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35화
이민우는 방금까지도 경기를 뛰다 와서 체력은 좀 떨어져 있을지언정 몸은 완전히 풀려 있을 것이다.
이민우는 공을 발등으로 튕겨서 자기 몸을 넘겨서 발뒤꿈치로 다시 튕겨서 발 등으로 공을 받은 후, 내게 넘겨줬다.
나는 똑같이 해준 후 이민우에게 공을 돌려줬다.
“이것도 해볼래?”
리프팅하던 이민우가 이번에는 공중에서 라보나로 공을 튕겨서 잡고 내게 건네줬다. 가뿐하게 따라 해준 후 또 돌려줬다.
“너 진짜 재미있다!”
김채아는 계속 감탄하다가 이제 조용해졌다. 무슨 표정으로 있을지 몰랐지만, 각종 리프팅을 주고받는 거로도 내 집중력은 한계였다.
개인기도 물론 자신 있긴 하지만 내 주특기는 화려함이 아닌 깔끔함이었으니까.
이민우가 신날수록 벅찼다. 그렇다고 못 따라 하는 건 아니다. 아직 어린 이민우였으니까.
우리는 번갈아 가면서 온갖 묘기를 부리고 공을 서로에게 건네줬다.
공은 단 한 번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민우의 풋살 동료들도 어느새 우리 주변에 모여 있었다.
“돌겠네…… 이민우 같은 정신 나간 놈이 하나 더 있네.”
내가 건네는 공을 이민우가 어깨만으로 튕겨서 내게 건넸고, 나 또한 반대 어깨로 튕겨서 돌려줬다.
이민우가 가슴으로 공을 멈추더니, 드디어 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민우는 얼마나 기쁜 건지 혼자서 막 박수를 쳐댔다. 얼굴에 행복함이 그득하다.
“너희들도 쳐주라! 응?!”
이민우 친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뼉을 쳤다.
언제나 신나 있고, 툭하면 파티를 열고, 개인기를 연구하는 걸 행복해하는 아이 같은 어른이었던 이민우는 어린 시절에도 역시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 익숙함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 정도면 친선경기를 잡는 건 성공했다고 봐도 된다는 성취감도 있었다.
2:2 경기에 대비해서 김채아를 데려왔는데, 저녁은 맛있는 걸 사줘야겠다.
이민우가 생글거리며 다가왔다.
“너무 재밌었어! 나랑 비슷하게 하는 애는 처음 봐. 너, 축구부 출신이거나 축구부지? 그것도 아주 대단한! 아니면 해외 유학파?!”
“예전에 축구부였어. 지금은 풋살대회 나가보려고 풋살 팀에서 연습하고 있고.”
“역시나, 우리 팀에 들어와라.”
또, 이민우의 장점 중 하나는 솔직함이었다. 빈말이나 돌려 말하는 법이 없어서 상대하기가 편하다.
여러 번의 삶을 산 내 특성상 예측이 안 되는 사람보다는 예측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했다.
김채아를 슬쩍 봤다. 불안하다는 얼굴이다.
나는 웃으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니, 지금 팀이 좋아. 그리고 이번 대회 이후에는 축구부로 돌아갈지도 몰라서.”
“그렇구나. 아쉽네. 나중에 생각 있으면 꼭 연락해.”
이민우는 시원시원한 만큼 단념도 빨랐다.
“고마워.”
아주 순조로웠다. 이제 본격적으로 친선경기 얘기를 꺼낼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쟤는 여자친구야?”
이민우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채아가 화들짝 놀랐고, 나 또한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아니, 같은 팀 동료야.”
“혹시 했는데 역시 같은 팀이야? 풋살 팀 말하는 거 맞지? 친선경기 하자던.”
이민우의 콧등에 잠시 주름이 생겼다 사라졌다. 저건 항상 밝은 이민우가 가끔 불만을 내비칠 때 하는 독특한 제스처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민우가 이어서 물었다.
“쟤, 주전은 아니지?”
“맞는데.”
“…….”
