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51화
부모님 둘 다 말을 잃었다. 두 분 다 식사도 잊어버리고 얼빠진 얼굴을 했다.
이 식탁에서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는 돈가스를 통으로 베어먹던 동생이 한마디 했다.
“오빠 거짓말하지 마. 큰오빠도 아니고.”
“진짜야. 이걸 거짓말해서 뭐 하냐. 어차피 들키는데.”
“헐, 그럼 진짜야?”
“엉.”
“대박.”
나와 여동생의 평온한 대화가 지나가자 정신을 차리신 어머니가 다급하게 또 물었다.
“진짜니?”
“네. 성적표는 다음 주에 나온대요. 오늘 성적만 알려주셨어요.”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입에 들어간 시금치를 삼키지도 못하고 그대로 넣고 있는 걸 보면 얼마나 놀라셨는지 알 수 있었다.
“어머머머, 어떡한대. 공부는 민준이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어음.”
부모님의 이런 반응을 보니 공부에 적당히 신경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흔들며 말했다.
“여보도 뭐라고 해봐요.”
“어엄…….”
아버지는 다급히 시금치를 삼키려다가 목에 걸려서 켁켁거리다가, 애써 삼킨 후에 말했다.
“정말 잘했다! 뭐 먹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거 있냐? 그때 준 용돈도 정말로 갚았으니까 그걸 다시 준다던가.”
“현준아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이런 거 말고. 치킨이라도 시켜 먹을까?”
두 분의 열렬한 반응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내일 대회잖아요. 아빠도 괜찮아요. 그때 말했잖아요. 한동안 돈은 필요 없어요.”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아이고, 그러면 어떡하지.”
나는 좋은 해답을 두 분에게 드렸다.
“일요일에 집에 오면 맛있는 거 사주세요. 대회 준비한다고 맛있는 거 못 먹어서, 양념치킨이 먹고 싶어요.”
“그래!”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다치지 말아야 해. 알겠지?”
“걱정 마세요. 완전, 철저하게 조심할게요.”
“우리 아들 든든하네.”
어머니의 배웅을 받았다.
“오빠 잘하고 와.”
“응. 상금 받으면 뭐 사줄까?”
“……정말? 그럼 나 이번에 나온 앨범 하나…… 어떻게 좀…….”
“콜.”
“오빠 사랑해.”
“징그러워. 저리 가.”
처음에는 반쯤 졸던 얼굴에서 환하게 밝아진 여동생의 배웅을 받았다.
“차 왔다. 여보, 다녀올게.”
“응, 현준이 무리하지 않게 잘 봐. 딴짓하지 말고.”
“예이~.”
아버지는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우리 앞에 차가 멈췄다. 대영 태권도라는 이름이 마킹 된 태권도 승합차였다.
“갔다 오면 치킨 먹자.”
“네! 저 혼자 두 마리 먹을 거예요.”
“네 마리 먹어도 돼!”
어머니의 말에 난 소리 내서 웃었다. 그리고 여동생에게 손을 흔들고 태권도 차, 그러니까 대형 스타렉스에 탔다.
이 차는 태권도 학원의 관장님인 이승진의 아버지 차였다.
차 안에는 이승진의 아버지가 운전석을 잡고 있었다.
오늘 풋살대회에는 이승진의 아버지, 김채아/김지혁의 부모님,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동행하기로 했다.
하룻밤 자고 오기도 해야 했고 중간에 김지혁이 내려와야 했기에 부모님들끼리 내린 결정이었다.
차에 정원도 있었고 부모님들도 생업이 있었기에 못 오는 부모님들은 아쉬워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차 안에 힘차게 인사했다.
김채아의 부모님들과 이승진의 아버지, 그리고 형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줬다. 김채아도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럼 잘 다녀와!”
“안 다치고 올게요.”
“그래.”
나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차의 문을 닫았다.
* * *
새벽 다섯 시에 대전에서 출발해서 여덟 시쯤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미리 싸 온 김밥을 먹으면서 적당히 몸을 풀고 있었고, 다른 팀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아홉 시가 되자 경기장에 방송과 함께 거대한 대진표가 붙었다.
[열 시에 개회식이 열리고, 곧바로 경기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혹시 대진표에 팀 이름이 없다면 본부로 찾아와 주세요.]
