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32화
“30만 원이요. 나중에 성공해서 갚을게요.”
“30만 원?”
자장면 한 그릇이 2,000원 하던 시절이다. 어머니가 놀라는 건 당연했다.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이모의 자영업을 도우면서 용돈 벌이를 하고 있는 우리 집에서는 틀림없는 거금이다.
집도 대출로 산 거라 매달 이자와 대출 갚는다고 돈이 나가고 있었고, 우리는 삼 남매였기에 나가는 돈도 많았다.
집안 사정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걸 알았기에 나도 무릎까지 꿇은 것이다.
“어음…….”
언제나 내게 호의적이고 긍정하던 어머니가 망설였다. 머릿속에서 가계부가 칼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입을 굳게 다물고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당당했다. 정말로 필요한 돈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 돈을 어떻게 쓸지 말해줄 수 있니?”
“당연하죠!”
난 텅 빈 연습장과 볼펜도 준비해 왔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하나하나 설명했다.
“지금 소속된 풋살 팀 선수들 실력이 괜찮긴 한데요. 우승하려면 꺾어야 하는 팀이 두 팀 있어서, 그중에 한 팀이랑 친선 경기를 잡기 위한 돈이 필요해요.”
“무슨 돈?”
“시에서 운영하는 풋살장 대여료랑요, 거기까지 찾아오고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교통비, 그리고 풋살 끝나고 자장면 시켜서 같이 먹을 거예요. 일종의 대전료를 주는 거예요. 올해 초에 우승한 팀이라서 안 그러면 안 해줄 것 같거든요. 또, 친선 경기 잡으려면 그 중학교에도 한 번 다녀와야 하고 밖에서 밥도 먹어야 하고, 인터넷 접수보다 시청에 바로 가서 돈을 내면 풋살장 대여도 100%로 할 수 있고요.”
계획을 다 들은 어머니가 먼저 말했다.
“아들, 그게 꼭 필요해?”
“네.”
아버지도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팀이라면서. 그걸 왜 다 네가 내려고 하는 거니?”
“전국대회에 나가자고 팀원들을 부추긴 게 저고, 제가 가장 큰 이익을 얻을 테니까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아까부터 말없이 날 빤히 바라보는 횟수가 많았다.
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내쉰 후에 결심한 듯 말했다.
“그래, 내일 은행에서 찾아다 주마.”
“감사합니다!”
“여보!”
어머니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아들을 사랑하더라도 가계부를 꾸리는 것도 똑같이 날, 가족을 위한 일이니까.
난 계속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아버지는 진지한 모습으로 어머니에게 얘기했다.
“요즘 현준이 정말 열심히 하잖아. 믿어주고 싶어.”
“그건 나도 그렇지만…….”
어머니가 날 바라봤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또렷하게 뜨는 것뿐이었다.
어머니가 졌다는 듯 아까의 아버지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대신 이번 달 아침저녁은 조~금 부실해질지도 몰라. 현준이 너도 이해해 줘야 해?”
“네!”
그때, 아버지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나와 어머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우쭐하며 얘기했다.
“지난달에 산불 비상 근무수당을 받았거든. 그걸로 하면 될 거야.”
“보너스?”
아버지는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들뜨시면 말실수를 하신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차가워진 걸 아버지는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응!”
“……난 왜 그걸 처음 들을까?”
“어?”
거실의 공기가 차가워졌다고 느끼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나는 재빨리 무릎 꿇은 걸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아버지는 큰일 났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는지 날 간절하게 불렀다.
“아들! 잠깐만…… 나랑 얘기 좀 더 할까?!”
“아니야 현준아. 엄마랑 아빠랑 할 얘기가 있어. 방으로 가야겠네…… 내가 가계부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데 당신은 정말…….”
아버지의 간곡한 외침과 어머니의 느릿하고 서늘한 목소리에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감사하다고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 * *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다툼, 아니,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혼나고 있었다. 추가로 비상금을 숨겨둔 건 아니냐고 혼나시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자영업도 하시고 주부 일도 하시기에 이런 논란이 일어나면 어지간하면 어머니가 옳다.
애써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며 거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금이 확보되었으니 계획을 더 진행해야 했다.