이민우가 잠시 침묵했다. 나를 보고, 김채아를 보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나, 너무 솔직하다고 선생님한테 혼도 많이 나고, 여기 있는 친구들이랑도 몇 번 싸운 적 있어. 네가 마음에 들어서 미리 얘기해 주는 거야.”
“그렇구나.”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나는 불만이 있으면 무조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래. 말해봐.”
다 알고 있는 건데.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공을 찼어. 경기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해 봤고, 너희처럼 여자애들 하나둘 껴 있는 팀과도 많이 붙어봤어.”
돌려 말하더라도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김채아의 눈치를 살폈다. 김채아는 이민우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 팀들은 언제나 똑같아. 여자애들이랑 남자애들 기량이 엄청 차이 나는데, 남자애들이 여자애들 분위기나 템포에 맞춰준다고 엉망으로 경기해.”
이민우의 말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이민우가 솔직한 애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일곱 번째 전생에서 나한테 너 진짜 못한다면서 도발 아닌 도발을 한 적도 있었다.
잘 아는데…… 기분이 좀 많이 별로였다.
“아무튼, 풋살 하는 애들 중에 여자애가 남자애만큼 하는 건 단 한 번도 못 봤어.”
이민우는 태연하게 말했다.
김채아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김채아는 화가 난 것 같았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이민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시무룩했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리고 나도 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옛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가 또 다른 소중한 사람을 깎아내린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김채아는 내 훈련 파트너고 풋살 팀에도 나보다 오래 있었어.”
“……그래?”
이민우는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어린 나이다. 경험으로 새겨진 불신을 없애는 건 쉽지 않다. 물론, 방법은 있다.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해보든가. 2:2로. 저기 골대 작은 거로 해서 골키퍼 없이 10분만 해보면 알 거 아냐.”
“그거…… 좋은데?”
이민우는 어느새 재미있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인정한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여자애의 실력에 호기심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좀 발끈해서 제안한 거긴 하지만 김채아에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될 선수와 붙어보는 건 전혀 돈 주고도 못 할 경험이니까. 좌절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김채아, 들었지?”
“……응. 근데 괜찮을까?”
김채아가 일어나서 내려왔다. 이민우와 이민우의 친구들은 김채아의 키가 나보다 더 큰 걸 보고 속닥였다. 이민우는 더 짙게 미소 지었다.
“어차피 꼭 이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풋살 경기에 나가도 손색없다는 정도만 보여주면 되는 거라서. 그냥 평소대로 하면 돼.”
“음…… 좋아. 알겠어. 하자.”
이민우는 곧바로 자기와 같이 시합할 친구를 찾았다.
나는 전생에 딱 한 번 이민우의 팀에서 같이 놀았던 적이 있었기에 누가 가장 잘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녀석만 아니길 바랐지만.
“오민규, 하자.”
“귀찮은데.”
역시나 이민우는 봐주는 게 없었다.
오민규, 키는 165㎝으로 작았지만 아구에로나 테베즈 같이 밸런스 잡힌 단단한 체형이어서 몸싸움으로 쉽게 찍어누를 수 없는 까다로운 녀석이다. 오히려 자기의 작은 체구를 이용할 줄 알았다.
심지어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민우와 공을 차 왔기에 발기술도 탁월하고, 몇몇 전생에서는 이민우가 브라질로 떠난 후 뒤늦게 11대 11 축구에 입문해서 국가대표에까지 두어 번 올라온 적 있는 재능이었다.
전력으로 우릴 짓밟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테고.
이민우의 친구들이 경기장을 세팅해 주는 동안 김채아와 짧은 전술 회의를 했다.
“김채아, 수비는 일단 1:1로 하자. 내가 이민우를 맡을 테니까 네가 오민규를 맡아.”
“쟤? 되게 빠를 것 같다.”
“맞아. 내가 쟤네 팀이 경기하는 동영상 몇 개 봐서 아는데, 오민규 쟤 키는 작아도 엄청나게 빨라. 100m로 치면 11초대는 돼, 단거리는 더 빠르고.”
“11초? 진짜 빠르네…… 슈팅이나 패스는?”
