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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56화 (52/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56화

내 대활약에 8강전에는 기뻐서 펄쩍펄쩍 뛰시고, 4강전에는 저게 내 아들이라고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에게도 접근한 어른들도 몇 있었다.

부탁받은 아버지는 능숙하게 상대가 누구인지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면서 가지고 다니시는 노트에 적거나 명함을 받아 챙겨주셨다.

그렇게 하고 대회가 끝난 후에 연락을 준다고 하니 어른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지금 진지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처음에는 헤벌쭉하시더니 생각보다 진지하고 수준 높은 관심이 쏠리자 아버지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시는 걸 거다.

신정우와의 비즈니스적인 관계도 간접적으로 언급했기에 신정우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생각하시는 걸 테고.

-나도 아빠는 처음인데, 너 같은 천재 아들을 둔 덕에 별의별 일을 다 겪어서 참 막막했었지…….

어느 전생에서 아버지와 대작을 하며 들은 말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는 많은 유혹을 받으셨다고 했다.

특히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중학교 1학년부터 돋보였던 시절에는 그런 게 더 심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자기가 잘 모르시는 건 차라리 하지 않고,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모든 걸 물어봐 주시는 분이었다.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다만, 지금 신정우를 관찰하는 모습은 솔직히 든든하기보다는 재미있었다.

“저분이 네 아버지?”

“네.”

“열정적으로 쳐다보시는구나.”

“절 걱정하시는 걸 거예요.”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신정우의 말에 피식 웃고 물었다.

“내기는 제가 이긴 거로 해도 될까요?”

신정우는 천천히, 그렇지만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다.”

“감사합니다.”

“너는 필드 위에서 정말 빛나더구나.”

“표현이 시적이시네요.”

신정우가 아련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마 과거를 떠올리는 거겠지.

“뭐…… 나이를 먹는다고 어릴 때 감상이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아서 잠시 묻어두는 거지. 이래 봬도 젊을 때는 조던이나 마라도나 같은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보고, 가슴이 뛰어서 경기가 끝나자마자 유니폼을 사고, 길거리에서 선수들의 얼굴이 박힌 수건 같은 걸 사곤 했었지…….”

“그런가요.”

신정우는 피식 웃었다.

“내가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아무튼, 시대에 이름이 남는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본 경험으로는, 필드 위에서 빛난다는 표현만큼 내게 와닿는 건 없었다. 그리고 너에게서 비슷한 걸 느꼈다.”

“이거는…… 음, 감사합니다.”

겸양을 떨까도 생각해 봤지만, 신정우는 진지한 눈을 하고 있었다.

김채아 덕에 일찍 시작하게 된 인연 중 하나였다. 신정우의 과거 얘길 이 시점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만큼 신정우가 내게 감명을 받은 거겠지.

“고맙다. 다음에 날 잡아서 진지하게 얘기해 보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볼 때는 부모님이랑 함께 보자.”

부모님?

“왜요?”

신정우가 이상하다는 눈을 한 채로 말했다.

“너 미성년자잖아.”

“아.”

자꾸 까먹는다. 내 반응에 신정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우승 기대하마.”

“우승은 힘들지도요. 저쪽 팀도 정말 잘하는 팀이라서요.”

예상대로 결승 상대로 올라온 팀은 강원도에서 온 팀이었다.

“전국대회 출전이 어려워진 축구부 멤버끼리 모여서 나온 팀이라고 했었나? 어렵긴 하겠네.”

“잘 아시네요.”

“관계자석에 있는 축구 관계자 중에 쟤들 스카웃 하러 온 사람들이 좀 있었거든. 너한테 접근한 사람들도 다 그런 사람들이고.”

“그렇군요.”

“근데 뭐 못 이길 거 있겠니?”

“못 이길 수도 있죠. 축구공은 둥글잖아요. 그리고 뭐, 솔직히 져도 돼요. 목적은 다 이뤄서요.”

4강전이 시작하기 전에 김채아의 은사가 돼 줄 배구부 감독도 발견했다.

