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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38화 (34/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38화

송현준은 평소처럼 어른스럽지 않게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냥 취향이 비슷한 거 아닐까! 저번에 네가 사온 음료수도 내 취향이었고!”

얼굴까지 빨개졌다.

그 과정을 정면으로 다 지켜본 김채아도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자기가 무슨 느낌으로 말했는지 어떤 느낌으로 송현준에게 자기의 말이 들렸을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푹 익은 김채아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상한 거 물어봐서 미안해…….”

“크흠…… 미안할 필요 없어. 궁금한 거 물어보는 건 당연한 거야. 항상 생각하는데 너는 눈치를 좀 덜 봐도 괜찮을 거 같아. 네 말은 웬만하면 맞거든.”

“어…… 응. 고마워.”

그 이후 김채아와 송현준은 같은 버스를 타고, 필요한 말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중간마다 서로를 흘긋대다가 눈을 마주치면 어색하게 웃었다.

김채아는 그 이후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정은영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 일을 간략하게 들은 정은영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박이네! 너한테 관심도 있는 거 같고, 우연히 취향이 비슷하다는 거잖아?

“…….”

-이거 운명 아니야?!

“끊을게…….”

-야, 야! 내일 만나서 자세히 얘기해 줘!

“알겠어…….”

김채아는 드라마에 집중하고 계신 부모님의 씻으라는 말에 대충 대답하고,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침대에 앞으로 엎어졌다.

몸속에서 뭔가가 간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꺄아!”

씻어내기 싫은 간지러움이었다.

김채아는 작게 비명을 지르며 이불과 베개를 껴안고 잡고 뒹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김채아의 기분을 풀어줄 생각에 이것저것 해주자고 생각했다가…… 신이 나버린 나머지 진짜 중학생처럼 들뜬 바람에 김채아가 눈치챌 만할 정도로 오버해 버리고…… 김채아에게 의심받아서 심장이 철렁했던 송현준은…….

“아놔, 망할 호르몬 때문이야…….”

잠에 일찍 들지 못하고 몇 분마다 이불을 걷어차고 있었다.

* * *

“우와…….”

“이야, 여기 진짜 좋다. 어떻게 예약했냐?”

눈 앞에 펼쳐진 깔끔하고 새것 같은 인조 잔디 구장의 모습에 김채아와 김지혁이 감탄했다. 김지혁의 이어지는 물음에 나는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이 풋살장은 매주 전화로 예약을 받거든요? 하지만 저는 예약을 받는 시청 직원분이 출근하기 전에 직접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예약했어요. 원래 전화로 해야 하는 건데 학생이라고 하니까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오…….”

이 풋살장은 개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경쟁자도 적었다.

참고로 학교 오전 수업은 시청에서 현장 체험학습을 했다는 서류를 만들어서 제출했다. 아빠가 구청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아는 직원분을 통해서 할 수 있었다.

내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간다면 개근상은 당연히 못 받는다. 하지만, 무단으로 결석하는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들이 관리하기 힘든 분위기가 된다.

나는 정미영 선생님을 위해서 합법적이면서 좀 귀찮은 방법을 택한 것이다.

“잠깐만, 돈은?”

김지혁의 친구 중 가장 덩치가 큰 이승진이 의문을 제기했다.

이승진의 말에 풋살 팀 형들이 뒤늦게 날 바라봤다. 김채아도 날 본다. 김지혁이 대표로 말했다.

“네가 다 낸 거야?”

눈이 부리부리한 게 화난 기색이었다. 김지혁과 형들은 자기들이 나이가 많으니까 이런 건 자기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 거다. 이 시기의 규율이 엄격한 문화에는 이런 점도 있었다. 나이마다 서열이 또렷한 만큼 윗사람이 돈을 더 내거나 일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뭐, 양아치 같은 사람들은 안 그러지만. 여기 있는 형들은 전생에서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괜찮다.

“우리가 모아서 줄게. 얼마야?”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나는 웃으면서 사정을 얘기했다.

