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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41화 (37/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41화

선생님이 나가기가 무섭게 옆의 박종혁이 투덜거렸다.

“아놔, 이번에도 찍으려고 했는데.”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나보다 먼저 엄태영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왜 나댔어~.”

“야, 너는 왜 아닌 척하냐. 같이 누가 더 잘 찍나 해보자고 한 게 누군데.”

“하하…… 난 잘할 거거든.”

“네가? 웃기시네.”

엄태영은 지금은 나와 그리 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당장은 둘의 대화에 신경 끄고 1교시 수업 준비를 하려고 가방을 열었다.

박종혁이 무슨 생각인지 엄태영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태영아. 너도 점심때 발목 훈련 같이할려? 현준아, 괜찮지?”

나는 둘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우물쭈물하는 엄태영을 봤다.

“매일 하는 그거? 으음…….”

엄태영은 특이한 녀석이다. 수업 시간에는 잠만 자고, 축구부에서도 살짝 붕 떠 있는 느낌. 가끔 하는 소리도 헛소리가 많다. 이때 말로 4차원이다.

하지만, 축구로만 보면 기본기와 체력이 정말 좋다. 얼마나 좋냐면 인생이 잘 풀린다는 가정하에 최상위 리그에서 몇 시즌 주전으로 뛸 정도다.

윤태상, 박종혁과 함께 우리 학교 축구부를 이끄는 주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존재감은 없지만, 빠지면 존재감이 드러나는 타입이다.

초반의 전생들에서는 축구부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었다.

“왜. 힘들까 봐? 힘들진 않아. 효과도 많이 보고 있고.”

박종혁은 실제로 성과를 얻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이제는 자기가 더 주도적으로 훈련에 심취하고 있었다. 요즘은 하지 말라고 말려야 할 수준으로 할 때도 있었다.

엄태영은 느릿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밥 먹고 낮잠 안 자면 오후에 못 움직여…….”

“너답다 미친놈아. 어떻게 계속 잠만 잘 수 있냐 그것도 능력이다.”

“칭찬 감사요~.”

“칭찬 아니야.”

둘이 대화하는 동안 나는 교과서와 필기 노트를 꺼내서 책상 위에 놓았다. 엄태영이 내 교과서와 노트를 바라보다가, 내가 자길 보는 걸 깨닫자 눈을 피했다.

박종혁은 엄태영이 그러건 말건 계속 떠들고 있었다.

“이 훈련이 얼마나 좋냐면 말이다. 내가 요즘 달리기도 엄청 안정적으로 되고, 평소보다 힘 덜 들이고 슛이나 패스도 하고, 방향 전환도 막! 잘 된다 이 말이다.”

“그래그래…….”

엄태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박종혁의 얘기에 건성으로 대답해 줬다. 시선이 딴 데 가 있는 게 딴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무슨 생각인지는 전생들을 경험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그러니까 같이하자 이 말이야.”

“어…….”

“송현준이 얼마나 똑똑한데. 해외 축구 자료도 막 가져와서 알려준다니까.”

“역시, 그렇구나. 현준이 똑똑하긴 한 거 같더라.”

엄태영이 내 얘기가 나오자 날 봤다. 나도 마침 엄태영을 보고 있었기에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순간 서로 눈을 피하지 않았고.

“어…….”

“음…….”

어색해졌다.

우리는 아직 대화 몇 번 나누지 않은 사이였다.

“둘이 왜 이렇게 어색하냐 진짜. 말이라도 해봐.”

박종혁의 얘기에 엄태영이 굳게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러지 마. 엄태영이 이어서 로봇같이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안녕, 난 엄태영이라고 해.”

“어…….”

그걸 모르겠냐, 라고 반박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는 잘 모르는 사이였다.

“새끼, 더 어색하게 만드네.”

다행히 박종혁이 맥락을 짚어줬다. 나는 엄태영에게 뻣뻣하게 웃어줬고, 엄태영도 그랬다.

“글렀구만.”

박종혁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어색하게 미소만 지으며 교과서를 보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엄태영을 생각했다.

축구부에 들어가기 전에 친한 녀석을 하나 더 만들 계획이었다. 당장 풋살이 눈앞이라고 해도 학교에서는 다음 일을 대비해야 했다.

