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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33화 (29/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33화

나는 요 며칠 이메일로 이민우와 대화를 나눴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나 : [나는 대영 중학교 학생이다. 너희와 친선 경기를 하고 싶다. 위치는 너희 학교와 우리 학교의 중간인 시청에서 운영하는 풋살장이다. 우리가 풋살장 대여료랑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대접하겠다. 버스비도 당연히 내주겠다.]

이민우 : [우리는 주변 학교들이랑 친선경기하면 되는데 굳이 왜 너희랑 해야 하는가? 짜장면 사든 경기장을 빌려주든 이동하기 귀찮다. 뭣보다 너희는 대회에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팀인데 재미도 없을 것 같다.]

나 : [그럼 내가 직접 너희 학교로 가서 실력을 보여주겠다. 그다음에 수락해도 상관없다.]

이민우 : [재미있겠다. 좋다. 토요일 한 시부터 다섯 시까지 학교에 있는데 언제 올 거냐.]

나 : [이번 주에 가겠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을 주고받았다. 실제 내용은 더 부드럽고 오글거렸는데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이민우의 성향상 1:1 개인기 대결을 할 확률이 높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어린 이민우를 만난 건 전생에서 단 한 번뿐이었다. 이민우와는 둘 다 성공한 후 성인이 돼서 친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풋살 팀 연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했으니, 팀 대결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김지혁과 형들이 수학여행을 떠나 버린 이상 같이 갈 풋살 팀 멤버는 김채아 뿐이었다.

“그럼 가볼 게~ 못 갈 거 같으면 학교에서 말해줘. 아니면, 내가 너희 반으로 갈까?”

“아, 아니. 내가 갈게. 그리고 아마도 갈 수 있을 거야.”

김채아와 나는 교문에서 헤어졌다. 떠나는 김채아에게 손을 흔들다가 문득 생각났다.

김채아가 교복 차림으로 오면 어떡하냐는.

그리고 생각이 더 이어졌다.

내일은 1학년 체력장이 예정돼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 반은 체육복을 입고 오라고 했는데 여자반은 어떤지 몰랐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김채아, 너 내일 학교 올 때 체육복 입고 와?”

“어…… 그렇겠지? 체력장이잖아.”

“좋네. 그럼 그대로 입고 가면 되겠다.”

“체육복은 왜?”

나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3자가 끼어들었다.

“현준아~ 집에 같이 가자~.”

“엄마?”

교문에서 조금 올라간 언덕 위에 어머니가 서 있었다.

어머니는 생글거리며 김채아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 네모난 형태의 검은 봉투가 들려 있는 걸 보면 오늘도 두부를 사 오시는 길이었던 것 같다.

겸사겸사 그걸 핑계로 김채아 얼굴도 가까이서 보려는 것 같고.

한 마디로 주책이다.

김채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설마, 네 어머니셔?”

“응.”

“안녕하세요!”

김채아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어머, 인사도 잘하네. 안녕. 내가 현준이 엄마야. 네가 채아구나. 현준이랑 새벽마다 운동한다며.”

“엄마, 엄마.”

“제가 많이 도움받고 있어요!”

“어머, 예의 바르네.”

“엄마, 나 배고파. 빨리 아침 먹으러 가자.”

곤란해하는 김채아에게서 어머니를 떼어내기 위해 손바닥으로 등을 살살 밀었다. 어머니는 까르르 웃고, 김채아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중에 밥 먹으러 와~.”

“네? 네네…….”

“엄마!”

나는 목소리를 높였고, 얼빵한 얼굴을 하고 있는 김채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들어가! 내일 보자!”

“어, 응!”

* * *

“우리는 지금 x의 정체를 찾는 게 목표지? 일단, 이 식에서 알 수 있는 건 뭐야?! 등호! 그렇지! 등호 덕분에 양변이 같은 값이라는 걸 알 수 있어! 같은 값에 같은 숫자를 더해도 똑같지? 그러니까 우리는 양변에 3을 더할 거야! 왜 3이냐고? 그건 말이지…….”

수학 선생님의 설명이 점점 격양되고 있었다. 하얀 분필이 또각거릴 때마다 칠판에 숫자와 수학 기호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김채아는 생각했다.

김채아는 턱을 괴었다.

모르겠다.

숫자와 기호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모르겠다.

송현준과의 이야깃거리가 많아질수록, 사건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모르겠다.

