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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43화 (39/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43화

이 정도로 몰아치면 나도 정신이 없어진다. 김채아의 적극적인 모습에 잠시 머뭇거리면서 여유를 찾은 나는 김채아에게 되물었다.

“지금도 하잖아.”

“아니, 새벽에 하는 인터벌 훈련부터 시작해서 밤에 하는 훈련까지, 전부 다.”

“뭐? 그렇게까지 하려고?”

“응, 너도 하니까 나도 해보고 싶어.”

김채아는 부끄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그, 그. 너랑 똑같이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아…… 아니, 맞긴 한데…… 이건 어디까지나 오빠들이랑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서…….”

이건 이번 인생의 김채아다.

묘하게 안도하는 내가 있었다.

동시에 스멀스멀 불안감이 올라왔다. 김채아가 급격하게 변한 게 보였다.

전생들의 김채아처럼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다.

당연히 괜찮은 건데.

괜찮은 건데.

이상하게 불쾌감이 들었다.

“……싫어?”

내가 오랫동안 말이 없었던 탓에 김채아가 불안함과 미안함이 가득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아니! 아니야. 괜찮아. 근데 저녁 먹고 하는 훈련은 로베르토라고 예전에 얘기한 적 있지? 이탈리아 형이거든. 같이 해도 괜찮아?”

“응, 그러면 일단 내일 새벽에 운동장으로 갈게. 그리고 로베르토 씨한테는 내가 가도 실례가 아닌지 먼저 물어봐 주면 좋겠어…… 귀찮겠지만 부탁할 수 있을까?”

“……응, 알겠어. 내일 말해줄게. 도착했다.”

우리는 가자 중학교에 도착하면서 대화를 마쳤다.

“오! 우리 현준이 왔냐.”

“현준아 이 새끼가 신기술 개발했는데 한번 봐줄래?”

“네! 당연하죠!”

나와 김채아는 환영해 주는 형들과 함께 풋살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훈련을 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로베르토와 저녁을 먹고, 잔디훈련장에서 김채아와 함께 훈련해도 되냐고 물었고, 허락을 받았다.

로베르토는 내가 잘한다고 말한 여자애가 대체 어느 정도인지 진심으로 궁금해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꼬시면 안 돼요.”

“뭐? 미쳤냐 내가. 꼬맹이한테.”

“걔 꼬맹이 아니에요. 저보다 커요.”

“아, 그렇다고 했지. 아니, 근데 그래도 나이가 꼬맹이잖아. 관심 없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못 믿겠는데…….”

“이놈이 진짜. 그거 차별에 편견이다. 뭣보다 반은 한국인이니까 믿어 봐.”

일부러 장난을 걸면서 기분을 풀려고 했지만, 찝찝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김채아와 로베르토가 중학생 시절에 만나려는 것 자체도 모든 전생에서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 * *

김채아는 정말로 다음 날의 이른 새벽부터 중학교 운동장에 찾아왔다.

나는 김채아에게 로베르토가 허락했다고 얘기했고, 김채아는 뭔가 해냈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축구부 녀석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김채아가 진지했기에 나도 진지하게 하기로 했다. 평소와 똑같이, 아니, 평소보다 더 힘이 들어간 인터벌 훈련도 김채아는 이를 악물고 따라왔다.

“더 빨리 움직여! 김채아!”

“응!”

코디네이션 훈련에서 힘이 빠지는 듯 보였지만, 끝까지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집에 갈 때는 다리를 후들거리기까지 했다.

“그럼 학교 끝나고 보자.”

“응. 교문에서 기다릴게.”

김채아는 발목 훈련도 같이하고 싶다고 했지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 될 것 같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정말 그런 이유로 거절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수업이 끝나니 김채아는 먼저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응…….”

오후 훈련은 공원에서 할 때도 있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할 때도 있었다. 오늘은 공원에서 했다.

평소에는 혼자 할 수 있는 드리블이나 볼 다루는 기술 위주로 훈련했고, 김채아가 와도 이건 달라지지 않았다.

김채아는 나처럼 짧은 드리블, 방향전환 드리블, 30분 동안 리프팅 반복 등을 착실하게 따라 했다. 물론 공이 다른 데로 튀어서 주워오고 그러긴 했지만, 김채아는 내가 쉴 때까지는 쉬지 않았다.

