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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44화 (40/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44화

“이렇게 힘든 걸 매일 할 만큼 축구가 그렇게 좋은 거야?”

바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순수하게 축구가 좋았던 시기도 있고, 증오스러웠던 시기도 있고, 일처럼 대했던 시기도 있었다.

많은 경험과 감정이 뒤섞여 있었기에 지금은 솔직히 축구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희미하더라도 예전의 강렬한 기억들은 몇 가지 남아 있었다.

그걸 토대로 얘기했다.

“처음에는 축구가 재미있었어.”

“그럼 지금은 아니야?”

“모르겠어. 재미있으니까 잘하고 싶어졌고, 잘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밟으면서 차근차근 발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아서 기계처럼 공부하고 훈련했거든.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까 이제는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어. 왔다 갔다 하거든.”

적당히 풀어서 말했다.

“깔끔하게 대답 못 해줘서 미안.”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준 거 같아서 좋아. 역시, 넌 뭔가 대단하고 부러워.”

“부럽다고?”

“응. 나 오늘 엄청 힘들었는데.”

“그런데?”

“엄청 힘든데…… 너무 꽉 찬 하루였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기다리니 김채아가 들뜬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응, 보람차다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야. 오늘 하루는 정말 꽉 차 있었어.”

김채아가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다. 두렵기도 했지만, 기특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복잡한 감정을 가슴에 품고 하늘을 보고 있으니 김채아가 말했다.

“별도 정말 예쁘다.”

“얼마 있지도 않은데.”

“야, 쓸데없이 태클 걸래. 적든 많든 예쁜 건 예쁜 거야.”

“네네.”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또 말문을 연 건 김채아였다.

“내일도 이렇게 하는 거야?”

“그렇지.”

“매일매일?”

“응.”

“십 년 뒤에도?”

“그때는 프로 선수니까 체력 관리는 하면서 생활해야겠지만 최선은 다하겠지.”

“너는 되게 먼 미래도 생각하고 있구나.”

김채아가 상체를 일으켜서 앉았다. 그리고 날 보면서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어.”

* * *

“현준아, 채아 왜 저렇게 죽어가냐?”

퀭한 김채아의 몰골을 본 이승진이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게요?”

나는 제발 가볍게 넘어가 주길 바라면서 얘기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몸을 풀고 있었는지 흐르는 땀을 닦던 김지혁이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얘기했다.

“쟤네 둘 풋살 연습 핑계로 새벽부터 아주…… 어휴.”

“새벽부터 뭐?”

“송현준이 새벽부터 훈련하는데 채아도 거기 껴서 새벽부터 밤까지 꼭 붙어서 훈련한단다.”

김지혁은 퉁명스러웠지만 다른 형들에게는 아니었다.

이승진, 배호영, 유호성은 먹잇감을 찾았다는 눈빛으로 나와 김채아를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오올~.”

“오오우.”

이승진의 휘파람을 시작으로 형들은 우리를 야유했다.

친선경기도 하고 훈련도 몇 번 같이하다 보니 친해져서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잘 넘겨보려고 한 건데.

김채아의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반항했다.

“아니, 형들!”

“오오오오오오오.”

“야! 그걸 왜 말해!”

그때, 언제 퀭한 얼굴을 했냐는 듯 새빨개진 김채아가 김지혁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김지혁이 반박했다.

“야라니! 오빠라고 불러 이것아. 요즘 자꾸 야라고 하네.”

“응 싫어~.”

“응 그럼 나도 계속 얘기할 거야~.”

“야!”

“응~.”

심각한 김채아와 유치한 김지혁의 싸움을 옆에서 보다 보니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현자 타임이 왔다.

나는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서 손에 들고 있던 그물망을 형들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물망 속에는 공이 담겨 있었다.

“형들, 이러고 있을 틈이 없습니다.”

“왜 갑자기 존댓말이래.”

“곤란한 상황을 바꿔보려고 하는 거지.”

“아, 형들.”

형들이 킬킬거렸다.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제가 지금 풋살 공을 사 왔다니까요?”

“축구공이랑 뭐가 다른데?”

“둘이 방금 데이트하면서 사 왔나 보네?”

“아! 오빠들! 진짜 죽어!”

김지혁에게만 쏘아지던 분노가 다른 형들에게도 발사됐다.