그게 바로 엄태영이었다.

네 번째 전생부터 알 수 있었던 엄태영의 현재 상황을 봤을 때, 엄태영은 오늘 당장에라도 내게 도움을 청할 것이다.

수업 종이 울리고, 1교시를 맡은 도덕 선생 배영호가 들어왔다. 배영호는 체육대회 이후 수업 내용 말고 사적인 얘긴 굳이 하지 않았다.

“차렷!”

반장 김현호의 목소리에 맞춰 팔을 책상 아래로 내렸다.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세요.”

“그래~.”

배영호는 대충 인사를 받고 수업을 시작했다. 개인감정도 없었고, 기말고사 때는 좋은 성적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을 알뜰히 써야 한다.

나는 엄태영에 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 * *

“으아아! 드디어! 쉬는! 날! 이다!”

“시끄러.”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박종혁이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 질렀다.

점심시간에 다른 반 축구부원이 찾아와서 오늘 오후 훈련이 없다고 말해서 박종혁은 이미 한 번 날뛰었었다.

“현준아~.”

“아씨, 징그러워. 꺼져.”

박종혁이 징그러운 표정으로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같이 노래방 가실?”

“나 노래 개 못하는 거 모르냐.”

“끔찍하긴 하지. 근데 여자애들이 너 데려와 달라고 사정했는데. 노래하면 분위기 깨니까 따라오기만 해주라. 먹을 것도 잔뜩 사줄게.”

“벌써 약속을 다 잡아놨냐…….”

“모처럼 쉬는 날인데 철저하게 해야지. 쉬는 시간마다 이 형님이 여자반 가서 약속 잡았다.”

쉬는 시간마다 안 자고 어딜 가나 했더니.

박종혁은 우쭐하면서 말했다. 그런 박종혁의 표정을 단숨에 망가뜨리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못 가. 약속 있어.”

“뭐? 안 돼. 무슨 약속?”

“뭐가 안 돼. 풋살 하러 가야 해.”

“걍 오늘은 빼면 안 되냐? 같이 좀 놀자.”

박종혁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해서 마음이 약해질 뻔했지만, 난 단호해져야 했다.

“나 형들한테 죽어.”

거짓말이자 최고의 핑계를 댔다.

“아, 왜 형들이랑 풋살을 해서는…… 너 김채아 만나러 가는 거지!”

“뭐, 김채아도 보고 겸사겸사.”

부끄러워하면 먹잇감만 된다. 태연하게 답하자 박종혁이 한숨을 쉬고, 나 말고 노래방 갈 다른 친구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잘 가!”

“바이바이.”

다른 반 친구들은 인사를 남기고 교실을 떠났다. 지상준과 박종혁을 비롯한 노래방 파티와 집에 갈 준비를 하는 다른 친구들이 내 주변에 모였다.

나는 가방을 싸지 않고 선생님이 준 문제지를 꺼낸 참이었다.

“너는 바로 안 가냐?”

“응, 형들 수업 좀 늦게 끝난다고 해서 30분 정도 문제지 풀다 출발할 거야.”

“와, 공부하다 간대.”

“이 모범생 새끼.”

“모범생 놈.”

“모범자 녀석.”

“모범자가 뭐냐?”

“그러게 뭐지.”

“X신이냐.”

친구 놈들은 자기들끼리 헛소리를 하다가 공부랑 축구만 하다가 죽겠네~ 라는 악담을 남기고 떠났다.

나는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문제지를 보기 전 교실을 둘러봤다.

학원 숙제를 하는 무리를 빼면 나와 엄태영만이 남아 있었다.

엄태영이 날 보는 게 느껴졌지만 일부러 그쪽을 보지 않았다.

엄태영도 박종혁처럼 오후 훈련 휴식일 텐데 여기 남아 있다는 건 오늘이 바로 기다리던 그 날이라는 거였으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문제지를 펼쳤다.

그때 엄태영이 다가왔다.

“저기, 송현준…….”

“응?”

엄태영은 우물쭈물하면서 내 가방과 문제집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엄태영이 본론을 얘기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 전생에서 몇 번 겪은 상황이었으니까, 쉽다.

“혹시…… 나 모르는 것 좀 알려줄 수 있어?”