“조기축구회를 통해서 우연히 만난 사장님이 있는데, 이분이 절 개인적으로 후원해 주기로 했거든요. 풋살대회에 출전할 생각이라니까 딱 필요한 만큼 돈을 지원해 주셨어요.”

“후원?”

형들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지 갸웃했다.

훈련이나 친선경기나 적극적으로 임해줘서 고맙기도 하고,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후원을 받게 된다면 어차피 가장 큰 이득을 볼 사람은 나다.

이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제 돈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중에 만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인사 정도만 해주세요. 그리고, 이따 짜장면이랑 탕수육 먹으라고 사장님이 돈도 주셨어요.”

“오?”

“오오!”

형들이 환호하면서 박수까지 쳤다. 일요일 아침에 풋살을 하고 짜장면을 시켜 먹는 건 상당한 별미다.

나도 벌써 군침이 돈다.

나는 형들의 환호를 즐겼다. 그리고 형들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김지혁이 불러서 구석으로 갔다.

이미 축구 유니폼을 입고 온 김채아가 멀뚱히 선 채로 우릴 봤지만 김지혁은 개의치 않았다.

김지혁이 말문을 뗐다.

“그 사장님에게 고맙다고 전해주고.”

“네.”

“그래도, 우리가 형이니까 아이스크림이랑 음료수 정도는 살게.”

“……좋아요.”

김지혁은 만족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멀리 있는 김채아를 흘긋 보고는 내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이건 개인적인 얘긴데.”

“네?”

“너, 채아랑 무슨 일 있었지.”

“……네? 전혀요?”

“대답이 느린데.”

김지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본다.

김채아와 데이트를 한 날 이불 속에서 발차기를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는 웃음을 짓기 위해 애썼다.

“김채아가 요즘 말이야.”

“네.”

“자기 방에서 혼자 비명을 지르질 않나 혼자서 막…….”

“야!”

그때, 어느샌가 근처까지 온 김채아가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김지혁이 김채아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김채아가 달려들어 김지혁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아악! 뭐 하는 거야! 놔! 아프다고!”

“지금 걔한테 무슨 소릴 하려는 거야! 내 프라이버시야!”

“아! 알았으니까 놓으라고!”

“말 안 할거지……?”

“어! 놔!”

김채아가 김지혁의 머리를 살짝 놓아주려 하자 김지혁이 외쳤다.

“송현준! 그러니까 김채아아아악!”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오빠 미쳤지 진짜?!”

김채아는 예상했는지 놓는 척하던 손을 다시 움켜줬다. 그리고 혼내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취미가 비슷하다 보니 사이가 참 좋은 남매다. 가끔 이 악물고 싸울 때는 피 튀길 때도 있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김지혁에게 딱히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김채아와는 그날의 데이트 이후 평범한 일주일을 보냈으니까.

데이트하고 바로 다음 날 새벽 운동 때는 좀 부끄러웠지만, 훈련에 집중하니까 괜찮았다.

좀 미묘한 분위기가 흐를 때가 가끔 있긴 한데, 학교에서 보면 인사를 자주 하긴 하는데, 아무튼 뭐 김지혁이 걱정할 만한 특별한 진전은 없었다.

“여!”

풋살장에 설치된 시계가 9시를 가리키려고 할 때, 이민우와 친구들이 도착했다.

이민우는 먼저 뛰어왔고, 나는 이민우를 맞이하기 위해서 풋살장 입구로 향했다.

“안녕!”

“그래, 좋은 아침.”

“경기장 진짜 좋다!”

“지은 지 얼마 안 됐다고 망가뜨리지 말라시더라.”

“여기 관리하시는 분이?”

“응.”

이민우와는 박종혁만큼이나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어서 편안했다.

마침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김지혁과 형들이 김채아와 함께 다가왔다.

“너도 안녕! 김채아라고 했나?”

“어, 응. 안녕.”

김채아가 덤덤하게 이민우에게 인사했다. 김지혁의 눈썹이 살짝 꿈틀댔다.

나는 웃으면서 김지혁과 형들을 이민우와 이민우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나랑 같은 팀인 형들이야. 우리보다 두 살 많으셔.”

“안녕하세요!”

