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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40화 (36/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40화

로베르토가 고개를 갸웃했고.

신정우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팔짱을 낀 건 덤이었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느껴졌다.

“해외의 유명 스포츠 스타들은 기업의 개인 후원을 받으며 운동을 한다고 알고 있어요. 예를 들어 축구선수는 팀의 후원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어야 하지만, 신발은 개인 후원을 받는 기업의 것을 착용해서 기업을 홍보할 수 있죠.”

그제야 둘 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신정우의 눈이 순간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송현준은 나이에 비해 기발한 학생이다.

신정우는 송현준의 개인 스폰서 요청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딱 그 정도. 결국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다.

하지만, 개인 스폰서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신정우는 진지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얘기니?”

부자들이 취미로 선수들을 후원하는 경우는 꽤 흔했다.

젊은 스포츠 선수를 개인적으로 후원하며 술자리나 각종 모임에 부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운동을 배우기도 하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네. 저는 기업을 홍보하고, 기업은 절 지원해 주는 관계가 필요해요.”

하지만, 송현준은 비즈니스적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신정우는 더 진지해졌다.

“무슨 지원이 필요하지?”

송현준은 몸을 바로 세웠다.

“저는 해외 진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송현준의 말투가 바뀌었다.

신정우는 자신이 팔짱을 풀고 송현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는 걸, 행동한 후에야 인식했다. 무의식중에 나온 행동이었다.

“작년에 월드컵 4강을 갔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프로 축구 수준은 솔직히 말해서 떨어집니다.”

신정우는 유럽 출장을 많이 다녀왔고, 무엇보다 사업 때문에 이탈리아를 자주 오갔다.

괜히 로베르토를 고용한 게 아니었다. 아르드라는 회사는 이탈리아에 본사가 있는 스포츠의류 기업이고 신정우는 아르드 ‘코리아’의 사장이었다.

신정우는 이탈리아를 여러 번 오가기도 하고 그곳에 머무르기도 하며 잘 알고 있었다.

이탈리아가 비록 월드컵에서 우리 나라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리그 수준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걸.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라 영국, 독일, 스페인의 리그 수준도 굉장하다는 걸.

“저는 축구부에서 1~2년 안에 성과를 내고, 프로에 최연소로 데뷔해서 1~2년 만에 성과를 내고 바로 유럽의 4대 리그로 직행할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큰 성과를 내고 직행해?”

한국은 변방 리그다. 변방 리그에서 활약한다고 세계 최고의 리그로 직행할 수 있냐는 깊이 있는 물음이었지만, 송현준은 바로 알아들었다.

“얼마 전에 출범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절 증명할 겁니다. 목표는 우승 후에 클럽월드컵에서 해외 팀을 상대로 기량을 한 번 더 증명하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건 알았지만, 대답은 만족스러웠다. 논리적으로 문제도 없었다. 실행할 수 있느냐 마느냐가 중요하긴 하지만, 저런 얘길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신정우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손가락으로 양쪽 볼을 만지작거렸다. 표정을 가리기 위해 하는 일종의 루틴이었다.

송현준은 침착하게 자기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돈이 수시로 필요합니다. 솔직히 우리 가족 형편으로는 제 계획을 위해 필요한 걸 다 가질 수가 없거든요. 평범한 집이라서요.”

신정우는 대답하지 않고 송현준의 눈동자를 관찰했다.

보통 중학생 나이대의 꿈 넘치는 소년들은 밝고, 맑고, 반짝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송현준의 눈동자는 달랐다. 깊고, 또렷했다.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신정우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사람과 거래를 할 때 손해 보는 일은 없었다고.

신정우는 닫혀 있던 입을 뗐다.

“근데.”

“네.”

“계획은 좋고, 그렇게 되면 정말 좋을 거 같은데.”

“말씀하세요.”

“애초에 네 계획대로 하려면 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천재여야 하는 거 아니냐?”

신정우는 근본적인 부분을 짚었다.

사업 상대를 대하듯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네가 그 정도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지? 내가 아는 거라고는 로베르토가 널 대단한 유망주라고 말한 것뿐이야. 근데, 솔직히 말하면 로베르토도 아직 코치로 증명 못 한 지망생일 뿐이야. 선수 경력도 세리에A가 아니라 세리에C 에서 잠깐 뛴 게 전부고.”

송현준은 여유 있게 웃었다. 여유 있게? 신정우는 그 부분이 신기했다.

