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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53화 (49/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53화

신정우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근처에 다가와 있었다. 남자는 신정우처럼 완벽한 정장 차림이었다.

신정우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날 대할 때와는 다른 퉁명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뭐야.”

신정우가 그런 태도이든 말든 남자는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초대할 때는 안 오겠다고 하더니 웬일이야?”

“이유가 있어.”

신정우는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남자는 신정우에게서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선수 때문인가 보네?”

“참나,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

이번 인생에서는 어제 있던 개회식에서 봤고, 전생에는 몇 번 만난 적도 있었다.

깊은 인연을 맺었던 건 아니었지만, 신정우와 꽤 오래 봐온 덕에 이 남자와 신정우가 무슨 관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인사부터.

“안녕하세요. 송현준이라고 합니다. 대회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나쁜 인상을 남길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보이게 허리를 숙였다.

적당히 어른스러운 인사는 첫인상에 좋다.

신정우는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딱히 별말을 하진 않았다.

남자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선수, 안녕하세요. 나는 쿠거 코리아의 사장 김성도라고 해요.”

학생을 선수 취급해 주는 어른은 흔치 않았다. 그게 겉보기라도 말이다.

쿠거 코리아의 사장이자 이번 풋살대회의 주최자이기도 한 그는 적어도 전생에서 사고 같은 걸 친 적은 없었다.

“이름이 송현준이라고 했고……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예.”

신정우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눈으로 나와 김성도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둘 다 젊은 사장이었고, 둘 다 외국 스포츠의류 기업의 한국 지사를 맡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둘은 일종의 라이벌 비슷한 관계였다.

사실상 쿠거라는 기업이 세계적으로 더 크기 때문에 김성도가 좀 더 우위에 있었고, 전생에 신정우가 한 증언으로는 김성도가 자길 장난으로 업신여긴다고 했다. 장난이라도 기분 나쁘다고 그랬다.

뭐, 지금 내 눈앞에서 그런 건 아니니까 편견을 가질 생각은 없다.

“신 사장이 관심 가지는 걸 보면 뭔가 있나 봐?”

“감사할 뿐이죠.”

“허허, 이따 경기 기대하마. 팀 이름이 뭐니?”

“고풋살이요.”

“뭐라고?”

“아하하, 그 팀이 네 팀이었구나.”

뭔가 부끄러웠다.

이름 좀 잘 지을걸.

다행히 김성도는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듯, 고풋살과 내 이름을 번갈아 중얼거렸다.

그러고 있으니 진행요원이 김성도에게 다가왔다.

“사장님, 시간 됐습니다.”

“어이쿠, 벌써 이렇게. 신 사장 잘 쉬다가~. 그리고 송현준이는 재미있는 경기 하고. 꼭 승리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하고 팀원들 사이로 돌아왔다.

“잘하거라.”

신정우는 김성도를 만나서 기분이 별론지 짧게만 말하고 관계자석으로 향했다.

나는 팀원들 사이로 돌아왔다. 팀원들과 아버지들은 내게 궁금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분이 우리 군자금 지원해 주신 분이에요.”

“아, 로베 사장님이라고 했지? 인사 한번 해야 하는데.”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고,

“물주님이시네.”

“물주가 뭐냐.”

“와, 진짜 저급하다.”

“사과해라.”

“X발…… 미안하다.”

유호성이 실언을 했다고 형들이 뭉쳐서 유호성을 놀려서 사과를 받아 냈다.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인사하고 싶은데.”

그리고 김채아는 정상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이따가 기회 되면 하자.”

“응.”

“선수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진행요원들이 우리를 불렀다.

“잘하고 와라!”

어제는 이 시간에 연설 없이 간단한 안내로 바로 대회를 시작했지만, 오늘은 간단한 훈화 비슷한 거랑 토너먼트 추첨식이 있다고 한다.

“잘하고 와라!”

아버지들은 그렇게 말하고 운동장에서 떠났다.

운동장에는 8강에 오른 팀의 선수들만 남아 있었다.

후보선수까지 있는 팀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딱 다섯 명이었다.