수업에 집중하려는데 불현듯 솟아난 생각에 김채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진짜, 요즘은 왜 이러는 건지.

남자와 여자 무리 중 한쪽을 선택해야 했던 초등학교 4학년 무렵보다 요즘이 더 혼란스러웠다.

그 시기부터 지금까지, 좀 지루하더라도 평온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송현준과 만난 그날 이후로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들썩이는 날이 많아졌다.

뭐……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

나쁘지는 않다.

내일은 뭐 하려나. 내일 어떡하지. 체육복만 입고 가도 되는 건가?

김채아는 시선을 칠판에 둔 채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어느새 수업은 뒷전이 됐다.

그리고 수업 시간 내내 딴청을 피우는 김채아를, 정은영이 옆에서 보고 있었다.

정은영은 로맨스 소설을 비롯한 온갖 소설과 만화책을 섭렵했고, 미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 등의 해외 콘텐츠도 즐기며 수많은 간접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김채아와 송현준 문제로 얘기를 자주 나눴다.

그래서 정은영은 김채아의 지금 얼굴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김채아가 오늘 또 떡볶이집에 가자고 하겠구나.

라고.

* * *

“데이트네.”

김채아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입에 넣은 대왕 오뎅을 완전히 삼킨 정은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데이트라고?”

“채아 좋겠네~ 부러워~.”

“뭐, 뭐뭐.”

“자꾸 집중 못 하고 멍하니 있더니 좋아서 그런 거였구나.”

말문이 막힌 김채아의 눈동자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잠시 후, 김채아가 격렬하게 고개를 저으며 양 손바닥을 휘저으려고 하다가, 멈췄다.

“아니…… 라고 하기에는 이거 데이트 비슷한 거 맞지?”

“데이트 비슷한 게 아니라 데이트지.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정은영은 이게 데이트와 비슷한 거라는 것까지 인정한 김채아가 자랑스러웠다.

“풋살 친선경기 잡으러…… 축구 때문에 같이 가는 거니까…….”

아직 이러는 모습은 아쉬웠지만. 정은영은 검지를 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

“자, 남녀가 같이 뭔가를 하는 걸 사회적으로 데이트라고 부르기로 약속했단다.”

“난 오빠랑 오빠 친구들이랑 토요일마다 축구 하는데?”

김채아는 어떻게든 빠져나가 보려고 했지만 정은영에게는 귀여울 뿐이었다.

“단둘이 한 적은 없을 거 아냐. 심지어 서로 호감도 있는 거 같고.”

김채아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정은영은 추가 타이자 결정타를 날렸다.

“그리고 저녁도 같이 먹는다며. 심지어 다 사준다고 했다며. 이러면 100%지.”

김채아가 고개를 떨궜다.

“역시…… 그렇지? 맞지? 데이트지?”

“좋은 거 아니야? 왜 그렇게 고민해?”

“어어, 처음에는 그냥 축구 관련해서 뭣 좀 도와달라는건줄알았는데밥까지같이먹으면뭔가뭔가다른거같으면서그정도는친구사이에할수있지않을까싶기도하고.”

“말 되게 빠르네. 천천히 말해봐.”

김채아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간 게 느껴졌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정은영은 신선함을 느꼈다.

“너무 어려워…….”

김채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떡하지?”

이어진 물음에 정은영은 진지한 얼굴을 했다.

“뭐가 어떡해? 넌 걔 싫어?”

“아니!”

김채아는 자기가 크게 대답하고도 놀라서 자기 입을 막았다. 그리고 손을 떼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건 아닌데…… 처음이라서…….”

“뭐랑 다른데?”

“그냥 걔 볼 때마다…… 아아! 잘 모르겠어…….”

김채아는 바보가 아니었다. 자기 심정이 뭔지 모를 리가 없었다.

더, 직접적으로 얘기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정은영은 친구의 감정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김채아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등만 떠밀어주기로 했다.

“걔 기분은 모르더라도 네가 괜찮으면, 일단 가서 생각해 보면 되잖아.”

“그렇지…… 은영아, 너는 되게 어른스럽구나.”

“아니야. 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래.”

“그렇게 말하는 게 어른스러운 것 같아.”

김채아와 정은영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고 웃었다.

정은영이 말했다.

“그러면 갈 때 어떻게 할지나 생각하자. 가장 중요한 건 뭐 입고 갈 거야? 채아는 이런 데 약할 테니까 내가 도와줄게.”

