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31화
괜히 내가 없어도 4강에 갈 때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풋살 팀 멤버, 김채아의 오빠와 친구들은 운동 신경이 다들 좋았다. 이승진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농구부 활동을 하다가 중학교부터 그만뒀다고 했다. 김지혁 팀의 한 명도 운동부 출신이라고 했다.
한 명은 운동부 출신은 아니지만 운동 신경이 너무 좋아서 제안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이 작년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모여서 꾸준히, 함께 공을 차 온 거다.
체육대회 결승에서 뛰었던 친구들보다 전부 수준이 높았다.
그렇다 보니 입가에 계속 미소가 걸린다.
뒤쪽으로 패스를 주는 척하다 멈추고 왼쪽에서 중앙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는 김채아에게 패스했다.
김채아는 좋은 침투를 했고 슈팅은 아깝게 막혔다. 나는 엄지를 들어줬다.
김지혁 팀의 공격은 상대가 드리블을 실수할 때까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뒤로 물러나다가 드리블이 길어진 순간에 단숨에 빼앗았다.
공을 빼앗자마자 시야가 없는 곳에서 공을 뺏으려고 달려들 김지혁을 예측해서 공을 발바닥으로 밟으며 한 바퀴 도는 마르세유 턴으로 제쳐냈다.
‘진짜 재밌다.’
풋살은 선수가 적고 공간도 작은 만큼 개인기가 부각 된다. 개인기를 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라 자유롭게 개인기를 해도 용인됐다.
7대 7 축구 때는 결승전이라 진지하게 해야 했지만, 지금은 즐길 수도 있었다.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해야 했기에 다양한 역할도 수행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두 명이 달려들었다.
그들 사이로 공을 중간부터 아래로 쓸듯이 차서 공을 띄웠다. 당황하는 그들 사이를 쑥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이승진에게 패스했다.
김지혁의 팀원들은 당황해서 이승진을 막으러 뛰었다.
풋살, 그러니까 이런 소규모 축구 경험은 꽤 있었다.
가장 많이 했던 건 전생에서 로베르토의 권유를 받아 중학교 1학년이 끝나기도 전에 피오렌티나 유소년 팀에 입단했을 때다.
그곳에서는 11대 11 축구도 하긴 하지만, 5대 5, 7대 7의 소규모 축구를 더 많이 했다.
역할을 다양하게 소화할 수 있고, 11대 11 축구보다 훨씬 빠른 템포로 심리전을 해내야 해서 유소년 선수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승진이 공을 빼앗겼다. 나는 그 직전부터 뛰기 시작해서 적 팀의 경로를 가로막았다.
김채아는 공격하러 나갔다가 아직 복귀 중이었다.
혼자서 두 명을 막아야 했다.
나는 공을 몰고 있는 김지혁의 슈팅을 언제든 막을 수 있는 위치와 반대쪽으로 패스했을 때 바로 반응할 수 있는 간격을 유지하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달려들지 않으니 김지혁이 머뭇거리다가 옆으로 패스했다.
그 머뭇거리는 시간 덕에 나는 한 템포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고 공을 빼앗아냈다.
그리고 공을 쭉 몰고 가서 상대 수비수가 날 막으러 왔을 때 이승진에게 패스했다. 이승진은 가볍게 툭 차서 골을 넣었다.
그렇게 20분 내내 세차게 몰아친 우리는 7-1이라는 점수 차이로 전반전을 마무리했다. 중간에 공격 나갔다가 골대를 맞춰버리는 바람에 역습당해서 한 골을 먹히긴 했지만.
그 점마저 재미있었다.
“…….”
김지혁의 팀은 분노를 넘어서 이제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들을 위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는데 우리 팀 이승진이 내게 어깨동무를 걸어오며 말했다.
“야야야, 엄청난데. 우리 대회 나가서 우승도 노려볼 수 있겠다.”
이거다.
“맞아요. 우리 같은 팀이잖아요. 또 섞어서 해 봐요.”
그렇다. 우리는 같은 팀이었다.