대회 참가팀은 100팀가량이었고, 오늘 8강에 진출할 여덟 팀을 뽑기 위해서 전부 토너먼트로 진행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불안했다. 속이 탔다.
“안녕!”
이국적인 외모 덕에 눈에 띄는 이민우와 멀리서 인사했다. 형들도 손을 흔들어줬다.
일단 이민우의 팀과 예선부터 안 만나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곧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다.
이민우의 팀만큼 경계 되는, 평균 실력이 정말 높은, 그러니까 축구부가 갑자기 해체되는 바람에 풋살대회에라도 참가하기로 한 저 강원도 팀을 말이다.
전원이 축구부 출신인 데다가 저 중에 최소 세 명은 나중에 국내 프로리그에서 뛸 만큼 재능 있는 팀이었다.
나는 제발 저 두 팀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정체도 모를 신에게 기도하면서 대진표를 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놔.”
형들도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나와는 의미가 조금 달랐다.
“재수가 없네.”
“네 경기나 해야 해.”
A부터 H까지. 총 8개 조를 나눠서 토너먼트 표를 만들었고 숫자가 딱 떨어지지 않았기에 절반가량의 팀은 세 판만 이기면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체력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선 것이었다.
형들의 반응을 이해한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경기 감각 많이 쌓고 좋죠.”
“쟤 보고 생각난 건데, 잘하는 애들 많은 거 아니냐. 걱정되는데.”
김지혁은 불안하다는 듯 얘기했고 형들도 동의했다. 김채아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아요. 처음에 공 몇 번만 잘 차면 순조로울 거예요.”
이민우의 팀과 강원도 팀 말고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걸 알았기에 나는 평정심을 지킬 수 있었다.
“넌 긴장도 안 되냐.”
“긴장되는데요.”
내 말에 김채아와 형들이 거짓말하지 말라는 얼굴을 했다.
조금 억울했다.
“진짜 긴장돼요. 저도 이 풋살대회는 태어나서 처음이란 말이에요.”
김채아가 아니었더라면 이 대회에 참가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김채아가 잘못되면 어떡하냐는 불안도 있었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낙관과 난생 처음 참가하는 풋살대회에 대한 기대감이 불안을 이기고 있었다.
덕분에 긴장은 하지만 다스릴 만했다.
“못 믿겠는데.”
“거짓말…….”
“너무합니다. 다들.”
내가 투덜대자 형들과 김채아가 웃었다.
어느새 열 시가 되니 짧은 개회식이 열리고, 조별로 일정 안내를 했다. 우릴 대표해서 설명을 듣고 온 이승진이 말했다.
“X됐다. 우리 30분 뒤에 바로 경기 시작이래.”
진짜 진행이 빠르긴 하다. 전생에서 다른 풋살대회에 나가본 적 있긴 했지만, 이런 빠른 템포는 잘 적응이 안 됐다. 나는 풋살보다는 11대 11 축구를 한 기억이 훨씬 많았으니까.
“그럼 빨리 몸이나 풀죠. 몸도 못 풀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허둥지둥하던 형들과 김채아가 내 말에 정리됐다. 우리는 우리 경기가 열릴 경기장으로 이동하고, 부모님들에게 얘기해서 위치를 알려드리고 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몸풀기에는 론도만 한 게 없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두 명을 가운데에 놓고 패스를 시작했다.
몸 풀 시간은 정말 짧았다.
경기 준비 및 직원들의 안내 시간도 있었기에 우리는 15분가량의 짧은 몸풀기만 마치고
“고풋살 팀 맞죠? 본부로 오세요.”
가자 중학교 형들의 추억 남기기가 목적이니 가자를 영어로 해서 고, 거기에 풋살을 붙인 이름이었다.
참가신청서 낼 때 형들이 알아서 하래서 저렇게 지었는데.
“아, 이름 진짜 쪽팔리네.”
“송현준 센스 어떡하냐.”
“너무합니다. 진짜…….”
억울하다.
하지만, 형들과 김채아는 웃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직원을 따라 이동했다.
* * *
“아…… 쫄리네.”
“후우, 후우.”
“오전 두 경기 오후 두 경기 진짜 오버 아니냐.”
형들의 불평을 들으며 나는 말없이 웃었다.
경기 시작 직전, 형들과 창백해진 김채아는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건 전생에서 겪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반응이었다. 우리가 정식 풋살 팀과 제대로 한 친선경기는 이민우의 팀뿐이었다.
