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42화
같은 시간, 대영 중학교의 정문 앞 분식점에서는 김채아가 떡볶이를 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정은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먹으면 안 돼?”
“안 돼…….”
“그렇게 먹고 싶은 거 같은데?”
“아니야. 내가 그럴 리가 없어…….”
그러면서도 떡볶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정은영은 인상을 팍 찌푸리고 언성을 높였다.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요즘 점심도 잘 안 먹으려고 하고 간식도 안 먹으려고 하고 그러다 몸 상하면 어떡해. 일요일에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정은영의 진심 어린 걱정에 김채아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나는 내가 너무 대충 살았던 게 아닌가 해서…….”
“대충? 새벽마다 운동하는 애가 대충?”
정은영이 정색했고, 김채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더듬었다.
“아니, 그…… 그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대단한 사람들을 연속으로 보니까 내가 너무 초라해지는 거 같아…….”
“대단한 사람들? 송현준?”
“응, 송현준도 그렇고 이민우도.”
“이민우면 송현준이랑 데이트 한 날에 같이 축구 했다는 상대편? 악당?”
“맞긴 한데 악당은 아니고…….”
“아무튼 얘기해 봐. 이번 주 얘기는 아직 제대로 못 들었어.”
“응. 그게 말이지…….”
정은영과 김채아가 주기적으로 이런 얘길 하는 건 일과가 되어 있었다.
떡볶이집 아주머니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자신들의 얘기를 듣는 것도 모른 채 김채아는 일요일에 있었던 일과 느꼈던 점을 솔직하게 말했다.
김채아는 이민우와 2:2 축구를 해 봤기에 풋살 팀끼리 붙어도 질 거라고 예상했다. 실제로도 이민우의 팀은 강했고, 김채아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다음에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분하긴 했지만 좌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방법이 보였으니까.
송현준의 말대로 팀 대 팀으로 붙어 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을 포함한 오빠들이 이민우 팀과 비교해 봤을 때, 신체적으로 강점이 있었다.
경기에서는 당연하게도 송현준과 이민우가 돋보였다. 막 몸을 두 바퀴 회전한다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건 아니었지만, 그 둘이 가장 잘한다는 건 축구를 모르는 사람을 데려다 놔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넘쳤다.
김채아는 송현준이 유달리 잘하는 이유를 철저한 훈련과 재능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빠와 그들과의 대화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별의별 걸 다 알잖아. 그만큼 축구라는 종목에 깊게 파고드는 거고. 야구도 비슷하거든. 깊게 파고드는 애들이 잘하더라.
송현준과 이민우가 아리고 뭐시기 하는 감독의 이름을 얘기하는 거나 압박 전술에 관해서 얘기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송현준이니까 당연히 알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맛있는 짜장면을 먹었다.
그렇지만 오빠의 그 말을 듣고 그동안 봐온 송현준의 모습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졌다.
송현준이 식단까지 관리하고, 수업 시간 외에는 전부 훈련으로 채우고, 수많은 이론을 공부하는 이유는 축구에 깊게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건 당연한 게 아니라고. 재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엄연히 다르다고.
축구를 더 깊고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렇게 공부하고 하루를 최대한 활용해서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하는 거라고.
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이민우와 송현준이 오랜 친구처럼 보이는 이유도 아마 그것일 거다.
서로가 비슷한 사람이었기에 서로에게 더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 뒤에 몰려오는 건 초라함이라는 감정이었다.
김채아는 태어나서 어떤 것에 그렇게 몰입해서 해본 적이 없었다. 운동을 좋아하긴 하지만, 오빠처럼 한 가지를 하는 게 아니라 주변이나 유행에 맞춰서 이것저것 했다.
이어서 화가 났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송현준이 다정하게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감정은 당연한 거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은 못 하니까 생기는 분함이라고.
그리고 그걸 푸는 건 여러 방식이 있다고.
김채아는 짜장면을 깨작이며 묵묵히 생각해 봤다. 당장은 몰입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풋살이 재밌기는 했지만, 송현준이나 이민우처럼 몰입해서 할 수 있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당장 아무것도 안 하기는 싫었다.
헤어질 오빠들을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송현준과 이민우의 흉내라도 내보고 싶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몰입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어제부터 엄청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어. 송현준은 막, 그 음식 영양소? 그런 것도 생각하면서 먹더라고. 그런데 난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이거 지금 먹어도 되나 싶어서…….”
“…….”
“그리고 또, 송현준이랑 비슷하게 하면 걔랑 좀 더 가까…… 가까워…… 그래!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김채아는 용기를 냈다. 최근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자신은 송현준한테 관심 있다.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 없어진 정은영을 재촉하듯 물었다.
“내, 내가 말이 너무 많았나?”
김채아의 조심스러운 말에 정은영은 고개를 격하게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 그래? 근데 왜…….”
정은영의 눈빛이 이상해서 김채아는 움찔했다. 김채아는 이 눈빛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었다.
“우리 채아가…… 너무 기특해서!”
“엥?”
“기특한 데다가 귀여워! 그리고 멋있어!”
맞다, 기특해하는 눈빛이었다. 김채아는 당황했다.
“왜, 왜 그래?”
정은영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 송현준 얘기할 때의 너랑 지금이랑 완전히 달라 보여. 뭔가, 뭔가, 대단해!”
“으응…….”