김지혁의 팀원들이 표정들이 조금 풀어졌고, 김지혁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인지 내게 웃으며 말했다.
“예전보다 더 잘하는 거 아니냐?”
“감사합니다.”
김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어떻게 막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 그리고 아까 그 개인기 뭐냐? 겁나게 부드럽게 하던데.”
“어떤 거요?”
“지단이 하는 거 있잖아. 마르세유 턴이었나.”
“아, 그거요. 알려 드릴까요? 좀 연습하면 다 할 수 있어요.”
“정말?”
“크루이프 턴도 알려 드릴까요? 이것도 간지 나고 실용적인데.”
“그게 뭔데?”
“이거요.”
“오오!”
내 묘기에 다른 형들도 관심을 보였다. 이승진과 김채아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개인기나 킥 기술 같은 걸 알려주는 동안의 분위기는 경기 시작 전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다.
“이렇게 하면 돼요. 느리게 보여줄게요.”
나는 마르세유 턴 시범을 보였다.
“오오, 역시 채아!”
김채아는 한 번에 날 따라 했다. 형들이 박수를 치자 김채아는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적였다.
이어서 김지혁, 김지혁은 따라 하다가 공을 밟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하하하하.”
“븅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나는 풋살 팀에 잘 녹아든 것 같다고 느꼈다.
* * *
“현준아 고마워.”
“아니에요. 어디에 놓을까요?”
“읏차, 여기.”
이곳은 교무실이었다. 담임인 정미영 선생님의 부탁으로 수업 때 사용한 교재를 옮기는 걸 도와드렸다.
선생님은 회의용 책상에 들고 온 교재를 놓았고, 나는 그 옆에다가 놓았다.
“고생했어. 음료수 좀 마실래?”
“네.”
“잠깐만~.”
정미영 선생님은 자기 책상 한편에 놓여 있는 작은 유리병에 들어 있는 과일 음료를 가지고 왔다. 내가 좋아하는 매실향이다.
“감사합니다.”
바로 병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
선생님이 웃는 상으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현준이 요즘 공부 열심히 하더라? 다른 선생님들도 맨 뒤에 앉은 애가 요즘 수업 태도가 좋다면서 칭찬하셔.”
그 말에 주변 선생님들이 날 보는 게 느껴졌기에 절로 목소리가 작아져 버렸다.
“그때 열심히 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안 지키는 애가 한둘인 줄 아니? 현준이는 참 기특해~ 현준이 중간고사 성적이 어땠었지?”
정미영 선생님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책상 위 파일철에 끼워져 있는 반 전체 성적표를 꺼내 이름을 찾아냈다.
“딱 중간이었네! 좋아, 지금처럼만 하면 틀림없이 기말고사 때는 성적 많이 오를 거야.”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는 현준이한테 선물을 줘야겠네.”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책상 아래에서 문제집 다섯 권을 한 번에 꺼냈다. 미리 모아놓은 걸 보면 내게 주려고 준비하신 모양이었다.
옆에 교사용이라고 적혀 있는 국영수사과 다섯 과목의 문제집들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회차에서는 여러 선생님에게서 이런 문제집을 받았었다.
선생님의 호의가 느껴져 기분 좋았다.
문제집들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기말고사 때는 좋은 성적 받을게요.”
“기대할게!”
선생님은 밝은 목소리로 말하고 뭔가 생각났다는 얼굴로 내게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준비는 잘 돼가니?”
축구 준비를 말하는 걸 거다.
“순조로워요. 새벽마다 꾸준히 훈련해서 체력도 많이 올라왔고요, 저녁에는 볼 다루는 감각을 기르고 있는데 이것도 잘 되고 있어요. 주말에 나가는 조기축구회에서 경기 감각도 끌어올리고 있긴 한데…… 좀 더 경기에 뛰고 싶어서 지난주 토요일부터는 풋살 팀에 나가기로 했어요.”
정미영 선생님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풋살? 풋살이 뭐니?”
