃기 시작했다.

김채아에게 휘둘리는 기분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저도 음료수 하나 마실래요. 자기만 혼자 마시고 치사해요.

-아, 제가 사죠.

나는 바로 지갑을 들고 일어났다.

우리는 카운터로 이동해서 메뉴판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 다음 자리에서는 제가 살게요.

-다음 자리요?

-네, 혹시 일정 있어요?

-아니요.

-그러면 같이 놀아요. 휴일에는 원래 집에서 쉬는 데 불려 나와서 조금 억울한 것도 있거든요.

-헐, 저랑 만나서 억울하다고요?

-와, 이렇게 반격하네.

김채아는 나를 째려보고, 우리는 잠시 후, 또 눈을 마주친 채로 웃었다.

-사실 저도 휴일인데 불려 나왔어요. 저도 좀 억울했어요.

-그렇죠?

-근데 뭐, 괜찮은 거 같아요.

-저도요.

우리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리 얘기를 망부석처럼 서서 듣고만 있던 직원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직원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살짝 담겨 있었다.

-저기, 주문 안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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