이민우의 팀은 전국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드는 강팀이었고, 그걸 아는 건 나뿐이었다.
형들과 김채아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의 상대는 수원에서 온 중학생 3학년 팀이었다. 나는 그들이 연습하는 장면을 봤고,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삑, 삐익!
휘슬이 울리면서 경기가 시작됐다.
김지혁이 김채아에게 패스했고, 김채아는 골키퍼 바로 앞에 있는 내게 패스하며 전체적으로 전진했다.
김채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김채아의 앞으로 낮고 강한 패스를 때렸다.
김채아는 상대의 왼쪽 수비 라인을 붕괴시키며 공을 잡았고, 골키퍼를 앞에 두고 슛하는 척을 하다가 중앙의 김지혁에게 패스했다.
김지혁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퉁, 삐익!
“어?”
내가 전진하면서 함께 앞으로 나왔던 골키퍼 이승진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김지혁을 비롯한 김채아와 형들이 어리둥절하면서도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나와 이승진은 가볍게 하이파이브했다.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상대의 공격을 쉽게 막아내고 두 번째 공격 시도에서 또 골을 넣자 형들과 김채아는 깨달았다.
“너무 쉬운데?”
이승진의 말대로였다.
다들 김이 빠진 얼굴이었다. 보통 팀이었다면 긴장이 풀려서 막 경기할 만도 했지만, 우리 팀에게는 이 경기를 소중히 해야 하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김지혁이 형들을 다독였다.
“아무리 쉬워도 진지하게 하자.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으니까.”
“네! 맞아요!”
“그러네.”
“열심히 하자.”
내 힘찬 대답에 형들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세 번째 골을 넣었다. 상대 팀은 정신을 못 차렸다.
이번에 골을 넣은 김채아를 격려하고 본 포지션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김지혁이 내게 다가왔다.
“현준아, 너는 적당히 뛰어라. 왜 그런지는 알지?”
나는 김지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지혁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네.”
“역시, 나는 오늘 불태울 거다. 내일 부탁한다.”
김지혁은 내일 야구부 일정 때문에 돌아가 봐야 했기에 오늘 죽을힘을 다해 뛸 생각인 모양이었다. 첫 경기부터 활동량이 과해 보이긴 했는데 내일 경기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면 괜찮았다.
“알겠습니다. 저만 믿으세요.”
김지혁은 씩 웃더니,
“네가 우리 팀에 와서 다행이다.”
기분 좋은 말을 해줬다. 의욕이 솟아났다.
다만, 의욕을 억눌러야 했다. 아끼고 아끼다가 내일 터뜨려야 했다. 그게 김지혁과 팀원들을 위한 일이었다.
한 경기에 20분, 단판이었지만 총 네 경기를 뛰어야 하니 체력소모가 만만치 않았다.
팀원들이 신났는지 빠르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전진했다.
나는 천천히 뛰면서 공을 받았고, 바로 패스를 주지 않고 볼을 갖고 있었다.
팀원들이 어리둥절해도 나는 침착하게 볼을 발로 만지작거렸다.
“천천히요! 너무 급해요!”
형들이나 김채아는 조금 불만인듯 보였지만, 김지혁만큼은 내 의도를 이해해 줬다.
김지혁은 축구부로 남았어도 잘 버틸 만한 재능이었다.
야구보다는 덜 돋보였겠지만 운동은 결국 잘하는 사람들이 잘한다.
그렇기에 축구를 좋아하나, 목숨을 바쳐보지 않은 사람들은 김지혁을 쉽게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축구부 출신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몇 있었지만, 소수였고, 탈락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진짜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다 곧 열릴 전국대회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지혁을 믿었다.
내가 공을 질질 끌고 있으니 적 팀원들이 내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때 수비 라인 주변에서 서성이던 김지혁이 말없이 손을 들었다.
나는 그 순간 상대 선수 네 명을 가로지르는 패스를 찔렀다.
김지혁은 공을 받았고, 앞에 골키퍼만 둔 채로 가볍게 슈팅해서 골을 넣었다. 그리고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달려왔다.
“뭐, 적게 뛰더라도 패스는 잘 찔러드려도 되죠?”
“이 새끼! 건방지긴.”
김지혁은 내게 장난스럽게 헤드락을 걸었다. 옆에서 김채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