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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24화 (24/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24화

-아,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그럼 현준 씨가 사주는…… 저 매실차 먹을래요.

-매실차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이미 매실차를 마시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신기한 우연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매실차를 주문한 김채아는 내가 이미 매실차를 마시고 있었다는 걸 알았고, 이걸 주제로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신기하다. 현준 씨도 매실차를 마시고 있었다니.

-저도 신기하네요.

-매실차 좋아하세요?

-네,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 소리 들을 정도로 매실차나 대추차나 이런 거 좋아했거든요,

-정말요? 저도요! 막 구운 땅콩 같은 거나 먹는다고 할머니냐고 애들이 놀렸었어요.

-오, 저도 어릴 때부터 땅콩이나 호두 같은 거 좋아했어요.

-신기하다!

우리는 취미와 취향이 이상할 정도로 똑같았다.

덕분에 분위기는 더 편해졌고, 자연스럽게 어느 지역에서 살았는지 얘기까지 나왔다.

내가 먼저 말했다.

-저는 대전 출신이에요.

-와! 저돈데.

-정말요?

-네, 동구 살았었어요.

-어? 저도요.

-……?

-……?

-혹시 학교 어디 나오셨어요?

김채아의 물음에 설마 하며 답했다.

-대영 초등학교, 대영 중학교요. 고등학교 때는 이사를 가서…….

-예에? 저도요! 저도 대영 초등학교랑 대영 중학교 나왔는데?!

설마는 역시였다.

김채아는 그렇게 말하고, 멈칫하더니 주변을 다급히 살펴봤다.

-이거 몰래카메라죠!

-네?

-아니, 말도 안 되잖아요. 같은 학교 출신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뇨. 이게 말이 돼요?

-그러게요……?

내 얼빠진 대답에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김채아는 착각하지 않은 척을 하며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와, 진짜 소름 돋아요. 같은 학교에 같은 동네 사람이었다니.

-그러게요. 혹시 정미영 선생님 아세요? 저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는데.

-알죠! 와 진짜였네. 미쳤네요…….

김채아가 덧붙였다.

-아, 생각해 보니까 모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초등학교 때는 사람이 엄청 많았고, 대영 중학교는 1학년까지만 다녔거든요.

-1학년까지만요?

-네, 저희 오빠랑 오빠 친구들이랑 풋살대회에 나갔는데 거기서 하나 여중 배구부 감독님을 만나서 스카웃 됐어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그때 운동장에서 뛰던 사람 중에 현준 씨가 있었다니…… 진짜 신기해요. 말도 안 돼요.

-솔직히 이 정도면…….

-운명이네요!

김채아의 말대로였다.

같은 지역 사람, 같은 취미, 호감도를 시작부터 꽉꽉 채우고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김채아는 나와 비슷할 정도로 키가 크긴 했지만,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원시원해서 매력적으로 보였다.

우리는 카페에서 나와서 저녁을 먹었고, 가볍게 맥주까지 마셨다.

그리고 맥줏집에서 나와 초여름의 바람을 쐬며 벤치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김채아가 느닷없이 말했다.

-우리 사귀어 볼래요?

-네?

-여자친구 없죠?

-네…….

-저 싫어요?

-아뇨.

김채아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저도 그래요. 여태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느낌이 좋아요. 우리 한 번 만나 봐요.

-어, 어어, 저도 정말 좋긴 한데 이렇게 빨라도 되는 건가요…….

-뭐 어때요. 같이 있으면 재미있는데.

-재미있어요?

-네, 그런데 아주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요?

김채아는 목소리를 점점 작게 했고, 나는 거기에 빨려들듯이 집중했다.

-핸드폰 번호 뭐예요?

-아. 내 정신 봐.

-저도 정신이 없었나 봐요.

그렇게 말한 김채아는 활짝 웃었다.

첫날부터 나는 김채아에게 이끌려 다녔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와! 현준이 너 진짜 귀여운 구석이 있네.

100일 기념으로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줬다가 이런 소리를 들었고, 케이크 속에 목걸이를 넣어뒀는데 김채아가 삼킬 것 같아서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들키는 바람에 또 귀엽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그…… 결혼하자!