모니터에는 2020년대 시점에서 보면 촌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디자인의 사이트가 로딩되고 있었다.
<☞미누의 축구사랑☜ 카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이 카페를 충직하게 지키고 있는 쥔장 미누라고합니다 ㅎㅎ
카페에 들어왔는데 축구 자료실이 안 보여서 당황스러우셨죠...^^;;
이 카페에서 축구 자료를 보시려면요~~
먼저 가입인사를 양식에 맞춰 적어주시고.... 등업신청에다가 글을 올려주셔야 해요~~ㅎㅎㅎㅎㅎㅎ
“하…….”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어질어질하네…….”
이건 회귀를 몇 번을 해도 적응이 안 된다.
이 시절, 현대의 커뮤니티 사이트나 SNS의 역할을 수행했던 카페 공지였다. 현대에도 카페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 시절 카페는 인터넷 사용자의 상당수가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시절에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줄임말을 쓰고, 뭔가 공손하고…… 뭔가 귀엽게 보이려는 것 같고…… 마침표나 쉼표를 남발하고 이모티콘을 자꾸 쓰려고 했다.
현대에서는 –틀- 이라고 부를 만한 특유의 그 말투가 당연시됐다 이 말이다.
처음 인터넷을 접하는 초, 중학생들도 사람들이 이런 말투를 쓰고 있는 걸 보며 물들어 버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카페의 주인장이 그랬다.
이 카페의 주인장, 그러니까 미누라는 사람의 정체를 아는 나로서는 그저 웃겼다.
브라질인, 베르나르도 미누 페레이라. 순혈 브라질인데 아버지 때문에 한국에서 3년 정도 살게 돼서 한국에서는 이민우라는 이름으로 지낸다.
일곱 번째 전생에서 만난 친구다.
그전에 아예 안 만나거나 존재를 몰랐다는 게 아니라 일곱 번째 전생에서 처음으로 친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이민우는 우리가 흔히 아는 축구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민우는 풋살 선수였다.
심지어 브라질 풋살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이 되는 미친 재능을 가진 괴물이었다.
평범한 축구를 했으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궁금한 재능이었다. 이미 여섯 번의 삶을 살면서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생각한 내 개인기와 킥 실력을 몇 단계나 올려준 스승이자 친구였으니까.
더불어 이 자식은 브라질인인데 한국어를 원어민처럼 잘한다.
어릴 때 한국에 몇 년 산 거로 가능한가 싶은 언어구사력을 갖고 있는데, 타고났다고 한다.
성인이 돼서는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까지 다 한다. 부러운 놈이다. 그래서 나라마다 이름이 하나씩 있다. 머리도 좋은 편이다.
공지글에서 이민우의 메일 주소를 찾아서 복사했다.
일단 메일의 제목부터 적었다.
<안녕하세요. 대영 중학교에 다니는 송현준이라고 합니다.>
풋살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한 두 개의 걸림돌 중 하나. 그게 바로 이민우의 팀이었다.
브라질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이민우는 내년 초에 브라질로 떠나서 완전히 정착한다.
그리고 그전까지 동네 친구들과 함께 한국 중학 풋살계를 양분하고 있었다.
김채아가 풋살대회에 나가더라도 매번 인생이 바뀌지 않았던 이유기도 했다.
이민우와 우리는 동갑인데, 이민우는 이미 올해 2월에 열린 다른 전국 풋살대회에서 우승했다. 1학년들로 구성된 팀임에도 말이다.
조 추첨에서 이민우의 팀이나 그 당시 준우승을 했던 또 다른 괴물들의 팀을 만나서 4강에 가지 못하면 김채아의 인생은 변하지 않는다.
목표는 단순하다.
이번 풋살대회에서 4강까지 간다.
그렇게 김채아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주고, 선택은 본인이 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한다.
아주 완벽하다.
이걸 위해서 김채아와 김지혁, 그리고 김지혁의 친구들로 구성된 우리 풋살 팀에게 전국구 우승권 팀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줘야 한다.