김채아와 나는 형들보다 수업이 한 시간 일찍 끝나서 시내에 있는 운동용품점에 함께 다녀왔다.

같이 닭꼬치도 사 먹고, 잡담도 하고 그러면서 와서 데이트란 말이 딱히 틀린 건 아니었다. 그래서 김채아가 찔렸는지 더 발끈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솔직히 조금 그랬고.

김채아가 빽 소리를 지르자 마지막으로 장난을 쳤던 이승진이 쭈그러들었다. 이승진은 다른 형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다른 형들은 외면했다.

이승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뻔뻔하게 말했다.

“아하하, 그래? 풋살 공을 사 왔다고?”

“네! 일단 풋살장 대여 시간도 계속 지나고 있으니까 빨리 훈련이나 준비하면서 얘기할까요?”

“좋은 생각이야.”

나는 씩씩대는 김채아가 더 분노하지 않도록 이승진과 어색하게 대화하며 애써 화제를 돌렸다.

우리는 지난번에 이민우의 친선경기를 치렀던 인조잔디 풋살장에 와 있었다.

신정우에게서 받은 돈으로 아버지에게 돈을 갚았고, 남은 돈으로 오늘부터 가능한 매일 풋살장을 빌릴 계획이었다.

인조잔디 경기장에서 익숙하냐 아니냐가 대회에서의 경기력을 결정할 테니까.

“형들, 이 공 좀 봐주세요.”

“아까부터 공, 공 하는데 왜? 똑같잖아.”

“축구공이 아니라 풋살공이라고요. 앞으로는 이걸로 연습해야 해요. 보세요.”

그물망에서 풋살공을 빼서 하늘로 높게 던졌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공은 튕겨서 높게 올라……

“오? 왜 이렇게 안 튀어?”

……가지 않았다.

“풋살공은 탄성이 적어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이 공에 익숙해져야 해요.”

김채아에게는 이미 설명한 내용이었지만, 김채아는 모범생이 돼서 내 얘길 듣고 있었다.

또, 풋살용 공은 4호 사이즈기 때문에 5호 사이즈인 성인용 축구공보다 작다. 다만, 유소년용 축구공은 풋살용 공과 같은 4호 사이즈였고 우리는 유소년 용 축구공을 사용해 왔기에 크기는 크게 상관없었다.

형들은 내게서 공을 받아 서로 패스해 보며 흥미로워했다.

경기장과 공에 익숙해지는 게 기본이다. 이것만 준수해도 틀림없이 전생보다 좋은 성적을 낼 확률이 오를 것이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풋살’에 초점을 맞춰봐요.”

오늘부터 인조잔디 경기장을 빌린 이유는 형들의 협조 덕분이었다.

형들은 저번 주 내내 학교 끝나고 저녁 식사 전까지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부모님께 허락을 받는다던가 학원 일정을 조정한다든가 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매일 훈련할 수 있었다. 야구부 소속인 김지혁만 가끔 빠질 예정이었지만, 김지혁도 나름대로 훈련을 빼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동안 훈련 프로그램은 다 내가 짜왔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얘기했다.

“오늘부터 스트레칭은 알아서 하고요, 다 모이면 론도부터 할 거예요.”

“론도?”

“네. 네 명이나 다섯 명이 원을 만들어서 서고, 한 명이나 두 명이 중앙에 서서 원을 만든 사람들이 패스하는 공을 빼앗는 훈련이에요.”

형들은 갸웃거리다가 깨달은 건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서로를 바라보았다.

김지혁이 대표로 말했다.

“그거 살인축구나 살인피구 같은 거 아니냐?”

“맞아요! 비슷해요!”

“그거 왕따 놀이잖아.”

“그런 게 훈련이 된다고?”

형들은 반신반의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확신 어린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니에요. 볼 다루는 기술이랑 패스랑 수비를 동시에 연습할 수 있는 정말 효율적인 훈련이라고요.”

여전히 다들 의심 어린 기색이었다.

이럴 때는 유명인들을 끌어다 써야 했다.

“정말이라니까요. 바르셀로나 알죠? 레알 마드리드 라이벌 팀.”

“알지.”

“모를 리가 있냐.”

축구게임 덕분에 이 시절에도 빅 클럽들의 이름은 우리 사이에 잘 알려져 있었다. 특히 갈락티코 1기 시절이었기에 레알 마드리드가 가장 유명했다. 그 라이벌 팀인 바르셀로나도 자연스럽게 이름이 알려졌고.

