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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46화 (42/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46화

“좋아.”

김채아는 거울 속의 자신을 살폈다.

훈련복도 삐뚤어지지 않았고, 머리카락도 단정하다. 저녁 먹을 때 묻은 것도 없었다. 옆구리에 송현준이 빌려준 풋살공을 낀 채로 김채아는 방에서 나와 현관에서 외쳤다.

“엄마, 아빠, 다녀올게요!”

“그래~.”

“너무 늦게 돌아오면 안 된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대답하려던 김채아는 이어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빠! 내가 언제 늦게 돌아온 적 있어요? 잘 갔다 오라고 하면 되지, 맨날 왜 늦게 들어오면 안 된다는 말만 해요!”

한두 번 이런 게 아니었다. 저녁 훈련을 나간 지도 일주일이 넘었는데 김채아의 아버지는 맨날 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말을 계속 들으면 노이로제에 걸린다. 김채아는 짜증이 났다.

“크흠…… 걱정되니까 그렇지.”

김채아의 아버지는 변명하듯 말했다.

“알겠어요! 아무튼 다른 식으로 말하든가 해요! 맨날 같은 말만 들으니까 죄짓는 거 같잖아요!”

“그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김채아의 아버지는 애써 힘차게 대답했고, 김채아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에휴…….”

“하긴, 맨날 똑같은 말만 하면 우리 착한 채아도 화날 만하죠.”

“당신은 누구 편이에요?”

“남의 편보다는 우리 채아 편이죠~.”

“너무해 죽겠네. 남의 편이라니.”

김채아의 부모님은 원래 서로 존댓말을 썼다. 다만 김채아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에 불만이 생겼기에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썼다.

김채아의 어머니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버지를 달랬다.

“농담하려고 했는데 너무 심했네요. 미안해요.”

“흥, 괜찮아요. 근데 말이에요. 채아 쟤, 그…… 괜찮을까요.”

“요즘 많이 달라지긴 했죠.”

김채아의 어머니는 웃었다.

“편식이 심하던 애가 요즘은 나물 반찬도 다 챙겨서 먹고…… 얼굴에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먹는 게 얼마나 귀엽던지.”

“왜 그렇게 변했는지 알잖아요.”

김채아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준이 덕이죠.”

“현준이? 현준이이? 왠지 친근하게 들리는데요?”

김채아의 아버지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 모습이 아까의 김채아와 똑같아서 어머니는 웃었다.

이어서 무슨 상관이냐는 듯 말했다.

“지혁이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착하고 예의 바르고 능력도 있는 애라고.”

“알긴 아는데…… 남자 놈이…… 우리 귀한 딸한테…… 떼잉…….”

아버지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불만을 드러냈다.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뭐 어때요. 채아 표정이 훨씬 밝아졌잖아요.”

“그건…… 그렇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요즘 김채아는 체력적으로는 힘들어 보일지언정 표정에는 생기가 넘쳐 흘렀다.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부끄러운 건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원은 해줘야죠…… 근데 하…….”

“그렇게 걱정이면요. 현준이네 부모님을 보면 되죠.”

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부모님? 어떻게요?”

“걔네가 나간다는 대회를 서울에서 한다면서요. 그래서 현준이네 엄마한테 아까 전화 왔는데 대회 나가는 애들 부모님들끼리 밥이나 한 끼 먹으면서 회의 좀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그거 내가 나가봐야겠네.”

송현준의 어머니는 대회에 대해서 주최 측에 연락해서 알아봤고, 8강 이상에 오르면 서울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게 효율적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인솔 겸 보호자를 미리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김채아의 어머니는 송현준 어머니의 꼼꼼함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부모님을 보면 자식도 보인다는 말이 있다.

송현준도 실제로 보면 꽤 마음에 들지 않을까, 김채아의 어머니는 생각했다.

* * *

요즘 수업 태도가 좋다고, 다른 과목 선생님이 문제집을 주신다고 교무실에 불렀다. 문제집을 사는 데 돈이 안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돌아가려고 하니 정미영 선생님이 불렀다.