운도 참 좋다고 생각했다.

팀끼리 줄을 서니 꽤 그럴듯한 광경이 되었다.

김성도가 마이크를 잡았다.

[전국중학풋살대회.]

그 한마디에 모두가 고요해졌다.

김성도는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얼마나 멋진 단어입니까? 전국의 중학생들이 풋살로 즐거운 경쟁을 한다! 저는 성적 만능주의이자 엘리트 스포츠화되어 버린 가혹한 학원 축구보다 평범한 학생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런 축구가 좋습니다. 저는, 저희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추구하거든요.]

공감되는 말이었다. 비록 시대에 맞춰서 축구부에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이 시절 축구부는 가혹한 면이 많았다.

[그렇다 해도 경쟁이 없고, 승부가 없다면 스포츠가 아니죠. 어제의 치열한 예선전을 뚫고 올라온 여러분들은 아주 훌륭합니다.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김성도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부 훑어봤다.

[말만 칭찬하는 건 누가 못합니까? 하지만 저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쿠거 코리아에서는 8강에 올라온 여러분께 아스팔트나 모래 운동장에서 신을 수 있는 축구화를 무료로 선물할 생각입니다.]

“오오.”

주변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공짜 축구화에 브랜드 제품이라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무리하다가 다치지 말고, 남은 게임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김성도의 사고방식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축구는 때론 전쟁처럼 치러야 할 때도 있다. 관중이 그걸 원할 때가 있고, 선수가 그렇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해야만 할 때도 있고.

그럴 때 아이러니하게도 멋지고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만들어진다.

언제나 장밋빛 같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이어지는 연설을 들었다.

[자! 오늘 일정을 안내하겠습니다. 지금 조 추첨을 하고, 한 시 전에 8강부터 준결승까지 전부 치릅니다. 그리고 세 시에 3, 4위전을 먼저 치르고 그 직후에 결승전을 치릅니다. 아, 조 추첨은 제가 합니다. 하하하!]

진행 요원이 손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동그란 구멍이 뚫린 상자를 가지고 왔다. 이어서 다른 진행 요원은 팀명이 적혀 있지 않은 8강 토너먼트 대진표를 가지고 왔다.

상자 안에는 우리들의 팀명이 적혀 있는 공이 있고, 김성도가 뽑는 대로 대진표가 정해진다고 했다.

[처음부터 겨울 대회 우승자네요! 팀명이 바뀌어서 못 알아봤어요. 중1시대!]

이민우의 팀이었다. 이민우의 팀명도 처음 들었을 때 막 비웃었었지.

근데, 기분이 싸하다.

김성도의 손이 다음 공을 뽑았다.

그가 공에 적힌 팀명을 보고, 이어서 날 보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좋은 승부를 기대합니다. 중1시대의 상대는 고풋살!]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우리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당황한 기색이었다.

고개를 돌려 이민우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민우는 활기차 보였다. 이민우의 팀원들도 편해 보였다.

다른 대진표 추천도 빠르게 됐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패배자들이라는 이름의 강원도 축구부 출신들이 만든 팀은 우리의 정 반대에 있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쟤네를 4강에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경기는 30분 후부터 시작입니다!]

아니, 두 팀만 피하면 되는데 하필 그중 한 팀이 상대로 걸리다니.

억까를 당하는 것 같아서 짜증 났지만, 나는 어떻게든 이길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4강에 가야 한다.

* * *

“이거 봐요. 코인토스도 이겼잖아요.”

“그럴까?”

“괜찮겠지?”

형들의 반응이 걱정됐다. 준비 시간 30분을 알뜰히 써서 몸도 풀고, 간단한 전술도 지시했지만 예전에 졌던 충격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김채아를 본받으라구요.”

“마, 맞아. 날 본받아.”

다만 김채아는 오민규에게 복수할 수 있겠다면서 즐거워했다. 사실 즐거워하는 척이었다. 긴장한 게 얼굴만 봐도 보였다.

형들은 자존심 때문인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뭐 별거 있냐.”