기다리던 말이었기에 웃으면서 대답할 수 있었다.

“얼마든지.”

* * *

“진짜 고마워!”

“괜찮아. 나는 문제지 풀면 되니까 필요하면 집에 가져가도 돼.”

“정말? 너 천사구나…….”

“에이, 뭘.”

“그럼 사양 말고 받을게.”

엄태영에게는 문제집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내 필기 노트를 건네줬다.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을 활용해 만든 노트였다. 수업 내용 정리도 할 겸 엄태영을 위해서 준비한 거다. 저것만 외워도 70점, 아니, 평균 80점 정도는 거뜬할 거라 확신한다. 왜냐면 난 같은 내용으로 열 번 정도 시험을 치렀으니까.

엄태영은 공책에 얼굴을 박고 열심히 연필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문제지를 푸는 척하면서 엄태영에 관해서 알고 있는 걸 정리했다.

엄태영은 이 시기 축구부와 공부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엄태영의 아버지는 교수고 어머니는 교사이셨다. 그렇다 보니 엄태영의 부모님은 공부를 등한시하고 축구에만 집중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온 날 엄태영이 부모님은 폭발했다.

기말고사 평균 70점 이하로 나오면 축구부 활동을 그만두게 할 거라고 엄포를 놓으신 거였다. 뭐, 실제로는 60점만 넘어도 봐주시지만.

엄태영은 그 이후 체육대회다, 축구부 활동이다 너무 바빠서 부모님의 엄포를 잊고 있다가, 기말고사가 다가오면서 점점 초조해지고, 내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나는 네 번째 전생에서 전교 1등도 해봤다. 그 이후로는 수업만 들어도 높은 성적을 받을 정도의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다. 10~20년 주기로 수업을 반복해서 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거 뭔가 이해가 정말 잘 된다! 고마워.”

“아니야.”

“진짜 대단하다. 너 따로 운동도 한다면서. 나는 축구부만 하는 것도 벅차던데…….”

“나는 운이 좋았던 거라.”

“운?”

“응. 그냥 뭔가 다 잘 맞아들어간다고 해야 하나…… 그냥 요즘은 운이 좋아. 수업도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것만 나오고.”

엄태영은 4차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꽤 많은 전생에서 엄태영을 본 나는 알 수 있었다.

엄태영은 그냥 단순하고 순수한 거다. 내 어중간한 말에도 엄태영은 그게 진실인 양 생각할 거다.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체육대회 결승 때도 엄청났다고 종혁이가 그러던데. 나는 그때 자고 있어서 못 봤어. 나중에 축구부 들어올 거야?”

“생각은 있어.”

“그러면 그때 은혜를 갚을게.”

“그래 주면 정말 고맙지.”

단순한 사람을 상대할수록 순조롭다. 엄태영 일은 계획도 아니라 준비한 대로 술술, 정말 순조롭게 풀렸다. 기말고사도 마찬가지로 잘 보겠지.

근데 참, 김채아는 어렵다.

이틀 전에 점심 먹을 때 혼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지만, 어제나 오늘 새벽 운동 때도 별말 없어서 알 수가 없었다.

평소와 달라진 거라면 더 의욕적으로 하는 것 정도. 오빠들을 위해서 그런 거겠지.

여러 번 회귀하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을 보면 NPC 같아 보여서 지루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보면 안정감을 느낀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단순한 사람들은 늘 비슷한 미래로 향하게 되니까. 내가 아는 행동을 하니까.

참 이중적이다.

열심히 필기하고 있는 엄태영을 보면서 생각했다.

김채아도 엄태영 같았다면 좋았을까?

김채아는 느닷없이 1학기 때 다가오질 않나, 같이 이민우와 대결하지 않나, 같이 풋살대회에 나가게 되질 않나.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너무 많은 게 바뀌어 버렸다.

불안하기도 하면서 솔직히, 신선했다. 늘 밝고 강하던 김채아에게도 이런 소심했던 시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불안하면서 신선하면서 기쁘다. 김채아를 만날 때마다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삼중적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개소리 같은 생각을 접었다. 시계를 바라보았다. 김채아와는 수업 끝나고 사십 분 뒤에 교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금은 친구랑 놀고 있으려나, 이따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까.

여러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하교 중인 학생들로 가득한 운동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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