“자기가 직접 마무리할 정도는 돼. 개인기도 잘하고.”
“못하는 게 없네…….”
걱정하는 김채아에게 웃어줬다.
“왼발을 진짜 못 써. 그러니까 오른발을 활용하려는 걸 주로 막으면 돼.”
“아…… 고마워! 잘해 볼게!”
김채아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얼굴을 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회의는 끝났어?”
이민우가 다가왔다.
경기장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이민우는 나만 보면서 말했다. 김채아 쪽으로는 시선도 안 줬다.
생각을 행동으로 그대로 드러내는 타입, 나는 인정하지만 김채아는 인정 못 하겠다는 거겠지.
“골대에서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진 거리에 대충 선을 그었거든?”
설명을 다 들을 이유는 없었다.
“저 선 안에서만 슛할 수 있다는 거야?”
“맞아. 역시, 너 진짜 마음에 든다.”
이민우가 생글거렸고,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시간은?”
“딱 10분만 해보자. 그 정도면 견적 나오잖아?”
“좋아.”
“그럼 시작할까?”
* * *
김채아는 송현준을 내심 무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래의 축구부와는 차원이 다른, 너무 까마득해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모르는 규격 외의 존재. 김채아의 눈에 보이는 송현준은 그랬다.
“김채아! 패스 바로 줘!”
김채아의 패스를 받은 송현준이 평소답지 않게 신중하게 볼을 앞에 두고 이민우와 거리를 둔 채로 천천히 움직였다.
김채아는 송현준이 이민우와 1:1 승부할 수 있도록 자길 마크하는 오민규를 데리고 멀리 떨어졌다.
송현준은 평소에는 보여준 적 없었던 짧은 순간에 여러 번의 심리전을 이용한 개인기를 펼쳤고, 이민우는 크게 웃으면서 그걸 막아냈다.
“하하하하― 아앗!”
“김채아! 받아!”
이민우가 송현준의 공을 빼앗아 치고 나가려는 순간 이것까지도 예상했다는 듯 송현준은 공만 빼내는 깔끔한 슬라이딩 태클을 물 흐르듯이 시도했다.
이어서 몸의 중심이 무너진 채로도 자신에게 멋진 패스를 찔러줬다.
이번에는 송현준이 이겼다.
‘이번에는’이다. 이민우와 송현준은 아까부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아까는 이민우의 개인기에 송현준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김채아는 송현준을 절대적으로 신뢰했기에 그 광경에 충격을 받아 빠르게 수비하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 송현준과 김채아의 팀은 1-0으로 지고 있었다.
김채아에게는 아직도 충격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송현준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으면서 오히려 나은 점도 보이는 이민우라는 존재는 김채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
그렇다고 오민규도 김채아보다 못하지 않았다. 분하지만 김채아보다 잘했다.
아까는 긴 다리를 이용해서 한 번에 치고 나가려다가 단숨에 공을 빼앗겼었다. 오민규의 민첩성은 예상 이상이었다.
송현준이 어렵게 건네준 공을 함부로 넘겨줄 순 없었다. 김채아는 언제든지 공을 처리할 수 있게 발밑에 둔 채로 전진했다.
“패스!”
그리고 송현준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보지도 않고 오른쪽으로 살짝 밀어줬다.
송현준은 믿고 있었다는 듯 공을 한 번 튕기고, 상체만 오른쪽으로 움직인 두 번째 드리블로 오민규를 속이고 세 번째 드리블로 오민규를 제쳤다.
“아이 씨!”
김채아는 침착하게 송현준을 쫓아오던 이민우의 직선 경로를 막아 시간을 지체시켰다.
그동안 송현준은 골을 넣었다. 1-1. 동점이었다.
“잘했어!”
“응!”
골망을 흔든 후 튕겨 나온 공을 오민규에게 돌려준 송현준이 김채아와 하이 파이브를 했다.
방금 김채아의 움직임에 방해당한 이민우는 김채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김채아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시선을 피했지만, 이민우가 김채아의 시선 쪽으로 몸을 움직여서 김채아를 다시 한번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래.”
“아까는 미안했어. 내가 무례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