“몸으로 밀어붙이면 되지.”

“정답이에요. 그리고 침착하게 하면 돼요. 우리 연습도 많이 했잖아요. 우리가 쟤네보다 덩치가 크다는 걸 잊지 마요.”

“그래.”

“맞아.”

우리는 진영 선택권과 공 소유권 중 공을 선택했다. 우리의 킥으로 경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준비됐니?”

“네!”

심판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심판은 바로 뛰어서 이민우의 팀에도 의사를 물었고, 이민우의 팀도 준비가 완료됐는지

“중1! 중1! 파이팅!”

“우리도 저쪽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뭐, 뭐라고?”

나는 김채아에게 농담을 했는데 김채아는 긴장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걱정했지만, 실전에서 잘하겠거니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게 믿는 것 말곤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심판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휘슬 불면 시작이다?”

“네. 후우…….”

나는 센터서클에서 공을 잡았다. 나는 중앙수비수와 비슷한 포지션이라 킥인이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공을 차지 않았지만, 지금은 준비한 게 있었다.

삐익!

나는 김지혁을 대신해서 공격수 자리에 선 유호성에게 패스하고 왼쪽 측면으로 달렸다. 유호성은 곧장 파라 패스를 해줬다. 나는 공을 잡아두지 않고, 뒤꿈치를 이용해 공을 중앙으로 밀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김채아가 있었다.

순식간에 이뤄지고 준비한 콤비네이션에 상대 팀은 바로 대처하지 못했고, 김채아의 슈팅을 허용하는 듯했으나.

“아아…….”

“아깝네.”

김채아를 쫓아온 오민규의 슬라이딩 태클에 슈팅이 막혔다. 공은 하필 오민규에게 맞고 김채아의 허벅지에 맞은 후 사이드라인 밖으로 나갔다.

“좋았어!”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내며 팀원들을 격려했다.

어느새 긴장이 좀 풀린 것 같은 김채아는 진지한 얼굴로 자기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연습 때랑 똑같이 했지만 상대 팀에게 막혀서 긴장보다 승부욕이 불타오르는 모양이었다.

이민우 팀이 빠른 킥인으로 이민우에게 패스했다.

그리고 이민우는, 중앙선에서 바로 슈팅을 때렸다. 예상했던 패턴이다.

“어어?”

이승진이 손을 적절하게 뻗었지만, 회전이 먹지 않은 공은 이승진의 손에 닿기 전에 방향을 바꿨고, 이승진의 손을 스친 후 골망을 흔들었다.

“와아아아!”

“민우 개 지리는데!”

상대 팀이 신나 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깔끔하면서 기습적이고 완벽한 골이었다.

“자자, 기운 내요! 핸디캡 줬다고 생각하죠. 우리가 연습한 대로잖아요?”

킥인 상황에서는 상대 팀이 가깝게 접근할 수 없다는 점과, 경기장의 크기가 작다는 점을 활용한 멋진 플레이였다.

무엇보다 이민우의 슈팅이 말도 안 됐다. 나조차도 매번 저렇게 찰 수 없는 아름다운 골이었다.

“그치, 연습한 대로지.”

“네. 승진이 형, 방금은 뽀록이에요. 공이 회전 안 먹고 휘는 건 프로 골키퍼도 거의 못 막아요.”

“그러냐. 집중하마.”

이승진은 내 위로를 듣고는 피식 웃고, 내 어깨를 두드려줬다.

나는 다른 팀원들도 격려하며 여유있게 공을 잡고 중앙에 섰다.

처음에 쓴 패턴을 경계하는지 이민우 팀이 경계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이럴 때 똑같이 하면 안 된다.

나는 뒤로 패스하고, 패스를 받으면서 천천히 템포를 올릴 생각이었다. 저쪽이 기세가 올랐을 때 공격 기회를 더 주면 안 된다.

풋살은 애초에 골이 많이 나오는 종목이다. 진짜 잘하는 팀은 어떤 상황에서도 슈팅을 날릴 수 있다. 골키퍼에서 슈팅까지 3초 만에 나오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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