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45화
“나 참…….”
“그래…….”
내 재촉에 다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일어났다.
다들 이제 뭐 해? 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제 매일 킥인 전술을 연습할 거예요. 풋살에는 오프사이드가 없고, 키커에게서 떨어져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킥인을 잘 활용해야 해요.”
“그래, 그래라.”
다들 기쁘게도 내 말을 따라줬다.
김지혁이 질렸다는 얼굴로 물어봤다.
“근데 넌 안 쉬어도 되냐?”
“제가 대회 나가자고 했으니까 책임감을 가져야죠.”
그 말에 형들이 혀를 찼다.
“그렇지. 여기 대여료도 구해오고.”
“공도 사 왔고.”
“훈련도 공부해 오고.”
형들은 다들 한 마디씩 건넸다.
“어이구, 형이 돼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그래, 열심히 해보자.”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건 상당히 기쁘다. 나는 활짝 웃으면서 훈련을 이어서 시작하자고 말했다.
* * *
김채아가 송현준과 모든 훈련을 함께한 지 사흘이 지났다. 오늘은 나흘째였다.
어제부터 오후에는 풋살 훈련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에 김채아는 사흘 내내 수업 시간에 계속 졸다가 선생님들한테 혼났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잠만 자다 보니 친구들의 걱정도 받았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깼는데 아직 수업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까지 10분이나 남아 있었다. 분명, 나아지고 있었다.
체력이 늘어난 건지, 힘든 훈련 강도에 몸이 익숙해진 건지.
뭐가 됐든 김채아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김채아는 송현준이 발목 훈련을 하는 것처럼 학교에서도 뭔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송현준에게 할 만한 걸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영상 보면서 전술 공부하는 것도 괜찮긴 한데…… PMP 있어?
-아니…….
-그러면 리프팅이지.
-리프팅? 발등으로 계속 공 튕기는 거?
-응.
그런데 여자반에서, 그것도 말뚝박기조차 잘 하지 않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애들로 가득한 김채아의 반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리프팅을 하기란 무리였다.
혹시라도 튀어서 반 친구가 맞는다면 보기에 끔찍할 정도로 시퍼렇게 멍이 들지도 모른다.
김채아는 생각보다 쉽게 멍이 들거나, 자신은 가볍게 생각하는 통증도 크게 아파하는 여자아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걸 얘기하니 송현준이 고민하다가 다른 방법을 알려줬다.
-그러면 작은 공으로 하는 건 어때? 푹신푹신한 테니스공으로 하는 것도 괜찮아.
-꼭 축구공으로 안 해도 돼?
-작은 거로 하는 것도 볼 다루는 감각에는 도움이 돼. 막상 보면 축구공도 다 똑같은 건 아니잖아? 풋살공이랑 축구공이 다른 것처럼 말이야.
김채아는 송현준의 말을 떠올리며 가방 속에서 공을 하나 꺼내서 손에 쥐었다.
김채아는 테니스공도 맞으면 아프다는 걸 직접 해봐서 잘 알았다.
집에서 송현준의 말대로 테니스공으로 리프팅을 해 봤는데, 축구공보다 훨씬 작고 질감도 달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자주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래서 집에서 굴러다니던 어린이용 스펀지공을 가져왔다. 적당히 무겁고 푹신해서 혹시 맞더라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김채아 반은 다른 반에 비해 시끌시끌하고 활기찬 친구가 적은 편이었기에 교실 뒷공간은 늘 비어 있었다.
‘부끄러운데…….’
김채아는 그래도 지금 송현준은 쉬고 있지 않다는 걸 떠올려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에 있는 시간 외에 늘 축구뿐인 걸 넘어서 온 하루를 한 분야에 몰두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해하고 싶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채아야! 웬일이야! 지금을 일어나 있네. 요 며칠 잠만 자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지혜와 김혜진, 두 친구가 다가왔다. 정은영은 선생님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 교무실로 막 떠난 참이었다.
“채아야, 채아야. 우리 얘기 좀 들어봐. 엊그제 남자애들이랑 PC방에 갔거든?”
평소였다면 분위기를 위해서, 주변 친구들에게 맞추기 위해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리라.
“어…… 미안한데 나 지금 할 게 있어서…….”
“할 거?”
“응, 다음 달에 풋살대회에 나가기로 해서, 연습해야 해서.”
“또 운동하는 거야?”
김채아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다, 말문은 막히지 않았다. 그동안 이런 상황이 되면 자신을 스스로 깎아내서 주변에 맞추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김채아는 자신이 언제든 말할 수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응, 난 운동 좋아하니까, 하고 싶어서.”
김채아는 슬리퍼를 벗고 양말 차림으로 교실 뒤로 향했다. 이지혜와 김혜진이 멀뚱멀뚱 서서 자신을 보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녹색 스펀지 공을 던져서 발등으로 받아 튕겼다. 이어서 반대 발등으로,
주변에 튕길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너무 높지 않게, 살살, 천천히.
처음에는 몇 번 옆으로 튕겨 나가긴 했다. 민망하고 미안했다. 미안하니까 공을 옆으로 튀게 해선 안 됐다. 공을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공에 더 집중했다.
그러자 주변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운동장이 아닌 시끌벅적한 교실에서도 좋아하는 걸 한다.
환경의 변화는 김채아에게 평소 이상의 집중력을 가져다줬다.