그래서 결승전은 기대 안 하고 재미있게만 하자고 말했다.

물론 시작한 이상 이기기 위해서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건 나라는 사람의 DNA에 새겨진 생물학적인 반응 수준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좀 내려놓는 정도는 괜찮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신정우와 작별 인사를 하고, 나는 평소보다 훨씬 편한 마음으로 결승전을 준비했다.

* * *

결승전이 끝났다.

“……이게 된다고?”

“으아아아아아!”

“지혁이! 지혁이한테 전화해야 해!”

경기장 밖에서는 박수가 쏟아지고 있었다. 일찍 탈락한 다른 팀 선수들이나 어른들이거나 구경 나온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점수판을 바라보았다.

3-1

생각보다 압도적으로 이겨 버렸다. 상대가 아무리 축구부 출신이라고는 하나 우리 팀에는 내가 있었다.

이민우 팀의 플레이를 모방에서 초반에 한 슈팅이 바로 골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기세를 탔다. 저쪽은 실수를 만회하려고 너무 무리하다가 자기들끼리 무너졌고.

“송현준! 현준아! 우리가 이겼어!!!”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누가 내 뒤를 덮쳤다. 뭔가 뭉클한 게 느껴졌다.

“야야야야! 김채아! 저리 가!”

“왜왜! 너무 좋은데!”

“아니! 너무 붙었어! 저리 가!”

“아.”

김채아는 그제야 깨달은 모양인지 상체를 뺐다. 그 와중에 팔은 안 풀고 있어서 기묘한 백허그 자세가 되었다.

“현준아! 채아야! 최고였다!”

“우리 아들! 너무 자랑스럽다!”

“우리 딸도!”

다행히 형들과 아버지들이 다가와서 축하해 준 덕에 자세도 원래대로 돌아오고 우리는 승리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우승했다.

어디서 우승하든 이 단어는 너무 기분 좋았다.

아, 절대로 잊으면 안 되는 게 있었다.

나는 지나가는 직원을 붙잡고 말했다.

“저희 메달 여섯 개 주셔야 해요. 우리 팀원은 여섯 명이에요.”

팀원들이 그 말에 환호했다.

* * *

“나 화장실 다녀올게!”

“응, 천천히 다녀와.”

김채아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는 묵직한 메달을 만지작거렸다.

실실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릴 정도로 입가가 웃는 걸 멈추지 않았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나오면서도 메달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한 증거 같아서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았다.

김채아는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자기 앞을 막아선 여인 때문에 걸음을 멈춰야 했다.

중학교 1학년이었지만, 김채아는 자기보다 키가 큰 여자를 별로 보지 못했다. 최근에 2㎝가 더 커서 173㎝이 된 김채아는 웬만한 또래 남자들보다 컸다.

근데,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는 키가 180㎝은 되어 보였다.

우연히 마주친 것 같아서 김채아는 피해 가려고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근데, 그 여인은 김채아를 따라 움직이며 김채아의 앞을 막았다.

“김채아 학생, 맞죠?”

“아, 네.”

여인은 주머니에서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서 김채아에게 내밀었다.

“나는 하나 여자중학교에서 배구부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아.”

“대전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하나 여자중학교가 어디 있는지는 알죠?”

“아…… 네.”

당황스러웠기 때문에 김채아는 고개만 끄덕이며 대답만 간신히 했다.

“혹시, 배구부에 들어올 생각 있어요?”

“…….”

김채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자들이 하는 스포츠는 대개 직업으로 삼기 어려워요. 남자 스포츠의 하위 느낌으로 보이니까요. 하지만, 배구는 달라요. 여자 배구는 남자 배구와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스포츠로서의 매력이 있는 몇 안 되는 스포츠에요.”

“…….”

“오늘 하는 거 보니까 풋살도 상당히 잘하는데, 운동 신경이 그렇게 좋다면 배구를 하는 것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제안하는 거예요. 특히 키가 큰 게 마음에 드네요.”

“아…… 네.”