“그럼 저녁 먹고, 태양 마트 앞에서 보자. 어딘지 알지?”

“응…….”

하루가 갈수록 김채아의 목소리가 점차 늘어지고, 김채아의 기운도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괜찮아?”

“솔직히 힘들긴 한데 끝까지 하고 싶어.”

“그래, 그럼 저녁 먹고 일곱 시에 만나자.”

“알겠어.”

저녁을 먹고 약속 장소로 시간을 맞춰 나오니 김채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더 의욕적인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체육복이네? 잘 어울린다.”

“……고마워…….”

김채아는 아침에 비해 훨씬 피로해 보였지만, 배시시 웃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아르드 공장의 잔디 운동장까지 함께 걸어갔다.

“사실 네가 후원자가 있다고 한 거 있잖아. 거짓말인 줄 알았어.”

“왜?”

“그냥 네가 돈 내는데 그럴듯하게 말하려고 한 건 줄 알았거든.”

생각보다 예리한 말에 말문이 막힐 뻔했다.

“에이, 우리 집 그렇게 부자 아니야.”

“혹시나 했지. 이제는 진짜라는 거 아니까 괜찮아. 잔디 운동장에서 공 차는 거 기대된다.”

“생각보다 더 미끄럽고 발이 푹푹 빠지니까 적응해야 할 거야.”

“응, 열심히 할게…….”

별로 걷지 않았는데도 김채아는 피곤해 보였다. 운동을 아무리 좋아하고 수시로 한다고 해도 최소 축구부 급으로, 그것도 일대일로 훈련을 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피로도가 쌓일 만했다.

“힘들면 저녁은 쉬면서 구경만 해도 돼.”

“아니야, 할래. 얘기한 첫날부터 못 하면 바보 같잖아.”

“그럼 무리하면 안 된다? 약속.”

“내가 애야?”

내가 새끼손가락을 흔들자 김채아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웃었다. 그리고 김채아가 진지하게 새끼손가락을 거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했다.

잠시 후 우리는 잔디 운동장에 도착했다. 도서관에서 바로 온다고 했던 로베르토는 이미 유니폼을 입은 채로 몸을 풀고 있었다.

“오! 왔냐!”

로베르토의 유창한 발음에 김채아가 내게 속삭였다.

“한국말 진짜 잘하신다.”

“얘기했잖아.”

“상상보다 더 잘하시는걸. 혼혈이시라길래 한국인 같을 줄 알았는데 누가 봐도 백인 같고.”

“뭘 그렇게 속닥여?”

로베르토가 대화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안녕, 네가 김채아구나?”

진짜, 여자 앞에만 서면 목소리를 낮게 까는 이탈리아인들은 피에 뭐라도 새겨져 있는 건가. 내가 눈썹을 찌푸리자 로베르토가 눈으로만 웃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말 진짜 잘하시네요.”

“그렇지 뭐. 어이쿠, 계속 이러면 송현준이 질투하겠다.”

“뭔 소리예요.”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고, 김채아는 눈이 동그래져서 날 보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 혼자서 고개를 열심히 젓고 있다.

그리고 질투가 아니다.

김채아와 로베르토가 지금 만난 것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생기는 불안감 때문이다.

“흐흐, 장난이야. 어쨌든! 현준이가 칭찬하던 실력을 드디어 보겠구나.”

“현준이…… 송현준이 절 칭찬했다고요?”

“응! 같이 풋살 하는 여자애가 잘한다고.”

“정말요?”

김채아의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지는 게 보였다. 날 보면서 재차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사실이었기에 고개만 살짝 끄덕여 줬다. 김채아가 기뻐했다.

덕분에 이어지는 훈련은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저녁 훈련은 아버지나 로베르토의 도움을 주로 받기에 킥과 움직임 위주의 훈련이 주였다. 드리블로 돌파나 수비하는 연습도 하고. 그러니까 실전 위주의 훈련이었다.

우리는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훈련을 치렀다.

다만,

“혹시! 너 프로 축구 해볼 생각 없니?! 한국은 아직 불모지지만 해외는 여자축구가 꽤 활성화된 곳이 있거든!”

로베르토의 유망주 레이더가 발동하는 바람에 계속 진지하지는 못했다.