운 좋게도 이민우는 멀긴 하지만 같은 대전의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전생에서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다른 팀은 저기 강원도에 있어서 친선 경기는 불가능했다.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긴 하지만, 어중간하게 연습해서는 절대 못 이긴다. 내가 있다고 해도 풋살이라는 분야에서 이민우와 또 하나의 괴물팀을 이기기에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벅차다.
마지막 기회였다. 두 팀 다 만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두 팀 다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했다.
한 팀과 사전 경기를 해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미누 님이 올리신 풋살 자료는 늘 잘 보고 있습니다 ^^. 다름이 아니라 제가 풋살 팀에 소속돼 있는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점차 경쾌해졌다.
들뜨기 시작한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벅찬 것에 도전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 * *
“우리 내일 풋살 모임 없다고 했지?”
“응…… 오빠들 수학여행 간다고…….”
김채아가 우울한 얼굴을 했다. 목소리도 시무룩한 게 풋살을 못 해서 어지간히 아쉬운 모양이었다. 내게는 다행이었지만.
“있지, 그러면 학교 끝나고 시간 있어?”
“?”
훈련 장비를 정리하던 김채아의 손이 멈췄다.
김채아가 고개를 들었다. 고개가 기울어진다. 날 바라보는 눈가와 입매가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귓불도 붉어졌다.
“……뭐라고?”
알아들었는데 모른 척한다. 장난기가 생길 수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구체적으로 말했다.
“둘이서 어디 좀 다녀올래?”
“음…… 어디?”
“시간은 있어?”
“……뭐, 없는 건 아닌데.”
김채아가 워낙 순수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양심이 찔려서 장난을 멈췄다.
본론을 꺼냈다.
“형들이 없는 동안 풋살 친선 경기 좀 잡아보려고.”
“축구구나…….”
“그럼 무슨 얘길 해?”
요즘의 김채아는 놀려주고 싶을 때가 많았다.
김채아는 내 천연덕스러운 물음에 토라진 듯한 표정을 전부 감추지 못한 채로 태연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나도 몰라. 근데 어디 가는데.”
“대서 중학교.”
“대서 중학교? 거기가 어딘데?”
“대서동에 있는 중학교야.”
“대서동?”
김채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크게 떴다.
“대서동?! 거기 서구에서도 가장 구석이잖아. 왜 그렇게 먼 데로 가?”
우리가 사는 곳은 대전의 동쪽이었고, 대서동은 대전의 서쪽 끝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대전의 양 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같은 도시에 있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걔네가 올해 2월 전국대회에서 우승했거든. 우리도 전국대회에 나가기로 했으니까 한 판 붙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아…….”
“아무튼, 시간은 어때?”
안 된다면 혼자서라도 갈 생각이었다. 바로 내일 가는 거라 일정이 있다면 곤란할 것이다.
“되긴 하는데…… 학교 끝나고 바로 갈 거야?”
“응, 그래야 시간이 맞을 것 같은데.”
“엄마 아빠한테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아. 내일 새벽 운동할 때 말해줘도 되지?”
김채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일 새벽 운동은 못 할 것 같아.”
“어? 왜?”
“아는 형이랑 새벽에 잠깐 보기로 해서.”
“아…….”
김채아는 궁금한 모양이었지만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아는 형이라는 건 로베르토였다. 이민우를 1:1로 상대하게 될지도 몰랐기에 개인기를 한 번 더 점검하고 싶어서 부탁했고, 로베르토는 재미있겠다며 그렇게 하자고 했다.
“아무튼, 거기 가면 점심도 내가 사고 저녁도 살게. 버스비도 내가 낼 테니까 부담 없이 몸만 오면 돼. 아버지한테 군자금을 받아와서 넉넉하거든.”
“그렇게까지? 안 그래도 되는데.”
“내가 고마워서 그래. 혼자 가면 심심하거든. 아무튼, 부모님 허락받으면 저녁까지 시간 비워놔~. 거리가 멀다 보니까 거기서 저녁도 먹고 오는 게 나을 거야.”
여기까지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나는 신속하게 훈련 장비들을 챙겼다. 곧 학교에 가야 했으니까.
김채아에게 식비와 교통비를 다 주겠다고 말한 이유는 그냥 밥을 사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김채아에게 일을 시키게 될지도 몰라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