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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27화 (172/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27화

“에이, 내가 송현준 얘기할 때만 여기 오니?”

“응.”

김순옥 여사는 웃을 뻔한 걸 참았다.

은영이 벙찐 채아를 향해 이어서 말했다.

“걔 요즘 인기도 많던데. 우리 채아 긴장해야겠어~.”

“그러니까 은영아…… 아니라니까. 우리는 같이 운동하는 친구야.”

“그래서 걔랑 무슨 일 있었는데?”

채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은영의 말대로 송현준과 있던 일을 얘기했다.

“나랑 오빠가 있는 풋살 팀에 들어오고 싶다더라.”

“정말? 이제 토요일 오후에도 같이 있을 수 있네?”

“야…….”

채아가 눈을 가늘게 뜨자 은영이 장난이었다고 말하며 채아를 달랬다. 김순옥 여사는 참지 못하고 풋 하고 웃음소리를 내버렸다.

김순옥 여사는 그 찰나에 당황하지도 않고 들고 있던 주걱으로 떡볶이가 담긴 철판을 탕! 하고 내려쳤다. 웃음소리는 자연스럽게 묻혔다.

아들만 셋이나 있는 주부이자 자영업자의 관록이었다.

마침 다른 손님들이 다가왔다. 채아와 은영의 대화를 잠시 듣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워했지만, 김순옥 여사는 프로였다.

“학생들~ 뭐 줄까?”

분식을 빨리 팔고, 다시 채아와 은영의 대화에 집중하게 가장 빠르다는 걸 아는 김순옥 여사다운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대화는 그렇게 많이 진행되지 않아서 맥락을 따라가기 쉬웠다.

“그러니까 나 때문이 아니라니까? 풋살 팀에 들어오고 싶은 건 팀플레이를 해 보고 싶어서래. 우리 오빠도 축구부 출신이었고 오빠 친구들도 운동부 출신도 있고, 다 운동 잘하니까 틀림없이 도움이 될 거야.”

“풋살도 하고 사랑도 하고, 우리 채아 좋겠다.”

“아니라니까아…….”

“장난이야.”

은영이 생글대며 말했다.

“장난인 거 알긴 아는데…….”

채아의 귓불이 빨개져 있었다.

“아무튼 그런 거 아니야.”

“그래그래, 알지 알지.”

채아가 삐진 것 같은 반응을 보이자 은영이 다급하게 화제를 바꿨다.

“아, 그건 그렇고 음료수 사주기로 한 거, 오늘 주면 어때?”

“어? 오늘?”

“응, 점심시간에 매점에서 사서 갖다 주면 편하잖아.”

“어? 어어? 그런가? 아니, 그게 맞나?”

김순옥 여사는 일하는 동안 음료수에 관한 얘기를 했다는 걸 알았다. 다만 그 얘기를 다 듣지 못해서 아쉬웠다.

은영이 김순옥 여사의 마음을 아는지 보충 설명을 하며 얘기했다.

“오빠한테 잘 대해줘서 고마워서 음료수 사주겠다며~ 은혜는 빨리 갚는 게 좋잖아?”

그렇구나. 어린 학생들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 정말 고맙지 않은 일이라도 억지로 핑계를 갖다 붙여 만날 구실을 만든다.

채아의 학생다운 모습에 김순옥 여사는 미소가 지어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건 그렇지만…… 남자반에 가야 하잖아…….”

“잠깐 주고 오는 건데 뭐 어때? 오히려 새벽에 주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 새벽에 여는 가게도 없고 학교 주변 자판기에는 맛없는 음료수뿐이니까…….”

“알겠어. 알겠어. 그냥 점심시간에 갖다 주자.”

“그럴래?”

“응응.”

김순옥 여사는 다음에 둘이 방문할 때가 기다려졌다.

은영과 김순옥 여사는 둘 다 생글생글, 비슷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김채아를 바라보았다.

* * *

드디어 내일 풋살 팀에 들어간다.

전생의 김채아에게 간접적으로 들은 정보나, 전생의 김지혁과의 술자리에서 만난 적 있는 풋살 멤버들의 신상을 떠올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야, 박종혁. 똑바로 해.”