이민우와 친구들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이번 주에 말씀드렸죠? 얘네 올해 겨울에 있었던 대회 우승팀이에요.”

“들었어. 근데 우리도 잘하니까 괜찮아.”

“그래요?”

김지혁의 자신 있는 말에 이민우가 재미있겠다는 듯 김지혁을 바라보았다. 김지혁도 이민우를 내려다보았다. 김지혁을 비롯해서 형들의 키가 전체적으로 컸다. 저들로만 평균을 내면 170㎝ 후반은 될 거다.

이민우의 친구들은 짐 풀고 체육복이나 축구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이미 축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이민우는 내게 와서 경기에 관해서 얘기했다.

내가 먼저 제안했다.

“20분씩 네 판 어때?”

“엄청 많이 하네?”

“좋지?”

이민우가 활짝 웃었다.

“당연하지! 여기 언제까지 쓸 수 있는데?”

“지금부터 12시까지.”

“완벽한데?”

중간중간 쉬는 걸 생각하면 오전 내내 뛰는 거나 다름없었다.

“얘기한 대로 점심도 내가 살 테니 기대하라고.”

이곳은 시청 인근에 위치한 풋살장이고 난 여기의 짜장면 맛집을 알고 있었다. 이럴 땐 내가 회귀자라는 게 참 좋았다. 맛있는 가게를 많이 아니까.

“그래.”

“근데 네가 입고 있는 유니폼 어느 팀이야?”

이승진이 물었다.

이민우가 입고 있는 건 검은색과 흰색 세로 줄무늬 디자인의 유니폼이었다. 팀 마크도 있었지만, 알아보는 형들은 없었다.

“유벤투스지.”

“에이, 뉴캐슬 아니야?”

그래도 다들 피파나 위닝 정도는 해 봐서인지 아는 팀 이름을 댔다.

이민우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하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옷을 갈아입고 온 이민우의 친구들이 그 얘길 들으면서 한마디씩 했다.

“형들, 유럽 팀 아니에요.”

“얘 이 팀 자부심 쩔어요.”

김지혁과 형들, 그리고 김채아가 여러 팀 이름을 대 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점점 지루해하던 이민우가 내게 물었다.

“넌 알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산토스잖아. 브라질 명문 팀.”

“역시!”

“오?”

“쟤도 이상하다니까. 저걸 어떻게 알아.”

이민우는 만족스럽게 웃었고, 이민우의 친구들은 감탄하거나 이상한 소리를 했다. 가볍게 무시해 줬다.

이민우가 생글댔다.

“너 진짜 마음에 든다니까?”

“이번 풋살대회 끝나도 가끔 보자고.”

이민우는 개인기 연습 상대로 딱이다. 지식도 풍부해서 전술 얘기하기도 좋고.

“좋지.”

이민우와 그렇게 얘기한 나는 김지혁에게 향했다. 김지혁과 형들은 몸을 풀려고 공을 통통 튀기거나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나도 김지혁 앞에서 똑같은 스트레칭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

“형, 첫 경기는 우리 둘이 같이 뛰어보죠. 그리고, 두 번째는 저만, 세 번째는 형만 뛰어봐요. 마지막 경기는 또 같이 뛰고요.”

“좋아.”

* * *

우리는 몸을 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경기를 시작했고 20분짜리 단판으로 네 경기를 치렀다.

20분 뛰고, 20분 쉬고를 반복하니 마지막 경기에는 다들 녹초였지만, 전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재미있고 치열하게 할 수 있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우리는 세 판을 지고 한 판을 비겼다.

분명 우리 팀의 형들이 체격은 훨씬 크다. 저쪽은 키 평균을 내면 160㎝대 일 테니까. 이민우만 170㎝ 중반대였고 나머지는 다 160㎝대다. 하지만, 팀 단위의 속도가 달랐다.

이민우와 친구들은 몸싸움을 하기도 전에 빠르게 패스나 개인기를 통해 풀어갔다. 키가 작은 걸 역으로 이용해서 빠른 몸놀림을 보이는 오민규도 돋보였다.

“와씨, 너희들 진짜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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