“잠재력을 눈으로 볼 수는 없겠죠. 애초에 저는 처음부터 대단한 계약을 맺을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은 돈이 엄청 필요한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한동안은 제가 성과를 낼 때마다 금액을 주는 정도면 좋을 거 같습니다. 팀원들의 개인 훈련 장비나 교통비, 경기장 대여료 정도만 필요해서요.”

“성과?”

“다음 달에 열리는 전국중학풋살대회에서 4강 이상 들겠습니다. 실전에서 제가 뛰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바뀌실 거예요.”

진지하게 말하던 송현준은 마지막에는 부드러운 말투로 돌아왔다.

그 대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해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스포츠 의류기업인 쿠거에서 주최하는 대회였다.

재작년부터 시작해서 일 년에 두 번 정도 열리는 규모가 상당히 큰 대회였다. 그만큼 실력 있는 선수들도 많이 나오고.

“좋아. 그렇게 해보지. 그러면 스폰서 얘기는 그날 다시 해보기로 하고.”

직접 가서 경기 보고 맘에 안 들면 얘기는 없던 거로, 괜찮으면 얘길 진행하는 거로.

신정우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자세를 편하게 했다.

그때였다.

“개인 스폰서가 계약을 맺는 조건이 제가 성과를 내는 거라면…… 잔디 아이디어에 대한 소원은 아직 남은 거죠?”

“뭐? 음…… 그렇지?”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신정우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송현준은 뻔뻔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용돈 좀 주세요.”

맞는 말인데…… 중학생에게 휘둘린다는 게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신정우는 반박 거리를 찾아냈다.

“운동장 빌려주는데?”

“사장님이 지난번에 별개라고 하셨었잖아요.”

송현준은 쉬지도 않고 반박했다. 기다렸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신정우는 순간 말문이 막힐 정도로 당황했다가.

“하하하하하하!”

정말 크게 웃었다. 이렇게 휘둘리는데도 유쾌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로베르토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아까부터 계속 보였지만 그것조차 재미있었다.

“어디다 쓸 생각인데?”

“부모님께 빌렸던 돈을 갚아야 해요.”

“빌린 돈?”

“네, 우리 풋살 팀 선수들 실력이 괜찮긴 한데요. 우승하려면 꺾어야 하는 팀이 두 팀 있어서, 그중에 한 팀이랑 친선경기를 잡고, 친선경기를 치르면서 부모님께 빌린 돈을 썼거든요. 바로 어제요.”

“어떻게 썼는데?”

“시에서 운영하는 풋살장 대여료랑요, 거기까지 찾아오고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교통비, 그리고 풋살 끝나고 짜장면 시켜서 같이 먹었어요. 일종의 대전료로 식사를 대접했죠.”

신정우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른스러운 돈 계산과 아이다운 모습이 동시에 보였다.

“부모님이 그 이유 듣고 빌려주셨고?”

“네.”

“부모님이 널 많이 믿으시나 보구나.”

“당연하죠. 또, 그 돈 말고도 풋살 경기장은 인조 잔디가 대부분이니까 인조 잔디용 축구화도 사야 하고, 여기서 훈련할 때 쓸 축구화도 사야 하고, 모래밭에서 훈련할 때 신을 축구화도 사야 해요. 신발이 용도에 따라 다 다르게 생겼잖아요? 겸사겸사 돈 남으면 훈련 장비도 사야 하고요. 가능하다면 우리 팀원들 전부 인조 잔디용 축구화도 맞춰주고 싶고요. 가능할 때마다 인조 잔디 운동장 빌려서 연습해야 해요.”

다 필요한 돈이었다. 신정우는 송현준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마음에 들었다.”

신정우는 지갑을 꺼내 가지고 있는 만 원짜리를 한 움큼 꺼냈다. 그리고 가방에 따로 챙겨놓은 만 원짜리 현금도 봉투째로 송현준에게 줬다. 이럴 때면 오만 원짜리나 십만 원짜리라도 있었으면 싶다.

뭔가 폼이 안 난다고 해야 하나.

대략 칠십만 원 정도 되는 큰 금액이었다.

“부족하면 더 주마.”

송현준은 손가락에 침까지 바르며 돈을 빠르게 셌다. 그 모습도 재미있었다. 송현준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충분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송현준의 그 말에 신정우는 앞으로 이 아이와 함께라면 재밌을 거라는 생각이, 아니, 확신이 들었다.

* * *

신정우가 떠나고, 침묵을 지키던 로베르토가 입을 열었다.

“너랑 있으면 심장 아파서 죽겠다. 너 중학생 맞냐?”

“중학생 아니에요.”

“뭐?”

“농담이에요.”