“푸욜, 사비올라, 리켈메, 히바우두 뭐 이런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대단한 선수들이 하는 훈련이라고요.”

게임에서 능력치가 높은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댔다. 호나우지뉴는 몇 달 후에나 이적하니까 얘기에서 뺐다.

“오오.”

“정말이냐?”

“그럴듯하게 들리긴 하는데…….”

“그렇죠? 그럼 일단 해볼까요?”

관심과 열의가 생긴 형들과 김채아를 데리고 론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20분 후, 형들은 인조 잔디밭에 대자로 누웠다.

“아뜨뜨.”

“그늘에서 눕죠.”

“그래…….”

“아이씨, 죽겠다.”

외곽에서는 빠른 템포로 패스를 주고받고, 중앙에서는 공을 빼앗기 위해 계속 뛰어야 하고.

론도는 패스와 수비의 템포가 빠른 만큼 익숙해지기 전에는 체력소모도 상당히 큰 훈련이었다.

공을 제대로 못 받으면 주우러 뛰어가야 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상위 클래스 선수들은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공을 주우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즈음에는 그럴듯하게 됐다. 앞으로 대회까지 매일 연습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두 형과 김채아는 벤치에 앉고, 나머지 두 형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들을 보며 똑바로 선 채로 얘기했다.

“그 상태로 들어주세요.”

“또 뭐야.”

“간단한 이론이에요.”

형들은 질린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내 얘길 들어줬다. 나는 똘망똘망한 눈을 한 김채아를 보며 말했다.

“축구에서 공격수를 스트라이커라고 부르는 것처럼, 풋살도 피보, 아라, 픽소, 골레이로라는 포지션 명이 있어요.”

“피, 픽, 뭐?”

다들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헷갈리죠?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공격수, 윙, 수비수라고 부르죠. 골레이로가 골키퍼인데 그냥 골키퍼라고 부르고요.”

그럴듯한 용어 사용은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얘기를 시작했다.

“풋살은 스로인이 없잖아요?”

“그렇지?”

“그걸 킥인이라고 하는 것도 아시죠?”

“우리가 바본 줄 아냐.”

김지혁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그럼 킥인은 정확히 몇 초 안에 해야 하는지, 킥인을 할 때 상대 팀 선수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 아세요?”

“…….”

다들 침묵했다.

“4초에요. 다들 기억하세요. 그리고 킥인을 할 때 상대 팀은 5m 이상 떨어져야 하는데, 이건 심판 성향상 바뀔 수도 있으니까 적당히 떨어져야 한다는 것 정도만 아세요.”

다들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킥인으로 직접 골 못 넣는 건 아시죠?”

“엉.”

“킥인 할 때 이렇게.”

나는 공을 놓고 왼발을 고정시킨 채로 오른발로 허공에 킥 하는 시늉을 했다.

“디딤발을 떼면 안 된다는 것도 아세요?”

“……뭐 이렇게 알아야 하는 게 많냐.”

“공식 룰이니까요. 동네에서 노는 거면 알 필요 없지만…….”

형들과 김채아를 둘러봤다.

“그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이승진이 대답해 줬다. 다들 고개를 끄덕여 줬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골키퍼가 공을 던지는 골 클리어런스도 4초, 킥인해야 하는 시간도 4초, 코너킥을 차야 하는 시간도 4초에요. 그리고 풋살은 농구처럼 전후반에 한 번씩 작전타임을 요청하고 게임을 멈출 수 있어요.”

“아아악! 어려워!”

형들은 비명을 지르고 김채아는 관자놀이를 양 검지로 쿡쿡 찌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김지혁은 현재까지 운동부를 하고 있다 보니 핵심을 정확하게 짚었다.

“그냥 하면서 배우면 안 되냐?”

“맞아요. 지금은 그냥 얘기한 거예요. 기억하면 좋고, 못 기억할 거 같으면 4초랑 디딤발은 고정해야 정도만 알아줬으면 해요.”

“좋아.”

“응.”

“그 정도야 뭐…….”

나는 씩 웃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자자, 그러면 쉴 만큼 쉬었으니 다들 일어나죠. 풋살장 대여 시간이 점점 줄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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