그리고 만난 지 1주년에 나는 프로포즈를 했다.

첫 번째 전생을 그렇게 망친 나는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김채아면 정말 좋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응, 좋아.

김채아는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윽고 환하게 웃어줬다.

* * *

양가 상견례에 청첩장에 결혼식장에.

여자배구리그와 남자축구리그는 서로 엇갈리는 계절에 열리기 때문에 결혼식 날짜를 잡는 것도 어려웠지만, 우리는 해냈다.

결혼은 생각보다 상상과 비슷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고, 그렇게 될 수 있었다.

다만 나에게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축구부에서 혹사당한 여파로 나는 첫 번째 전생과 비슷한 위기를 겪었다.

무릎 부상이었다.

다만, 이번 전생을 시작하면서 몸 관리에 진작부터 최선을 다했고, 예상도 하고 있었기에 부상을 잘 극복해 내고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또 같은 부위에 부상을 당했다. 의사는 내 무릎의 내구력이 상당히 약하다고 말했다.

나는 우울해졌지만, 곁에 김채아가 있었기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나는 이 악물고 재활 기간을 견뎌냈고 또 부상에서 복귀했다.

그런데 세 번째로 같은 부위에 부상을 당했다.

하필이면 첫 번째 전생 때 축구 생활을 끝냈던 시기와 같은 나이에, 같은 자리에 부상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의사는 연골이 없는 수준이라면서 내게 선수 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첫 번째 전생과 비교해서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은 수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좌절했다.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기억은 엉망진창이었다.

부상을 당한 선수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재활한다.

일반적으로는 훈련장에 똑같이 출석해서 코치들의 도움을 받아 재활을 할 수도 있고, 재활 센터나 병원에서 재활을 하거나 했다.

하지만, 나는 의욕을 잃어버렸다. 재활 센터에 나가도 하는 둥 마는 둥. 수시로 몸 핑계를 대고 재활 훈련을 빠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점점 수렁에 빠졌고, 재활 훈련을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연락이 오는 것도 다 무시했다.

첫 번째 전생의 지옥 같았던 기억들이 항상 날 괴롭혔다.

첫 번째 전생에서 난 부상 재활만 5년을 했고, 은퇴했다. 재활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나였다.

김채아는 처음에는 옆에서 조용히 지지해 줬다.

하지만 이 시기의 김채아는 참을성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송현준, 대체 왜 그러는 건데?

-…….

-네가 구단에 안 나가고 있다는 거 모를 줄 알아? 재활도 제대로 안 하는 거 모를 줄 아냐고? 적어도 이러는 이유 정도는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머뭇거렸다.

두 번째 인생의 나는 회귀에 관해서 영화, 소설 등을 찾아보았고, 회귀에 관해 말하면 회귀가 없던 일로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회귀 영화에서 본 ‘마법처럼 시작된 건 마법처럼 사라질 수 있다’라는 말이 내게 깊게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재활에 실패하면 아무 쓸모도 없는 놈이 될 테니까. 그게 무서운 것 같아.

그래서 적당히 사실을 섞어서 이야기했다.

김채아는 나와 같은 운동선수였다. 운동에 모든 걸 바친 사람의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두 번이나 같은 부위에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다.

김채아는 곱게 말하려고 했다.

-다시 재활 센터 나가자. 힘들겠지만,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괜찮아질 거야.

-지금은 아니야. 시간을 조금만 더 줘.

-대체 언제까지?

-나도 몰라.

내 성의 없는 말에 김채아는 언성을 높였다.

-대체 언제까지? 너 프로선수 아니야? 팀에 지금 며칠째 무단결근하고 있는지 알아? 팬들이 X신이야? 프런트는 X신이야? 동료는 X신이야? 감독은 X신이야? 뭣보다!! 나도 X신이야? 솔직히 말해봐. 그 이유 말고 다른 이유도 있지? 항상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이러는 게 말도 안 되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는 얘기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나한테 왜 아무런 얘기도 안 해? 나는 네 아내 아니야? 넌 아내도 못 믿어?

나는 이때 심신미약이었다. 그렇게 변호하고 싶었다.