“태어나서 이렇게 깊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친구를 만난 건 처음이야. 존경스러워! 분명히 채아는 잘할 수 있을 거야!”
김채아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려고 했다가 이어지는 정은영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 얘기해 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너한테 조금이라도 의지가 되는 것 같아서 기쁘기도 하네…….”
“어…….”
김채아는 마치 심장이 찌르르 울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들어줘서 고마워…… 응…… 정말 고마워…….”
자기도 모르게 속을 다 터놓고 얘기했고, 그게 받아들여졌다.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둘의 사이로 살코기로 가득 찬 접시가 탁하고 내려왔다.
분식점 아주머니였다.
“채아 학생…… 힘내요! 잘할 수 있어요.”
“네?”
“‘우연히’ 들었는데, 너무 기특하고 딸 같아서요. 이거 먹어봐요.”
“네에?”
분식점 아주머니는 정은영과 비슷한 눈빛으로,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다.
“내 아들도 운동부라서 아는데 살코기는 많이 먹어도 돼요.”
“정말요?”
분식집 아주머니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감사합니다!”
배가 고픈 김채아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말이었다. 김채아는 바로 젓가락을 들었다. 그제야 혼자만 먹고 있어서 마음이 불편했던 정은영도 젓가락을 움직이며 말했다.
“나도 너한테 자극받은 거 같아. 앞으로 매일 인체 크로키 10장씩 해야지.”
“크로키가 뭐야?”
“대상을 관찰해서 엄청 빠르게 그리는 거야. 이거 많이 하면 그림 실력이 눈에 띄게 는다고 학원 선생님이 그랬는데…… 그동안은 귀찮아서 안 했거든. 근데 오늘부터는 할래!”
“응!”
정은영의 다짐을 들으니 김채아도 기분이 좋아졌다.
둘의 다음 대화 주제는 어떻게 하면 더 몰입해서 할 수 있을까로 넘어갔다.
“너 아까 식단도 잘 모른다고 했잖아.”
“그렇지. 도서관 가서 책 찾아볼까? 아니면 생물 선생님이나 양호 선생님한테 물어볼까?”
“아니지, 아니지.”
정은영이 검지만 든 채로 손가락을 흔들었다. 이어지는 건 음흉한 미소다.
“송현준한테 물어봐야지. 더 가까워지고 싶다며.”
“아…….”
아까 자신이 했던 말을 상기시키는 정은영의 말에 김채아의 귀가 빨개졌다. 그래도 김채아는 부끄러움을 이겨내며 말했다.
“그래야지. 그렇게 해야겠다,”
“오올? 정말 할 수 있어?”
“응, 할 거야.”
정은영은 생글거리며 웃었다. 그때, 비어 있던 옆 테이블에 다른 여학생들이 앉았다.
“아 개짱나, 아빠가 이번 기말고사 망치면 핸드폰 압수한대.”
“헐, 치사하다.”
“그치!?”
정은영과 김채아의 눈이 마주쳤다. 둘 다 아…… 하고 작게 탄식했다.
그렇다, 둘은 기말고사가 3주 앞으로 다가온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김채아가 먼저 말했다.
“기말고사는…… 음! 몰라!”
“나도 모를래!”
둘은 눈을 마주치며 작게 웃고, 이어서 까르르 웃었다.
* * *
교문에 도착하니 김채아가 기다렸다는 듯 분식집에서 나왔다.
“안녕!”
김채아의 힘찬 인사에 손을 흔들어줬다. 같이 나온 정은영이 김채아를 놀린 건지 김채아가 손사래 치는 게 보였다.
둘이 사이가 좋아 보인다.
정은영은 떠났고, 김채아가 다가왔다. 분식점 아주머니는 왜 이쪽을 보는지 모르겠다. 가방을 고쳐 매고 김채아에게 말을 걸었다.
“떡볶이 먹다 왔어?”
“아니, 살코기만 먹었어.”
“살코기? 그런 것도 팔아? 아, 순대 부속에 있는 거?”
“응.”
나는 김채아와 가자 중학교 방향으로 걸으며 얘기했다.
“왜 떡볶이 안 먹고?”
김채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오히려 내게 질문했다.
“저기, 송현준, 너 나랑 같이 훈련하면 도움이 된다고 했지?”
“어? 응. 그랬지.”
“그러면 말이야. 나도 너처럼 식단관리? 비슷하게 해보고 싶은데 알려줄 수 있어?”
“아아…….”
살코기만 먹었다는 게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갔다.
“그 정도야 알려줄 수 있지. 근데 막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어. 우리는 중학생이니까, 그냥 아무렇게나 많이 먹어도 괜찮거든.”
“그래도 넌 하잖아. 나도 해보고 싶어.”
나는 김채아를 빤히 바라봤다. 김채아가 얼굴을 살짝 붉혔지만, 그래도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할 말을 하고 있었다.
불현듯, 지금 인생의 김채아가 전생의 김채아들과 비슷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 그래. 근데 너희 어머니가 좀 귀찮으실 수도 있는데…… 날 미워하시진 않겠지?”
“그럴지도?”
“뭐? 너무한데.”
김채아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역시 뭔가 변한 것 같다. 한층 더 여유로워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말이야, 오빠들이랑 풋살 훈련을 매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 각자 진로가 다른 만큼 일정도 다양했기에 최소 평일에는 세 번, 주말에는 한 번 이상 만나기로만 약속했다.
“다른 날에도 너랑 같이 훈련하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