“소규모 축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체육대회에서 했었던 7:7 축구보다 두 명 적은 5:5 축구에요. 가장 인기 많은 소규모 축구라 월드컵 같은 것도 열려요.”
“아아, 도움 되겠다. 정말 열심히 하고 있네.”
“대회도 나가려고요.”
“대회?”
“네. 전국대회인데 스포츠업체인 쿠거에서 주최하고요. 아마 기말고사 때쯤 나갈 것 같아요.”
선생님은 내 말을 집중해서 듣다가 옆에 있는 메모지에 풋살 전국대회, 쿠거라고 짤막하게 적었다.
내가 그걸 빤히 바라보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몸으로 가리며 말을 돌렸다.
“기말고사는 괜찮겠니?”
“네, 둘 다 잘 준비해 볼게요.”
아마 선생님이 직접 보러 오시려는 거겠지. 체육대회 날 약속 비슷하게 한 것도 있으니까.
모른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리고 기말고사도 기대해 주세요.”
“응? 기말고사를? 에이, 나는 운동하는 애들은 평균 50점만 넘어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할 건데?”
“그러면 놀라시겠네요.”
“뭐? 얘도 참.”
선생님은 내가 농담한다고 생각했는지 까르르 웃었다. 딱히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성적을 채점하면서 놀라시는 게 기대됐다.
선생님이 시계를 보시며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는 걸 확인하셨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 수업도 들으면서 새벽에 저녁에 주말까지 훈련하고…… 이번에는 대회까지 나가면…… 힘들지 않을까?”
“괜찮아요. 어려서 그런지 체력이 넘쳐흐르거든요.”
“어린애가 어려서 그런지라니. 얘가, 말하는 거 봐.”
선생님은 피식 웃으시고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국대회 때문에 피곤할 거 같으면 얘기해. 그 정도 규모 대회라면 체험학습 명목으로 출석 처리해 줄 수 있으니까.”
“대회가 주말에 열리는데요?”
“그래도 다 방법이 있단다? 선생님은 대단하거든.”
능청맞은 말에 나도 작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기억할게요. 근데 정말로 체력이 넘쳐흘러서 괜찮아요.”
선생님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선생님의 눈빛에는 기특하다는 마음이 철철 흘러내렸다.
선생님이 내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격려해 줬다.
“힘내. 선생님이 응원할게.”
“감사합니다.”
나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때 수업 예비 종이 울렸다. 나는 교실에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교무실을 나섰다.
* * *
“아빠, 엄마. 부탁할 게 있어요.”
나는 지금 저녁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 굳은 얼굴로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부모님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저녁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니 두 분은 함께 드라마를 보고 계셨다. 나는 샤워를 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드라마가 끝날 타이밍에 돌아와서 부탁할 게 있다고 막 말한 참이다.
내가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자 왜 무릎을 꿇냐고 어머니가 만류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유가 있겠지 라면서 얘기부터 들어보자고 말했다.
문제가 생겼다.
풋살 팀에 들어가고 로베르토와 저녁 훈련을 한 지도 열흘가량 지났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겨 버렸다.
전생들에서 신정우는 대부분 일주일 안으로 찾아왔다. 신정우가 아는 잔디 전문가는 내 아이디어만 듣고도 가치를 인정해 준다.
그렇기에 신정우는 날 찾아와 아이디어가 훌륭하다고 아이디어의 대가를 준다고 한다.
그때 용돈을 챙겨서 앞으로의 계획을 착착 진행해 나갈 생각이었다.
근데 신정우가 안 온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무릎 꿇었다.
“용돈 좀 주세요!”
“?”
“……?”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의뭉스러운 얼굴을 했다.
어머니가 먼저 물었다.
“용돈은 지금 주잖아?”
“더 필요해요.”
“더? 뭐에 필요한데?”
아버지가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얼굴로 이어서 물었다.
“풋살 전국대회에 나갈 생각인데요.”
“그건 들었다.”
“전국대회를 대비해서 장비도 사고 싶고, 친선경기도 하고 싶고, 좋은 경기장도 빌리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
나는 솔직하게 얘기했다.
“얼마나 필요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