선생님은 내 손에 들린 문제집을 보고 뿌듯한 얼굴을 하시더니, 다른 얘길 꺼내셨다.

“대회 준비는 잘 돼가니?”

“네. 형들이나 김채아나 다 열심히 해줘서…… 솔직히 기대하고 있어요.”

“기대? 우리 현준이가 나가면 당연히 우승하는 거 아니니?”

“아니에요.”

선생님은 농담 섞어서 얘기한 것 같았지만, 나도 모르게 단호하게 부정해 버렸다.

선생님이 당황하셔서 설명해 드렸다.

“두 팀이 문제에요. 저기 유성구에 있는 전 대회 우승팀은 어떤 면에선 저보다 잘하는 애가 하나 있고요, 그 팀은 오랫동안 같이 뛰어서 팀워크가 좋아요. 또, 강원도에 있는 팀은 축구부에 문제가 생겨서 축구부 선수들끼리 모여서 대회에 나온대요. 이 두 팀을 초반에 만나면 재수 없으면 4강에 못 갈지도 몰라요.”

“뭐…… 그래도 괜찮잖니?”

선생님의 말에 또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선생님은 내가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회에 나간다고 생각하고 계실 테니까.

선생님은 내가 워낙 단호하게 말해서 그런지 곤란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나는 웃으면서 그럴듯한 변명을 꺼냈다.

“기왕이면 우승하는 게 좋잖아요?”

그제야 선생님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건 그렇지. 그래도 너무 무리하다가 다치지는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장난스럽게 말하자 선생님이 웃으셨다.

“아, 맞다. 채아라고 했나?”

“김채아요?”

“표정이 확 변하는 게…… 현준이도 청춘이네. 중학생 연애는 추천하지 않는데 말이야.”

선생님이 장난꾸러기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놀렸다.

“에이, 선생님~ 근데 걔는 왜요?”

“복도 지나가다가 몇 번 봤는데 교실 뒤에서 맨날 공 튕기는 거…… 그걸 뭐라고 하더라…… 트래핑? 아, 리프팅! 그걸 혼자서 열심히 하더라고. 매일, 매시간 연습하던데?”

“아…….”

김채아가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지 가늠도 안 됐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복잡해서 가만히 있는데 선생님이 물었다.

“근데 걔…… 문제가 하나 있어.”

“김채아한테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이 들었다.

“수업 시간에 맨날 졸아서 큰일이야.”

“예?”

긴장이 확 풀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반응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 별것 아니라는 반응 뭐니? 원래는 안 그랬단 말이야.”

“에이, 설마 했잖아요.”

“설마? 이게 설마가 아니니. 운동부도 아닌데 수업은 열심히 들어야지!”

나는 선생님에게 김채아 대신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잠시 후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교무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반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 걸어서 1학년 4반 앞에 도착했다.

김채아는 1학년 9반이다. 여기까지 와야 교실 내부가 보였다.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인데도 복도 건너편의 1학년 9반에서 김채아가 리프팅을 하는 게 보였다.

지나가듯 한 말인데 정말 열심이었다.

수업 종소리가 울린다. 쉬는 시간이 끝났다.

김채아는 리프팅하는 데 몰입해서 그런지 종소리를 못 들은 모양이었다. 정은영이 다가와서 김채아를 멈추게 했다. 김채아는 정은영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기 자리에 가서 앉는 거겠지.

이번 인생의 김채아는 내 평정심과 계획을 자꾸 흔들었다.

첫 만남부터 당황스러웠다.

예상보다 일찍 만난 김채아는 내가 아는 전생의 당당한 모습과 달랐다. 소심하고 남 눈치 보는 김채아라니,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일단 그 다른 면이 불편하니까 내가 아는 김채아에 가깝게 유도하자고 생각했다.

가급적이면 내가 아는 방향대로 흘러갔으면 했다.

내가 은퇴하는 날까지 시간이 많이 있었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고, 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김채아의 변화가 이상한 나비효과를 일으킬까 봐 두려웠다.

그렇게 김채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전생의 모습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감정에 솔직한 김채아, 남 눈치 보지 않는 김채아.