“내 인맥을 쥐어짜서 좋은 팀을 찾아볼 수 있어!”

로베르토의 기량과 지식에 놀라서 내게 ‘진짜 프로로 뛴 사람은 다르구나…….’라고 속삭이던 김채아는 이번에는 날 향해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애가 놀라잖아요.”

“아니, 축구 제대로 한 지 2년밖에 안 됐고, 취미로만 했는데도 이 정도면 여자축구계의 펠레가 될지도 모른다고?”

머리가 아프다. 김채아가 여자축구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런데 나쁘지 않을 거 같기도 하고.

어떡해야 하나 막막해서 가만히 있는데 김채아가 정중하게 거절했다.

“죄송해요. 외국에 나가는 건 별로…….”

“아, 아까운데…… 한국 여자축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아이고, 못 참겠다. 나 잠깐 화장실 좀.”

아까부터 참는 것 같더니 결국 못 참고 로베르토는 건물 쪽으로 달려갔다.

“잠깐 쉬자.”

김채아는 바로 주저앉았다. 나도 천천히 따라 앉았다.

김채아는 날 보고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진짜로 나 칭찬했어?”

“……응.”

“헤에.”

김채아는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

“오늘도 잘하고.”

“한참 모자란 거 같은걸.”

김채아 말대로긴 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김채아는 실수나 기량 부족을 수시로 보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렇게 제대로 훈련한 건 처음이잖아. 끝까지 버티는 것만으로도 100점이야.”

“100점?”

“응. 난 첫 달에 힘들다고 안 하거나 그냥 자버린 날도 있는걸.”

먼 전생이었지만, 그랬던 적도 있었다.

“신기하다. 전혀 안 그럴 거 같은데.”

“난 네 생각보다 엄청나게 부족한 사람이야.”

“그런가?”

김채아가 갸우뚱하며 날 빤히 바라보았다. 잔디 운동장을 비추는 조명 때문인가 얼굴이 더 잘 보였다. 괜히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

“오, 좋은 분위기에서 방해한 거야?”

다행히 로베르토가 돌아왔다.

“그런 거 아니에요.”

“맞아요. 아니에요.”

“둘이 호흡도 척척이구만. 아무튼, 남은 훈련도 빨리하자. 나 한 시간 뒤에 약속 생겼다.”

“네!”

* * *

“꼭 불 끄고 가라~ 난 사장님이랑 이거 하러 가야 해서.”

로베르토가 손으로 소주를 마시는 시늉을 했다.

“방향이 반대니까, 시뇨리나(이탈리아어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는 꼭 집까지 모셔다드려야 한다. 밤길은 위험하다고~.”

“걱정하지 마시고 술이나 적당히 드세요. 목소리 좀 그만 까시고요.”

“안 깔았거든! 아무튼 수고해라~.”

“안녕히 가세요…….”

“너도, 푹 쉬고. 채아도 나중에 또 보자!”

“네…….”

로베르토는 옷도 안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떠났다. 남은 힘을 쥐어짜 내서 인사한 김채아는 잔디밭에 누워 있었다.

내가 훈련 장비를 치우자 일어나려고 해서 그냥 누워 있으라고 강하게 말했다. 김채아는 힘들긴 했는지 내 말을 들어줬다.

잔디 운동장 불까지 끄고, 누워 있는 김채아 옆에 앉았다. 이렇게 누우면 쯔쯔가무시 걸리는데.

근데 이렇게 힘들게 훈련하고 누워 있는 사람의 심정을 잘 알았기에 일으켜 세우기가 뭐 했다.

김채아는 내가 옆에 왔는데도 어두운 밤하늘을 계속 보고 있었다.

김채아가 뭘 보나 싶어서 나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름달이 보였고, 어두운 밤하늘에 하얀 점처럼 별들이 찍혀 있었다.

시골처럼 은하수가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공장 지역이라 불빛이 적어서 그런지 별이 꽤 보이는 편이었다.

김채아가 대자로 누운 채로 중얼거렸다. 나한테 하는 얘기인지 혼잣말인지 애매했다.

“힘들어서 죽을 거 같아.”

그래도 대답은 해 줬다.

“고생했어.”

“넌 안 힘들어?”

“힘들지.”

“이렇게 힘든 걸 매일 할 만큼 축구가 그렇게 좋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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