결국 공을 한 번도 안 떨어뜨리고 3분가량을 리프팅했다. 더 큰 축구공이었다면 훨씬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어려우면서도 뭔가 도움이 되는 느낌이 나서 김채아는 아쉬웠다.
김채아가 아쉬움을 떨쳐내고 시계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자길 보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김채아가 하는 행동을 전부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와아아아, 진짜 멋있어. 채아야. 더 안 해?”
다만 뒷자리에 앉은 반 친구들은 김채아를 보고 있었다.
김채아는 당황했다. 평소와 달리 훈련을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긴장해서 그런가 기본적인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아, 미안, 말은 하고 했어야 했는데. 혹시 방해될까? 다음 달에 풋살대회 나가기로 해서 자주 연습할 거 같아서…….”
“아니야! 괜찮아! 짱 멋있는걸.”
“그 공 아파 보이지도 않고.”
김채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쉬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자리에 돌아오니 이지혜가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마침 정은영도 교무실에서 돌아왔다.
정은영이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응, 채아가 갑자기 변한 거 같아. 우리 얘기 안 들어주고 쉬는 시간 내내 공을 찼어.”
이지혜와 김혜진은 서운해하는 기색이었다.
“정말?”
반면에 정은영은 놀란 듯이 김채아를 바라보았다. 기쁜 기색이 언뜻 보였다.
그동안 김채아는 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교실에서도 조용히 지냈고,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서 행동했었다.
하지만, 튀지 않으면서 그냥 평범하고 잔잔하게 사는 것보다, 더 몰입해 보고 싶었고, 그런 게 계속되는 삶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더 끌렸다.
그래서 김채아는 양 손바닥을 모아 합장하며 말했다.
“서운했다면 미안해. 그런데 지금 나한테 정말 중요한 거라서 어쩔 수가 없었어.”
김채아는 겉으로는 당당했지만, 속에 있는 심장은 한없이 쿵쾅대고 있었다. 얼굴이 붉어질까 봐 걱정이었다. 안 하던 걸 하니까 더 긴장했다.
이지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거 잠깐 연습하는 게 도움이 되는 거야?”
“응.”
이지혜와 김혜진은 살짝 얼이 빠져 있는 모양새였다.
둘은 당황스러웠다. 김채아가 평소와 다른 행동, 다른 말을 갑자기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기분이 들어 둘은 어색한 기분을 느꼈다.
????????♪♪
하필 그때 수업 종이 울렸다.
“수업 잘 들어.”
“응!”
이지혜와 김혜진은 복잡해 보였지만 그렇게 말하고 둘의 자리로 향했다. 뭐라고 말을 꺼내려다가 머뭇거리는 게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김채아는 짝꿍 정은영과 함께 앉았다.
김채아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깎아내며 이지혜, 김혜진, 정은영과 그동안 만들어둔 모래성 같은 관계가 단숨에 무너진 기분이었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괜찮아, 채아야.”
그래도 믿어주는 친구가 하나 있었고, 송현준도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그냥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김혜진과 이지혜는 김채아와의 이상한 대화가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 모두 평소처럼 대화하고 행동했지만, 둘은 여전히 뭔가 생각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김채아는 그들을 신경 써줄 여유가 없었다.
솔직하게 얘기했고, 지금은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김채아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리프팅 연습을 계속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업이 끝났다는 종소리를 듣자 김채아는 알 수 없는 후련함을 느꼈다.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교실을 나가 교문으로 향했다.
멀리 자길 기다리고 있는 송현준이 보였다.
김채아는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싶어서 송현준에게 뛰듯이 걸어서 다가갔다.
“…….”
그런데 송현준은 자기가 가까이 왔는데도 여전히 공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김채아는 장난기가 들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김채아는 송현준의 뒤로 가서 한쪽 어깨에 턱을 올리면서 공책 내용을 보며 물었다.
“뭐 봐?”
“으악!”
송현준이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용기 내서 한 행동이었지만 송현준의 반응을 보니 그저 재미있었다. 의외로 이렇게 과감한 행동은 어색하기보단 자연스러웠다.
김채아는 기분 좋은 해방감 같은 걸 느끼면서 송현준을 향해 웃었다.
“뭐, 뭐야.”
“그냥.”
송현준이 복잡한 얼굴을 하더니,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요새 송현준은 이런 모습이 잦았다.
“필기 요약한 거 보고 있었어.”
“무슨 필긴데?”
“기말고사에 나올 범위.”
김채아는 어이가 없어졌다.
“너는 기말고사까지 공부해? 진짜 사람 맞아?”
“으음…….”
“괴물 같아.”
김채아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생각을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놀랐다. 저번처럼 분한 감정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이전과 달라진 건 최근의 행동밖에 없었으니까. 지금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송현준이 뭘 하든 큰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이다.
송현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말고사 공부 도와줄까?”
“아니, 괜찮아. 못 봐도 돼~.”
김채아는 웃으며 말했다.
송현준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니까 늘 여유 있어 보이고, 한 분야에서 그런 실력까지 갖추게 된 거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대체 얼마나 해온 걸까.
아직은 까마득하다. 하지만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서 김채아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송현준을 재촉했다.
“빨리 가자.”
오늘도 오빠들과 함께 론도도 하고, 킥인 전술도 연습하고 3대 3으로 모의 훈련도 해야 했다.
훈련은 힘들겠지만, 이제는 기대되기도 했다. 사람 마음이란 참 복잡한 것 같다고 김채아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