“정말? 아, 근데, 그게 말이지…… 아까 새벽에 말이야…….”

김채아는 송현준이 체육복을 입고 가면 되겠다고 말했다는 걸 그대로 전했다. 정은영은 답답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바보야. 거기서 대화가 끊겼으면 오늘 쉬는 시간에라도 가서 물어보지.”

“그때도 엄청 부끄러웠단 말이야.”

정은영은 장난기가 동했다.

“정말? 그럼 걔가 네 체육복 차림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에이, 모르는 거다? 남자든 여자든 운동복 취향은 흔하다고.”

“운동복 취향? 뭐, 뭐, 남사스럽게 그런 게 있대?”

김채아는 그렇게 말하며 정은영을 흘긋흘긋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취향은 정말 다양해. 말끔하게 생긴 애들이 더 그런다니까? 어떤 게 있냐면…….”

이후 대화는 송현준과 관련 없는, 15금과 19금을 넘나드는 걸즈 토크로 이어졌다. 그렇다 보니 마땅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 * *

금요일 밤, 김채아는 집에 있는 거울을 난생처음 제대로 써 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체육복은 안 이쁜데…….”

체육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 있던 김채아는 자기의 몸 위에 녹색 면티와 청바지를 올렸다.

“깔끔해서 괜찮지 않나.”

이어서 초록 꽃무늬의 원피스를 대 봤다.

“이것도 괜찮고.”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 산 분홍색 꽃무늬 원피스를 들었다.

“이건 너무 튀나…….”

그 원피스를 몸에 대 보면서 거울을 보려는 찰나, 문을 노크하고 동시에 덜컥하고 문이 열리려는 소리가 들렸다.

“채아야! 지금 배구 하는데 같이 볼~.”

“아빠!!! 문 닫아요!!!”

문이 열리려다가 멈췄다.

김채아는 당황해서 한 번 더 외쳤다.

“닫아요!!”

“채아야…….”

문이 황급히 닫히고, 울적한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김채아의 아빠였다. 김채아의 아빠는 지금 충격을 받았다.

자기와 같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평소에도 스스럼없어서 문을 막 여닫고 했던 딸이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으니까.

“어…… 죄송해요! 근데 지금은 진짜 안 돼요! 혼자 보세요!”

“사춘기가 시작되는 건가…….”

“중얼거리는 거 다 들리거든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

김채아는 불만스럽게 눈썹을 찌푸린 채로 거울을 다시 봤다.

아빠가 문을 막 열고 들어오는 건 평소에는 괜찮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다 큰 딸의 방문을 막 열고 들어오려고 했던 아빠가 나쁜 거라고 김채아는 생각했다.

그리고 김채아는 아빠의 심정에 공감해 줄 여유가 없었다.

거울 속의 자신이 원피스를 앞에 대고 있었다.

아무도 못 봤지만, 자기가 이러고 있다는 사실이 괜히 부끄러웠다. 얼굴도 빨개지고 있었다.

정은영과의 대화의 결론은 그냥 송현준이 말한 대로 입고 가되, 갈아입을 수 있는 가벼운 원피스 정도는 준비하고 눈치를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였다.

김채아는 대고 있던 원피스를 치웠다.

‘체육복 차림의 나.’

솔직히 자신은 체육복이 편해서 좋다. 키가 크고 다리도 기니까 잘 어울린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다들 놀러 갈 때나 잘 보이고 싶을 때는 저렇게 입으니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 뭣보다 송현준이 뭘 좋아할지를 모르겠고.

“으아아아…….”

김채아의 체육복에서는 새 옷 냄새가 났다.

그렇다. 김채아는 체육복을 입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집에 오는 길에 몰래 체육복을 샀다.

키가 더 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넉넉하게 입고 있던 기존의 체육복이 아니라, 딱 지금 키에 맞는 사이즈로 구입했다.

그래서 더 괜찮아 보였다.

용돈을 먹는 것 외에 쓴 건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왜냐면 넉넉한 것보다는 딱 맞는 이 느낌이 더 보기 좋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일 체력장에서 땀 날 테니까.

새 체육복은 반드시 필요했다.

“음, 이건 현명한 투자야.”

김채아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절대로 잘 보이려는 게 아니라고.”

아무도 안 듣고 있는데 변명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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