“네네, 선생님. 진짜 귀신같다니까.”

발목 운동을 한 지도 꽤 되었다. 박종혁은 익숙해지니까 가끔 풀어지려고 했다.

딱히 박종혁이 게으르거나 한 건 아니었다. 프로 선수들도 운동에 익숙해지면 대충하는 선수들이 훨씬 더 많았다.

기본을 완벽하게 지키면서 꾸준히 훈련하는 건 0.1%의 타고난 재능만큼이나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러니까 채찍질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 내 눈에는 다 보여. 그러니까 농땡이 피울 생각하지 마. 네가 슈팅 시합에서 이길 때까지 시킬 거야.”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냐…….”

박종혁의 투덜거림에는 당근도 줬다.

“당연하지. 나중에 축구부에 들어가면 같이 뛸 텐데, 네 능력치를 올려놔야 전국대회 4강에 들 확률도 오르잖아?”

“오올…….”

박종혁은 내 말에 대답하기 부끄러웠는지 추임새만 넣고 훈련에 집중하는 척했다. 물론, 훈련을 더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당근을 줬으니 한동안은 열심히 할 것 같았다.

동작을 바꾸면서 교실을 둘러봤다. 모여서 만화책을 보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고, 종이를 뭉쳐서 야구공처럼 던졌다 받았다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체육대회 끝나고 우리처럼 발목 운동에 동참했던 축구 종목에 나갔던 친구들은 금세 싫증 냈고, 지금은 밥 먹자마자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중 둘, 김현호는 공부를 하고 있었고, 지상준은 PMP로 EBS 역사 관련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런 다양한 풍경 속에서 우리가 발목 운동을 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게 되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규칙적이고 자연스럽고 무난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좋았다.

따스한 햇빛을 즐기며 또 한 번 동작을 바꾸려고 했다.

“야, 야, 야.”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학교는 1층이 3학년, 2층이 2학년, 3층이 1학년이었고 운동장 쪽으로는 여학생들의 교실이 반대쪽에는 남학생들의 교실로 분단되어 있었다.

그렇다 해도 학원이라든가 성당이라든가 교회, 부활동 등 남학생과 여학생이 아는 사이인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고, 여학생들이 남학생 반에 와서 누구를 찾는 건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안 들리나?”

박종혁과 함께 발목 운동에 매진하던 나는 그게 날 부르는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여자애들 몇몇이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익숙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송현준, 송현준, 송현준.”

그제야 난 고개를 돌려 교실 뒷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김채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전생에서 김채아와 가장 친한 친구였던 정은영은 정면에 서 있었고, 김채아를 비롯한 나머지 둘도 고개나 상체 정도만 내밀고 있었다.

김채아의 목소리가 꽤 컸기에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던 반 애들의 시선이 교실 뒤편을 향했다.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뿐이지 남학생들의 반에 여학생이 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채아에게 다가갔다.

김채아가 온 것도 당황스럽고 시선이 모이는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왜?”

나는 태연하게 물어봤다.

“그냥, 친구들이랑 빵 사 먹으러 매점에 갔는데 음료수가 보여서, 생각난 김에 가져왔어.”

나는 이틀 전에 김채아가 음료수를 사겠다고 했던 걸 떠올려냈다.

“아, 그때 그거? 고마워.”

나는 김채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채아의 친구들 눈빛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빨리 받고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전생에서도 능글맞았던 정은영은 재미있다는 듯 보고 있었고, 나머지 둘은 날 보는 건지 다른 데를 보는 척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나머지 두 친구가 날 질투하는 걸지도 몰랐다.

학창 시절 김채아는 인기가 참 많았다. 키가 크고 보이시한 스타일이라 그런지 남자보다는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근데 이런 잡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김채아는 음료수를 넘겨주지 않았다.

“안 줘?”

“어, 여기!”

김채아는 우리 반 애들의 시선을 피하며 손을 더 내밀었다. 부끄러운 모양이다.

나는 어중간하게 손을 내민 김채아의 손에서 비닐봉지를 받았다.

