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37화
“자, 주문한 거 나왔다~ 너희는 어디 학생들이니?”
떡볶이와 튀김과 순대가 나왔으니까.
“저기 대영 중학교에서 왔어요. 여기 떡볶이가 맛있다고 아빠가 그러더라고요.”
“대영 중학교가 어디니?”
“동구에 있어요.”
“뭐?! 그렇게 멀리서 왔다고? 어이구, 이거 귀한 손님들이었네. 오뎅이랑 오뎅 국물은 서비스야~.”
이모님과 가볍게 대화하면서 오뎅 두 개가 든 오뎅 국물을 받았다. 기본으로 주는 서비스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장사용 멘트니까 웃으면서 넘겼다. 장사란 건 그런 거니까.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보며 김채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딱 봐도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근데 네가 프로도 아니고, 오늘 충분히 잘했어. 자, 내가 위로해 줄게. 이거 먹고 기분 풀어.”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응.”
김채아는 느릿하게 대답하면서 손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김채아가 좋아하는 것들의 총집합이었다. 아직 저녁 시간까지는 두 시간가량이 남았지만 우리는 중학생이다. 항상 배가 고프다.
“맛있다아…….”
차례로 계란, 오뎅, 김말이를 입속으로 밀어 넣은 김채아가 감탄했다.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 다 김채아에게 빼앗길 거 같아 보이는 떡볶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우리는 일단 식사부터 했다. 그리고 김채아의 손이 슬슬 느려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얘기를 꺼냈다.
김채아는 막 오뎅 국물을 마시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웃으니까 보기 좋네.”
“어…… 응.”
“이제 좀 괜찮냐?”
“그런 거 같아. 여기 맛있다. 그리고 미안. 너무 말없이 있었지…….”
김채아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껴뒀던 위로를 시작했다. 기왕 실수한 거 제대로 만회할 생각이었다.
“아니야. 운동하는 사람들이 졌을 때 화를 내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자연스러운 거라고?”
“네가 뭘 못했는지 뭐가 부족한지 느꼈지? 뭘 더 잘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아마 이렇게 생각할 거 같은데.”
“……맞아.”
김채아의 놀란 얼굴은 개의치 않았다. 다 아는 내용이었으니까.
“네가 재능이 있다는 증거야. 재능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감정을 못 느끼고, 그냥 막막하다고 하거나 쟤 대단하다~ 하고 포기해 버리거든.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오를 수 있는 벽이라는 걸 아니까 그동안 열심히 안 했던 걸 자책하는 거고.”
김채아가 날 빤히 바라보았다.
“나도 비슷해서 잘 알아.”
“너도 그래?”
“응, 지면 엄청 화나.”
“그렇구나…….”
“그래, 그러니까 그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니까 너무 억누르려고도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둬. 나중에는 그런 기분이 들 때 운동을 바로 하자! 라는 규칙을 만들어놓는 것도 괜찮고. 그 감정을 훈련에 이용하면 꽤 효과가 좋거든. 참고만 해 둬.”
“오…….”
“아무튼, 괜찮다고. 오늘 경기는 친선경기도 안 되는 2:2 미니게임이었고, 진짜 승부는 다음 달이잖아? 뭐, 대진표가 다르면 못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약간 부끄러웠기에 뜸을 들이고 말했다.
“오늘은 잘했다는 거야.”
김채아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귀부터 시작해서 볼이 살짝 붉어졌다. 김채아는 한쪽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잘했다는 말보다 뭘 더 연습하면 좋을지 말해주면 좋겠는데.”
평소의 김채아였다. 시무룩한 게 완벽하게 풀렸다. 안심했다.
“오, 회복됐어? 난 아직도 기가 죽은 줄.”
농담도 건네봤다. 김채아는 계속 툴툴댔지만 표정은 좋았다.
“……너무해.”
“복기는 이따가 하고 일단 먹자. 여기 맛있지?”
“아, 응. 진짜 맛있어. 인생 떡볶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여기 어떻게 알았어?”
김채아는 진지한 태도로 대답했다.
목소리가 너무 진지하다 보니 나는 소리 내서 웃고, 이어서 말했다.
“아빠가 알려줬어. 지도 보니까 대서 중학교에서 걸어갈 만해 보여서 와본 거고.”
“아하.”
우리는 남은 떡볶이와 순대도 맛있게 먹고, 계산한 후 가게를 나왔다.
김채아와 잠시 말없이 걸었다. 작은 하천을 따라서 길이 나 있었다.
김채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돌아가?”
“어떡할래? 난 좀 놀다 가도 되는데.”
“나도…… 시간이 좀 있어서…….”
“그러면 시내 좀 들렀다 가자.”
“……응!”
우리는 버스를 타고 으능정이라고 불리는 대전 중심에 있는 시내로 향했다.
“여기 조심해야 해. 형들이나 누나들 잘못 만나면 돈 뜯기거든.”
“어…… 맞아. 반 애들이 여기서 언니들한테 돈 뺏겼다고 했어…….”
우리는 딱 붙어서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빠져나가는 건 쉬웠지만, 굳이 문제가 생기길 원치 않았다.
“근데 시내에서 뭐 살 거 있어?”
“응, 풋살용 축구화 하나 사려고.”
“풋살용?”
“정확히 말하면 인조 잔디용. 괜찮은 가게가 있거든.”
“그렇구나…… 나도 살까?”
“일단 보고 괜찮으면?”
“응. 어디로 가야 해?”
“지하상가.”
“엥? 반대로 온 거 아냐?”
나는 고개를 젓고 포장마차 하나를 가리켰다.