“당장 뭘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부모님이랑 상의도 해보고 생각해 보고 거기 적힌 연락처로 전화 주세요. 궁금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도 되니까. 그럼 가볼게요. 오늘 우승 축하해요. 경기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네, 감사합니다…….”

김채아는 어리둥절한 와중에도 쥐어짜듯이 대답할 수 있었다.

기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 와중에 명함에 적힌 ‘하나 여자중학교’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김채아는 떠나는 감독을 불렀다.

“저기, 만약에 거길 가게 된다면…… 전학 가야 하나요?”

“당연하죠.”

감독은 뭐 그런 걸 묻냐는 태도로 단번에 대답했다.

“네에…….”

김채아의 대답을 들은 감독은 자리를 떠났다. 김채아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송현준에게 호감을 느끼고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고백해 볼 생각이었다. 같이 매일 훈련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상상에서 김채아의 다음 목표는 텅 비어 있었다.

송현준은 멋지다.

목표를 위해서 축구에 진심을 다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멋있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김채아도 몸담을 곳을 찾고 싶었다.

배구 또한 김채아가 좋아하는 스포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전학을 가야 한다.

“김채아? 너무 늦어서 왔는데.”

“아…… 미안.”

김채아는 자기도 모르게 명함을 주머니에 숨겼다.

송현준은 김채아의 그런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했다. 계획대로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현준은 조금 쓸쓸한 기분을 느꼈다.

* * *

어제 우승을 했어도, 어젯밤에 치킨을 먹었어도 오늘은 운동을 해야 했다.

새벽이 되자마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 나는 무거워진 몸을 끌고 운동장에 나왔다.

“안녕! 역시 올 줄 알았어.”

김채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회가 끝난 다음에 훈련을 할지 안 할지 얘길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안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김채아를 보고 조금 놀랐다.

“안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동안은 쉬어도 돼.”

“몰라, 습관처럼 눈이 떠졌단 말이야.”

“그래?”

김채아와 얘길 하면서 무거웠던 몸이 좀 가벼워졌다.

나는 어깨를 풀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회복 훈련이나 해보자.”

“회복 훈련?”

“응. 그저께는 네 경기, 어제는 세 경기나 뛰었으니까 피로가 꽤 쌓였을 거야.”

“그렇구나…… 시키는 대로 할게.”

“좋아.”

나는 전생에서 정리한 회복 훈련 루틴을 김채아에게 하나하나 세심하게 알려줬다.

그렇게 약 한 시간 반이 지난 후, 훈련을 끝내고 잠깐 앉아서 잡담을 나누다가, 문득 앞으로는 이런 훈련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채아는 아마 하나 여중으로 떠날 테니까.

김채아가 정말 떠날까?

김채아는 어떤 선택을 할까?

궁금해진 나는 조심스럽게 떠보기로 했다.

“이제 오후 훈련 같이할 필요 없겠네. 대회 끝났잖아.”

“…….”

김채아는 잠깐이었지만,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런 표정은 잠깐이었다. 김채아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지한 얼굴로 날 봤다.

“앞으로도 계속 똑같이 할 거야?”

“아니, 상황에 따라서 훈련 종류를 바꿔야지.”

“재미없거든. 그런 뜻으로 물은 게 아니잖아.”

“장난이야. 응, 계속해야지.”

“……그렇지, 역시 너한테는 풋살대회가 끝이 아니지…….”

뭔가 씁쓸해 보였다.

김채아가 무슨 선택을 할지 보이는 것 같았다.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김채아가 말했다.

“그래도 오늘 오후는 같이해. 할 말도 있고.”

“할 말?”

“응, 할 말. 학교 끝나고 벤치에서 봐.”

김채아는 내가 더 질문할까 무서운 건지 도망치듯 떠났다.

배구부에 관한 고민을 물어볼 것 같긴 한데, 할 말이라니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 중학생의 호르몬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가슴 부근을 주먹으로 퍽 쳤다.

“아프다…….”

헛소리를 중얼거린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서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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