“음료수만 있는 게 아니네?”

비닐봉지 안의 내용물을 본 나는 잠시 멈췄다.

“사, 사는 김에 더 사 봤어. 나 그럼 가볼게.”

김채아가 도망치려고 했지만, 잠깐 멈춰달라는 뜻으로 손바닥을 들었다.

매실향 음료수 한 캔, 배 알갱이가 씹히는 배 맛 음료수 한 캔, 땅콩이 들어간 쿠키 두 개. 전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김채아가 알고 산 건 아니었다. 김채아와 나는 어릴 때 헤어진 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취향이 몹시 비슷했다.

-이거 몰래카메라죠!

-네?

-아니, 말도 안 되잖아요. 같은 학교 출신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뇨. 이게 말이 돼요?

두 번째 전생에서 만났던 김채아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이 음료수들 다 내가 좋아하는 거고, 쿠키도 정말 좋아하는 거야. 정말 고마워. 잘 먹을게.”

“정말? 에이,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캔 음료수는 이거 두 개만 먹어. 간식으로는 구운 아몬드나 땅콩 같은 것도 좋아하는데 이 쿠키 안에 땅콩 같은 거 들어간 거 맞지?”

그때의 기억과 함께 기분도 떠올랐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어, 응! 맞아! 나도 땅콩 좋아하는데.”

간질간질한 기분이 느껴져서 기분 좋았다.

“구운 은행처럼 좀 특이한 맛 나는 것들도 좋아해. 아빠가 애가 왜 이런 걸 좋아하지? 라고 말한 적도 있다니까?”

“어?! 나도!”

우리의 사적인 대화가 길어지자 가까이 있는 김채아의 친구들은 눈빛이 심상찮아졌다. 1학년 2반 친구들은 대화를 듣기 위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도 너무 들떴나 보다.

김채아는 더듬거리며 대화를 수습했다.

“저, 점심시간 끝나겠다.”

점심시간은 아직 20분이나 남아 있었다.

“그렇네, 가 봐. 고마워.”

“응!”

“내일 보자.”

“응! 내일 봐!”

나는 손을 흔들고 등을 돌려 운동하던 자리로 돌아갔다. 김채아는 잠깐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금세 자리를 떴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 하는데 친구들이 다가와서 실실거리기 시작했다.

박종혁도 발목을 까딱거리며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오오올.”

내 퉁명스러운 물음에 한 놈이 장난스럽게 야유를 했고.

“오오오오올!!!”

친구들이 다 같이 내게 야유 섞인 환호를 했다. 여기에 내가 흥분하거나 부끄러워하면 이 야수들한테 먹이를 던져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손을 들어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거만한 자세를 취했다. 내가 이 정도야, 라는 느낌으로.

그렇게 하자 야유 섞인 환호성은 줄어들었고 다음 페이즈로 넘어갔다.

“누구냐?”

“누구임?”

“이쁘던데.”

“근데 키는 좀 크더라.”

“송현준보다 큰 듯.”

질문 시간이다.

이 녀석들을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오늘 운동을 공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풋살 같이하는 친구야. 저기 가자 중학교 김지혁 형 동생이고.”

“김지혁 형?”

싸움 좀 하거나 일진이거나 일진이랑 친하게 지내거나. 이런 형들은 다른 학교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김지혁은 이중 일진 무리와 친한 편에 속했다. 운동부 활동이 너무 바쁘고 쉬는 날에는 김채아와 풋살을 하기 때문에 싸움하고 다닐 시간도 없었지만. 그런 사람도 아니고.

김지혁의 이름을 아는 친구가 김지혁에 대해 얘기하자 관심이 금세 흩어졌다. 이제 운동에 매진할 수 있겠다. 시계를 보니 아슬아슬할 것 같았다.

박종혁이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기 전 내게 물었다.

“너 풋살도 하냐?”

“이번 주부터. 여름 전에 대회도 하나 나갈 거 같아. 경기 감각 끌어올려야지.”

“열심이네. 다시 하자.”

“오케.”

박종혁과 나는 진지하게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잠깐 소란이 있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점심시간 풍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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