로베르토는 진짜로 당황했다가 내 말에 허탈한 얼굴을 했다.

“진짜 이상한 놈.”

인정한다.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다. 속에 백 살 넘게 먹은 늙은이가 들어가 있는데 어쩌겠나.

그래도 이런 게 들어가 있는 덕분에 방금 잘 해낼 수 있었다.

당장 쓸 수 있는 돈도 생겼고, 앞으로의 포석도 잘 놓았다.

기분이 좋아서 절로 입이 헤벌쭉해졌다.

“근데 풋살은 뭐냐? 난 처음 듣는데.”

“아.”

로베르토가 뚱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얘기하는 걸 깜빡했다.

“얼마 전에 들어갔어요. 나중에 같이 한 판 하러 오실래요? 그 형들도 축구 잘하더라고요. 저랑 동갑인 여자애도 있는데 얘도 잘해요.”

“여자애가 있다고?”

로베르토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걔가 저보다 키도 크고 달리기도 비슷해요.”

“아, 지금은 그럴 수 있겠네.”

로베르토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나도 같이하고 싶긴 한데…… 요즘은 할 일이 좀 많아서 어렵겠다.”

“여유 되면 오시는 거죠.”

“그래그래, 슬슬 갈까? 너희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그러게요.”

우리는 짐을 챙겨 운동장을 나섰다.

* * *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끌벅적한 아침이었다.

1학년 2반 친구들은 친한 무리끼리 모여서 떠들고 있었는데, 중학생의 에너지라는 건 굉장해서 반 전체가 목소리로 꽉 찬다고 느낄 정도였다.

초반 전생 때는 왜 선생님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조용히 하라고 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중학생들은 조금만 떠들어도 엄청 시끄럽다.

“팬더 쌤 오신다!”

체육대회 때 함께 축구를 했던 김성환의 외침에 친구들은 자기들 자리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교실 앞문을 열고 정미영 선생님이 등장했다.

“팬더 쌤이라고 말한 김성환 엎드려. 다 들렸거든?”

“아.”

김성환은 탄식했고, 반 친구들은 웃으면서 엎드리라고 재촉했다. 김성환은 자기 자리 옆에 엎드렸다.

“으이구. 빨리 일어나.”

“감사합니다!”

그런 장난을 치는 동안 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올해가 처음인 선생님은 나날이 학생들 다루는 게 능숙해지고 있었다.

“자자, 오늘은 특별한 건 없고…… 아, 요즘 다른 선생님들이 우리 반 수업 태도 좋다고 하더라.”

선생님은 웃었다. 그 말에 다들 한마디씩 하면서 시끄러워지려고 하자 선생님이 다음 말로 바로 막았다.

“너희들, 기말고사까지 3주 남은 거 알아?”

반 친구들은 서로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선생님의 말을 계속 들었다.

“다들 이번에는 잘 준비해 봐. 하루에 한 시간씩만 공부해도 성적이 달라진다니까? 아니, 수업 시간에 집중만 잘해도 돼.”

선생님이 날 잠깐 보고 희미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내 옆으로 시선이 가자마자 눈을 찌푸리셨다.

“특히, 박종혁. 이번에도 찍으면 죽는다~.”

“헐…… 왜 저만 갖고 그러세요.”

박종혁이 항변했다. 선생님이 이어서 말하다가 멈칫했다.

“당연히 너만 그런 게 아니지. 너도 그렇고, 엄…… 태영이가 왜 일어나 있니?”

지난 중간고사 때 전부 찍은 범인은 박종혁과 엄태영, 축구부 두 명이었다. 엄태영은 조회 시간 점심시간 수업 시간을 가리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게 일상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엄태영도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 반 학생이긴 했지만 선생님도 친한 학생이 있고 어색한 학생이 있었다. 엄태영의 얼굴을 본 선생님은 우물쭈물하더니 화제를 돌렸다.

“박종혁, 엄태영. 너희 둘 다 고생하는 거 아니까 대단한 성적을 바라는 게 아니야. 그냥, 찍지만 마. 알겠지? 너희들 본인을 위해서야!”

“네~.”

“……네.”

박종혁과 엄태영이 차례로 대답했다. 박종혁은 가벼웠지만, 엄태영은 평소처럼 늘어지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최근 엄태영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며칠간, 엄태영은 평소였다면 무조건 자고 있을 수업 시간에도 깨어 있었다. 물론, 10분도 못 가서 꾸벅꾸벅 졸지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선생님은 수업 잘 듣고, 오늘 하루도 잘 보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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