바닐라, 초코, 그리고 녹차 맛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보통 아이스크림보다 세 배는 길어서 비주얼적으로 대단해 보였다.
“이거 하나씩 먹으면서 가자.”
“……너무 좋아! 나 녹차 맛으로!”
나는 하얀색, 김채아는 녹색 아이스크림을 들고 거리를 걸었다.
김채아와 손이 가끔 닿고 있어서 쑥스러웠지만, 나는 김채아의 눈이 순간 팬시점을 향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구경하다 갈래?”
“엥? 어어, 아니야. 괜찮아.”
“구경하다 가자. 나 스프링 노트도 하나 사야 해.”
“그러면…… 어쩔 수 없네.”
그렇게 말하는 김채아의 표정은 기뻐 보였다. 팬시점에는 문구뿐만 아니라 귀여운 물건이 많았다. 김채아는 좋아한다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보였다.
아무튼 나는 노트를 천천히 고르면서 김채아가 집어 드는 것마다 장점을 찾아서 칭찬하면서 놀았다.
김채아가 재미있어하는 걸 보니 내 기분도 좋아졌다.
그리고 삼십 분이 넘는 구경 끝에 노트 두 권과 김채아의 필통 하나를 사서 나온 우리는 지하상가로 향했다.
“이건 내 돈으로 사도 되는데…….”
“뭐, 그냥 사고 싶더라고.”
“그러면 또 할 말이 없네.”
김채아는 생긋 웃으면서 내 옆에 더 바짝 붙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하상가에 있는 짝퉁 신발을 파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여기서 납품받은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의 축구화가 기적적으로 품질이 좋은데 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김채아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길 작게 했다.
내 신발까지 사서 밖으로 나왔다.
일주일 정도 신어보고 문제가 없으면 김채아 남매와 형들에게도 풋살화를 사줄 생각이었다.
“나 배고픈데.”
“또 먹게?”
“아까는 간식이었지~ 괜찮지?”
“어…….”
김채아는 배고플 거다. 나보다 키가 큰데 나보다 배가 덜 고프다는 건 물리적인 구조로 말이 안 됐다. 심지어 우린 한창 성장기인 중학생이다.
김채아가 식탐이 많다는 걸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김채아의 부모님 정도겠다.
“파스타…… 그러니까 스파게티 먹을래? 면 못 먹으면 리조또 먹으면 돼.”
“리조또가 뭔데?”
“스파게티 소스로 끓인 죽? 볶음밥? 비빔밥? 이라고 하면 되려나?”
“그게 뭐야.”
“맛있어.”
“그래?”
우리는 저녁도 맛있게 먹었다. 이것도 전생에서 공인받은 김채아의 맛집이었기에 김채아는 무척 맛있게 먹었다.
떡볶이집에서부터 계속 웃는 김채아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시무룩한 기색은 아예 없었다.
괜히 이민우, 오민규와 만나게 했나 싶어 걱정도 조금 했었는데 이제는 괜찮을 거 같았다.
다만 김채아가 파스타 집에서 나오기 직전부터 자꾸 생각에 잠기며 말수가 줄어들었다.
가게에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길게 늘어선 버스 줄에 바로 서지 않고 벤치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돌아다니는 게 정신적으로 피곤했나 싶어서 쉬자고 한 건데, 김채아의 생각이 좀 길어진다. 자꾸 힐긋힐긋 나를 보는 것도 느껴지고.
버스를 한 대 떠나보낸 후에 김채아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김채아의 목소리는 낮고 진지했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응.”
“아까 있잖아.”
“아까 언제?”
“대서 중학교에서 바로 간 떡볶이집에서.”
“거기가 왜?”
김채아가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수상하다는 듯이.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메뉴랑 똑같이 시킨 거야?”
나는 일단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하면서도 어색해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웃었다.
* * *
김채아는 오늘 지옥과 천국을 경험하고 있었다.
미니게임에서 진 게 정말 분했었다. 이렇게 화가 났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열 받고 후회되고 실망하고 좌절했다. 그리고 맛있는 떡볶이에 이은 송현준과의 데이트로 그랬던 기분이 순식간에 풀렸다. 신기한 하루였다.
오히려 날아갈 것 같았다.
그게 문제였다.
오늘 하루가 너무 즐거웠기에 일일이 하나하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세하게 생각하다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송현준은 자신에 대해서 너무 잘 알았다.
분식집에서 늘 시켜 먹는 메뉴와 완벽하게 똑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자기가 녹차 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태도였다.
팬시점에서는 마음에 든 물건 앞에 설 때마다 반 박자 빠르게 뭐가 마음에 드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사소한 것들부터 구체적인 것까지 송현준은 기이하다고 느낄 정도로 김채아에 대해 잘 알고 완벽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고…… 아니, 당연하다.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메뉴랑 똑같이 시킨 거야?”
그래서 대놓고 물어봤다.
송현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김채아는 송현준을 추궁하듯 바라보았다. 송현준이 느릿하게 말했다.
“……저번에 우리 학교 앞 떡볶이 집에서 맛있게 먹는 거 지나가다 봤거든. 네가 엄청 웃고 있어서 좋아하나보다 생각했어.”
“어어? 그걸 봤어?”
송현준의 말은 예상 못 했다. 기쁘면서도 부끄러운 말이었다.
김채아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피하려다가 송현준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알았다. 진심으로 당황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그럼 다른 건 어떻게 안 거야. 녹차 맛 아이스크림 좋아하는 거나…… 팬시점에서 막,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 딱딱 짚고…….”
떡볶이집에서 먹고 있는 자길 봤고 메뉴까지 볼 정도면 그만큼 관심 있다는 게 아닐까. 의심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핑크빛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 어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