-잘…… 모르겠어.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그냥 시간을 조금만 더 줘!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일단 얘기해 보라니까?

-아니야. 못 해.

무릎에 회귀에, 머리가 걱정으로 가득 차서 복잡해서 터질 것 같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몹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기도 했다.

내 목소리에는 점점 짜증이 묻어났다.

-못 한다고?

-응.

-이해가 안 가.

-당연하지. 너는 내 심정을 이해 못 해.

화를 애써 누그러뜨리던 김채아는 한 번 더 폭발했다.

-그래 이해 못 해! 내가 너도 아닌데 네 심정을 어떻게 알아?! X발!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래도 너처럼 겁쟁이처럼 숨지는 않아! 이해하려고 정면으로 부딪친다고!

-겁쟁이? 말 다 했냐?

-했다 어쩔래!

심신미약은 무슨, X신이 맞다.

나는 김채아와 멱살잡이를 했다. 그러다 우리는 이마를 부딪쳤고, 둘 다 화가 나서 눈이 돌아갔다.

나는 김채아를 일단 밀치려고 했고, 김채아는 밀쳐지면서 바로 내 얼굴에 스파이크를 때려 박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진심으로 X신 같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무슨. 부상으로 쇠약해져 있다는 핑계를 대기도 어려울 정도로 나는 뺨 한 대에 나가떨어졌다.

국가대표 배구선수의 손바닥은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기 충분했다.

잠깐 기절했던 나는 그 당시 김채아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김채아가 쓰러진 날 보면서 울고 있었으니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으니까, 믿는 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우리는 부부잖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믿어야지. 계속 믿어줘야지. 난 지금도 널 믿는데 왜 넌 날 안 믿고, 이렇게 벽을 쳐?

-…….

-왜! 왜! 기뻐야만 할 이때 이러고 있어야 하냐고!! 네가 그러고도 아빠야?! 아빠냐고 X발!!!

-뭐……? 아, 아빠? 애가 생겼어……?

내게는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김채아는 내 대답 때문에 더 화가 났다.

-왜, 애가 생기면 네가 이러고 있는 게 뭐가 달라져!!! 안 부끄러워?!

누구한테 안 부끄러운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김채아는 소리를 질렀다.

-진짜 짜증 나!! 아직도 내가 널 믿는다는 게 너무 화가 나. 너한테도 너무 화가 나. 네가 얼마나 게으름 피우던 밥 세 끼 다 챙겨 줄 거라는 게 짜증 나! 하지만 앞으로 말 한마디 안 걸 거야. 다시, 시작할 생각 들면 나한테 무릎 꿇고 사과해. 그러면 쿨하게 받아줄 테니까!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김채아는 울면서 화도 내면서 복잡한 얼굴이었다. 김채아가 내게 쏘아붙였다.

-X발! 왜 너 같은 애를 좋아해 가지고! 나중에 꼭 사과해!!!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 멍하니 있었다.

김채아는 정말로 밥도 꼬박꼬박 챙겨놓았다.

나는 김채아와 아이를 위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재활에 실패하더라도 뭐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쭈뼛쭈뼛 구단에 나갔는데, 계약 해지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제수씨한테 감사해. 제수씨가 다 설명하고 갔어.

구단 사람들과 동료들에게 김채아가 연락하거나 직접 다녀갔다는 걸 들었다.

김채아가 사정을 어떻게 설명해 놨는지 나는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재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재활 훈련은 일반적인 훈련보다 몇 배는 고통스럽다.

나는 이 악물고 재활 훈련을 했다.

두 번째 전생이었지만 그 어떤 순간보다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버텼다. 김채아한테 은혜를 갚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한 달가량 계속하고 있으니 김채아가 저녁을 먹는 내 앞에 앉았다.

-할 말 없어?

-말 안 건다면서…….

진짜 이 시절의 나는 개X신이다.

나는 이불을 발로 뻥 찼다가, 이불이 너무 멀리 날아가서 다시 가져왔다. 흑역사를 회상하는 건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일이었기에 나는 회상을 계속했다.

두 번째 전생의 김채아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립고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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