이번 인생의 김채아는 내가 아는 김채아와 닮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그게 또 불편했다.

병신인가.

이번 인생의 김채아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생동감이 줄어드는 게 아쉬웠다. 익숙하다는 건 포근함과 편안함을 가져다주지만, 지루함과 무미건조함도 함께 가져다 준다.

????????♪♪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복도에서 돌아다니던 학생들이 제 반으로 뛰어 들어갔다. 선생님들도 몇 보이기 시작했다.

“야, 송현준. 여기서 뭐 하냐?”

다른 반에서 놀다 온 건지 박종혁이 내 어깨를 툭 쳤다.

“별거 아니야.”

“그래? 빨리 가자.”

박종혁이 우리 반으로 향했다. 나는 박종혁의 뒤를 따라 걸으려다가 멈칫하고 1학년 9반을 바라보았다. 김채아는 보이지 않았다.

수업 들으러 가야 하는데,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 * *

풋살 훈련은 즐거웠다.

당연히 힘들기도 했지만, 김지혁을 제외하고는 전생을 통틀어서 처음으로 준비하는 풋살대회라 신선함투성이었다.

인조잔디 경기장을 빌리는 걸 실패한 날에는 몰래 테니스장에 숨어들어 가서 풋살을 하다가 들켜서 도망치기도 하고, 저녁을 밖에서 간단하게 때우고 가로등을 불빛 삼아서 훈련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수시로 친선경기를 했다.

나는 중앙에서 공을 잡았다.

“패스!”

공격수 김지혁이 왼쪽 사이드에서 패스를 달라며 손을 들었다. 김지혁은 요즘 야구부 연습을 빼먹고 함께 훈련하는 일이 많았다.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고등학교가 결정되었고 감독님이랑 친해서 잘 얘기했다고 그랬다.

상대 팀 수비가 붙기 전에 김지혁에게 패스했다. 김지혁은 축구부 출신답게 발바닥으로 공을 받는 동시에 자기 앞으로 살짝 굴려놓고, 그대로 오른발로 감아 찼다.

“아이고 아깝다!”

그리고 슈팅은 골키퍼에게 쉽게 잡혔다. 슈팅이 빗맞았다.

“자자! 수비 들어와!”

골키퍼 이승진이 팀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외쳤고, 우리는 모두 그가 얘기하기도 전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호흡을 맞춘 지 오래된 김채아와 형들, 그리고 내가 있다 보니 팀워크가 아주 좋다고 요즘 들어 더 느끼고 있었다.

상대 골키퍼의 골 클리어런스로 경기가 재개됐다. 상대 골키퍼는 축구부 골키퍼였기 때문에 팔 힘이 몹시 셌다. 상대 골키퍼는 우리 진영에 있는 상대 공격수에게 단숨에 패스했다.

아무래도 좁은 공간에서 하다 보니 공수 전환이 빨랐다.

상대 공격수가 슈팅을 하려는 찰나 김채아가 막아섰다.

우리는 풋살 특유의 빠른 템포에 익숙했다. 상대는 고등학교 1학년 축구부원들이었지만, 우리는 풋살에 익숙하다는 근거로 게임을 잘 풀어나가고 있었다.

상대 팀의 공격수는 김채아를 앞에 두고 볼을 툭 툭 건드리며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페인팅을 넣었지만 김채아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다 조급해진 공격수가 드리블을 조금 길게 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김채아는 단번에 발을 내밀어 빼앗고, 몸싸움을 한 번 버텨냈다.

그리고 좌측면을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우리의 공격이었다.

“패스!”

수비 자리에서 순식간에 아까의 위치로 돌아간 김지혁이 또 한 번 왼쪽 측면에서 패스를 달라고 외쳤다.

김채아는 바로 패스하려다가 상대 수비수가 패스길 바로 옆에서 호시탐탐 가로챌 준비를 하는 걸 발견하고 멈칫했다.

그 짧은 시간동안 김채아에게 제쳐진 상대 수비수가 김채아의 바로 뒤까지 쫓아왔다.

이럴 때 파라 패스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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